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또 폭탄주를 찾았다.카자흐스탄을 방문해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사우나회동을 가진 자리서다.

 

이 대통령이 먼저 폭탄주를 제안했다고 한다.일종의 폭탄주 정상외교다. 이 대통령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 사이에 폭탄주를 마신다”며 직접 보드카 폭탄주를 만들었다.

 

이어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두번째 잔으로 화답했고 이 대통령이 마지막 세잔째를 만들었다.이동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너와나는 하나의 의미’라고 설명하며 러브샷을 했다”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폭탄주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대통령에 당선된 뒤 청와대 행사에서 몇번 있었다.지난해말 청와대에서 전국 16개 시도지사와 함께한 만찬자리서도 폭탄주가 등장했다.

 

 지역균형 발전대책과 관련해 시도지사의 의견을 수렴키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먼저 폭탄주를 주문했다고 한다.

 

당초 이 대통령과 시도지사들의 테이블엔 폭탄주와는 무관한 도수가 약한 술이 준비됐으나 건배를 할 차례가 되자 이 대통령이 즉석에서 폭탄주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폭탄주가 몇순배 돌았다고 한다.

 

 총선직후 당선자들을 전원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한 자리서도 소주 폭탄주가 돌았다.소주잔이 여러순배 돌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고 급기야 일부 당선자들이 이 대통령이 자리한 헤드테이블로 갔다.

 

누군가가 이 대통령에게 폭탄주를 건네면서 러브샷을 제의했고 이를 시작으로 여러 당선자가 이 대통령에게 폭탄주를 권했다.

 

 이 대통령의 주량은 꽤 강한 것으로 알려진다.“현대건설 재직 시절엔 남들이 마시는 만큼 마셨다”는 게 측근들 전언이다.대통령이 된 뒤에도 중요한 자리서 폭탄주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에서 갑자기 찾은 폭탄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단순한 폭탄주 외교의 성격만 있는 것이었을까.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건 이 대통령이 요즘 처한 입장이 녹록지 않아서다.

 

 이 대통령은 최근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쇠고기 협상 파동에 촛불시위 등으로 아까운 임기 초반을 보냈던 이 대통령이 모처럼 국정운영에 탄력을 붙이는 시점에 선거참패라는 악재가 돌발하면서 국정동력에 힘이 많이 빠진 상태다.

 

 당장 한나라당은 선거참패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수습책을 놓고 심각한 갈등양상을 보이고 있다.특히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신뢰상실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당에서 제기된 친박포용론과 국정 독주 자제론 등은 한결같이 이 대통령을 겨냥한 것들이다.뽀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해법을 내놓아야 하는 난감한 처지다.

 

 이 대통령은 자원외교를 위해 중앙아시아 2개국 순방을 했지만 마음은 편할수 없는 상황이었다.어쩌면 순방중에도 복잡한 국내 정치상황이 자꾸 떠올랐을수도 있다.

 

개혁의 성패를 올 한해에 다 걸고 있는 이 대통령으로선 여권의 갈등이 계속될 경우 마지막 시간을 허비할수도 있다는 점에서다.폭탄주에는 그런 고민이 담겨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당 위기의 본질을 이 말 한마디로 압축했다.박 전 대표는 미국에서 귀국하기 직전에 기자들과 만나 “믿을 수 있으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면서 “신뢰가 없으면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재보선 참패에 따른 위기 수습을 위한 엄청난 소모적 논쟁과 친이친박간 갈등은 바로 신뢰부족에서 비롯됐음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애당초 친이(이명박 대통령)가 친박(박근혜 전 대표)과의 신뢰를 쌓는 노력을 했다면 이같은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친이와 친박간에 신뢰가 쌓이지 않는한 당내에서 추진하고 있는 어떤 수습책도 의미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서로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고위 당직을 하나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친이측에서 추진했던 친박계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을 반대한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추진했다는 단순한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친박원내대표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본질을 지적한 것이다.

 

 당내에서 부상하고 있는 조기 전당대회 개최론은 이론상으로는 본질적인 문제로 보이지만 실제론 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가 경선에 나간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박 전 대표가 대표 경선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대선까진 아직 많은 시간이 남은 마당에 굳이 박 전 대표가 당의 전면에 나서 상처를 입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게 친박측 생각이다.

 

 박 전 대표 없는 전당대회는 하나마나한 반쪽자리 전대가 될 게 뻔하다.만에 하나 박 전 대표가 경선에 나선다면 친이로선 또다른 고민거리다.

 

밀어서 박 전 대표가 당선된다면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고 거꾸로 박 전대표의 당선을 막기위해 집단적으로 뛴다면 친이 친박계간의 치유불능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결국 어느쪽도 반기기 힘든게 조기 전대다. 
 
 문제는 신뢰인데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간의 불신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당내 후보 경선에서 BBK 도곡동 땅 의혹 등을 둘러싼 감정싸움이 도를 넘었고 경선후에는 총선 공천 갈등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형국이다.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몇차례 회동은 화해는 커녕 감정의 골을 더 깊게했다.

 

 총선때 친박측은 40여명의 친박 공천희망자 명단을 친이측에 건넸으나 공천과정에서 이들중 상당수가 탈락하면서 신뢰는 완전히 금이 갔다.지난번 경주 공천에서도 당선이 유력한 친박계 후보 대신 친이계를 공천하면서 친박측에서는 더이상 친이측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박 전 대표의 신뢰 얘기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신뢰의 문제는 뭔가.해답은 없는 것일까.있다.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다.당내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차기 주자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사실상 박 전 대표를 미래권력으로서 수용하는 것이다.

 

 현재 권력인 이 대통령으로선 쉽지 않은 일이다.사실상 미래권력으로 박 전대표를 인정하는 건 자칫 자신의 레임덕을 앞당길 수도 있다.안그래도 박 전 대표에 힘이 실리는 상황에서 사실상 박 전 대표를 차기 주자로 굳혀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두 사람이 결국 화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현재권력이 임기초반에 미래권력을 인정하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박 전 대표 입장에선 차기가 담보되지 않는한 친이의 흔들기가 계속될 거라는 확신같은 걸 갖고 있다.

 

 신뢰의 문제는 결국 차기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차기를 노리는 박 전 대표로선 내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확고한 자기 세력을 구축하고 싶을 것이다.그런데 지금과 같은 신뢰부재 상황에선 친이가 친박계를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킬 거라는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그렇게 되면 대선가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이 대통령이 박 전대표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한 해결될 수 없다는 얘기다.“박 전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가 돼도 좋다”는 전제가 마련되지 않는한 해소되기 어렵다.양측간에 팽행선이 그어질 개연성이 높은 이유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가 제시한 ‘친박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를 거부했다.외형상 거부 이유는 경선을 통해 원내대표를 선출토록 한 당헌 당규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미 친이계 안상수 정의화 황우여 의원 등이 출마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이들을 주저앉히고 인위적으로 김무성 의원을 추대하는 게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박 전대표는 원칙론자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의 이런 거부 논리를 곳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원칙을 내세워 김무성 카드를 사실상 무산시킨 거라는 게 정설이다.박 전 대표가 강연을 30여분 앞두고 돌연 이런 입장을 표명한 이유는 뭘까.

 

 박 전 대표의 발언을 전한 이정현 의원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알려진 게 아니냐”며 “국정운영과 당 운영을 잘해야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본질적으로 4.29선거참패 등 여권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국정운영의 잘못에 있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만큼 김무성 카드는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여기에는 여권 위기를 초래한 책임은 이 대통령과 당의 주도세력인 친이계에 있다는 시각이 자리하고 있다.

 

 친박 인사에 고위직 하나 주는 눈가리고 아옹식 임시방편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이 대통령과 친이계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친박에 자리하나 나눠주는 식으로 전면적인 쇄신을 피해가려해선 안된다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며칠전 초선의원들의 과감한 쇄신 주장에 “좋은 안이 나왔으니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초선들이 제기한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 지양과 밀실 공천 폐지,코드인사 탈피와 능력위주의 인선 등 전면적인 쇄신을 이뤄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아울러 박 전대표의 김무성 카드 거부에는 신뢰관계 회복없는 당 화합은 임시봉합에 불과하다는 인식도 담겨있는 것 같다.신뢰의 핵심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관계회복이다.

 

두 사람은 당내 경선에서 혈투를 벌인 뒤 점점 멀어져만 갔다.몇차례 화해를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관계는 더 악화됐다.두 사람사이의 신뢰는 회복하기 힘든 상황까지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김무성 카드의 수용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다.친박을 포용했다는 친이측의 명분만 살려줄 뿐 친박입장에선 득될 게 없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한 것 같다.

 

 어차피 미디어법 등 6월 여야간 정면승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마스크법 통신비밀보호법 미디어법 등은 여야 합의가 쉽지않다.강행처리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

 

친박계 원내대표가 국회상황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할 경우 자칫 친박계 예상되는 ‘날치기 처리’의 책임을 떠 안을 수 있다.원칙주의자인 박 전 대표로선 정치적 부담이다.

 

 물론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의전적 결례도 박 전 대표를 자극했다는 지적도 나온다.청와대 정무팀은 김무성 카드를 당청회동에 올리기 전에 적어도 친박계의 리더인 박 전 대표의 양해를 구했어야 했지만 이게 생략됐다.박 전대표가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됐다면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친박카드 자체를 거부한 게 아니라 김무성 카드였기에 거부했다는 주장도 나온다.김 의원은 친박계 중진이지만 공격적인 스타일이 신중한 박 전대표와는 잘 맞지 않는다.두사람 사이가 멀어졌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일각에서는 헛발질하는 여권내 주도세력과 대립각을 세우고 가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여러가지로 고전하고 있는 친이 진영의 국정운영에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의지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내민 손을 뿌리친데 따른 정치적 비판과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김무성 카드를 거부한 데는 이런 전략적 고려가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이다.

 

 친이측은 “친이와 대립각을 세우고 가겠다는 게 박 전 대표의 전략이라면 친이진영이 무엇을 제시해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이 대통령과 박 전대표의 화해는 사실상 물건너가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섣불리 갈라 설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탈당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없다.밉든 곱든 당내에서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엔 친박내 이견이 없는 것 같다.

 

 한나라당은 두나라당이 점점 고착화되는 형국이다.내년 지방선거가 고비다.원할한 국정운영을 위해 지지세력이 필요한 이 대통령과 대선을 앞둔 세력화가 필요한 박 전 대표 모두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양측이 정면 대결로 치달을 경우 당이 쪼개지는 상황도 배제할수는 없다. 

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