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국회의장 직권상정 ['당신이 가져야 할 섬(汝矣島)'에서] 2008/12/23 1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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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국회가 공전되면서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숫적 우세를 앞세운 한나라당 의원들이 상임위에서 법안을 강행 처리하더라도 유선호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법사위를 통과못할 수 있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실제로 17대에서는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이 법사위원장에 있으면서 수백개의 법안을 뭉개고 있었던 적이 있다. 의원들이 일단 법안을 각 상임위에서 처리하면 국회의장이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바로 상정한다는 시나리오다.

참고로 국회의 법안 처리 순서는 소관 상임위의 내용 심의->법사위의 자구 심사->본회의 의결로 이뤄진다.

직권상정은 단순히 '여야 합의'라는 원내 정치의 룰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법안 심의라는 국회 본연의 기능까지 침해할 우려가 있다. 예산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밤을 세워 공방전을 벌이던 지난 13일 새벽 처리된 종합부동산세 개정안이 단적인 예다.

여야는 당초 장기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세액 공제폭을 20~40%로 합의했으나 이것이 법안 처리 과정에서 그 절반인 10~20%로 줄어들뻔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법사위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한게 화근이었다.

앞서 5일 여야 원내지도부가 세법 개정안에 합의하면서 공제폭을 20~40%로 했으나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에서 법사위로 법안을 넘기는 과정에서 정부가 애초에 제안했던 수치인 '10~20%'를 고치지 않고 넘긴 것이다. 법안이 법사위로 넘어오고도 내용은 모르고 정쟁만 거듭하던 여야는 법안 처리 이틀 전에야 하자를 발견하고 부랴부랴 정정했다.

여야 모두 12일 본회의에 상정되는지도 몰랐던 농업특별소비세가 법사위 점거에 들어갔던 강기갑 민노당 대표의 지적으로 본회의 당일날 처리 안건에서 삭제된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다.

만약 공제폭이 10~20%로 그대로 통과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여야는 당초 합의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하고 다시 재정위 및 법사위 통과,본회의 처리라는 절차를 다시 밟아야 했을 것이다. 실제 17대 국회에서도 벼락치기로 처리한 정치개혁특별법에 중대한 하자가 있어 똑같은 과정을 밟았던 사례가 있다.

문제는 비슷한 하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법사위 소속의 한 의원은 "워낙 법안 내용이 많은데다 수치도 엄청났다. 수치 하나만 틀려도 13일 통과된 세법 개정안은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물론 직권상정의 잘못이 국회의장이나 여당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계속 피의 강히 흐른다면 법안에 대한 심의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직권상정이라는 극단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회를 정상화하고 착실히 법안 심의를 해야 하는 책임은 여야 모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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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20여명이 북치고 장구친 새해예산안. ['당신이 가져야 할 섬(汝矣島)'에서] 2008/12/16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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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간의 다툼으로 새해 예산안 심의가 전혀 진행되지 못했던 12일과 1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위치한 국회 본청 6층에는 유독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좁은 방에 8대의 컴퓨터를 놓고 바쁘게 움직이는 이 사람들은 잠시 국회로 잠깐 파견나온 20여명의 기획재정부 예산실 공무원들이다.

 

원칙만 따지면 여야 협상이 공전하는 가운데 이들이 바쁠 이유가 없다. 예결특위에서 결정한 사항을 실무적으로 돕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는게 이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틀동안 이들은 의원들이 할 일까지 해야 했다.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부분의 예산안을 짜고 의원들이 증액을 요구한 부분을 임의대로 자르고 붙이고 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자기네 지역구 사업이 반영되는지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예결특위 계소조정소위 소속 의원의 보좌관은 13일 저녁쯤 기자에게 "이제 예산안 작업이 다 끝난 것 같다"고 귀뜸했다. 의원들 위에서 예산안을 좌지우지하는 예산실장과 그 밑의 30대 사무관들. 2년반 동안 국회를 출입하고 있는 기자에게 대한민국 엘리트 관료의 힘을 느끼게 해줬다.

 

다들 놀고 있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국회 안에 있다니 반가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 소속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의 골격을 만든 바로 그 관료들이다. 다시 말해 자기들이 만든 예산안을 자기들이 심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좋건 싫건 국민들의 표로 선출된 대표자가 모인 국회가 견제라는 자기 밥그릇을 찾아먹지 못하는 가운데 행정부의 마이웨이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의원들은 이같은 무력감을 쏟아냈다. 제3교섭단체인 선진과 창조의 모임을 대표해 계수조정소위에 들어갔던 류근찬 자유선진당 의원은 "국민들이 이런 상황을 용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통탄했다. 17대에서 2년간 예결특위에 참여했던 우윤근 민주당 의원도 "여야 협상이 진행되지 않으면 재정부 공무원들과 소수의 국회 전문위원이 예산안은 많은 부분을 심사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여야 원내대표 회동의 결과인 대운하 의심 사업 및 '형님예산' 1000억원 삭감이 반영되지 않은 것도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예산안을 만든 관료들이 자기들이 만든 예산의 골격을 최대한 가져가는 선에서 최종안을 만든 것이다.

 

그 와중에 이한구 예결특위위원장은 7시간동안 사우나를 갔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를 만났다는 설도 있지만 본인이 기자들을 만나서 한 이야기니 일단은 그런걸로 알자. 실제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 중대사를 논의했더라도 그건 야당이 비판하듯 새해 예산안을 여야합의가 아니라 당정합의를 통해 결론낸 것이니 나을 것도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예산안을 한나라당은 밤새워 가며 처리해 13일 정오쯤 의원들은 밝은 햇살아래 국회 본청 계단을 걸어내려왔다. 소수의 재정부 관료들에게 새해 예산 심사의 재량권을 넘기고도 웃는 허깨비 여당이다.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무시당하고 예산안 처리의 주도권을 내준 민주당도 오십보 백보다.

 

자신들이 만들고 심의까지 끝낸 예산안이 본회의를 처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본부인 기획재정부로 복귀하던 관료들. 그들에게만은 겨울 햇살이 유난히 따뜻했을 것이다.

예산안 처리, 한나라, 민주, 입법부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백발마녀의 전설. ['당신이 가져야 할 섬(汝矣島)'에서] 2008/12/01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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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에는 '백발마녀'로 불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작년 초부터 당의 분화가 시작됐으니 벌써 2년 전 일이군요.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을 출입하던 각 언론사 말진(한 출입처를 맡은 기자 중에 가장 연차가 어린 기자)들 사이에는 백발마녀로 불리던 중진 의원이 있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거칠던 열린우리당 정치인들 중에서 유독 뛰어난 정치감각을 발휘해 판을 들었다 놨다 했답니다. '마녀'라는 별명에는 이같은 수완이 반영된 것이었죠.

그리고 '백발'이란 건 역시 그 사람의 외모에서 유래했습니다. 이쯤되면 정치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눈치 챘겠죠..

 

바로 김한길 전 원내대표입니다.

 

사실 '마녀'라는 별명에는 부정적인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습니다. 많은 정치적인 움직임에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며 정치권 취재가 아직은 서툰 말진들의 눈에는 '술수'를 부리는 것으로 비쳐졌던 것이죠. 다른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비교해 말진들에게 덜 살가웠다는 점도 말진들 사이에 인기가 높지 않았던 이유였던듯 합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생각해보면 말입니다.

당시 저나 다른 말진들의 생각이 옳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정치적 술수이든 정략이든 당시 열린우리당의 모습은 '세련'이나 '매끄러움'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열린우리당에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김 전 의원이 주도했던 열린우리당의 해소는 정치적으로 옳은 방향이었고 오히려 이것이 지체되면서 지난 대선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한나라당에 박살이 난 게 아닌가. 지금 와서 드는 생각입니다.

 

"(정치인을) 싫어할 수 있는데 그건 개인적인 거고 기자로서의 취재는 똑바로 해라"

한창 열린우리당이 분화되던 지난해 중순. '백발마녀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때 정당팀의 모 선배가 저를 질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정치인에 대해 사적인 감정을 가지다보면 말이나 행동 하나를 더 부정적으로 보기 쉽상인데 그러지 말라는 말씀이었죠.

 

사실 사람과 사람의 말이 기사를 만드는 정당을 2년 반 가까이 출입하다보니 정치인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취재나 기사에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럴때마다 '백발마녀'와 선배의 충고를 떠올리며 가능한 자신의 가치관을 숨기고 현장과 사실을 생생히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것은 아닐까 반성해봅니다.

 

그러면서도 자주 미워하고, 자주 짜증내면서 때로는 씌어진 문장 하나하나에 그런 감정들이 묻어나기도 했습니다.

2008년의 마지막 달을 맞아 그분들께, 그리고 기사를 보셨을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훌륭한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격부터 잘 갈고 닦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선이 끝나고 올 1월, 김 전 의원이 소설가 시절 쓴 '여자의 남자'를 사서 읽어봤습니다.

사랑이라는 간단치 않은 감정을 향해 정진하는 소설가가 있었고, 글의 전개나 쉬운 글쓰기나 배울게 많은 문장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이해하려 하기 전에 너무 쉽게 판단한 저의 아집이 그림자처럼 비쳤습니다.

아직 저는 조무라기 기자일 뿐이고 김 전 의원의 정치적 미래도 아직 남아 있으니 어디서든 언젠가 다시 한번 마주할 기회가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그때는 좋든 나쁘든 개인적 감정은 잊고 독자가 궁금해하는 것, 필요로하는 내용만 '백발마녀'로부터 얻어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그만한 그릇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한길, 열린우리당, 백발마녀, 기자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