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달린 불도저의 원조 ['당신이 가져야 할 섬(汝矣島)'에서] 2008/06/06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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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별명 중 하나가 '컴퓨터 달린 불도저'입니다.

당면 현안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함께 과감한 추진력을 함께 갖추고 있다고 해서 서울시장 재직 당시부터 회자되던 별명입니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자신의 별명을 묻는 질문에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며 스스럼없이 밝힌 바 있죠.

 

재미있는 것은 이와 똑같은 별명을 가진 일본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1972년 수상에 취임해 '록히드 사건'으로 물러난 다나카 가쿠에이 입니다.

다나카 수상의 등장과 몰락 과정을 지켜보면 이명박 대통령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성장배경입니다. 두 사람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건설업에서 돈을 번 뒤, 정계로 진출해 최고의 자리로 올랐다는 입지전적 출세과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지역구를 이어 받아 거물 정치인으로 커나가는 일본의 보수적 정치 문화에서 다나카 수상은 취임 당시부터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컴퓨터가 달린 불도저라는 별명 외에도 '이 시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며 칭송을 받았다는군요.

두 사람의 패착이 미국 방문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다나카 총리는 취임 한달만에 미국을 방문해 닉슨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젠니쿠(全日空)의 신형 여객기 도입시 록히드마틴이 생산한 트라이스타기의 도입을 요청받습니다. 결국 이것이 1976년의 뇌물 수수로 이어지고 검찰 수사 끝에 하야하게 되죠.

이 대통령 역시 취임 한달여 만에 미국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에 약속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정권 전체를 어두운 터널에 밀어놓은 상황입니다. 일본 지식인들이 '1972년 닉슨의 부탁이 록히드 사건으로 이어질지 꿈에도 몰랐다'(나카무라 마사노리)고 하듯 쇠고기 협상이 이렇게까지 큰 파장으로 이어질지는 청와대 관계자들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대운하 정책보다는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비슷하지만 다나카 수상이 '일본개조론'을 내놓고 전 국토에 대한 개발을 진행해 지가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유발, 1980년대 버블의 기반을 제공했다는 부분도 있습니다.

 

제가 이와같은 내용이 적힌 <일본전후사,1945~2005>(나카무라 마사노리,논형)를 읽은 것은 4개월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출입할 때였습니다. 당시 다나카 수상의 별명을 보고 이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관련된 기사나 글을 쓴다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정권에 소금부터 뿌리는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모임서건 이명박 대통령을 공격하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시류에 영합하는 글이 아닌가 조심스럽습니다. 좋게 말하면 역동적이지만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여론의 향배는 놀랍기까지 합니다.

 

지도자의 실패가 국가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다나카 수상의 실각은 '전후 민주주의의 성숙'으로 평가받긴 했지만 그의 정책이 남긴 부작용을 생각할 때 결국 국가의 실패를 불러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정부 자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아직 임기가 4년 넘게 남은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든 성공하길 바랄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명박, 다나카 수상, 노무현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나는 親盧가 아니라 노빠' [밑줄 그은 한마디] 2008/04/13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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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저를 '친노'로 분류하는데.. 사실 저는 친노가 아니라 '노빠'에요. 정치적 계파로 친노가 되려면 노무현 대통령과 어느 정도 교감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분을 좋아하기만 할 뿐 직접 전화 한 통화는 커녕 청와대랑 가깝게 뭔가를 해본 일도 없어요. 그냥 노무현을 좋아하는 정치인일 뿐이죠./김태년 통합민주당 의원,한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이맘때, 열린우리당 진로를 놓고 이런 저런 전망이 엇갈리던 시절에 김 의원이 한 이야기입니다. '친노'라는게 정치적으로 得보다는 失이 크던 시절에, 친노무현을 자임하며 자신을 낮춘 김 의원의 이 말은 "그 의원 386출신치고는 오만하지 않고 사람좋다"며 기자들끼리 이야기할 때 단골로 인용되는 이야깁니다.

비록 18대 총선에서 낙선하긴 했지만 수도권에서 전국 최소표차로 선전한 것도 이같은 솔직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김태년, 노무현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