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외국인을 전문으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고이즈미코포레이션.이 회사의 고이즈미 나오토 사장은 요즘 한국인 때문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올들어서만 한국으로부터 도쿄에 아파트를 사달라는 매수의뢰가 10여건 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작년까지만 해도 두세달에 한두건 있을까 말까 했던 한국인들의 매수의뢰가 올들어 쇄도하고 있는 것.고이즈미 사장은 “최근 외국인 손님중 90%가 한국인”이라며 “매수세가 몰리자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지역의 집주인들은 집값을 올려받기 위해 매물을 거둬 들이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아파트 상가 빌딩 등 용도 안가려


최근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한 일본에 한국의 부동산 자금이 몰리고 있다.지난 1~2년간 미국과 중국 등에 집중됐던 해외 부동산 투자 열기가 뒤늦게 부동산 값이 오르기 시작한 일본쪽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특히 일본은 현재 엔화가 약세인 데다 대출금리도 한국의 절반수준이어서 매력적인 투자처로 각광 받고 있다.때문에 도쿄 신주쿠 등 일부 중심지에선 한국인들의 투자 붐으로 부동산 값이 지난 1년새 2배 이상 급등하는 과열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일본 부동산에 투자하는 한국인들의 특징은 물건의 용도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아파트 등 주로 주택만 샀던 미국이나 중국 투자와는 양상이 다르다.실제 중견 기업이나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도쿄내 상가나 빌딩에 대한 투자가 부쩍 늘고 있다.

 

한국인들의 일본 부동산 투자가 늘면서 최근 1년 사이 값이 2배나 오른 도쿄 한인상가(쇼쿠안도오리).                                                          /chabs


 한국계 시중은행의 도쿄지점장은 “지난달 서울의 중소기업 사장 두명으로부터 각각 30억엔(약 240억원)대와 10억엔(약 80억원)대의 상가건물 매물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도쿄에 부임한지 2년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한국의 부동산펀드가 1000억원을 일본에 투자하고 싶다고 해서 일본의 부동산투자회사를 연결시켜 준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또다른 은행 지점장은 “올들어 도쿄의 상가·빌딩을 인수한 한국기업 10여곳에 담보대출을 해줬다”며 “이로 인해 금년 1~2월중 대출액이 작년 한해 실적을 넘었다”고 귀띔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의 일본내 부동산 매입으로 연결되는 부동산과 서비스업에 대한 직접투자액은 작년 4분기(10~12월) 1억3189만1000달러에 달했다.직전 분기의 1855만2000달러에 비해 7배 이상 폭증했다.이 추세는 금년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엔저에 저리대출 투자여건 좋아

 

일본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는 건 투자여건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일본 부동산 값은 지난해 많이 올랐다고 해도 한국이나 미국 등에 비하면 저평가돼 있다는게 일반적 시각이다.도쿄의 주택지와 상업지의 공시지가는 작년 한해동안 각각 8.0%와 14.0% 올랐다.그러나 1991년 거품 붕괴이후 계속 내리기만 했기 때문에 도쿄의 중심지 주택지 값은 이제야 1984년 수준,상업지는 1980년 가격으로 회복된 정도다.
 예컨대 현재 서울 강남의 30평대 아파트 값이 평균 10억원선인 반면 비슷한 평형의 도쿄 중심부 아파트는 5000만엔(약 4억원)선이다.이 아파트를 사서 임대를 주면 매달 25만~30만엔(약 200만~240만원)의 월세가 나온다.연 5~7%의 수익률이 보장되는 셈이다.
 엔화가치가 사상 최저인 것도 호재다.앞으로 엔화 값이 오르면 한국 돈으로 따진 일본의 부동산 가치도 상승해 부수 이익을 챙길 수 있다.게다가 일본 은행들은 감정가액의 70%까지 담보대출도 해준다.금리는 한국의 절반도 안되는 연 3%안팎이다.

 

일본도 부동산 세금 만만치 않아


그러나 한국인 투자가 과열조짐 이어서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도쿄 신주쿠에서 20년 넘게 유통업을 해온 한국광장 김근희 사장은 “한국인들이 주로 거래하는 한국 상가 밀집지역에선 1년전 20억엔 하던 건물이 40억엔으로 2배나 뛰었다”며 “주변 지역에 비해 너무 단기 급등했다”고 말했다.한국계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앞으로 일본도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은 만큼 무리한 대출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며 “특히 일본의 부동산 세금도 한국보다 적지 않다는 걸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일본의 부동산 보유세율은 공시가격의 1.7%,양도소득세율는 보유기간에 따라 10~39%로 한국에 비해 다소 높은 편이다.
 한편 일본 정부가 지난 3월22일 발표한 ‘전국 공시지가’에 따르면 도쿄의 땅값은 작년 평균 9.8%올라 16년만에 처음으로 상승 반전한 가운데 핵심 지역의 땅값은 45%이상 오르기도 해 국지적 거품 논란도 일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지난 3월24일 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 체육관에서 열린 세계피겨선수권대회.한국의 ‘피겨요정’ 김연아(16)와 동갑내기인 일본의 ‘국민 스타’ 아사다 마오가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량을 겨룬 이날 대회는 한국과 일본 두나라 국민들의 최대 관심 이벤트였다.특히 전날밤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가 역대 최고 점수를 받아 랭킹 1위로 올라선 반면 아사다 마오는 점프 실패로 5위에 머물러 있던 터라 이날 경기는 일본 국민들을 TV앞에 잡아두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 경기를 단독 중계한 후지TV는 뜻밖에도 생중계가 아닌 1시간 지연중계를 했다.밤 9시 중계를 시작해 24명의 선수중 21번째로 출전한 김연아와 22번째 아사다 마오, 24번째 안도 미키의 연기는 9시30분 이후에야 내보냈다.한국에선 이미 SBS가 8시35분부터 생중계를 시작해 9시 조금 넘어 안도 미키 1위,아사다 마오 2위, 김연아는 안타까운 3위란 경기결과를 전한 한참 뒤였다.
 특파원으로 부임한지 한달도 안된 도쿄에서 김 샌 TV중계를 보던 기자에겐 두가지 의문이 생겼다.첫째,일본 후지TV는 왜 이 경기를 생중계하지 않았을까.둘째,TV중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의 다른 언론들은 왜 경기결과를 즉각 보도하지 않았을까.일본 언론들은 후지TV의 지연 중계 시간에 딱 맞춰 경기결과 기사를 밤 10시 이후에야 인터넷 등에 올리는 ‘지연 보도’를 했다.
 의문은 최근 일본 방송 관계자를 만난 뒤 풀렸다.첫번째 의문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일본에선 스포츠 경기를 지연 중계하는 경우가 많다.광고 때문이다.경기 중간중간에 TV광고를 깔끔하게 끼워 넣는 편집을 하려면 지연중계를 할 수 밖에 없다.” 그 배경엔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로 방송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덴츠(電通)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점도 귀띔했다.
 다른 언론의 ‘지연 보도’에 대해선 “그게 언론사간 묵계”라고 설명했다.‘이미 전세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1시간 뒤에야 보도한다고? 또 일본 국민들은 그걸 보고 1시간 뒤에야 흥분한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기자에게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다.“그게 언론계 관행이다.일본 국민들도 이해한다”.
 결국 자기들만의 틀과 관행을 만들고 그것을 열심히 지키려는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이 느껴졌다.소위 ‘로컬 스탠더드(Local Standard)’를 중시하는 일본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일본의 로컬 스탠더드는 스포츠 중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아베 총리와 일본 각료들의 잇단 망언으로 파문이 인 종군위안부 문제나 독도, 야스쿠니 신사 등 역사 왜곡문제도 일본의 삐뚤어진 로컬 스탠더드 때문이다.국제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든,역사적 사실이 무엇이든, 자기들만의 신념과 사고방식을 고수하려는 일본은 그래서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멀다.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과거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한 건 민주국가 지도자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도 일본의 정치인들은 꿋꿋하다.세계 여론 보다는 정치적 이해가 걸린 국내 여론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일본이 세계 두번째 경제대국이면서도 세계 리더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한 일본만의 로컬 스탠더드 탓은 아닐까.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좋은 제품 만들자” 모노츠쿠리 정신 무장
기업들 꾸준한 기술투자가 도약 발판…일본식 ‘한솥밥’경영 노사화합도 한몫

 

도요타산업기술관 로비에 전시된 환상형직기를 둘러보고 있는 도요타 신입사원들./chabs

 

 

도요타자동차 본사가 있는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도요타자동차의 모태인 도요타자동직기 옛 공장 터에 지어진 이 기념관을 지난달 15일 300여명의 도요타 신입사원들이 찾았다.본관 1층에서 도요타그룹 창시자 도요다 사키치가 1906년 발명한 환상형 직기를 둘러보는 신입사원들의 눈빛이 진지하다.
 신입사원 다카다(24) 씨는 “100여년 전에 이런 기계를 발명했다는 게 놀랍다”며 “창시자의 창의와 연구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무라이 코지 산업기술기념관장 대행은 “창업가문인 도요다가(家)의 ‘모노츠쿠리(좋은 물건 만들기)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매년 신입사원들을 이곳에서 연수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 제조기업을 방문하면 하나 같이 강조하는 말이 ‘모노츠쿠리 정신’이다.좀더 나은 제품을 만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는 것.‘장인정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이를 위해 일본 기업들은 10년 불황기에도 다른 건 다 줄여도 연구개발(R&D) 투자비 만큼은 줄이지 않았다.“R&D를 통한 최고 품질의 추구는 제조회사의 생명선”(와타나베 가츠아키 도요타자동차 사장)이란 철학 때문이다.일본 기업들이 장기 불황에도 쇠퇴하지 않고, 결국 되살아난 저력도 여기서 나온다.
◆기계 아닌 ‘장인의 손’이 경쟁력
도쿄 인근 오타구공단에 가면 ‘기타지마 시보리 제작소’란 중소기업이 있다.종업원이 20명도 안되는 작은 공장이지만 일본의 모노츠쿠리 파워를 상징하는 곳이다.지난 1947년 설립된 이 공장은 알루미늄을 재료로 못 만드는 게 없다.일상 생활용품에서 항공기·로켓 부품까지 주문만 오면 다 만든다.미국의 항공우주국(NASA)도 로켓 부품의 정밀도를 올리는 최종 마무리 가공은 이 공장에 맡긴다.
 놀라운 건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화 기기가 아닌 기술자들의 손으로 이뤄진다는 것.기타지마 가즈토시 사장은 “사람 손으로 만드는 게 기계보다 정확하다”고 말한다.생산 현장의 근로자가 혼신을 다해 얻은 손재주와 미세한 감각 등 노하우는 일본 부품·소재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LCD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첨단 제품도 기초는 현장 근로자의 모노츠쿠리에 있다”(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가 최근 모노츠쿠리 기술을 적극 지원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일본 중소기업청은 연초 ‘모노츠쿠리 기반기술 고도화법’을 제정해 시행중이다.작년 부터는 총리가 표창하는 ‘모노츠쿠리 대상’을 만들어 우수 기업을 격려하고 있다.
◆굶어도 내일 위한 R&D엔 투자
생산현장에서 모노츠쿠리가 가능한 건 일본 기업들의 끊임없는 R&D투자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기술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현장에서 손기술과 노하우도 쌓이는 것.그런 점에서 일본 기업들이 불황 때도 R&D투자를 확대해온 건 평가 받을 만하다.일본 기업들은 거품경제 붕괴 직후인 1992년부터 3년간 R&D투자를 1~5% 소폭 줄인 것 외엔 지금까지 줄곧 R&D투자를 늘려왔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지난해엔 R&D투자를 더 늘렸다.불어난 이익을 근로자들에게 임금인상으로 나눠주는 대신 R&D에 쏟아붓고 있다.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요 25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이들 회사는 R&D에 전년보다 7.4% 많은 11조3304억엔을 투자했다.
 이들 기업은 R&D확대와 함께 연구원도 크게 늘릴 것으로 조사됐다.조사대상의 56% 기업이 앞으로 5년간 연구원을 늘리겠다고 답했다.니와 아오 도쿄대 교수(기술경영학)는 “수익성이 개선된 기업들 사이에 장기 성장을 위해선 ‘신기술 개발’이 필수란 인식이 다시 퍼져 R&D 투자경쟁이 일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사는 ‘한솥밥 먹는 식구’
현장의 모노츠쿠리가 이어진 요인중 또 하나는 종신고용을 바탕으로 한 일본식 경영이란 분석도 있다.고도켄지 고도경영연구소장은 “일자리가 안정되지 못하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기 어렵고 현장의 기술 전수도 안된다”며 “그런 점에서 일본의 종신고용은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종신고용은 임직원에게 ‘한식구 의식’을 심어줘 조직결속력과 노사화합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지난 50여년간 노사분규가 한번도 없어 모범 회사로 꼽히는 도요타자동차도 이런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기로 유명하다.도요타는 노사가 한 식구란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본사 식당에선 임직원이 밥을 식탁 위의 목제 밥통에서 직접 퍼먹도록 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일본 기업들이 옛 경영방식에만 안주하는 건 아니다.캐논은 종신고용이란 일본식 경영에 미국식 성과주의를 접목한 ‘하이브리드 경영’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일자리는 보장하지만 승진과 급여는 철저하게 실적에 따라 차등을 둬 조직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미타라이 후지오 게이단렌 회장(캐논 회장)은 “일본 기업들은 대차대조표와 현금흐름 관리,투명성,비용 관리 등에선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였지만 고용과 거래업체와의 유대관계에서는 일본식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며 “그게 일본 기업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도쿄·나고야=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