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립자- 미셸 우엘백 [이런 책은 어때요?] | 2004/10/16 20:06: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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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이사오기'가 된다고 하기에 시범적으로 옮겨와본 글입니다.
나는 소설 읽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는 어려워한다. 이 게시판에 유독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도 그런 맥락이겠다. 그렇게 잘 읽지 않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 작품을 택한 건 오로지 동생이 읽었다는 이유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표지 예쁘고 그럴 듯해 보이는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는..
전체적인 내용은 두 형제의 일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형제의 일생이라지만, 그들의 부모, 심지어는 조부모의 일생까지도 자세히 소개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우선 두 형제가 68세대에서 조금 뒤쳐진 지점에 속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람들이 이전의 관념에서 해방되고 통속적인 규범이 철폐되었으며 –무엇보다- 성이 해방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러한 흐름에서 철저히 벗어나 있다. 형인 부루노는 왕성한 성욕으로 여기에 편승하길 원하지만 뚱뚱한 몸매와 못생긴 외모 때문에 주변만 맴돈다. 동생인 미셸은 오직 학문에 관심을 가질 뿐, 그것을 제외한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별 관심을 쏟지 못한다.
성해방과 68의 정치적 변혁이 물 건너 간 시점에서 그 현상들을 회의한다는 점은 다른 후일담 소설들과 비슷한 점이다. 하지만, 등장하는 두 인물 모두 그 현상들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서 그저 영향만 받는다는 점은 다르다. 두 사람은 성해방의 선구자 격인 어머니에 의해 상처 받고,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받은 주변 사람들과 부대낀다. 일면 성해방과 패미니즘에 의한 가족의 해체와 그것이 개인의 일생에 가져 오는 폐해를 보여주는 듯 하기도 하다. 변화의 긍정적인 부분 보다는 그것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작가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
60년대 이후 유럽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글들은 쉽게 찾을 수 있어도, 부정적으로 쓴 글들은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특이한 텍스트였다. 문제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통해 이 소설이 프랑스에서 출간되었을 때 왜 그리 논쟁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전체적인 논지나 주요 여성 주인공들(어머니에서부터 두 형제의 연인들까지) 고통 속에서 생을 마무리한다는 점은 두 형제의 마지막과 대비되어 반여성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반동적인 것으로 규정하기 힘든 내공이 있다. 어쨌든 이 소설 안에서 모든 것은 폄하된다. 60년대라는 시대와 그 시대가 바꾸었던 모든 것들.. 남성의 삶은 오직 성욕을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떨어지고. 그 성욕조차 개체의 한계 이상을 탐욕적으로 추구하는 우스꽝스런 것으로 묘사된다. 삶은 젊은 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어느새 후퇴해 있고, ‘다음에’(다음에 말하지. 다음에 술 한잔 하지)를 생각했던 관계는 종종 갑자기 종말을 구한다. 소설 속의 모든 대상들이 폄하되지만 그것이 가지는 설득력과 삶의 본질에 대한 진정성 때문에 이 소설에 대한 섣부른 평가를 주저하게 만든다.
이 소설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미셸의 애인인 에나벨의 죽음과 관련된 부분이다. 새생명을 원하던 순간에 자신의 자궁을 모두 들어내야 한다는 걸 알았으며, 끝내 그곳에서 전이된 암 때문에 죽는다.(이 부분만 가지고는 속물적이고 정치적으로 맥락을 해석할 수도 있겠군.. 작가가 에나벨의 성생활에서 원죄를 끌어내 단죄한다는 류의.. 하지만, 전체 맥락 속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인생의 기회는 빨리 흘러가고, 흘러가는 동안에는 모르지만 종종 돌이킬 수 없다. 누구를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언제나 아쉬울 수 밖에. 가장 소설의 대상과 일치되는 순간이면서도, 좀 더 빨리 철들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립자, 미셸 우엘백,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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