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스크랩] 쟈일리톨 할머니의 영업전략 [시와 그림에서 배우는 인간관계-컬럼] 2008/01/09 08: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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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경닷컴 > 서안나의 시와 그림에서 배우는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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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인파가 모여드는 강남역은 특히 주말이면 제대로 걸음을 걷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인파들이 많다. 강남역 지오다노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각종 먹거리의 향연이 시작된다. 20대와 30대 층을 겨냥한 주점과 식당과 카페들이 밀집해있다.


 이곳에서 술이 한 잔 들어가고 취기가 오를 때쯤이면, 꽃을 들거나 쟈일리톨 껌과 초콜릿을 파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할머니들은 오랜 영업비법으로 연인관계로 보이거나 남자와 여자들이 같이 술을 마시는 좌석 앞에서 물건을 사줄 때까지 꿋꿋하게 서 계신다. 술자리서 마음 약한 사람들이 보다 못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껌이나 초콜릿을 사게 마련이다. 쟈일리톨 할머니들은 웬만큼 사양해서는 쉽게 물러서시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파는 물건 값은 원가의 두 배 이상의 이윤을 남기는 쏠쏠한 영업으로, 남성들의 자존심이나 여성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영업방식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업방식은 판매자의 만족과 일방성만이 강조되고 있어 커다란 성과를 올리지 못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영업은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사석에서 들은 보험 세일즈 귀재인 A씨의 비법을 옮기면 이렇다. 영업을 할 때는 정면으로 승부를 겨뤄서는 실패할 확률이 크다고 한다. 먼저 물건을 팔겠다는 의도가 상대방에게 전달되면 압박감을 받은 구매자는 미리 마음을 닫아버린다고 한다. 우회적으로 치고 들어가야만 성공 확률이 커진다고 한다.


 우회적으로 치고 들어간다는 말은 성실성과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고 상대의 요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보험 영업에서 흔히 쓰는 용어 중에서 “빌딩 타기”가 있다고 한다. A씨는 자신이 지정한 빌딩 전체를 수개월 동안 매일 드나들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수개월 동안 인사를 다니는 동안 문전 박대와 인간적인 멸시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그러다 상황이 역전되는 시기가 온다고 한다. 매일 정성껏 고개를 구십도 각도로 인사하고 다니는 A씨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겼다고 한다. 이때 다른 보험사에 보험을 들었던 사람이 사고를 당해서 A씨에게 슬쩍 대비법을 문의해왔다고 한다. 그러자 A씨는 팔을 걷어붙이고 다른 보험회사의 약관과 보험금 정산 방식을 다 외워서 사고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감동한 그 고객은 다른 손님들에게 A씨를 추천해주었고, 타사의 보험을 해약하고 A씨에게 보험을 드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불과 한 달 사이에 10억의 매출을 올려 A씨는 지사에게 최고의 세일즈맨이 되었다고 한다.


 그 보험 세일즈맨의 기적과 같은 세일즈 신화를 종합해보면 성실함과 고객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고객의 이익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최고의 영업비법 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영업 전략은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말에 열심히 호감을 표시하며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열리는 법이다. 커다란 입보다 커다란 귀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명한 역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들의 영업 비법은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고객의 말에 진실하게 귀를 기울이면 먼저 고객이 술술 자신의 신세한탄을 풀어놓는다고 한다.


 여성들의 수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에게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 행위는 아니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면 답답한 속이 확 풀려버린다고들 한다. 이처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필자도 대학가의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생들이 평가한 강의평가를 확인해보았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쓴 강의평가 중에서 학생들이 발표를 중간에 끊고 질문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달라는 의견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가르친 것을 몰라주는 학생들을 야속하게 여기며 우울한 주말을 보냈다. 너무 속이 상해서 선배님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선배님은 따듯한 말로 위로를 해주면서, 학생들의 요구를 정학하게 파악하지 못한 점 또한 냉정하게 질책을 해주셨다. 며칠을 두고 곰곰 생각해보니 나 자신의 무의식적인 행동에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치부하는 흑백논리 속에 나 역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는 쟈일리톨 할머니처럼 내 의견만을 전달하며 학생들의 요구를 정확하게 집어내지 못하는 일방향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보면 성공하기란 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성실성과 책임감이 같이 따라야 하고 상대의 요구를 알아차리고 충족시켜줄 수 있는 쌍방향적 소통의 능력이 있어야 하기에 쉽고도 또한 어려운 일인가 보다.

  

 오늘은 유홍준 시인의 시 <아교>를 읽어보려 한다. 우리 몸에 여기저기 있는 흉터들의 벌어진 틈까지 메워 주는 아교는 아버지의 종교라고 진술하고 있다. 시인의 아버지는 남루한 살림살이와 자신의 잘못과 늙어가는 당신의 훼손된 신체까지도 아교로 붙이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이들의 부서진 낡은 안경다리와 플라스틱 명찰을 붙여주시고 부부 싸움으로 부서진 개다리소반을 붙이시던 아버지의 아교 칠은 종교이상으로 신성성을 지닌 작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교”라는 시어를 통해서 시인은 상처 난 이 시대의 아픔들을 감싸는 손길을 참신한 시각으로 다시 해독해내고 있다. 흉터란 우리 삶의 역사이며 흔적인 셈이다. 어딘가에서 긁히고 상처 입은 우리 몸의 흉터 속에서 아픈 과거들이 울고 있으니 말이다. 소통되지 못하는 아픔들이 우리 몸에 터를 자리 잡은 그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당신의 몸에는 얼마나 많은 상처가 살고 있는지.....



       아교


                         유 홍 준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하루도 아니고

연사흘 궂은비가 내리면

아버지는 선반 위의 아교를 내리고

불 피워 그것을 녹이셨네 세심하게

꼼꼼하게 느리게 낡은 런닝구 입고 마루 끝에 앉아

개다리소반 다리를 붙이셨다네

술 취해 돌아와 어머니랑 싸우다가

집어던진 개다리소반……

살점 떨어져나간 무릎이며 복사뼈며

어깻죽지를 감쪽같이 붙이시던 아버지, 감쪽같이

자신의 과오를 수습하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세심하게 꼼꼼하게 개다리소반을 수리하시던

아교의 교주 아버지 보고 싶네

내 뿔테안경 내 플라스틱 명찰 붙여주시던

아버지 만나 나도 이제 개종을 하고 싶다 말하고 싶네

아버지의 아교도가 되어

추적추적 비가 오는 아교도의 주일날

정확히 무언지도 모를 나의 무언가를 감쪽같이 붙이고 싶네



    <유홍준 시집 "나는, 웃는다" (창비) 에서>



 *유홍준 시인은 논개의 사당이 있고 물이 맑은 진주에 사는 시인이다. 시인은 제지공장에서 3교대로 제지공으로 일하고 있다. 요즘은 제지공장에서 해직되어 <오마이 뉴스>에 참담한 심정을 글로 쓰기도 했다.
  1962년 경남 산청 출생했으며, 1998년 시와 반시로 등단 했다. 시집으로는 2004년 '상가에 모인 구두들' (실천문학)과 2006년 '나는, 웃는다' (창비)가 있다. 제 1회 시작문학상과 제 2회 이형기문학상을 수상해서 작년 한 해 상복이 터진 시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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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스크랩] 밥 한 그릇에 담긴 철학 [시와 그림에서 배우는 인간관계-컬럼] 2008/01/05 18: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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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에 담긴 철학


 


 일생을 살아가면서 나를 받쳐주는 가장 강력한 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 대답 중의 하나가 어머니의 힘일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한 끼의 밥과 같은 음식 맛으로 혹은 아픈 배를 쓰다듬어 주는 따스한 손의 촉감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내 주변에 유독 남의 입장을 잘 헤아려주는 시인이 있다. 어느 모임에서 옆자리에 앉은 그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었다. 대화가 오가면서 시인의 배려의 힘이 바로 어머니의 ‘밥 한 그릇의 철학’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시인은 언제나 가슴속에 어머니의 밥그릇을 품고 산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렸을 적에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겨우 밥줄이나 먹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런데 항상 절약하시던 어머니는 손님이 찾아들거나 동냥하러 온 사람들에게 커다란 사기 밥그릇에 밥을 가득 퍼 담아서 김치쪼가리와 함께 대접을 하곤 했단다.


 어느 날 시인이 어머니에게 다소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 우리 먹을 것도 변변치 않은데, 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심이 후하신 건가요? ”


그러자 듣고 있던 어머니가 시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고 한다.


“나도 어디선가 들을 이야기다만, 나중에라도 네가 어디 가서 배곯을 때 누군가 너에게 따스한 밥 한 그릇 주게 해달라고 내가 미리 보시하는 거란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시인은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라 가난함 속에서도 주변을 헤아리라는 어머니의 숨겨진 말뜻을 다는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가여웠고 자신을 위한 어머니의 사랑에 가슴이 탁 막혀오더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버리자고 맹세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은 여전히 가난했고 돈도 안 되는 시를 열심히 쓰고 있다. 자신은 남을 위해 물질적으로 베풀어 줄 것은 없지만 대신에 마음이 부자라고 말했다. 어쩌면 자신의 무능력함을 합리화시키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이라도 부자인 게 어디냐며 활짝 웃는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남다른 점이 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며 남에게 화를 내는 법도 없다. 가족들과 전화를 할 때도 친구처럼 상냥한 부모의 모습을 보인다. 또 격한 의견 대립이 있는 자리에서도 농담을 던져 사람들의 격양된 감정을 누그러뜨리게 한다.


 나는 가끔 밥을 먹을 때마다 동료시인이 말했던 어머니의 밥 한 그릇에 담긴 소박한 철학을 떠올리곤 한다. 자식을 생각하면서 걸인에게 밥 한 그릇을 꼭꼭 눌러 담았을 어머니의 마음이 시인의 가슴 속에 환한 불빛으로 켜져 있다는 것을.


 요즘에 이런 어머니의 밥 한 그릇의 철학을 맛볼 수 있는 밥집이 있다. 바로 종로 삼가 역에서 낙원상가 쪽으로 나오면 곧 쓰러질 듯한 해묵은 간판을 내건 '소문난 집 추어탕'이 그곳이다. 이곳의 식사가격은 1,500원이다. 이 식당의 주인은 근처 탑골공원의 걸식 노인들을 위해 밥값을 올리지 않는 어머니 마음과 같은 경영철학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해장국이 펄펄 끓는 가마솥을 옆에 낀 식당 문을 들어서면 식당 한편에 깍두기와 단무지를 담아놓은 커다란 찬합 통들이 보인다. 투박한 둥그런 나무 탁자들에 모르는 사람들끼리 앉아 김이 설설 오르는 뚝배기에 담긴 해장국과 밥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한다. 흰밥과 직접 퍼 담은 깍두기 그리고 붉은 고춧가루통과 시래기가 섞인 해장국이 전부이지만 노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는 따뜻한 어머니의 밥상임이 틀림없다. 이 '소문난 집 추어탕' 부근의 골목길에는 2,500-3,000원 정도면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순대와 돼지머리 고기 그리고 김치찌개의 구수한 냄새와 함께 막걸리를 걸치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골목이다.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가 한 편 떠오른다. 멀리 사는 어머니가 부쳐 온 소포 꾸러미를 여몄다 풀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두현 시인의 시를 읽어본다. 낡은 장갑과 버선과 헌 내의로 둘둘 싼 유자 몇 알과 어머니의 서툰 필체를 보며 눈가를 붉히는 시인. 물미해안 파도소리를 따라 새벽까지 자식 걱정으로 밤을 밝히는 어머니의 절절한 마음이 눈물자국처럼 드러나는 시이다.



 

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 고두현 시집『늦게 온 소포』, 민음사, 2000



*고두현 시인은 1963년 경남 남해 출생했습니다.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유배시첩」연작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시집으로『늦게 온 소포』『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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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스크랩] 유머의 힘과, 검은 피카소 “쟝 미셸 바스키야” [시와 그림에서 배우는 인간관계-컬럼] 2008/01/02 06: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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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머의 힘과, 검은 피카소 “쟝 미셸 바스키야”



 “형수님, 저 흥분 데요!” 이 말은 내가 오래 기억하고 있는 재미있는 유머 중의 하나이다. 나는 가끔 모임자리가 무료하거나 어색해질 때 이 유머를 종종 써먹곤 한다.


“흥부가 놀부 마누라에게 밥주걱으로 얻어맞은 이유를 아시나요?” 하고 질문을 던지면, “글쎄”하며 문제 풀기를 포기하거나, 이미 답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맞히기 마련이다.


“왜 맞았는데요?.” 하고 진지하게 물어오면

“양식거리 얻으러 간 흥부가 놀부 마누라의 손을 잡으며, 형수님, 저 흥분 데요. 하고 말했다는군요.”


 이쯤 되면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내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가난한 흥부의 입장을 빗겨나가 뒤통수를 치는 색다른 시선에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모임은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이 유머 속에는 형제간의 우애를 져버리는 현대인들의 이기적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유머는 상징성을 띠면서 고발의 성격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고발의 성격 이외에도 어색한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고 웃음을 통해 고된 삶을 해쳐 나가는 긍정적 힘을 동시에 갖는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곧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대화란 언어를 통해 나와  상반된 입장의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직장일이나 협상 등에서 화술에 따라 아주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대화의 기법” “협상하는 법” 등의 제목으로 쏟아지는 자기계발 서적들에서 화술의 중요성이 유독 강조되고 있다. 화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유머이며 웃음이다. 웃음은 미래사회에서도 또 하나의 능력으로 요구되고 있으며, 유머가 있는 사람들이 어떤 자리에서든 인기가 있기 마련이다.



 

쟝 미셸 바스키야(1960~1988), 무제, 1981, 61X51cm :
나무 판넬 위에 아크릴릭, 유성크레용, 종이 꼴라쥬






쟝 미셸 바스키야(1960~1988), 무제, 1982, 244X244 :
십자모양 프레임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위 두 편의 그림은 “천재 낙서화가” 혹은 “검은 피카소”라고 불리는 <쟝 미셸 바스키야>의 그림이다. 낙서를 해 놓은 듯한 그림들을 보면 화가의 유머러스함을 읽어낼 수 있다. <쟝 미셸 바스키야>의 경우. 그가 유명해지기 이전에 그는 길에서 종이 박스 속에서 잠을 자던 떠돌이였다. 그가 아무 곳에나 낙서처럼 그려놓은 그림이 한 평론가의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그는 혜성처럼 화단에 등단하게 된다. 검은 피카소라고 불릴 만큼 독특한 그림세계를 표방하던 그는 정신적 지주였던 앤디 워홀을 만나면서 팝아트를 하게 된다.

 그의 그림들을 보면 형식에 얽매이거나 기존의 화풍을 답습하고 있지 않다. 마치 아이들이 마구 그려놓은 낙서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 친근함의 정체는 바로 유머의 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유머러스한 그림에는 화가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을 넘어서서 흑인으로서의 불평등함과 시대의 야만과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화단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마약중독과 사랑하던 사람과 친구들과의 결별 그리고 앤디 워홀의 죽음의 충격 등으로 28살에 죽음을 맞는 불우한 삶을 살다 갔다. 이러한 그의 생애는 <바스키야>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고발적인 상징성을 담은 그의 그림에서도 우리는 웃음과 유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고함치고 잔소리하는 말보다 단 한 마디의 웃음의 힘이 더 큰 법이다. 마치 낙서 같은 시, 웃음이 있는 시 그러나 삶의 진한 페이소스가 서린 김영승 시인의 시 두 편에서도 웃음을 읽을 수 있다.



반성 16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반성 21


                   김영승



친구들이 나한테 모두 한마디씩 했다. 너는 이제 폐인이라고

규영이가 말했다. 너는 바보가 되었다고

준행이가 말했다. 네 얘기를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현이가 말했다. 넌 다시

할 수 있다고 승기가 말했다.

모두들 한 일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 김영승의 詩集 "반성"(민음사, 2007) 중에서 -



 낙서처럼 보이는 시인의 시 두 편은 이성의 힘보다는 영혼의 울림을 통해 나온 직관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술을 마시지 말자”라는 반성의 행위를 통해 독백 조로 함축성 있게 서술되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나”의 나약한 의지를 반성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웃게 된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웃음의 뒤편에 감추어진 진정한 힘을 통해 시인의 개별적 체험이 보편적인 힘을 획득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시를 뛰쳐나온 살아있는 시어들이 우리들의 힘든 어깨를 쓸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 김영승 시인


시인 김영승은 1959년 인천에서 태어나 제물포고와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반성·시」 외 3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차에 실려 가는 차」 「취객의 꿈」 「아름다운 폐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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