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유일한 한국학교인 동경학국학교에서 ‘한국어를 중시할 것이냐, 일본어를 중시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학교측과 이사회가 내분을 겪고 있다.이는 일어 중심의 일본교육과정을 요구하는 재일교포측과 한국교육과정을 선호하는 주재원 학부모간 대립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재일교포들로 구성된 이 학교 이사회의 손성조 이사장(74)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교육과정 확대를 반대하는 윤기숙 교장을 파면 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그러나 한국 정부에서 파견된 윤 교장은 “이사회가 교장 임면권을 갖고 있지 않다”며 사임을 거부했다.
 대립은 재일교포 자녀와 주재원 자녀가 섞여 다니는 한국학교에서 어떤 교육과정에 중점을 둘 것이냐에서 비롯됐다.동경한국학교는 재일교포 자녀 교육기관으로 한국 정부 지원을 받아 1954년 설립됐다.당시엔 학생들의 일본 사회 정착을 돕기위해 일본어 중심으로 가르쳤다.그러나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상사 주재원 자녀들이 많이 입학하면서 한국 교육과정 중심으로 바뀌었다.초등반부터 고교반까지 있는 이 학교의 현재 재학생 980여명중 주재원 자녀가 54%이고,나머지 46%가 재일교포 자녀다.
 손 이사장 등은 “당초 설립 취지를 살려 재일교포 자녀를 위한 일본 교육과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반면 주재원 자녀 학부모들이 주축인 사친회(PTA)와 학교장 등은 “상당수 재일교포 자녀들도 한국 교육과정을 원한다”며 거부하고 있다.이같은 대립으로 지난 2월초 이 학교 졸업식장에선 이사진과 사친회 간부간 말싸움이 벌어져 졸업식이 중단되기도 했다.
 동경한국학교에 재정지원을 하며 감독권을 갖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는 재일교포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해 사태 개입에 조심스러워하고 있다.관계자는 “이사회와 사친회 등 이해관계자들이 원만하게 사태를 수습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일본 요코하마에서 우동가게를 하는 우에다 후루타니(61)씨는 최근 사회보험청에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기록을 확인하고 기가 찼다.1980년부터 1985년까지 5년간 보험료를 한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1961년 국민연금에 가입한 이후 한달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 왔던 그다.창구직원에게 따졌지만 소용이 없었다.“납부 영수증을 가져오면 구제된다”는 말엔 화가 치밀어 올랐다.‘20여년전 보험료 영수증을 여태까지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요즘 일본 국민들은 정부의 연금기록 관리부실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국민연금과 후생연금(직장인 연금)의 과거 납부기록중 ‘누가 낸 돈인지’ 알 수 없는 게 5000만건에 달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져서다.사회보험청이 서류로 돼 있던 연금 납부기록을 1980년대 컴퓨터에 입력하면서 이름이나 생년월일을 잘못 올려 주인없는 보험료로 공중에 떠 버린 게 그 만큼이란 뜻이다.
 5000만건의 납부기록이 ‘공중에 떴다’는 건 그 돈을 납부한 사람들 입장에선 ‘미납(未納)’처리됐다는 것이고, 나중에 그만큼 연금을 덜 받게 된다는 얘기다.정부만 믿고 노후를 위해 수십년간 성실히 연금보험료를 내온 사람들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베 내각은 앞으로 1년간 사회보험청의 콜센터를 하루 24시간 운영해 공중에 뜬 보험료의 주인을 찾아주겠다며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들끓는 국민 감정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일본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정부가 연금기록 오류를 20년 이상 방치했다는 점이다.우에다 씨는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를 할 수도 있다.그러나 정부가 그런 실수를 빤히 알면서도 서둘러 바로 잡지 않은 데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런 배신감은 연금 불신, 정부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아베 내각 지지율은 연금사태 이후 사상 최저로 떨어져 정권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을 정도다.
 일본의 연금 사태를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다음 세대에 재정고갈이 뻔하고,지금도 매일 800억원씩 적자를 내고 있지만 국민연금 개혁법안은 정부 의지 부족이든 정치권 태만이든 간에 아직도 국회 서류함에서 잠자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마쓰오카 도시카스 농림수산상이 정치자금 문제로 자살한 지난 5월28일 오후. 급보를 받고 시신이 안치된 도쿄시내 게이오대 부속 병원을 찾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관저로 돌아온 아베 총리는 “임명권자로서 각료의 행동에 책임을 느낀다”며 매우 침통해 했다.
 마쓰오카 농수상의 자살은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지난 1월 공개된 정치자금 내역서에 마쓰오카 농수상이 공짜로 쓰는 의원회관 사무실에 수천만엔의 임대료와 3000만엔 이상의 전기료 수도료 등 사무실 유지비를 계상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를 감싼 건 아베 총리였다.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마쓰오카 농수상의 정치자금이 논란이 될 때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적극 옹호했다.
 마쓰오카 농수상은 고이즈미 전 총리 시절부터 ‘급진 개혁’에 반기를 들며 ‘아베 총리 만들기’에 나섰던 측근 이었다. 아베 총리로서는 그를 끝까지 보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 사이에선 농수상의 자살 이후 동정론 보다는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도록그를 감싸고 돈 아베총리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엔 공적연금 보험료 납부 기록 5천여만 건이 유실된 사건까지 밝혀져 총리의 인기는곤두박질 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5월26~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내각 지지율은 32%로 추락했다. 지난달 조사보다 11%포인트나 떨어져 작년 9월 정권 출범 후 최저치 였다.이 상태대로 참의원 선거를 치뤘다가는 정권이 붕괴될 것이란 위기감이 자민당내 퍼지고 있을 정도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곤두박질 친 건 연금 관리 부실과 각료들의 부적절한 정치자금 문제로 정치 불신이 깊어진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아베 총리는 취임 후 ‘전후(戰後) 체제의 탈피’을 내걸고 평화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재해석 등 이데올로기적인 ‘큰 정치’로 승부를 걸려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내가 낸 연금 보험료와 세금이 어떻게 관리되고 쓰이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생활과 직결된 ‘작은 정치’에 실패해 ‘큰 정치’마저 그르칠 위기에 처한 아베총리의 행보가 궁금하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