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해진 반값아파트를 놓고 청와대와 한나라당 간의 공방이 뜨겁습니다.
"원래 말도 안되는 걸 국회에서 무리하게 요구했다"는게 청와대 쪽의 항변이라면
"애초에 똑바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 쪽의 비판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국회에 와 경제정책의 입법과정을 볼 때마다 느끼던 딜레마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데요.. 바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불완전함입니다.
일단 정부도 억울할만합니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부동산특위를 꾸리고 분양가 상한제와 원가공개를 추진했을 때부터, 그리고 환매조건부와 토지임대부 아파트 도입을 의원들이 요구하고 나섰을 때부터 정부는 꾸준히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당시 여론과 국회의 등살에 못 이겨 받아들이긴 했지만 영 떨뜨름한 반응이었죠. 그만큼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주택정책에 있어서는 처음으로- 제대로 관철시킨 의원들은 득의양양했구요. 지난해 7월까지만 하더라도 시민단체 측의 개념없는 주장 정도로만 생각되던 규제와 새로운 형태의 주택들이 부동산값 앙등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와 함께 속속 도입되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력을 느꼈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도 열받는 일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에서 요구한 전제조건은 거의 반영하지 않았거든요. 300%에 가까운 용적률 보장과 기반시설부담금 면제, 토지를 분양받지 않더라도 재건축할 경우 분양권을 받는 권리 등 한나라당이 요구한 내용대로 사업이 시행됐다면 반값아파트는 지금과 같은 악명을 떨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정부에서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토지임대부 아파트 특별법' 통과를 반대하고 굳이 주택법 조문을 일부 손보는 정도('택지 지구에서 토지임대부 아파트를 도입할 수 있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정도였죠)로 토지임대부 아파트를 도입한 것도 이런 '속셈'이 읽혀지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국회에서 제기한 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겠지요. 반값아파트에 일률적으로 높은 용적률을 보장한다는 것은 도시계획상의 문제점, 지자체에 대한 권한 침해 문제 등을 비롯해 주택정책의 골간을 흔드는 일입니다.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론에 밀려 법안을 개정하고 그 내용을 반영하는 일은 또 그 나름대로 부작용이 있었겠죠.
물론 국회가 푸쉬하더라도 소신껏 반대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은 있다고 하겠죠.
결국,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힘듭니다.
국민들의 여론을 받아 정책에 반영해야하는 정당과 현실논리와 일관성을 중심으로 집행해야 하는 정부는 그 나름의 논리를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를 국가 운영의 원리로 규정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쪽이 잘못했다고 재단하기 어렵습니다.
진보적 역사가인 에릭홉스봄이 그의 저서 '극단의 시대'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20세기의 독특한 현상'으로 규정하며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대의제 민주주의는 현재의 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지고지선의 가치는 아니다. 그것은 사회로 하여금 제도를 유지하는데 엄청난 비용을 들이도록 강요하며 이 비용을 들이기 힘들어지는 시점에서는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장점들. 다양성의 보장과 그를 통한 사회의 역동성. 끊임없는 혁신 등을 생각하며 6월 항쟁 20주년에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긴 한답니다.
하지만 국회를 출입하는 경제지 기자로서. 뻔히 부작용이 보이는 설익은 정책을, 그것도 절름발이로 여론에 밀려 내놓는 모습을 보며 복잡한 생각들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