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잘하고 있는 건가 2 [R군의 일상] 2009/01/18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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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전 쯤의 일이다.

국회 후문 쪽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큰 소리가 나길래 갔더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 5명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각 상임위에서 예산안 심의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인데 자신들과 관련된 예산이 많이 깎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만나겠다며 막무가내로 요구하고 있었다.

장애인들은 들려나가지 않기 위해 휠체어에서 뛰어 내려 차가운 바닥을 기었다.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던 국회 경위들은 10분 정도 시간을 주겠다고 경고한 뒤 하나씩 국회 밖으로 들어냈다.

이어지는 비명소리.

여성 장애인 한명이 휠체어에 오르는 걸 돕기 위해 경위가 손을 잡았다.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도와달라고 말하기 전에는 도와주지 마세요. 내 몸에 손 대지 마세요. 그게 원칙이에요."

아, 그런 원칙이 있구나. 도와달라고 하기 전에 도와주는 것도 꼭 호의는 아니겠구나. 말이 되는구나.

 

억울한 일이 있다고 국회로 들어오고 여당 원내대표를 만나서는 안될 일이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게 일반화되는 순간 그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도 마비된다.

하지만 예산은 또 어떻게 결정되나.

13억짜리 예산이 있으면 "그냥 깨끗하게 10억으로 가지" 30억이 너무 많다 싶으면 "반으로 잘라서 15억으로 하면 되겠네"

상임위 회의실에서 예결특위에서.. 무슨 농담처럼 다듬어지는게 새해 예산안이다.

지역구 예산이나 청탁이 있은 부분은 어떻게든 챙기면서 그 돈을 정말 필요할지 모르는 예산내역을 깎아 마련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기사화하기 힘들다.

지역구 예산 챙겼다는 기사는 지역구로 보내져 해당 의원의 홍보용으로 사용되고, '정말 필요할지 모르는 예산내역'을 기자가 평가하기는 또 쉽지 않다.

국회를 2년 7개월째 출입하며 느끼는 딜레마 중 하나다.

정말 중요한 내용이지만 기사화하면 재미없고 읽을 사람도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법안의 처리과정과 그것을 둘러싼 상임위의 논의는 '종종' 중요하지만 내용은 어렵고 재미없다.

그래서 그 많은 매체의 정치면이 계파다툼에 싸우는 기사로만 채워진다.

 

'국민들이 대통령 福 없다'는 모 유력언론사 주필의 말에 콧웃음이 나왔다.

리더십의 수준이 곧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이다. 그렇게 압도적인 지지로 밀어준 대통령을 두고 국민들이 자신의 박복함을 이야기하는 건 우습다. 그리고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는 중요도에 상관없이 '쓰면 어렵다' '정무기사도 챙겨야하는 상황에서 시간이 없다'는 등 핑계 대면서 다른 기자들처럼 정치인 꽁무니만 따라다니고 있는 '내 수준'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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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 잘하고 있는 건가. [R군의 일상] 2009/01/18 1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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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잠시나마 삼성전자 외주업체에서 일했던 사촌동생과 술을 마셨다.

"요즘에는 언론이 정부보다 기업 눈치를 많이 본다"는 나의 이야기에

동생은 "아, 그래서 이런 내용에 대한 기사가 하나도 없었구나"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줬다.

생산라인과 관련된 전문용어를 많이 섞어 이야기하는 바람에 100% 이해는 못했지만..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삼성 반도체 라인이 복층으로 이뤄져 있고 그게 생산성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공조설비 등과 관련된 시설공사가 있으면 1층과 2층 사이의 틈이 열린다고 한다. 문제는 2층 작업자들이 떨어져 추락사하는 경우가 1년에 몇건씩 발생한단다. 마스크에 방진모 등을 겹쳐 쓰면서 시야가 좁아진 상태에서 평소에는 없던 틈에 익숙하지 못한 작업자들이 발을 헛디디기 때문이다. 1층에서 공조설비 관련 작업을 하던 동생의 경우에도 2층에서 떨어진 몽키가 자신의 머리를 때린 경험이 있단다. 다행히 작업모를 쓰고 있어 머리는 괜찮았지만 작업모에 튕긴 몽키가 다시 허리를 때려 꽤 아팠다고.

 

동생은 무슨 무용담을 이야기하듯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걸 들으면서 나는 너무 너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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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이 사라진 정치 [R군의 일상] 2009/01/11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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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김형오 국회의장은 하룻동안 국회를 비웠다. 어디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이하 관계자들은 "모른다"고 했다. 13일 직권상정을 항의하러 갔던 의원들은 분풀이할 곳을 못찾고 돌아갔다. 국회의장을 못만나 열받은 야당은 의장실 점거를 시작했다. 이후 20일 가까이 진행된 국회수난사의 시작이었다.

뒤늦게 나타난 의장은 사무처를 통해 기자들에게 하소연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법이 어디있느냐'며 점거를 풀어야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질질 짜는 소리로 들렸다. 13일 직권상정을 할 때 야당이 항의방문 올 지 몰랐나. 항의방문 오면 하루 정도 피하기만 하면 될지 알았나. 소나기는 일단 피하자는 건가. 그런 마당에 직접 대화할 배짱은 가지지 못하면서 의장이 여론전에 나서다니. 한심해 보였다. 쟁점 법안 강행처리는 이 시점에서 물건너 갔다고 볼 수도 있다.

역시나 한달간 진행된 입법전쟁에서 국회의장은 마지막에 야당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 난처한 상황에 직면해 집 나간건 김 의장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2일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막판 줄다리기 하던 상황에서 이한구 예결특위원장 역시 7시간 동안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예산관련 현안을 꿰고 있던 이 위원장이 사라지면서 한나라당은 야당과 어떤 협상도 진척시키지 못했다. 3차례의 최종 협상이 이 위원장이 없다는 이유로 무위로 돌아갔다.

그렇게 7시간을 사라졌다 돌아온 이 위원장은 기자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사우나를 갔다 왔다"고 했다. "나는 국회직인 예결특위위원장이므로 협상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협상에 들어갈 이유가 없는 이 위원장은 그간 진행된 여야 협상 결과를 모두 뒤집었고 야당의 주장이 거의 반영 안된 안을 위원회 안으로 확정했다. 앞뒤 안맞는 이야기다.

질질 짜는 것보단 낫다고 해야 하나. 중요한 시점에 마음 내키는대로 사라졌다가 나중에 나타나 현안을 마음내키는대로 자르고 붙였다. 여야 협상과 장기적인 국회 운영의 틀은 안중에도 없었다.

 

통념상 책임감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가장에게 부여되던 중요한 덕목으로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공동체를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국회 파행의 원인과 보완 방안을 놓고 말이 많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이같은 수컷의 덕목이 중요한 시점마다 실종됐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요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이같은 덕목을 정치현장에서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정치 현장에서 수컷의 멸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리를 지어 회의실을 점거하고 사무실 탁자 위에 올라가 커피잔을 걷어차며 자신의 원시성을 만천하에 알린 수컷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수컷들이 단체로 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수컷의 위기는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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