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나고야의 특급호텔 웨스턴나고야캐슬. 1952년 지어진 나고야성(城이) 바라보이는 이 호텔에선 매년 3월말 도요타자동차를 창업한 도요다 기이치로의 기일(忌日) 추모 행사가 열린다. 도요다가(家) 사람들은 물론 도요타그룹 임직원, 협력업체 대표들까지 참석하는 이 행사에서 재밌는 건 내빈들의 자리 배치다.

 혈연관계도 아닌 자동차 영업점과 부품 협력사 대표가 맨 앞에 앉는다. 그 다음에 도요타그룹 회장 사장 등 임원들이 앉고, 도요다가 사람들은 가장 말석에 자리 잡는다. “창업자를 기리는 모임을 통해 협력업체와 임직원들이 다시한번 도요타그룹의 창업정신을 새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도요타자동차 관계자)

 

'경쟁력 구심점' 도요다가(家)

 

 도요타자동차의 경쟁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창업정신이다. 도요타의 창업정신은 ‘창조와 기술’. 기이치로의 아버지로 1926년 도요타자동차 모체인 도요타자동직기를 설립해 도요타그룹 창시조로 불리는 도요다 사키치가 세운 뜻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정리한 5개조의 ‘도요타 강령’은 지금도 도요타에선 ‘성경’이다. 이 창업정신은 혁신과 품질의 대명사가 된 도요타자동차 경쟁력의 뿌리가 됐다. 

 그렇다면 창업 70년간 도요타는 창업정신을 어떻게 지켜왔을까. 그 비결은 창업가문의 오너경영에서 찾을 수 있다. 도요타는 오너 가문이 3대째 경영권을 승계해왔다. 창시조인 도요다 사키치로부터 그의 장남인 기이치로(1937년 도요타자동차 설립), 손자인 쇼이치로(현재 도요타자동차 명예회장)까지 도요타의 경영권은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이어졌다. 지금은 전문경영인 와타나베 가츠아키 사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지만 쇼이치로 명예회장의 장남인 아키오 부사장이 4대째 경영권 승계를 준비중이다.

 

지분 2%로 카리스마 오너쉽

 

 의외인 건 쇼이치로 명예회장 등 도요다가(家)가 갖고 있는 도요타자동차 총지분은 현재 2%를 넘지 않는다는 것. 회사 덩치가 커지고 지분 상속이 이어지면서 도요다가의 보유지분이 계속 줄어든 결과다. 나머지 지분은 납품회사 등 관계사와 보험회사 은행 등 기관투자가들이 나눠 갖고 있다. 그런데도 도요다가는 도요타자동차에 무시못할 오너쉽을 갖고 경영권을 승계한다. 도요타에선 이걸 ‘2%의 카리스마’라고 부른다.

 바로 여기에 도요타 파워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도요타의 인재육성 업무에 오래 몸담았던 한 퇴직 임원은 “도요타는 도요다가의 최고경영자를 교주(敎主)로 둔 종교국가다. 도요다교의 교리는 창조와 기술이라는 창업정신이다”고 말했다. 실제 도요다 가문에 대한 도요타 직원들의 경외심은 각별하다.

 

도요타는 종교국가-교리는 창의

 

 창시조 사키치의 생가를 복원한 시즈오카현 코사이시 도요다사키치기념관은 도요타그룹 신입사원들의 필수 연수코스다. 매년 3월27일 창업자 기이치로의 기일(忌日)엔 도요타자동차 뿐아니라 계열사 등의 직급별 대표들이 묘소가 있는 나고야의 사찰 니타이지(日泰寺)를 찾아 가 성묘 한다. 개인 참배가 아니라 회사 공식 출장이다. 이들은 이렇게 매년 창시조와 창업자를 기리면서 도요다가의 창업정신을 되새긴다.

 “집단에는 깃발과 같은 정신적 버팀목이 필요하다. 도요타에서 그 깃발은 도요다가다” 2002년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회장까지 지낸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전 회장은 도요다가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도요다가야말로 도요타자동차의 정신적 지주이자 경쟁력의 구심점이란 얘기다. 회사가 생산혁신이든, 노사화합이든 하나의 방침을 세우면 전원이 한덩어리 처럼 똘똘 뭉치는 결속력의 중심엔 늘 도요다가가 있다.

 

3대째 경영승계 창업정신 이어

 

 이런 기업문화 때문에 도요타자동차 뿐아니라 도요타자동직기 도요타방직 등 관계회사 등에도 도요다 일가가 경영진에 두루 포진해 있지만 오너경영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도요타자동차의 총무부장을 지냈던 나카무라 테이지씨는 “물론 도요다 가문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요타의 사장이 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같은 능력이라면 도요다가 사람이 더 안정감 있다”고 말한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쟁력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히노 사토시 히로시마대 교수는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도요타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요인중 하나는 창업 가문이 중심이 돼 흔들리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창업 가문과 전문경영인이 힘을 합쳐 끊임없이 개선해가는 경영매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도요타는 경영진이 세대 교체돼도 경쟁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최고 기업, 아니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 도요타자동차의 경쟁력 비결을 아십니까?

 

오늘 부터 모두 5회에 걸쳐 '도요타의 힘(力)'의 원천을 탐구해보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다른 의견이나 덧붙이실 의견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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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에서 환상형 직기를 둘러보는 도요타 신입 사원들.

/나고야=차병석 특파원

 

도요타자동차 본사가 있는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 도요타자동차의 모태인 도요타자동직기 옛 공장 터에 지어진 이 기념관을 지난 3월15일 300여명의 도요타자동차 신입사원들이 찾았다. 본관 1층에서 도요타그룹 창시조 도요다 사키치가 1906년 발명한 환상형 직기를 둘러보는 신입사원들의 눈빛이 진지하다.

 신입사원 다카다(24) 씨는 “100여년 전에 이런 기계를 발명했다는 게 놀랍다”며 “창시조의 창의와 연구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무라이 코지 산업기술기념관장 대행은 “창업가문인 도요다가(家)의 ‘모노츠쿠리(최고 제품 만들기)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매년 신입사원들을 이곳에서 연수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올 車생산942만대로 GM 20만대 추월

 

 도요타자동차는 제조업 강국 일본에서도 대표적인 제조업체다. 이 회사가 올해 세계 자동차 산업 역사에 큰 획을 긋는다. 금년에 창립 70주년을 맞는 도요타는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가 될 게 확실시 된다.

 올해 도요타의 자동차 예상 생산대수는 942만대. 작년 901만대 보다 5% 늘어나는 것이다. 반면 현재까지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GM은 금년 생산대수가 지난해(918만대) 수준에 머물 예상이다. 이렇게 되면 도요타는 생산대수에서 GM을 20만대 이상 앞질러 세계 1위 자동차 회사가 된다.

 1903년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처음 자동차를 팔기 시작한 이래 100년 이상 지켜온 ‘자동차 종주국 미국’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셈이다. 도요타 입장에선 1957년 자체 모델인 ‘크라운’을 미국에 첫 수출하기 시작한지 딱 50년만에 이룬 쾌거여서 의미는 더욱 크다.

 기업가치로는 도요타가 세계 1위 자동차 회사가 된지 오래다. 도쿄증시에서 도요타의 시가총액은 지난 2월말 한때 30조엔(약 240조원)을 넘었다. 2004년말 15조엔이었던 시가총액이 불과 2년만에 갑절로 불어난 것. GM의 13배를 넘는 규모로 세계 자동차 회사중 1위,세계 전 기업중에선 6위다.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전자 시가총액(약 100조원)의 두배를 훨씬 넘는 것이기도 하다.

 

순이익 12조원 ‘최고 실적’- 일본 경제회생 견인

 

 이런 결과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계 자동차들이 진검승부를 벌이는 미국 시장에서 도요타는 지난 수년간 승승장구 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는 역시 도요타다. 미국의 소비자 전문지 컨슈머리포트가 최근 발표한 ‘2007년 10개 부문별 최고의 자동차’를 보면 일본 자동차가 전 부문 1위를 독식한 가운데 미니밴 SUV 하이브리드카 등 4개 부문을 도요타가 휩쓸었다. 도요타의 지난해 미국 수출대수는 126만9000대로 전년의 88만5000대 보다 43%나 급증했다.

 도요타는 작년 회계년도(2006년4월~2007년3월)에 매출  23조9480억엔(약 190조원), 순이익 1조6440억엔(약 13조원)의 기록을 세웠다. 전년보다 각각 13.8%와 19.8%씩 불어난 실적. 물론 둘다 사상 최대다. 도요타는 이 과실로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늘려 일본의 경제 회생을 견인하고 있다.

 70년전 일본의 한 지방도시에서 자동직기회사 자회사로 출발해 현재 세계 27개국에 52개 자회사를 거느린 도요타. 부단한 ‘모노츠쿠리 정신’으로 세계 1등 자동차 회사로 발돋움한 도요타 경쟁력의 뿌리는 어디 있을까. 도요타 본사가 있는 일본 나고야를 찾아가 ‘도요타 힘(力)’의 원천을 탐구해봤다.                                                    나고야=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난 지난 5월 스포츠마케팅 설명회후 스포츠카 앞에서 포즈를 취한 도요타 경영진.왼쪽서 두번째가 와타나베 가츠아키 사장.                            /도쿄=차병석 특파원

 

도요타 왜 강한가 1-로비의 승리?

 

지난 2월초 어느날 오후 미국 워싱턴.도요타자동차의 로비스트 찰스 잉그는 막 시판된 ‘캠리 하이브리드카’를 몰고 미국 의회가 있는 캐피탈힐로 향했다.의사당 주변 길가에서 그가 차에 태운 사람은 에너지관련 법안을 심의하는 미 의회 에너지위원회 핵심 간부.운전석을 내준 찰스는 조수석에 앉아 그 간부가 드라이브를 즐기는 동안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장점과 전략 등을 입이 마르도록 설명했다.자동차 매니아로 렉서스RX330을 타는 그 간부가 하이브리드카에 관심을 보이자 이내 ‘좋은 딜러를 소개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외무성 뺨치는 도요타 성공


 일본의 시사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가 8월호에서 소개한 도요타자동차의 대미(對美) 의회 로비현장의 한 장면이다.문예춘추는 도요타가 지난 10여년간 특별한 무역장벽에 부딪히지 않고 미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워싱턴에서의 불꽃튀는 로비전에서 승리한 결과라고 분석했다.도요타가 워싱턴에 ‘도요타 의회네트워크’로 불리는 우호 세력을 만들어 무역규제 등의 법안 통과를 저지하는 등 일본 외무성을 뺨치는 로비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
 문예춘추에 따르면 도요타는 지난 2002년부터 매년 9월 워싱턴에서 ‘플라이 인(Fly-in)’이라는 행사를 열고 있다.미국 전역의 도요타와 관계사 간부들이 참석하는 이 행사는 미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펼치기 위한 합숙 워크숍.작년 9월에도 11일부터 3일간 도요타 간부들은 백악관 근처 르네상스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이 행사를 치뤘다.

 

미주 간부 워싱턴서 2박3일 합숙 로비

 

 행사에선 간부들에게 그해 로비의 핵심 지침이 전달되고, 외부 컨설턴트가 정치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말하는 방법 등도 가르친다.마지막 날은 3~4명씩 짝을 지어 의회내 정치인 사무실을 방문,로비를 벌이는 것으로 행사는 마무리된다.워싱턴에 공식 등록된 도요타의 로비스트는 7명이지만 이들 외에도 전 지사의 간부들이 1년에 한번씩 로비스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로비는 도요타가 미국 시장에서 각종 규제 장벽을 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캘리포니아주가 모든 자동차회사에 2%는 무공해 차를 팔도록 한 규제를 시행하면서 무공해차 범위에 전기차 외에 도요타가 강점을 지닌 하이브리드카를 포함시킨 것도 도요타 로비의 성과라고 문예춘추는 지적했다.
 

생산기지 분산도 '우리편 만들기' 포석

 

 문예춘추는 또 도요타가 미국에서 생산기지를 한 곳에 집중시키지 않고, 여러 주에 분산시킨 것도 로비를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여러 주에 공장을 건설함으로써 좀더 많은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 등 정치인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는 것.도요타는 최근 설립계획을 밝힌 미시시피주 공장을 포함하면 미국에만 모두 11개주에 13개 사업장을 갖게 된다.이들 주만 따져도 151명의 하원의원, 21명의 상원의원, 주지사 11명을 우호세력으로 만든 셈이다.미국의 빅3중 하나인 포드는 최근 가동 중단한 공장을 빼면 사업장이 있는 주가 9개에 불과하다.
 도요타는 올해도 미국 의회 로비를 강화하기 위해 로비자금을 지난해 460만달러(약 44억원)에서 더 늘리고, 정치활동위원회(PAC)도 만들어 선거 입후보자와 정당에 합법적으로 돈을 기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역대 소니의 최고경영자(CEO) 중 '카리스마의 CEO'로 꼽히는 이데이 노부유키 전 소니회장을 지난주말 인터뷰 했습니다. 인터뷰 신청한지 두달만에 어렵사리 이뤄진 인터뷰 였습니다.

 

첫 인상은 상당히 강렬하더군요.훤칠한 키의 노신사는 여전히 꼿꼿했고, 눈은 반짝이고있었습니다.할 말은 자신감 넘치고 확실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말엔 '노 코멘트'를 분명히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한국 삼성에 대해 평가하면서 "이건희 회장이 내 와세다대학 후배 아니냐."고 말하는 대목에선 자신감 이랄까...더 나아가 우월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기사는 한국경제신문 7월9일자에 게재됐습니다.여기엔 신문에 편집되기 전의 인터뷰 전문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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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권철 포토저널리스트

 

이 노부유키(出井伸之.69) 전 소니회장에게 처음 인터뷰를 신청한 건 지난 5월초였다.2003년 이익급감 쇼크에서 못 헤어날 줄 알았던 소니가 작년 실적호조로 되살아난 게 뉴스가 됐던 때다.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소니를 진두지휘했던 이데이 전 회장을 만나 ‘소니 부활’의 배경에 대해 듣고 싶었다.그는 소니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려 ‘가전 왕국’의 명성을 얻게 했던 간판 경영자이자 말년에 소니의 추락기도 함께 했던 사람이었다.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최고 고문직이란 타이틀로 여전히 소니에 적(籍)을 두고 있던 그는 소니 경영에 대해 얘기하길 꺼렸다.그러던 그가 6월21일 소니 정기 주주총회때 최고 고문직에서 물러났다.47년간 몸담았던 소니를 완전히 떠난 것.5일 뒤인 26일엔 중국의 구글(google)로 불리는 인터넷 검색기업 바이두(百度)의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새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다시 인터뷰를 요청했다.이데이 전 회장은 한결 홀가분해진듯 “그럼 만나자”며 응했다.도쿄역 앞에 있는 그의 컨설팅회사 컨텀리프(Quantum Leaps) 회의실에서 7월6일 이데이 전 회장을 단독 인터뷰했다.그는 거대 글로벌기업 소니의 최고경영자(CEO) 출신 답게 1시간여 동안 소니의 어제와 오늘에서부터 한국·일본 등 아시아 기업간 협력, 전자산업의 변화 방향, 기업의 성공조건, 삼성전자에 대한 조언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소니의 변혁과정을 이야기 하면서는 벌떡 일어나 화이트보드에 그래프 등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도쿄=권철 포토저널리스트

 

◆日인터넷 시장 성공조건
-소니의 최고 고문직에서 지난달말 사임한 직후 중국의 인터넷 검색기업 바이두의 사외이사로 참여했다.일본의 대표적 경영인이 중국 인터넷 기업에 들어갔다는 게 좀 의외인데….
“바이두의 로빈 리 회장이 부탁을 해와 조금 고민하다가 승락한 것 뿐이다.그와는 사업관계로 아는 사이다.엔지니어 출신인데,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내 경험과 경륜이 필요하다고 해서 도와주기로 했다.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한국의 대표적 인터넷 업체중 하나인 NHN도 연말께 일본의 인터넷 검색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일본 인터넷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무엇이 중요한가.
“네티즌들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인터넷은 개인이 사용하는 것이다.그 개인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그러려면 자기만의 기술이 있어야 하고, 기업 이미지도 좋아야 한다.이를 통해 일본의 커뮤니티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 들어올 수 있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어느 업종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기술만 좋다고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소니가 미국 시장에 들어갈 때도 그랬다.그 나라 소비자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이해하는 게 최우선이었다.작은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느냐 여부가 나중에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초래한다.”

◆아시아 기업간 협력
-최근 아시아 기업간 협력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떤 방식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많다.아시아 정부간에도 요즘 환경 에너지 등 분야에서 협력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 있지 않나.그런 분야에서 기업 차원의 협력이 충분히 가능하다.협력 방식은 연성 제휴(soft alliance)가 효율적이다.소니와 스웨덴의 에릭슨이 50대50 합작회사를 만들어 휴대폰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나, 소니와 삼성이 LCD패널사업에서 합작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형태 처럼 말이다.
 이건 두 기업이 인수합병(M&A)해서 완전히 한 회사가 되는 강성 제휴(hard alliance)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서로의 본체는 유지하면서 필요한 부분만 손을 잡는 것이다.연성 제휴는 시간도 절약되고, 윈윈(win-win) 가능성도 훨씬 크다.조직문화나 사고방식이 다른 기업도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기도 하다.다른 점은 배제하고, 좋은 점과 같은 점을 찾아 협력하면 된다.기업들이 이렇게 활발히 제휴하고 협력하다보면 아시아도 유럽연합(EU) 국가들 처럼 서로의 차이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소니의 어제와 오늘
-소니 회장 재임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컨버전스)에 주력했는데.
“융합이라고 표현하는 건 적절치 않다.융합이 아니라 첨가한 것이다.소니는 기본적으로 소리(오디오)와 영상(비디오) 기기에 특화된 회사였다.내가 회장으로 있을 때 이 분야에 컨텐츠와 IT(정보기술)를 첨가한 것이다.TV 휴대기기 등에 IT기술을 접목하고 영상 음악 등의 컨텐츠를 얹은 셈이다.시대 흐름과 소비자의 수요에 맞춘 것이었다.”
-소니의 지난 2003년 실적 악화 쇼크에 대해선 지금도 원인 분석이 분분하다.어떻게 평가하나.
“소니의 경영실적에 대해선 가급적 얘기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이제 소니를 은퇴했는데, 내가 그런 얘기를 하면 현재 경영진에게 부담이 된다.원래 졸업한 학교는 뒤돌아 보지 않는 법이다.”
-그래도 당시 소니 회장이었는데….
“사람 몸에도 바이오 리듬이 있지 않나.기업에도 그런 리듬과 등락이 있다.(소니의 2003년 위기도) 그렇게 이해해 달라.”
-소니의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비자를 즐겁게 하는 걸 만드는 것이다.그게 한국의 삼성과는 다른 점이다.내가 경영할 때 영화 음악 등 컨텐츠 사업에 뛰어든 것도 그 때문이다.어중간한 것엔 흥미가 없었다.철저히 소비자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회사가 소니다.”

◆삼성과 한국 경제 조언
-한국의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가격 하락과 원화강세로 고전하고 있다.삼성의 경쟁력과 향후 전망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1995년 소니 사장에 취임한 이후부터 삼성에 대한 정보를 많이 들어왔다.개인적으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나의 와세다대학 후배이지 않나.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에서 크게 성공한 회사다.근데 이 3가지가 모두 변화가 매우 심한 분야라는 게 문제다.10년뒤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바뀔지, 휴대폰이 어떻게 진화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삼성은 이 회장이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면서 많은 걸 바꿔왔다.지난 15년간 변혁을 해온 셈이다.그게 지금까지 삼성의 성공 밑거름이 됐다.이를 바탕으로 삼성의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이제 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삼성 뿐아니라 한국 경제는 일본은 못 따라 잡으면서 중국의 추격을 받는 소위 ‘샌드위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처방은 없겠나.
“결국 기업간 경쟁의 문제이지만 국가 산업정책도 중요하다.과거 한국은 정부와 기업이 똘똘 뭉친 ‘한국 주식회사’로 성공했었다.일본이 ‘일본 주식회사’로 성공했듯이 말이다.그러나 지금 한국에선 정부와 대기업이 협력하면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반발하지 않는가.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한국은 미국적인 소비주도형 국가로 너무 빨리 변한게 아닌가 생각된다.신용카드 산업이 일본 보다 훨씬 번성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핵심은 정부와 기업, 국민이 조화(하모니)를 이뤄야 국가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한국이 산업의 성숙단계를 지나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을지 여부도 여기에 달려 있다.”

◆일본 경제 & 일본식 경영
-일본 경제가 ‘10년 불황’에도 성장잠재력을 잃지 않고,회복하게 된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크게 두가지 요인이다.우선 세계 경제가 회복된 것이다.지금 미국 유럽 등의 경제가 모두 좋다.중동도 오일머니로 돈을 많이 벌고 있다.중국 인도 러시아 등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그러다 보니 세계적인 수요가 늘어난 게 일본 경제 회복의 배경이다.일본의 상품, 일본의 기술을 찾는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두번째는 일본 기업들이 그동안 성실하게 구조조정을 한 결과다.불황기 동안 과잉설비 등을 구조조정한 게 일단락되면서 다시 성장 엔진이 가동됐다.”
-일본에서도 주주 중심주의로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는 미국식 경영과 종신고용 등 장기적 시야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일본식 경영에 대한 논란이 있다.최근엔 두 방식의 장점을 접목한 ‘신(新)일본식 경영’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는 데.
“일본식 경영이다, 미국식 경영이다, 이런 말은 신문에서 화제를 삼으려고 만들어낸 말들이다.특정한 나라의 일정한 경영방식은 없다고 본다.문제는 ‘코포레이트 거버런스(Coporate governance· 기업 지배 구조)’인데,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기업의 지배구조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 회사의 역사와 특성 등에 연결돼 있다.정답이 있을 수 없다.소니를 보자.소니는 글로벌 기업이다.거래할 때 결제 통화도 미국 달러, 유로, 영국 파운드, 엔화 등 다양하다.이런 회사가 결제통화가 하나인 회사와 지배구조가 달라야 하는 건 당연하다.소니는 그래서 지배구조가 글로벌식이다.
 그런데도 어느 나라식 경영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건 사안을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다.미국식 경영이라고 하지만 제너럴모터스(GM)와 구글의 지배구조가 다르다.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삼성과 LG의 지배구조가 똑같다고 할 수 있나.”

◆컨설팅 시작해 보니
-작년 9월 직접 창업한 컨설팅회사인 퀀텀리프를 소개해 달라.
“퀀텀리프(Quantum Leaps)란 말은 양자역학에서 ‘비(非) 연속의 도약’을 뜻한다.일본과 아시아를 무대로 새로운 산업과 비즈니스를 창출해 도약하려는 기업을 돕겠다는 의미다.이를 위해 기존의 경험 많은 경영자와 벤처기업가를 짝지어 주고, 기술과 금융자본을 맺어주고, 일본과 아시아를 연결해 주는 일들을 하고 있다.”
-소니와 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에서 작은 컨설팅회사의 경영자가 됐는데, 가장 크게 달라진 것 무엇인가.
“소니가 크다고 하지만 국가 보다는 작지 않은가.(웃음) 퀀텀리프의 현재 직원은 10여명이다.소니(직원수 약 16만명)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하지만 작은 회사를 경영하다 보니 좋은 점도 있다.소니를 경영할 땐 내 시간의 100%를 쏟아 부어야 하다 보니 소니 이외의 것은 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소니를 나와선 세상을 좀더 넓게 보게 됐다.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간 협력이나, 아시아 기업간 협력 등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또 소니를 제3자 입장에서 바라 볼수 있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데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퀀텀리프를 설립한 목적중 하나도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요즘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서 강연도 많이 한다.근데 아쉬운 건 실리콘밸리에 인도와 중국의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탈은 커뮤니티를 형성해 모이는 데, 한국 벤처기업이나 일본 벤처기업은 그런 게 약하다는 것이다.너무 기업인 수가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커뮤니티가 있다면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좋을 것 같은데….”

◆기업 성공과 경영자
-벤처기업이 소니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소니가 창업한 건 1946년이다.당시엔 모든 게 아날로그 기술이었다.기술 변화가 빠르지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기술 변화의 속도가 아날로그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그런 빠른 변화에 어떻게 잘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다.시대 변화에 맞춰 완전히 변신한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말하자만 곤충이 번데기로부터 허물을 벗어 완전히 탈바꿈하는 것 같은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곤충의 변태)를 기업도 해야 한다.소니도 그동안 오디오·비디오 기기 회사에서 디지털 회사로 한번 변신했고, 컨텐츠 회사로 또 탈바꿈했다.이런 변혁은 국가 경제에서도 필요하다.”
-기업 경영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나.
“기업 경영자에게는 3대 요소가 필수적이다.첫번째는 비전과 전략제시다.두번째는 그 비전과 전략을 확실히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세번째는 회사내 인재를 잘 키워 그같은 실행이 지속되도록 만드는 것이다.이 3가지 요소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된다.비전-실행-인재가 트라이앵글로 조화를 이뤄야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

◆CEO의 제 2인생
-내년이면 고희(古稀)인데, 앞으로 언제까지 일 할 계획인가.
“일단 퀀텀리프라는 컨설팅회사를 만들었으니, 이 회사와 사원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다.내가 없어도 일본 경제와 세계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게 꿈이다.기업 CEO의 제2 인생에 대한 롤모델(role model)을 만들고도 싶다.
얼마전에 한 사원으로 부터 책 선물을 받았는데, 책 제목이 ‘95살까지 일하는 법’이더라.그 때까지 일하려면 나는 아직도 25년 남았다.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할 것이다.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88) 전 일본 총리도 지금 나이가 90세에 가깝지만 대외연설도 하며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나.”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