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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모리스 마이스너. [이런 책은 어때요?] 2007/05/28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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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화운동과 5.4운동에서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정책까지.

중국 근현대사의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음에도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과문한 탓도 있지만 중국 역사 자체가 근현대에 들어와 극과 극을 오간데다 일관된 맥락으로 전체를 정리한 책이 없었다는 것도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독서는 중국 근현대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책 제목이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이지만 이 제목은 한편으로 '5.4운동세대의 중국과 그 이후'라고도 부를 수 있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등 중국 지도자들은 5.4운동의 수혜를 받았고, 이들은 공교롭게도 같은해(1976년)에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이들 지도자로부터 도출된 마오주의는 주의주의/ 과거전통에 대한 철저한 공격/ 전통파괴 충동과 내셔널리즘 정서의 조화/ 인간의 의지가 사회현실을 만들어낸다는 지속적 믿음/ 도덕을 부활시킬 힘을 가진 행위자로서 청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 등 5.4 운동의 미덕을 지속적으로 관철시키고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이었다.

 

연안과 항일투쟁을 통해 유격대적 정신과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리 철폐, 반관료주의 등을 더해 완성된 마오주의는 신중국 성립 이후 자신의 정신을 꾸준히 관철시켜 나갔다.

 

상대는 소련에서 도입된 기술관료 중심의 경제정책, 이것을 입안하고 추진한 관료체제, 농업집단화 등에 저항하는 구세력 등이었다.

 

신중국 성립 이후 1970년대까지의 중국 현대사는 마오주의와 비마오주의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의 투쟁으로 볼 수 있다.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완전무결한 전위당'을 주장하며 공산당 독재와 관료체제의 정당성을 강변한 반면 마오주의는 물질기반 뿐 아니라 의식도 계급투쟁의 근거로 삼으며 사회주의 내에서의 관료를 또다른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투쟁했다. 당이 아닌 인민에게 궁극적인 권력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것은 결국 인민의 총의를 대변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 숭배를 조장한다.

또한 사회발전의 단계론과 점진적 발전을 중시하는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마오주의에서는 인민들의 집단의지에 따라 기계론적 발전론을 넘어설 수 있으며 오히려 부르주아적 떼가 덜묻은 전근대사회의 중국은 공산주의 발전에 유리한 위치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마오주의가 등장하게된 토양도. 바깥에서 보기는 불가사의해 보이는 문화대혁명의 극좌에서 개혁개방으로의 급선회도 이해 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이스너는 마오주의와 문화대혁명도 극좌주의적 오류나 홍위병의 광기로 평가하기보다는 소련과 다른 길을 가려했던 중국 사회주의의 시행착오로 보기를 권한다. 문화혁명 당시 수세에 몰렸던 '주자파'가 실권을 잡은 중국 공산당의 공식해석을 그대로 믿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관점은 힘을 얻는다. 좀 더 확인해볼 문제지만 마이스너에 따르면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에 의한 사망자보다는 관료주의적 반동과 해방군의 홍위병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훨씬 많다고 한다.

문화대혁명에 관한 이러한 관점은 내가 견지하던 관점과 유사한 것으로 내 통찰력이 전혀 엉뚱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으로 느껴져 기뻤다.

 

마이스너의 또 한가지 특이한 관점은 마오의 통치 기간을 자본주의를 가로막는 장벽이기보다는 그것을 촉진하는 핵심요체였다고 규정한 것이다.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향진기업은 성과를 거뒀고 신중국 성립 이후 마오쩌둥 사망 직전까지 중국인의 평균 수명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공업발전과 농업 생산량에 있어서도 한국과 대만에 필적했다.

생산력의 향상과 집중된 잉여가치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그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뭐.. 이러한 내용을 놓고 보면 '마오의 중국'은 탄생부터 소멸까지 총체적인 딜레마의 연속이었던 걸로 볼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이번 독서를 통해 해결된 현대 중국에 관한 의문은 큰 것 뿐만이 아니다.

나는 최근까지도 중국 농촌에서는 여아가 태어나면 변소에 빠트려 죽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것이 중국인 특유의 인명경시에 의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마이스너는 이러한 경향이 개혁개방 이후 나타난 것으로 설명한다.

협동노동을 통한 산출을 분배했던 1970년대까지와는 달리 개별 농가 자체 생산만으로 식량을 해결하게 된 중국농촌에서 일할 수 있는 자식은 가장 큰 자산이다. 하지만 자식을 하나만 낳을 수 있는 한족 농민들은 노동에 기여할 수 없는 여아를 살해하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가 중국 농촌에 가져온 또 하나의 잔인함 혹은 야만. 아직도 계속되는 딜레마인 동시에 '마오의 중국'이 가진 복잡한 성격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워낙 잘 쓴 책인데다 번역도 좋아 8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어떻게 읽었나 모를 정도로 유쾌한 독서였다.

중국, 마오쩌둥, 모리스 마이스너, 중국 현대사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告別革命 [이런 책은 어때요?] 2007/04/20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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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자들은 항상 자신의 이상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지요.'
-류짜이푸, <고별혁명>

고별혁명은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프랑스 국제철학 아카데미에 원사로 있는 리저하우와 진보적인 루쉰 연구자 류짜이푸의 대화를 실은 책이다. 두 사람 다 현재 중국의 학문적, 정치적 상황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400페이지를 넘는 분량 속에서 두 사람은 중국의 근현대사와 문학, 사상에 대해 기존 대륙의 학자들과는 다른 관점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아직 중국에서는 출간되지 않았다고 한다.

'혁명과 이별한다'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이 책을 한 번 훑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말은 무엇보다도 '혁명이 아니라 개량이다'라는 문장일 것이다. 이짧은 문장 속에 두 학자가 하고자 하는 말과 그동안의 학문적 여정이 압축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두 사람은 그간 중국의 역사를 모든 사회 분야에 '혁명'이라는 문제와 연관시키고 더 나아가 그런 관점에서만 바라보도록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관점의 이면에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이성보다 혁명적 열정과 광기를 강조해온 중국 공산당 창건 이후의 전통이 깔려있다고 말한다. 오직 상대를 패배시키기를 요구하는 혁명의 이분법은 사회 전반에 걸쳐 투쟁을 불러왔고, 문화혁명 기간에 최고조에 달했다. 자신에 대한 극단적인 긍정과 타자에 대한 견결한 적대감을 통해 달성되는 혁명적 풍토는 여전히 중국 사회 곳곳에 남아서 개인주의를 부정하고, 중국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회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사람의 대의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책 전반에서 논의되는 화두의 공간은 문학이라는 점이다. 문학에 대해 공통적으로 조예가 깊은 두 사람은 자주 중국 근현대의 작가들과 작품들을 인용하며, 사상과 실천, 이상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논의한다. 사실 중국 문학 작품이 우리나라에 그리 많이 소개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재미있는 부분이기는 하나 생소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주자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정신들이 많은 경우 문인이었던 중국의 전통(굴원에서부터 당나라의 이백과 두보에 이르기까지)과 근대에 이르러 루쉰과 모순 등 사상의 영역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 기라성같은 작가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갈 듯도 하다. 특히 리저하우의 경우에는 전공이 철학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문학, 사회사상 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을 보여주는데, 이런 대학자를 배출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가 아직은 잘 모르는 중국 인문학계의 숨은 역량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중국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몇가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의아한 것이 두 사람이 강조하는 '생산력발전' 이데올로기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인민의 혁명적 역량과 계급투쟁을 거세하고 오직 생산력에 관련된 테제만을 강조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지난 몇 십년간 우리네가 지나온 개발독재 이데올로기의 어두운 터널을 계속 떠올리게 만들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책 속에서 개인주의의 보장을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현재의 중국상황과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주장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굳이 그 사상을 계속 마르크스주의의 틀 속에서 끼워 맞추려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혁명적 열정이 거세되고 경제 발전만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가 여타의 자본주의 이론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신중국의 성립을 보고 열광했으며, 인생의 대부분을 마르크스주의자로 보내온 두 사람은 여전히 그 틀에 애착을 보이는 듯하다. 인민이 헌법상의 국가 통수권자까지 소환했던 문화혁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개혁개방 정책에서 보듯, 중국 역사는 아편 전쟁이후 극과 극 사이를 계속 오갔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애정을 가졌던 사상과는 다른 시각과 결론을 가지게 된 두 사람의 내적모순과 그간의 고뇌가 얼마간 엿보이는 듯 했다. 한편으로 역자가 후기에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비교한 맥락의 연장선에서, 그 두사람의 모습에 소위 '386'들의 모습이 비쳐지기도 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낭만에 도취되어 있었다.'는 리저하우의 아픈 고백에서도 느낄 수 있듯 이 책은 현실과 역사적 사건 앞에서 '자발적인 사상 전향'을 택한 중국 지식인들의 지적 여정을 담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상황을 이해하는 한편,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을 기르는데도 도움이 되는 독서였다. 김태성 번역, 북로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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