정몽구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랑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것을 갖고 말들이 많죠.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문제가 많은 판결이니까요.

 

법원에 출입할 때 서울중앙지법이었는지 서울고법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당시 형사수석부장 판사랑 점심식사 자리에서 잠깐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제 질문이 뭐였냐면 "검찰이나 법원이 수사나 재판을 하면서 소위 '경제논리'라는 걸 고려해야 하느냐".

아주 간단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하다 못해 "법이 먼저지만"이라는 단서라도 달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 분이 일본의 판ㆍ검사들이랑 만났던 얘기도 해 주던데요.

일본에서는 경제논리 안 따진다는 겁니다.

그런 걸 왜 생각하느냐는 식이라고 해요.

그러면 우리는 왜 따져야 되느냐.

"사회 발전 단계,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 그 분의 얘기였어요.

판ㆍ검사들이 경제 생각 안 해도 되는 나라와 생각 안 하면 안 되는 나라,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그런 차이가 있다는 거였죠.

 

이런 논리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상당 부분 맞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서 정몽구 회장 봐 줘도, 집행유예 내려도 괜찮다는 거예요.

한국 사회의 수준에서 크게 이상한 판결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문제가 많다고 한 것은요.

정몽구 회장의 혐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과 횡령인데요.

이 죄를 범함으로써 취한 이득이나 제3자로 하여금 취하게 한 이득이 50억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거든요.

정 회장은 900억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해서 700억원 넘게 횡령하고 회사에 1600억원의 손해를 끼쳤으니까 이 '케이스'에 해당이 돼죠.

 

근데 이 사람이 1심에서 받은 형량이 꼴랑 징역 3년.

그렇게 해서 항소심으로 넘어갔는데 이번엔 집행유예.

3년을 초과하는 기간의 징역형을 내리면 집행유예가 안 되거든요.

결국엔 상급심에서 집행유예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도 1심 판결에 담겨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죠.

 

그리고 정대근 농협 회장은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법정구속됐는데 '돈을 줬다'는 김동진 부회장은 집행유예.

왜 그랬을까요.

정몽구 회장은 집행유예 해 줬는데 김동진 부회장은 구속하면 모양새가 이상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법원이 완전 본헤드 플레이 하는 것이거든요.

 

또 한 가지는 강연하고 신문에 글 쓰라는 이상한 사회봉사와 돈으로 죄를 갚을 수 있다는 대목.

재판부의 취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법 감정'만 아니라면 사실 틀린 얘기는 아니거든요.

니가 지은 죄를 니가 사회에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갚아라.

괜찮거든요.

 

근데 문제는 이게 하나의 '선례'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법원이 명령하는 사회봉사는 엄연히 '형벌'과 '죄값'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과연 강연 다니고 신문에 글 쓰면서 자기 이름 날리고 시쳇말로 '나대는' 것이, 더구나 법 안 지켜서 구속까지 됐던 사람이 '준법경영'을 주제로 그렇게 하고 다닌다는 것이 과연 '현 시점 우리 사회의 수준'에서 용납될 수 있는 일인가.

수사와 재판에서 경제논리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수준이라면 강연과 기고는 죄값을 치르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 역시도 우리 사회의 수준 아니겠는가 말이죠.

 

집행유예를 내린 것이 잘못됐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법과 경제' 사이에서 가장 적합한 결론을 찾으려 했던 재판부의 고민은 충분히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받아든 답안이 과연 한국경제를 비롯한 여러 신문에도 나온 것처럼 '제 3의 길'이라고 할 수 있나.

최적의 대안인가.

그렇게 많은 원칙을 희생하고 그렇게 많은 논란거리를 남긴 결론 말고 다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을까.

 

정몽구 회장이 처음 수사선상에 올랐을 때 정 회장과 현대차가 어떻게 했습니까.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나요.

1조원 내겠다고 했어요.

내도 되고 안 내도 돼요.

법원이 8400억원 내라고 했지만 제 생각은 그래요.

 

안 그러겠다는 다짐을 받아내려 하지 않고 다짐을 받아내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대신에 너무 쉽게 '그래, 돈 내라'...

그렇다면 과연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사법이 하는 역할이란 무엇인가.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번 판결이 현대차가 많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우리나라 경제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 어떨지도 그렇고요.

그런데 사법의 발전, 사법과 경제를 아우르는 우리 사회 시스템 전반의 발전에 이번 판결이 기여하는 바는 무엇이냐.

굉장히 고민스러워지고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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