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시즌을 맞아 비슷비슷한 증권사 보고서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위험'을 무릅쓴 소신 보고서가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양희준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15일 보고서를 통해 두산중공업의 자회사 두산엔진이 올 1분기 5000억원대의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난 것으로 추산했다. 통화옵션으로 60억 달러 가량의 수주잔고에 대한 환 위험을 헤지 하다 이 같은 손실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가 나오자 두산엔진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양 애널리스트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 평가손실액은 2070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양 애널리스트는 "회사측이 집계가 안 됐다며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해 지난해말 사업보고서를 바탕으로 추정치를 냈고, 이 때문에 실제 손실액과는 차이가 날 수 있다"며 "추정액이 나오자 회사측이 어쩔수 없이 손실액을 털어놨다"고 주장했다. 투자자를 위하는 기업이라면 애널리스트의 정당한 자료 요구를 거부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두산엔진의 파생상품 관련 평가손실액을 추정한 사람은 양 애널리스트가 처음이다.
양 애널리스트는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4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말 미래에셋증권으로 둥지를 옮겼다. 회계사 출신 답게 막연한 전망보다 정확한 수치를 산출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지난해 2월 새 정부가 한국형 원자력 발전 기술을 수출 산업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밝힌 직후 두산중공업의 한국형 원전 수출액을(연간 1조5000억원)을 업계에서 처음으로 추산한 것도 양 애널리스트였다.
그는 "두산엔진의 대규모 파생상품 손실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그동안 누구 하나 나서 손실액을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불확실성이 증대되자 두산중공업의 주가가 약세를 보였고 그렇다면 누군가는 추정치를 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양 애널리스트는 "추정액을 2000억원~7000억원으로 뭉뚱그려 말 할 수도 있었지만 이럴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는 추정치가 되고 만다"면서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정확한 숫자를 제시해야 하는 게 애널리스트의 의무"라고 말했다.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도 고만고만한 보고서를 거부한다. 최근 내 놓은 '제일화재 M&A가 주는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서 애널리스트는 이 보고서에서 메리츠종합금융이 제일화재 인수에 성공한다면 대주주 지분율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금융사들이 앞으로 M&A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증권사들이 제일화재 M&A의 성사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비슷한 보고서를 쏟아 내는 동안 서 애널리스트는 한 수 더 내다본 것이다.
그는 지분율과 PBR이 낮은 회사를 표로도 제시했다. 대주주 지분율이 6.6% 밖에 안 되고 PBR도 1배 수준인 대신증권을 사실상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 당국이 제일화재 M&A를 승인할 경우 시장에서 여러차례 거론되어 온 대신증권도 M&A 타깃이 충분히 될 수 있다. 그동안 감독 당국은 금융권의 적대적 M&A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회사쪽에서 제시하는 자료만 갖고 보고서를 내다 보니 고만고만한 내용 밖에 안 나오는 것"이라며 "특히 실적 시즌에는 숫자까지 비슷한 보고서가 즐비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애널리스트들이 소위 '안전빵'으로 보고서를 내는 것은 죄악"이라고 덧붙였다.
양 애널리스트는 "앞으로도 투자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읽을 만한' 보고서를 내겠다"고 했다.
안재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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