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對)기자 사기극이었던 11일 추경안 처리 ['당신이 가져야 할 섬(汝矣島)'에서] 2008/09/16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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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아침은 기자생활하는 동안 잊지 못할 듯 합니다.

국회에서 새벽 1시반까지 추경안 처리 과정을 지켜보고 '한나라당 강행처리'라는 1면 제목을 뽑고 왔는데 아침뉴스를 틀었더니 무산됐다는 내용이 나올 때의 느낌이란.

자정을 전후해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추경안이 처리됐지만 새벽 4시에 한나라당이 사실상 백기를 들면서 뒤집혀 버린 것이죠. 덕분에 중앙 일간지들은 하나같이 1면에 오보. 낯 뜨거운데다 올드매체로서 신문의 한계를 체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자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한번씩 속았으니..

 

민주당의 '뻥카'.

시간을 돌려 추경안이 한참 예결특위 소위에서 심사되고 있던 11일.

저녁까지 기자들은 추경안이 추석 전에 처리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은 강행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추경안 단독처리의 전례가 없었던데다 민주당이 '절대 통과시켜 줄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죠.

사실 야당이 '절대 안된다' 이야기하면서 몇 가지 양보를 해주고 받아주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 경우는 약간 달랐습니다. 한전 등 상장공기업에 1조원 이상을 지원할 수 없다는 민주당의 논리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는데다 추경안을 꼭 11일까지 처리해줘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죠. 결국 기자들은 민주당의 엄포가 꼭 엄포만은 아닐거라 생각하면서 추경안 심사가 추석 이후로 넘어가는데 한 표를 던지는 분위기였습니다. 때문에 정치부 출입 기자들의 경험이 적은 모 경제신문의 경우에는 '추석전 추경안 무산'으로 저녁 가판에 박기도 했었죠.

이렇던 민주당이 기류를 바꾼 것은 저녁 9시를 넘어서면서부터였습니다. '절대 처리 못해준다'더니 밤중에 원내지도부가 국회에 모여 회의를 시작한 겁니다. 회의를 거듭하는 와중에 한전 등에 대한 지원금을 조금 삭감하고 민주당이 요구하는 예산안을 추경안에 추가 반영하는 선에서 해결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죠.

갑자기 확 바뀌는 분위기에 기자들도 바빠졌습니다. 다음판 기사 제목을 타결 가능성을 풍기는 방향으로 고치고 이에 맞춰 기사도 약간 손보고.

예상과달리 상황이 길어진 명절 전날 밤, 한 민주당 출입기자는 조정식 원내대변인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결국 민주당이 한전 보조금 안된다고 했던 건 뻥카(카드놀이에서 패가 좋지 않음에도 좋은척 상대방을 속이는 수법)였죠?"

 

자기당 의원들도 속인 한나라.

결과적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합의는 실패했지만 한당이 관련 법을 예결특위에서 강행처리한건 다들 아실 터. 문제는 다음부터였습니다.

예결특위 전체회의의 정족수 문제를 놓고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가 민주당에서 있은 거였죠. 민주당이 관련 문제제기를 처음한 것이 새벽 0시 30분이었으니 민주당의 주장만 반영했다면 신문의 마지막 판 마감 시간인 1시 30분 전에 고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작은 절차적 문제로 고치면 충분히 보완 가능하다."며 추경안 처리를 위해 밤 늦은 시간에 본회의장에 집결한 의원들을 붙들었습니다.

그런 지도부의 말을 믿은 의원들이 본회의장 책상을 배개삼아 졸며 본회의 시작을 기다린지 4시간. 결국 국회의장이 절차적 하자를 문제삼아 본회의를 열 수 없다고 했고 의원들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윤전기에서 나온 그날자 신문이 트럭에 실려 각 지국을 향해 달리고 있던 그 시각이었죠.

 

대기자 사기극, 하지만.

사기극에 거짓말이니 하며 부정적인 단어를 동원했지만 사실 이같은 사건은 국회에서 비일비재합니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각 당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상대에게 '뻥카'를 치고 복잡한 법적 절차를 모르다보니 자기 당 의원들까지 본의 아니게 속이는 '양치기 소년'이 되기도 합니다. 꼭 정치인들에게 악의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거죠.

문제는 그런 일을 매번 겪는 기자들이 어떤 것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분별해 기사에 쓸 수 있는가이겠지요. 모든 신문이 11일자에 '추경안이 처리됐다'고 썼다가 12일자에 이를 뒤집을만큼 당시 물리적인 상황이나 여건 면에서 판단이 쉽지 않기는 했습니다만 다들 추경안이 처리됐다 생각하고 안도하고 있던 상황에 민주당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거나 국회의 절차적 문제를 좀 더 고민했다면 이런 사기극에 속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추경예산안, 민주당, 한나라당, 기자 댓글(1)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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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18 09:51 | DEL | REPLY

그런데 국회는 왜 도둑놈처럼 맨날 밤에 활동하는거야? 의원 자기들끼리만 하는 거라면 상관없겠지민 그때문에 날밤을 보내는 주변 사람들도 생각해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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