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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중세를 상징하는 성에 꼭 등장하는 것이 뾰족한 첨탑이다. 레고 장난감에서부터 만화 신데렐라, 영화 드라큘라 등등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 중세 성채의 탑 내부에는 보통 나선형 계단이 있기 마련이다.

<방어용으로 건설된 중세,근세 성곽의 첨탑내부에 있는 나선형 계단은 보통 오른쪽 방향으로 감겨나갔다.이는 전통적으로 성곽방어자에 유리한 설계가 도입됐기 때문으로 해석됐는데.실상은 어땠을까?>
로마시대와 달리 규격이란 것을 찾기 힘든 제멋대로 중세의 건축물에서도 나선형 계단은 나름대로 규칙이 있었다고 한다.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겨나가는 게 표준형이라는 것. 귀 카도간 로더리에 따르면 중세 첨탑의 계단이 이처럼 오른쪽으로 감기게 된 것은 싸울 때 방어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계단이 오른쪽으로 감겨 올라가면 오른손잡이인 방어자가 위쪽에 있을 때 오른손을 쓰기가 유리한 데 반해 아래쪽에 있는 공격자는 오른손이 벽에 걸려 불리하다는 것.
여기에 나선형 계단의 발판 형태가 오늘날 아파트 계단에서 볼 수 있는 직사각형이 아니라 한쪽은 얇고 반대편은 두꺼운 일종의 부채꼴형인 쐐기형인 점도 방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오른손 잡이인 경우 발판의 면적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발 디딤이 바깥쪽인 왼쪽으로 쏠리면서 오른쪽에 오른팔을 휘두르기에 유리한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같은 설명은 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바로 성벽을 사다리로 기어 오르거나,공격자와 수비자 중 한사람이 왼손잡이거나,수비자가 아래에 있고 공격자가 위에 있을 경우,방어자 우위를 위해 설계됐다는 설명의 타당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인 것이다.
임 교수는 오히려 그같은 심오한 이유보다는 기술적·기능적인 문제 때문에 탑 내부의 계단 방향이 결정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바로 탑의 사용자가 아닌,설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건물설계 중 계단설계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출발점과 종착지점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이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출발하는 층이나 도착하는 층 내에서 다른 방과의 위치와 거리 등이지 계단을 오른쪽으로 돌릴지,아니면 왼쪽으로 돌릴지는 중요한 고려요인이 아니라고 한다.즉 계단을 오른쪽으로 돌리냐,왼쪽으로 돌리냐는 다른 주요기능이 결정된 다음에 부수적으로 결정되는 사항이라는 설명이다.한마디로 로더리의 ‘중세첨탑 계단의 방어자 우위설계론’은 지엽적인 부분을 확대 해석했거나, 실제와는 상관없는 견강부회 내지 오해일 확률이 크다는 입장인 셈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졌지만 그럴싸한 해석을 하는 경우를 일상에서건, 정부정책에서건 간에 간혹 접할 수 있다. 때론 그럴싸한 해몽에 어울리지 않게 ‘실체’는 허망하게 초라한 경우도 경험상 살펴보면 적지 않은 듯 싶다.(물론 실체가 해석처럼 복잡한 경우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북한은 서해에서 왜 도발했는지, 정부는 왜 4대강 사업에 집착하는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선덕여왕은 왜 갈라서게 되는지, 미녀들의 수다 작가는 왜 대본에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적었는지, 특정 언론사·기자의 논조는 왜 그런지 다양한 해석들이 나올 수 있고 또 이미 나오고 있다. 이들 다양한 해석들은 과연 ‘실체’에는 얼마나 부합하는 것일까. 또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참고한 책>
임석재, 계단, 문명을 오르다-계단의 역사를 통해 본 서양문명사 고대∼르네상스, 휴머니스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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