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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다리의 지명 유래(由來)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라는 곳에 옛적부터 학다리 라고 불리는 들판과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배를 매여 놓았던 닻배기 (지금의 달배기)와 조세를 받았다는 동창(東倉)이라는 동명(洞名)과 동창 뒤에 있는 창터산이라는 산명 (山名)이 있다.
그리고 어선이 떠날 때 고기의 풍획 (豐擭) 을 빌기 위하여 제당에서 제사를 지냈던 당코배기라는 지명(地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들판이 바다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들판에는 조수의 간만으로 인하여 물이 빠지면 많은 개울에 널려 있는 조개류를 주워 먹기 위하여 많은 학(鶴)들이 모여 들었다.
물이 들면 망망대해가 되어 어선의 왕래가 빈번하였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이곳에 여씨 노인 (呂氏老人)부부가 살았는데 어부 생활로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여 오던 중 슬하에 어린 딸 효순(孝順)이 하나를 남기고 부인이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여씨 노인은 그날부터 어린 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조개도 줍고 고기도 잡고 하여 늙은 아버지와 어린 딸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갔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동안에 효순이는 점점 자라서 밥도 짓고 빨래도 할 줄 알고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고기 잡는 일을 도왔다.
늙은 아버지의 잠자리를 보살피는 일이며, 조석 식사를 공대하는 일이며 이웃에 사는 늙고 외로운 할머니의 일손을 도와 드리기도 했다.
모든 범절이 노숙한 사람 못지않게 잘하니 여씨 노인은 시름도 잊고 외로움을 달래가면서 그런 대로 오붓한 생활을 유지하였다. 원근 동리 사람들은 하늘이 보내신 드문 효녀(孝女)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효순이가 감기가 들었는지 몸의 열이 불덩이 같고 끙끙 앓다가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다. 여씨 노인은 걱정스런 몸골로 효순이 약을 구하러 간다하고 집을 나갔다.
노인은 2~3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효순이는 몸에 열이 점점 식어가고 맑은 정신이 되돌아오자 아버지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효순이는 답답하여 아버지가 평소에 들리던 주막집을 찾아가서 “우리 아버지께서 혹시 댁에 들리지 아니하셨습니까?” 하고 주막집 주모에게 물었다.
주모는 의아한 얼굴로 “그제 아버지가 네 약을 구하러 나왔다고 하시면서 약주 두 잔을 드시고 나가가셨단다.” 고 대답하였다.
효순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벌떡 일어서서 아버지가 나가셨다는 개웅갓을 타고 내려갔다. 한참 내려가다 보니 아버지가 즐겨 사용하던 대바구니와 짚신 한 짝이 뻘밭에 뒹굴고 있었다. 효순이는 “아버지”하고 소리치면서 바구니와 신짝을 안고 통곡하다가 까무러쳐졌다.

그때 조수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하여 불쌍한 효순이의 생명은 위기일발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때마침 난데없는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학들에게 효순이의 구출을 명하였다.
그러자 수 백 쌍의 학 떼가 날아와서 혹은 날개로 혹은 두 발로 까무러친 효순이를 끼고 언덕위에 옮겨 놓았다.
백발노인이 운무중에 쌓여서 “학들아 너희들이 살 곳은 여기서 십리(十里)쯤 떨어진 곳과 이십리(二十里)쯤 떨어진 곳에 있으니, 그 곳에 가서 서식(棲息)하라.”하고 낭랑한 목소리와 은은한 옥소(玉簫)소리만 남기고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후세 사람들의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학이 다리(橋) 모양으로 늘어서 효순이를 구하였다 하여 학다리 라고 부르고 두 줄로 늘어섰다고 하여 “쌍다리”라고도 한다.
여기서 십리쯤 떨어진 곳은 함평 향교이고, 이십리쯤 떨어진 곳은 무안 상동이라고 한다. 향교와 상동에는 지금도 수 백쌍의 학(鶴)이 서식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고 신선이 내려온 곳을 신선동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학다리엔 학이 없다.
이 외에도 이곳은 고려 태조 왕건이 활약하며 웅지를 키웠던 곳으로 태조께서 후백제가 왜구 일본과 국교를 맺음을 막기 위하여 애쓰던 곳이요, 그 후예들이 고려를 세움에 필요한 역량과 포부를 다졌던 곳이기도 한다.

*출처: 학다리고 홈피
중학교 시절부터 많이 듣던 이야기를 잘 정리 되어 있어 퍼온 글입니다.
특히 김영송 선생님에게서 귀가 닳도록 듣던 이야기와
달배기 동창 창터산 쌍다리 등 낯익은 지명들이 옛 생각 나게 하네요.
그런데 원출처가 없어 원작은 누구인지 모릅니다.
매끄럽지 않는 부분은 약간의 손질과 첨삭은 했지만 원문 그대로 옮긴 것임을 밝힙니다.

*사진은 안양천의 왜가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