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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말하다-폴 크루그먼 [이런 책은 어때요?] 2009/05/06 1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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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Democrat로서 철저히 당파적으로 쓴 책. 경제학자로서의 면모를 보고 싶어 구입한 책이었지만 정치 팜플렛에 가까웠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을 보려면 다른 책을 따로 읽어야할듯.

 

크루그먼은 책에서 미국의 경제가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로 철저하게 왜곡되어 왔으며 그 기저에는 왜곡된 정치가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시말해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규정했다는 식의 -제조업 약화와 IT의존도가 심화되면서 경제가 양극화됐다는- 설명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변화와 정치적 문제에서 사회 불균형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그의 논거는 두 가지다. 모두 정치적 격변이 경제질서에도 영향을 줬다는 것으로, 첫번째가 20세기 초 '도금시대'에서 뉴딜로의 이행. 그리고 1980년대 우경화된 공화당에 의한 사회보장제도 후퇴와 부자 감세다. 

 

크루그먼은 인종주의와 68혁명 시대 대항문화로 비롯된 불안감에 호소했던 공화당의 선거 전략이 이제는 더이상 먹히기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유권자에 상당부분을 남미계 색인종이 차지하게 됐으며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의식도 어느때보다 높다는게 이유다.

 

크루그먼은 현재 미국의 정치 지형을 볼 때 어느 때보다 진보적인 민주당의 장기 집권이 가능할 거라고 본다. 그리고 그 시기에 민주당이 해결해야할 과제는 전국민의 의료보장 도입 등 복지제도 확충과 부자에 대한 증세라고 이야기한다.

 

일관된 주장을 충실한 근거로 설득력 있게 호소하고 있는 책이었다. 물론 뉴딜정책을 무조건적인 선으로 보는 인식이나 제조업 붕괴 등으로 빚어진 부분이 분명히 있는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를 어떻게 해야할지 설명이 없었다. 뉴딜정책의 효용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대공황이 뉴딜로 해결됐고 그 과실이 60년대의 자본주의 골든 에이지를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최소한 분위기)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경제학자로서 크루그먼은 불평등의 해소방법을 시장 바깥에서 찾고 있지만 그것은 제한적일 수 빆에 없고 크루그먼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프랑스식 모델의 한계도 분명하다.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에 왜 이 책을 소속 의원들에게 돌렸는지 이해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낡은 지지세력에 의지하고 있는 건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에 가깝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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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望>- 아마오카 소하치 [이런 책은 어때요?] 2009/02/18 19: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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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2권 분량으로 나온 시리즈에서 23권까지를 읽었다.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에서 승리한 뒤 일본의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다듬어나갈지 고민하던 때까지다.


처음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어머니의 추천 때문이었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5살 무렵부터 어머니는 “남자라면 꼭 한번 읽어야할 소설”이라며 <대망>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스무살 즈음에 읽었다는데 이상과 함께 처세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설명이었다.


약 반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읽은 <대망>은 인간관계에 대한 도상연습의 연속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적으로 전국시대 후반과 에도막부 초기를 다룬 소설임에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소설의 대부분은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내던져진 인간들이 자신의 생을 걸고 벌이는 암투로 채워져 있다. 때문에 소설은 중요한 시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와 이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작가는 등장인물들이 특정 상황에서 왜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세심하게 설명한다. 패자는 어떤 부분을 잘못 생각해 중대한 오판을 범했는지, 그렇다면 승자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원인을 찾고 독자에게 전달하려 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 기업인 등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이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말할 때 이 책을 입에 올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수천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선을 취재한 경험이 있는 정치부 기자의 관점에서 보기에도 이 책에는 성공하기 위한 인물, 조직의 조건을 잘 설명하고 있다. 실제 이에야스는 다른 영주에게 볼모로 잡힌 것으로 인생을 시작했지만 성공하기 위한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대부분은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이 구비해야할 조건과도 합치되는 부분이 많다.

이에야스는 소수지만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참모진을 갖추고 있었고 이들은 하나같이 전국시대에 꼭 필요한 능력인 무력이 출중한 정예였다.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오랜기간 전국시대를 통과해오면서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굳어진 ‘평화’라는 신념을 젊은 시절부터 일관되게 구현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인내심과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는 과단성도 있었다. 하나같이 대권을 잡기 위한 주자의 자질로 요구되는 것이고 우리 정치인들에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적과 내통한 이에야스의 가신에 대한 이야기다. 이에야스의 내전을 챙기는 집사에서 성 전체의 재정을 관장하는 재무책임자까지 오른 이 가신은 이에야스 가의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며 앞으로 이에야스에 미래가 없다고 보고 신겐 가와 결탁한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나 내부 정보에서 다른 가신들에 비해 떨어질 게 없던 사람이 배신을 한 이유는 뭘까. 작가는 과도한 욕망과 자신감에서 찾았다.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전국시대에 자신의 수완과 말솜씨에 지나친 자신감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주군을 대신해 다이묘로 올라서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가신은 체포되어 나무톱으로 백성들에게 머리를 잘린다.


자신의 적은 바로 자신이다.

반복되는 도상 훈련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등장 인물들은 자주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객관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 원인은 원수의 프로파간다나 측근의 잘못된 보필이 아닌 자신에게 있다.

소설에는 수많은 ‘자신’이 자신의 눈을 가려버린다. 분노하는 자신이 있는가하면 두려워하는 자신, 욕망하는 자신이 있다. 한번 어떤 감정에 빠지면 어느새 그 감정은 자아 전체를 먹어 삼키고 마침내는 파멸로 이끈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일수록 벌어질 공산이 높다는 것이다. 위기나 호기를 맞아 사람들은 허둥지둥 대고 자신의 중심을 잡지 못한다. 그러다 ‘자신’의 늪에 빠져버리면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인제의 경선 불복을 비롯해 알만한 사람의 도저히 이해 안되는 판단과 고집을 우리 정치사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에야스로 구현되는 인물모델의 승부처는 이같은 자신과의 싸움에 임하는 자세에 있다.

다케다 신겐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등 젊은 날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에야스는 중요한 시기에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상황을 냉철히 바라보는 삶의 태도를 갖추게 된다. 이에야스는 측근과 아들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수련할 것”을 주문한다.


이에야스를 이야기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기다림의 미덕’도 비중있게 다뤄진다. 노부나가나 히데요시가 아니라 이에야스였던 이유는 역시 기다림이었다.(하지만 책에는 유명한 두견새에 대한 하이쿠는 한번도 소개되지 않는다)

비슷한 이야기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다림’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은 것’으로 정리하면 어떨까 한다.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손안에 넣었던 패권을 놓친 데에는 서둘렀다는 문제가 있었다. 노부나가는 내전 종식에 대한 공감대를 폭넓게 얻지 못한 상황에서 패권 정립을 서두르다보니 곳곳에서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켰고 측근의 신뢰를 잃었다. 히데요시는 오래된 가신그룹이 없다는 약점을 도외시 하고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가족이 이후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했다.

반면 이에야스는 히데요시 사후에 사실상 패권을 움켜쥐었음에도 행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대의와 정권의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서 지루할 정도로 시간을 끌었다.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와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는 과정에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자연스럽게 제반 여건을 변화시켰다.


마지막으로 이번 독서를 통해 일본 문화의 감성적인 면에 대한 이해를 진전시킬 수 있었다. 천수각이 불타는 가운데 할복하는 무사라든지 궁지에 몰려 자식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베는 모습. 이혼과 재혼, 정략결혼이 일반화되고 왠만한 귀부인은 정부를 두는 모습. 군신간의 엄격한 위계질서와 말조심. 상무정신 등. 개국 이래 끊임없이 전란이 이어져온 일본과 그 상황에서 형성된 일본인의 내면도 같이 바라볼 수 있었다.


확실히 조상들이 고생한만큼 일본은 서사의 소재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갠지 이야기 이후 이어져온 서사의 전통이 깊다는 이유도 있겠지. 하지만 그같은 서사의 소재를 위해 고생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런 소설이 씌어질만한 소재가 없을 정도로 평화로웠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금성이나 이화원의 웅장함에 놀라다가도 그것을 위해 바쳐졌을 피와 땀을 생각하면 고개를 젓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처세술을 확장한 책으로 일부의 평가처럼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책은 아니다. 삼국지나 수호지가 그렇듯 중상모략과 처세를 다룬 이웃 나라의 책들이 마치 그 나라 문학의 정수인양 소개되는 풍토는 우리 인문학의 얄팍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한편으로 헌책방 같은데서 싸게 한질 정도 들여놓으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관계가 힘들고 출입처 장악에 절망을 느낄때 한번씩 펼쳐보면 좋겠다.

대망, 일본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모리스 마이스너. [이런 책은 어때요?] 2007/05/28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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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화운동과 5.4운동에서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정책까지.

중국 근현대사의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음에도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과문한 탓도 있지만 중국 역사 자체가 근현대에 들어와 극과 극을 오간데다 일관된 맥락으로 전체를 정리한 책이 없었다는 것도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독서는 중국 근현대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책 제목이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이지만 이 제목은 한편으로 '5.4운동세대의 중국과 그 이후'라고도 부를 수 있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등 중국 지도자들은 5.4운동의 수혜를 받았고, 이들은 공교롭게도 같은해(1976년)에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이들 지도자로부터 도출된 마오주의는 주의주의/ 과거전통에 대한 철저한 공격/ 전통파괴 충동과 내셔널리즘 정서의 조화/ 인간의 의지가 사회현실을 만들어낸다는 지속적 믿음/ 도덕을 부활시킬 힘을 가진 행위자로서 청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 등 5.4 운동의 미덕을 지속적으로 관철시키고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이었다.

 

연안과 항일투쟁을 통해 유격대적 정신과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리 철폐, 반관료주의 등을 더해 완성된 마오주의는 신중국 성립 이후 자신의 정신을 꾸준히 관철시켜 나갔다.

 

상대는 소련에서 도입된 기술관료 중심의 경제정책, 이것을 입안하고 추진한 관료체제, 농업집단화 등에 저항하는 구세력 등이었다.

 

신중국 성립 이후 1970년대까지의 중국 현대사는 마오주의와 비마오주의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의 투쟁으로 볼 수 있다.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완전무결한 전위당'을 주장하며 공산당 독재와 관료체제의 정당성을 강변한 반면 마오주의는 물질기반 뿐 아니라 의식도 계급투쟁의 근거로 삼으며 사회주의 내에서의 관료를 또다른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투쟁했다. 당이 아닌 인민에게 궁극적인 권력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것은 결국 인민의 총의를 대변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 숭배를 조장한다.

또한 사회발전의 단계론과 점진적 발전을 중시하는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마오주의에서는 인민들의 집단의지에 따라 기계론적 발전론을 넘어설 수 있으며 오히려 부르주아적 떼가 덜묻은 전근대사회의 중국은 공산주의 발전에 유리한 위치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마오주의가 등장하게된 토양도. 바깥에서 보기는 불가사의해 보이는 문화대혁명의 극좌에서 개혁개방으로의 급선회도 이해 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이스너는 마오주의와 문화대혁명도 극좌주의적 오류나 홍위병의 광기로 평가하기보다는 소련과 다른 길을 가려했던 중국 사회주의의 시행착오로 보기를 권한다. 문화혁명 당시 수세에 몰렸던 '주자파'가 실권을 잡은 중국 공산당의 공식해석을 그대로 믿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관점은 힘을 얻는다. 좀 더 확인해볼 문제지만 마이스너에 따르면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에 의한 사망자보다는 관료주의적 반동과 해방군의 홍위병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훨씬 많다고 한다.

문화대혁명에 관한 이러한 관점은 내가 견지하던 관점과 유사한 것으로 내 통찰력이 전혀 엉뚱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으로 느껴져 기뻤다.

 

마이스너의 또 한가지 특이한 관점은 마오의 통치 기간을 자본주의를 가로막는 장벽이기보다는 그것을 촉진하는 핵심요체였다고 규정한 것이다.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향진기업은 성과를 거뒀고 신중국 성립 이후 마오쩌둥 사망 직전까지 중국인의 평균 수명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공업발전과 농업 생산량에 있어서도 한국과 대만에 필적했다.

생산력의 향상과 집중된 잉여가치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그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뭐.. 이러한 내용을 놓고 보면 '마오의 중국'은 탄생부터 소멸까지 총체적인 딜레마의 연속이었던 걸로 볼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이번 독서를 통해 해결된 현대 중국에 관한 의문은 큰 것 뿐만이 아니다.

나는 최근까지도 중국 농촌에서는 여아가 태어나면 변소에 빠트려 죽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것이 중국인 특유의 인명경시에 의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마이스너는 이러한 경향이 개혁개방 이후 나타난 것으로 설명한다.

협동노동을 통한 산출을 분배했던 1970년대까지와는 달리 개별 농가 자체 생산만으로 식량을 해결하게 된 중국농촌에서 일할 수 있는 자식은 가장 큰 자산이다. 하지만 자식을 하나만 낳을 수 있는 한족 농민들은 노동에 기여할 수 없는 여아를 살해하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가 중국 농촌에 가져온 또 하나의 잔인함 혹은 야만. 아직도 계속되는 딜레마인 동시에 '마오의 중국'이 가진 복잡한 성격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워낙 잘 쓴 책인데다 번역도 좋아 8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어떻게 읽었나 모를 정도로 유쾌한 독서였다.

중국, 마오쩌둥, 모리스 마이스너, 중국 현대사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