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충격에 빠졌다.지난 5년여 우위를 보여온 지지율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일거에 역전돼서다.노 전 대통령 생전에 탄핵역풍으로 추풍낙엽이 됐던 한나라당이 노 전 대통령이 죽은 뒤 또다시 노풍에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민심이 워낙 안좋다보니 조각수준의 개각과 당 대표 퇴진론이 불거진다.당 쇄신특별위원회(위원장 원희룡)는 당청 의 대대적 쇄신과 함께 박희태 대표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중 조각수준의 개각은 별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청와대가 난색을 표하고 있어서다.청와대는 “지금은 단합하고 사태를 수습할때이지 인적 쇄신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러니 남는 건 당 대표의 거취다.당에서 그마나 주도적으로 던질 수 있는 카드는 당 대표 정도다.문제는 당 대표가 사퇴한다고 사태가 호전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건 열린우리당 시절 이미 입증됐다.열린우리당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열린우리당 시절 당 대표는 파리 목숨이었다.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열린우리당은 재보선에서 연전연패했다.그렇게 쌓인게 0대 40의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선거에서 참패할때마다 당 인사들이 들고나온 게 대폭 개각과 당 대표 퇴진이었다.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양상이었다.당이 요구한다고 대통령이 들어줄리 만무다.결국 대표(열린우리당 명칭은 당 의장)의 사퇴로 늘 막을 내렸다.

 

 열린우리당 초기 대표의 평균 임기는 100여일정도에 불과했다.박근혜 전 대표가 2년 임기를 채우는 동안 열린우리당의 대표는 여섯번 바뀌었다.박 전대표가 사실상 열린우리당 대표 7명을 상대했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이 쉬지않고 대표를 바꿨지만 등 돌린 민심은 돌아오지 않았다.10%대의 지지율은 끝없이 이어졌다.대표가 바뀔때마다 개혁과 쇄신 차원에서 선심성 정책을 수없이 쏟아내도 민심은 콘크리트 처럼 끄떡도 하지 않았다.

 

 왜 일까.근본적인 원인을 제처놓은 채 엉뚱한 처방만 해대니 병이 고쳐질리 만무였다.당시 민심이반의 원인 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컸다.노 전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말과 회전문식 코드인사가 문제였다.애당초 대표 교체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 자체가 아니었다.

 

 지금의 여권은 다를까.굴러가는 방향은 대동소이하다.당은 전면적인 쇄신을 요구하고 청와대는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다.그러니 귀착점은 당 대표의 거취로 모아진다.당이라도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현 여권에 대한 민심이반도 일정부분 이명박 대통령과 연결돼있다.한나라당에서조차 “오만한 국정운영 방식을 바꾸라”고 목소리를 내는 형국이다.당 대표만 바꾸는 것으로 현 사태가 수습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한가지 해법이 있긴하다.바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진정성을 갖고 화해하는 것이다.좋은 방안이지만 이는 청와대가 난색을 표하고 있는 대폭적인 개각 보다 더 어려울 거 라는데 별 이견이 없다.

 

 양측의 험악한 관계상 두 사람이 손 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거꾸로 두 사람이 손 잡지 않는한 여권이 어떤 방안을 내놓아도 멱히지 않을 개연성이 다분하다.보수세력이 분열된 상황에서 앞으로 치를 선거에서의 연전연패는 일찌감치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한나라당은 과거 백년 기치로 출발했다 3년9개월여만에 간판을 내린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대적인 쇄신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위기감의 표현이다.

 

 얼마전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은 그나마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을 절호의 찬스였지만 친이계의 전략적 실착으로 물거품이 됐다.친이계는 하루 웃고 일년을 후회할 결정적인 헛발질을 한 셈이다.한지붕 두 가족의 한나라당이 점점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다.

 
 조문정국을 맞아 민주당의 기세가 거침이 없다.지지율도 한나라당에 앞섰다고 한다.거의 5년만이다.상승세를 몰아 청와대 여권을 대대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검찰총장 등 검찰 핵심라인의 파면 등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6월국회를 사실상 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전까지만해도 민주당의 지지율은 10%초반대에 머물러 있었다.

 

지지율 정체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조문열기가 전국을 뒤덮으면서 자연스레 반 정부 정서로 확산됐고 이게 민주당 지지율 상승의 요체가 됐다. 
 
 현 국면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안 때를 연상케한다.당시 민주당의 분당을 통해 탄생한 열린우리당(현 민주당)은 총선을 불과 한달여 앞두고 의석 50석을 얻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반전의 장본인은 노 전 대통령이었다.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과 결별한 민주당이 노 전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키면서 분위기는 돌변했다.탄핵역풍이 거세지면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의석을 거의 줍다시피했다.

 

 그걸로 끝이었다.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민주당의 지지율은 땅바닥으로 추락했고 더이상 오르지 않았다. 5년을 10%대에서 머물렀다.

 

집권여당의 프리미엄을 총동원해 각종 선심성 정책을 쏟아냈으나 돌아선 민심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백약이 무효였다.

 

 그래서 들고나온 게 노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였다.열린우리당은 노 전 대통령의 탈당을 은근히 압박하기 시작했다.지지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2007년 2월초 의원 20여명이 먼저 탈당했다.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압력은 더 거세졌다.

 

결국 2월말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떠났다.별로 좋지 않은 기억속에 결별한 것이다.그럼에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회복되지 못하자 신당을 창당키로 하고 열린우리당의 간판을 내렸다.100년 정당 기치의 정당이 3년9개월여만에 만을 닫은 것이다.

 

 이후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후보들은 노 전 대통령과 자주 충돌했다.노 전 대통령이 정동영 손학규 두 유력주자를 구태정치라고 공격했고 이들은 노 전 대통령에 역공을 가하는 등 불편한 관계가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후에도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과는 일정한 거리를 뒀다.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민주당은 편파수사라는 주장을 폈지만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노 전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일정한 거리를 둬 온 게 사실이다.한 최고위원은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자살사건 부분에 대해서도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런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보이고 있는 행태는 조금은 지나치다는 얘기도 나온다.“노 전 대통령의 탈당을 압박하고 차별화에 나섰던 민주당이 조문정국이 도래하자 갑자기 상주를 자처하는 건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비판인 것이다.

 

 민주당 홈페이지에도 비판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한 당원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 궁지에 몰릴때,검찰조사를 받으며 망신을 당할때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노심초사했던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적군이지 아군은 아니었다”는 자유게시판 글을 인용하며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않다”고 했다.

 

 일부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신의가 없고 비겁하다”“정권 비판에 앞서 반성부터 해야 한다”는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지지율이 떨어질 때 멀리 하려고 했던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조문열기가 전국적으로 달아오르자 노 전 대통령과의 화해와 정책 계승을 들고 나온 건 그래서 어색하다.정략적인 냄새가 난다. 

 

 한나라당 친이계가 오랜만에 웃었다.

 자신들이 민 안상수 의원이 친박이 지원한 조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원내대표가 돼서다.일부 의원은 "모처럼 박근혜 전 대표에 승리를 거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일각에서는 표정관리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럴만도 하다. 친박계를 포용한다며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를 내밀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노우’ 라는 한마디에 무안을 당했던 게 바로 얼마전이다.

 

그간 당의 최대 주주이면서도 각종 현안에 대해 힘 한번 못써보고 끌려다니면서 모래알이라는 당내외의 비아냥을 들어온 터다.그러니 모처럼 결집을 통해 친이계의 존재감을 과시한데 고무될만도 하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친이계의 승리가 맞다.친이 후보표는 전체 158표중 95표였다.친박 후보조(62표)에 비해 33표나 많았다.170석중 친이계가 100여명,친박계가 60여명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확히 당내 친이,친박 의원수대로 나온 셈이다.

 

철저히 계파대결의 산물이었다는 얘기다.계파 앞에서는 그간 화합을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해왔던 중도파와 소장파의 목소리는 없었다.표대결에선 오로지 친이 친박만이 존재했다.

 

 한마디로 원내대표 경선은 친이와 친박이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자리였다.당장 친박계 내에선 "친이계와는 화합이 불가능하다"는 강경기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 "친이계끼리 잘 해보라"는 식의 냉소적인 반응이 팽배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친이와 친박의 관계는 경선전 보다 더 험악해졌다.친이계 일각의 포용론이 통할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정치적 관점에서 친이계의 일방적 승리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친이계가 단기적으로 얻은 것 보다는 앞으로 잃을 게 더 많다는 점에서다.

 

당장 미디어법과 금융지주사법 등 쟁점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6월 국회를 앞두고 있다.야당이 당운을 걸고 막겠다고 벼르는 상황에서 ‘당내당(60여명)’을 형성하고 있는 친박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이 뿐이 아니다.몇달 후면 적어도 5곳 이상에서 재보선 선거가 치러진다.이미 4월 선거에서 전패를 한 마당이다.지금 분위기라면 10월 재보선 승리도 장담하기 힘들다.친박계가 등짐을 지고 있는 한 악몽이 재연될 가능성이 적지않다.

 

더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는 여권엔 큰 정치적 부담이 아닐 수 없다.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역풍이 불 소지가 다분하다.재·보선에서 이미 나타난 민심 이반이 가속화할 수 있다.

 

 여러모로 여권이 하나로 똘똘 뭉쳐도 돌파하기가 쉽지않은 난국이다.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가 당내 화합을 도모할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할 이유다.

 

 키는 이 대통령이 쥐고 있다.경선 승자인 이 대통령과 패자인 박 전대표 사이의 불신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다.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와의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선 원할한 국정운영의 동력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한나라당이 쇄신책을 마련중이라는데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신뢰회복 보다 더 시급하고 절실한 쇄신책이 있을까.

 

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