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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이었습니다.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이 미국에 출장을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이었죠.

들어오는 정 사장을 붙잡고 인터뷰를 하자고 다른 신문사의 선배 기자 한명이랑 같이 인천공항에 갔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어떤 방식으로 할까 짧은 시간이나마 그 선배랑 같이 고민을 하면서 정 사장을 기다렸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정 사장하고는 단 한 마디도 못 했습니다.

정 사장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기까지 내내 누군가하고 전화통화를 했기 때문인데요.

 

전화를 건 건지 받은 건지, 누구랑 무슨 얘기를 했기에 그렇게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전화기를 꺼내 들고 오랫동안 통화를 했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을 비롯해서 몇 차례 정 사장을 짧은 시간이나마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서 느꼈던 점은 왜 저렇게 피하기만 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얘기할 때는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그렇게 하라고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는 게 '겸손'이라고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는 걸 수도 있죠.

 

국내 재계 2위 그룹이자 세계 6위 자동차 기업의 유력한 후계자, 말하자면 세자죠.

아직 책봉까지 됐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요.

그런 분이 휴대폰 통화를 하는 '꼼수'를 쓰면서까지 기자들과는 인사말조차 주고받지 않고 바깥 세계와 접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작년 10월에 도쿄에서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부사장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요.

이제 곧 도요타의 경영권을 물려받게 될 거라고 하죠.

한국을 비롯해서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참석한 만찬장에서 만나서 잠깐 인터뷰도 하고 그랬는데 생전 처음 보는 외국 기자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불편해 하는 기색 하나 없이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얘기를 하더라고요.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내는가.

저는 자신감이 한 가지 원인이라고 보는데요.

그럼 자신감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도요다 부사장은 20여년 전에 도요타에 입사해서 20년 만에 임원이 됩니다.

일반 직원보다는 빠른 편이지만 한국의 재벌 2, 3세보다는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린 거죠.

반면에 정의선 사장은 1999년에 만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현대차에 입사하자마자 이사가 됩니다.

그러고 나서 6년 만에 기아차 대표이사가 되고요.

 

쫄도 자존심이 있지 소대장, 중대장 안 해 본 사람이 군사령관이라고 앉아 있으면 총 들기 싫어집니다.

그건 정 사장 입장에서 보면 권위 부재, 자신감 부족으로 이어지게 되고요.

 

그런 초고속 승진이 의미하는 것은 또 뭐냐면 '초고속 경영권 승계'겠죠.

빨리 하려다 보니 편법, 불법이 동원되기도 하고요.

그걸 감추려다 보니 자꾸 숨기게 됩니다.

세상 밖으로 안 내놓으려고 하죠.

 

글쎄요.

앞으로 정씨 가문의 왕위 승계가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정의선 사장을 세상 밖으로 좀 내놓고 사람들이 보다 친근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면 오히려 목적하고 있는 바를 더 쉽게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정 사장님, 전화통화는 다 끝나셨는지요. 저하고 차 한잔 같이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