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지는게 조지는게 아니야. ['당신이 가져야 할 섬(汝矣島)'에서] 2008/09/08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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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기와 빨아주기.

언론에서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상대로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것을 '조진다'고, 긍정적인 기사는 '빨아준다'는 은어로 표현합니다.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도 상당히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내용일텐데요. 그러면 제가 다음의 내용을 기사로 쓴다고 했을 때 그 기사는 조지는 기사일까요 빨아주는 기사일까요. 한번 판단해 보시죠.

 

국회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강연이 있었던 지난 2일의 일입니다.

9월 위기설이 터져나오며 금융시장이 출렁인 바로 다음날이라 '정말 위기가 오는건가'에 대한 관심이 의원들 사이에서도 컸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침 7시반에 진행되는 조찬 세미나임에도 20여명의 의원들이 참석했죠.

하지만 세미나 시작 전 아침밥상에 올랐던 주요 화두는 환율이나 증권시장의 위기가 아닌 '한국은행 구미지점' 문제였습니다.

세미나를 주최한 연구모임에 속하지도 않았음에도 일부러 모임에 나온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경북 구미갑)이 최근 없어진 한은 구미지사를 부활해줄 것을 계속 요구하고 나선 것이지요.

일단 "구미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나 되는데 한은 지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 "폐쇄된 구미 한은지점 건물이 정말 좋다. 그만큼 아름다운 건물은 구미에서 찾아보기 힘든데 폐쇄된 이후로 용도를 못찾아 방치하고 있다. 부활시켜달라"는게 주요 논거였습니다.

그러다 "포항에도 한은 지점이 있는데 왜 구미에는 없나"며 다른 인접 도시를 걸고 나섰습니다. 이쯤되자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포항 남구울릉)이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이 전 부의장은 "왜 포항은 걸고 넘어지나. 울진 등 동해안 지역에 대한 현금공급도 있고 해서 한은 지점이 있어야 한다. 구미는 대구에 있는 한은 지점에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지 않나"며 반발한 것이지요.

의원들이 모처럼 공부해보겠다며 마련한 진지한 자리였지만 초반 모습이 약간 우스워진건 사실입니다.

오른쪽부터 이 총재, 이 전 부의장, 김 의원입니다.

 

이 내용을 기사화한다면 내용 자체로는 조지는 기사겠지요.

9월 위기설 와중에 한가하게 자기 지역구내 민원이나 한은 총재에게 제기하고 있었던만큼 비판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내용을 기사화한다고 했을때 그 기사는 꼭 '조지는'기사로 비쳐지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분명 비판할만한 부분이지만 지역구 유권자들에게는 '용감히 나서서 지역구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헌신적인 사람'으로 비춰져 기사 자체가 '빨아주는 것'으로 정반대로 둔갑해버릴 수 있다는 거죠.

국회에 관련된 기사를 쓰다보면 이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연말 예산심사때 지역구 사업 예산을 무리하게 늘린 의원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 해당 의원들은 그 기사를 스크랩해 지역구에 뿌리며 자신의 실적을 홍보하는 식이죠.

각 의원이 자신의 지역을 대변하는 것은 우리 대의정치의 중요한 원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중앙 무대에서 무리하게 지역구를 챙기는 것이 표로 연결되는 것은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부정적인 것임에 분명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만은 조지는 기사가 정말 조지는 기사로 읽히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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