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 김동욱 기자입니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자는 하루하루 역사를 쓰는 직업이라 매력이 더욱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가는 주제별로 역사관련 글들을 올립니다. 평소에 쓰는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어보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위와 풀의 역사라 부를수도 있을 것 같은데,그동안 읽은 역사서의 인상적인 내용들을 정리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설픈 글이지만 관심있는 독자님들과 의견 나누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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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락의 천국’에서 싹튼 이탈리아산 파멸의 씨앗- 사치 [테마별 ]
사치

 

사치는 정말로 망국의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불변의 요인일까?

 베네치아나 제노바, 밀라노, 피렌체 같은 16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쇠퇴원인으로 저명한 경제사가 킨들버거를 비롯해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무역 및 생산의 약화, 스페인과 포르투갈과의 경쟁에 따른 몰락, 해외시장 독점체제 붕괴, 목재 부족, 흉작, 기상악화 등)과 함께 ‘사치’라는 요소를 쇠퇴의 원인으로 빼놓지 않는다.

<'향락의 본산'이라는 베네치아의 이미지는 현대에 와서 마카오에서 재생되기도 했다.사진 오른쪽 아래는 마카오의 베네치아 호텔.>

 ‘사치’의 개념을 약간 느슨하게 넓게 잡고, 베네치아를 비롯한 쇠퇴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실상을 살펴보면 도시국가들이 망하는데 사치는 곳곳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베네치아의 경우,15세기 갤리선에서 노를 저을 노수를 확보하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몰타섬 같은 식민지 출신 사람들과 죄수들까지 동원해서 갤리선 근무를 시켜야 할 정도로 경제환경이 급변했다고 한다. 투르크에서 노예가 수입된 반면, 탁월한 항해 관련 기술을 지니고 있던 베네치아 뱃사람들은 보다 좋은 대우를 해주는 피사 등 다른 이탈리아 도시는 물론 멀리는 영국 함대로 까지 일자리를 옮겨갔다.

 이같은 상황에서 킨들버거 교수에 따르면 베네치아에서 이미 한자리를 차지한 기간 선원들은 흰 담비 가죽으로 안을 댄 금색 옷과 같은 정교한 제복을 입기 시작했고, 점점 부패해 갔다고 한다. 결국 선원의 임금은 1550년대부터 1590년대까지 두배로 올랐지만, 임금이 오른다고 선원난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금융산업과 그에 따른 부의 창출이 결과적으로 베네치아나 피렌체의 경제발전에 발목을 잡았다. 무역이란 힘들고 위험한 일보다는 안전한 돈놀이가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면서 굳이 모험적인 사업을 할 필요성이 적어진 것이다.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이 강해진 상인들은 해운업에서 자금을 빼서 주택과 점포, 공채로 돈을 돌렸다. 이 결과, 베네치아의 부자들은 세금 납부액을 상회하는 단기 자산운영 소득을 올렸다. 이미 15세기에 크레타섬에서 베네치아로 이주온 가족들의 삶에 대해 “그들중 많은 사람들은 큰 재산을 모았고, 지금은 베네치아에 살면서 이자로 살고 있다”는 기술이 심심찮게 등장한다고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과시성 소비는 필연적으로 등장했고, 한번 자리잡은 사치성 소비는 멈출줄을 몰랐다. 베네치아 등 상류층에겐 의상과 시골토지, 교외별장, 공공건물, 예술품 등이 모두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자 대상이 돼 버렸다.16세기 베네치아는 ‘향락의 본산(sede principalissima del piacere)’이라고 불렸고, 동시대의 헨츠너의 여행기(1617)에선 ‘향락의 천국’이라고 지칭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베네치아는 축제와 여자로 유명한 도시가 됐다.

 이같은 사치풍조는 사회 전반적인 기강에도 영향을 미쳐, 근무기강도 지배자의 관점에선 ‘헤이해’졌다.16세기 후반으로 가면 베네치아 경쟁력의 근간이던 조선산업에서 배를 만드는 인부들의 작업은 늦어졌고, 작업 수준도 형편없어졌다. 이전에는 나이든 인부들만 정시보다 30분 일찍 끝마치는 게 허용됐지만 1601년에는 젊은 인부들도 나이든 인부들과 함께 떠났다.

 여기에 이탈리아 배들은 항해기간이 얼마나 걸리든 매일매일 선원들에게 급료를 지불하는데,이 때문에 굳이 힘들고 위험하게 일할 필요없이 가급적 폭풍을 피하고 항구에 머무르는 일이 많았다. 한마디로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배들은 바람이 적게 불때만 항구를 나서기 시작했다. 반면 영국배들은 항해가 끝나야 보수를 받아 폭풍을 무릅쓰고 항해에 나섰고 이탈리아배들이 한번 항해할때 두번 항해를 마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돈맛을 본 은행가들과 금리생활자들은 국내 산업에는 거의 돈을 꾸어주지 않고 더욱더 큰 이익을 얻겠다는 한탕주의에 빠져 외국에 점점더 많은 돈을 빌려줬다. 하지만 이는 이탈리아 금융파산의 결정타로 돌아왔다. 베니스 등 이탈리아 경제는 1619-1622년의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결정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한뒤 회복되지 못했다.

 이보다 앞서 브리주와 리옹,런던에 거액을 무절제하게 대출한 메디치은행은 1494년 파산했고, 그 이전 14세기엔 바르디,페루치,알베르티 가문 등 유력 금융가문들이 잉글랜드 국왕 등 해외에 빌려준 거액의 자금이 떼이면서 파산의 운명을 맞이한 역사가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한채 또다시 반복된 것이다.

 400여년전 머나먼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얘기지만, 이들 스토리에 등장하는 주체와 연도만 바꾼다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게 없는 풍경이란 생각이 든다.또 요즘 내가 쓰는 기사들과 역사책속 많은 구절들이 너무나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데 나도 모르게 움찔하곤 한다.


<참고한 책>

찰스 P.킨들버거,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00, 주경철 옮김, 까치 2004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1997

John A. Marino, Early Modern Italy,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George Holmes(Edited), The Oxford Illustrated History of Italy,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베네치아, 사치, 경쟁력, 쇠퇴, 경제, 금융, 파산, 향락
posted at 2009/11/19 01:50:00 댓글(6)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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