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케테 콜비츠 [幻像 혹은 奇像] 2009/03/12 1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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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는 영화를 봤다. 3시간 가까이되는 런닝타임에서 시간은 거꾸로 흘렀지만 따지고 보면 꽤 운 좋고 행복하게 살았던 벤자민의 일생보다는 영화 초반에 나오는 눈먼 시계공의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았다.

사랑하는 아들을 1차 세계대전에서 잃은 시계공은 시간이 거꾸로 움직이는 대형 시계를 만들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죽었던 아들이 일어나 자신에게 돌아올테고. 그때는 다시 떠나보내지 않고 자신의 곁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거라는 말.

전선에서 쓰러졌던 아들이 슬로우모션으로 일어나고 전장을 거꾸로 뛰어 부모들이 마중하던 기차역으로 돌아와 포옹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많은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그림이 떠올랐다. 케테 콜비츠라는 독일 여성 판화가의 작품으로 '전쟁반대연작' 중 <부모>라는 작품이다. 그녀 역시 아들을 1차 세계대전에서 잃었고 그 슬픔을 다음과 같은 작품으로 표현했다.

 

 

 

 

글쎄.. 내가 지금까지 본 미술품 중 가장 슬픈 작품이다.

아들의 전사 통지서가 도착한 날.
그녀의 일기장에는 한 문장만이 적혀있다.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그림에는 두 사람이 등장하지만 어느 누구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은 상대방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고,
다른 사람은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다.

강조된 남자의 두 손.
격앙된 슬픔이 그 손에 묻어나는 듯 하다.

이 작품을 보고 나는 인간의 신체 중 가장 슬픈 부분이 손이 아닐까
생각했다.

끝도 모를 절망과 슬픔 앞에서 사람은 결코 얼굴을 수이 들지 못하고..
그 깊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가려 주는 것이 손이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에서 남자의 손은 그의 얼굴을 충분히 덮고도
남는다.

하지만, 여전히 그 슬픔의 그림자는 완전히 떠나지 않고..
얼굴을 가린 손은 어떤 일그러진 표정, 젖은 눈동자보다도
슬픔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나 자신부터 군대에 있었고..
몇몇 친한 이들이 입대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절망을 표현하고 있는 이 그림 앞에서..
가슴 깊숙히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때 슬픔은 그녀만의 몫이 아니었고,
현재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행형이다.

'평화는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정의의 현존이다.'

지겹게 들었으나 여전히 와닿는 말이다.

케테 콜비츠, 반전 댓글(1) l 트랙백(0) l 스크랩
<大望>- 아마오카 소하치 [이런 책은 어때요?] 2009/02/18 19: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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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2권 분량으로 나온 시리즈에서 23권까지를 읽었다.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에서 승리한 뒤 일본의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다듬어나갈지 고민하던 때까지다.


처음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어머니의 추천 때문이었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5살 무렵부터 어머니는 “남자라면 꼭 한번 읽어야할 소설”이라며 <대망>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스무살 즈음에 읽었다는데 이상과 함께 처세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설명이었다.


약 반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읽은 <대망>은 인간관계에 대한 도상연습의 연속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적으로 전국시대 후반과 에도막부 초기를 다룬 소설임에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소설의 대부분은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내던져진 인간들이 자신의 생을 걸고 벌이는 암투로 채워져 있다. 때문에 소설은 중요한 시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와 이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작가는 등장인물들이 특정 상황에서 왜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세심하게 설명한다. 패자는 어떤 부분을 잘못 생각해 중대한 오판을 범했는지, 그렇다면 승자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원인을 찾고 독자에게 전달하려 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 기업인 등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이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말할 때 이 책을 입에 올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수천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선을 취재한 경험이 있는 정치부 기자의 관점에서 보기에도 이 책에는 성공하기 위한 인물, 조직의 조건을 잘 설명하고 있다. 실제 이에야스는 다른 영주에게 볼모로 잡힌 것으로 인생을 시작했지만 성공하기 위한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대부분은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이 구비해야할 조건과도 합치되는 부분이 많다.

이에야스는 소수지만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참모진을 갖추고 있었고 이들은 하나같이 전국시대에 꼭 필요한 능력인 무력이 출중한 정예였다.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오랜기간 전국시대를 통과해오면서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굳어진 ‘평화’라는 신념을 젊은 시절부터 일관되게 구현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인내심과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는 과단성도 있었다. 하나같이 대권을 잡기 위한 주자의 자질로 요구되는 것이고 우리 정치인들에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적과 내통한 이에야스의 가신에 대한 이야기다. 이에야스의 내전을 챙기는 집사에서 성 전체의 재정을 관장하는 재무책임자까지 오른 이 가신은 이에야스 가의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며 앞으로 이에야스에 미래가 없다고 보고 신겐 가와 결탁한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나 내부 정보에서 다른 가신들에 비해 떨어질 게 없던 사람이 배신을 한 이유는 뭘까. 작가는 과도한 욕망과 자신감에서 찾았다.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전국시대에 자신의 수완과 말솜씨에 지나친 자신감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주군을 대신해 다이묘로 올라서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가신은 체포되어 나무톱으로 백성들에게 머리를 잘린다.


자신의 적은 바로 자신이다.

반복되는 도상 훈련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등장 인물들은 자주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객관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 원인은 원수의 프로파간다나 측근의 잘못된 보필이 아닌 자신에게 있다.

소설에는 수많은 ‘자신’이 자신의 눈을 가려버린다. 분노하는 자신이 있는가하면 두려워하는 자신, 욕망하는 자신이 있다. 한번 어떤 감정에 빠지면 어느새 그 감정은 자아 전체를 먹어 삼키고 마침내는 파멸로 이끈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일수록 벌어질 공산이 높다는 것이다. 위기나 호기를 맞아 사람들은 허둥지둥 대고 자신의 중심을 잡지 못한다. 그러다 ‘자신’의 늪에 빠져버리면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인제의 경선 불복을 비롯해 알만한 사람의 도저히 이해 안되는 판단과 고집을 우리 정치사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에야스로 구현되는 인물모델의 승부처는 이같은 자신과의 싸움에 임하는 자세에 있다.

다케다 신겐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등 젊은 날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에야스는 중요한 시기에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상황을 냉철히 바라보는 삶의 태도를 갖추게 된다. 이에야스는 측근과 아들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수련할 것”을 주문한다.


이에야스를 이야기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기다림의 미덕’도 비중있게 다뤄진다. 노부나가나 히데요시가 아니라 이에야스였던 이유는 역시 기다림이었다.(하지만 책에는 유명한 두견새에 대한 하이쿠는 한번도 소개되지 않는다)

비슷한 이야기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다림’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은 것’으로 정리하면 어떨까 한다.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손안에 넣었던 패권을 놓친 데에는 서둘렀다는 문제가 있었다. 노부나가는 내전 종식에 대한 공감대를 폭넓게 얻지 못한 상황에서 패권 정립을 서두르다보니 곳곳에서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켰고 측근의 신뢰를 잃었다. 히데요시는 오래된 가신그룹이 없다는 약점을 도외시 하고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가족이 이후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했다.

반면 이에야스는 히데요시 사후에 사실상 패권을 움켜쥐었음에도 행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대의와 정권의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서 지루할 정도로 시간을 끌었다.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와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는 과정에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자연스럽게 제반 여건을 변화시켰다.


마지막으로 이번 독서를 통해 일본 문화의 감성적인 면에 대한 이해를 진전시킬 수 있었다. 천수각이 불타는 가운데 할복하는 무사라든지 궁지에 몰려 자식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베는 모습. 이혼과 재혼, 정략결혼이 일반화되고 왠만한 귀부인은 정부를 두는 모습. 군신간의 엄격한 위계질서와 말조심. 상무정신 등. 개국 이래 끊임없이 전란이 이어져온 일본과 그 상황에서 형성된 일본인의 내면도 같이 바라볼 수 있었다.


확실히 조상들이 고생한만큼 일본은 서사의 소재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갠지 이야기 이후 이어져온 서사의 전통이 깊다는 이유도 있겠지. 하지만 그같은 서사의 소재를 위해 고생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런 소설이 씌어질만한 소재가 없을 정도로 평화로웠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금성이나 이화원의 웅장함에 놀라다가도 그것을 위해 바쳐졌을 피와 땀을 생각하면 고개를 젓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처세술을 확장한 책으로 일부의 평가처럼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책은 아니다. 삼국지나 수호지가 그렇듯 중상모략과 처세를 다룬 이웃 나라의 책들이 마치 그 나라 문학의 정수인양 소개되는 풍토는 우리 인문학의 얄팍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한편으로 헌책방 같은데서 싸게 한질 정도 들여놓으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관계가 힘들고 출입처 장악에 절망을 느낄때 한번씩 펼쳐보면 좋겠다.

대망, 일본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청문회에 10년 우정 금 간 사연. ['당신이 가져야 할 섬(汝矣島)'에서] 2009/02/16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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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10년지기를 갈라놓다.'

한나라당 A의원실의 B보좌관과 민주당 C의원실의 D보좌관 사이의 일이다. 이들은 대학시절 선후배 사이로 만나 10년 넘게 우정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지난주 이들의 우정에 금이 가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현인택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였다.

9일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D보좌관은 의원을 따라 공격수로, B보좌관은 현 장관을 도와 야당의 공세를 맡는 역할로 '출전'하게 됐다. D보좌관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의원을 도와 이런 저런 자료를 준비했고 정부측에서 서 있던 B보좌관은 신청받은 자료를 건네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청문회가 가까워 올수록 현 장관의 '티'가 너무 많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다. 끈질기게 현 장관의 뒤를 캐며 관계 부처에 자료를 요구하는 D보좌관에게 B보좌관은 조금만 살살 해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의원 눈치를 봐야하는 D보좌관은 오히려 공세 수위를 높여 나갔고 둘은 전화를 통해 수시로 언쟁을 벌이는 사이가 됐다. 이렇게 악화되던 둘의 관계는 B보좌관이 D보좌관을 찾아가 다른 국회 관계자들이 있는 앞에서 큰 소리를 지르며 멱살까지 잡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종말을 고하게 됐다.

어쨌든 D보좌관의 도움으로 C의원은 청문회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해 현 장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역시 B보좌관 덕분인지 다른 야당의원들은 전반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현 장관은 별 탈 없이 장관에 임명됐다.

 

국정감사나 대정부질문 등 여야가 맞서는 현장에서는 의외로 개인간의 친소관계가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며 유일하게 내각에 들어가 있는 전재희 복지부 장관에 대해 야당 의원들이 전반적으로 '살살' 대하는 것도 '동료의원'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고 복지위 소속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전했다.

 

이외에 평소에는 '전투력' 있던 야당 의원이 유독 어떤 사안에 대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십중팔구 공격받는 쪽에 의원과 친분이 있는 인사가 있으리라는게 정설이다.

 

현역 의원의 입각이 내각에 도움이 되는 또다른 측면이다.

현인택, 보좌관, 인사청문회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