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한게임 대표도 NHN 떠나나 [네이버,성공 신화의 비밀-그 이후] 2009/11/01 1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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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NHN 한게임 대표이자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이 최근 회사에 휴직서를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1월 1일 NHN 관계자는 "김정호 대표가 최근 휴직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형식적으로 김정호 대표는 휴직을 한 것이다.일신상의 사유,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좀 지쳐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가 정확한 사유라고 한다.

◆정말 휴직인가?

형식은 휴직이지만 NHN 내부에서는 김정호 대표가 사실상 회사를 떠나는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관측을 하고 있다.과거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도 고문 등의 지위를 유지하다가 차례로 회사를 떠난 김범수,남궁훈 전 대표의 사례도 이런 추측을 가능케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가 휴직의 이유를 "지쳤기 때문"이라고 표현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솔직한 김정호 대표의 스타일상 그가 직접 언급한 말이라면 그의 심정을 상당부분 반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즉 통상적으로 대표이사들이 하는 말이라도 그가 하면 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가 가식을 싫어하고 항상 "솔직하게 할 얘기는 하자"는 스타일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김정호 대표가 말했다면,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그가 지쳤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이렇게 생각해보면 그의 말처럼 지친 김 대표가 언제 돌아올 지 알 수 없는 일이다.결국 형식은 휴직을 택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휴직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왜 지쳤나?

기본적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세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정말 심신이 지쳤거나,회사 내부의 어떤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회사 외부의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의한 것이거나,3가지 중 최소 한 가지 이상은 관련이 될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필이면 한게임쪽 인물들(김범수,문태식,남궁훈,천양현)이 차례로 회사를 떠나는 것에 비춰서,그 역시 한게임 대표를 맡았다가 떠나게 됐다는,우연치고는 너무나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에서 한게임 또는 NHN 내부의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한게임 쪽 창업 멤버들이 계속 나가게 되는 것과 관련된 어떤 공통점을 찾아보는 방식이다.(하지만 김 대표는 한게임쪽 창업 멤버는 아니다.엄밀히 말해서)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겠지만,현재로선 최근의 일련의 일들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 같다.즉 그가 게임산업협회장을 맡고 난 뒤 정부의 게임 규제와 관련된 업무와 힘겹게 싸우다 정말 그야말로 '지쳤다'는 것이다.더 이상 자신이 가진 신념과 능력과 열정으로 극복할 수 없는,또는 너무나 힘겨운 상황이 왔다고 생각했을 때 진이 빠졌을 수도 있다.그런 종류의 피곤함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왜냐하면 그는 정말 그만두기엔 너무나 젊기 때문이다.

◆김정호 대표는 누구인가?

물론 그가 이렇게 지쳤다고 가정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그는 다만 지쳤다고만 말했지만 그의 과거 이력을 볼 때 쉽게 상상하기 힘든 대목이다.

김정호 NHN 한게임 대표는 이해진 현 NHN CSO를 비롯해 김희숙,오승환,강석호,김보경,최재영씨 등과 함께 공동으로 네이버를 창업한 네이버 창업 멤버이자 2000년 네이버와 한게임이 합병해 NHN을 만들 때 두 회사의 다리를 놓은 합병 일등 공신이다.

김 대표는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삼성SDS에 입사해 1992년에는 인력개발팀에 있으면서 이해진씨를 채용하는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다.회계 전산시스템을 개발할 떄는 PC통신 유니텔의 과금 체계를 만들고 관리해본 경험이 있고 1999년 7월 네이버컴이 설립됐을 떄는 서비스본부 이사를 맡았었다.2000년 한게임과 네이버가 합병된 뒤에는 네이버 본부장과 한게임 서비스 부문장을 같이 담당하기도 했다. -네이버 성공신화의 비밀,p190 중 일부 발췌.

이해진,김범수라는 두 창업자보다 삼성SDS에 먼저 입사한 회사 선배였고 그런 인연으로 NHN이 창업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고,두 걸출한 주연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 준 NHN의 가장 빛나는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NHN의 창업 멤버 중 네이버와 한게임의 주요 사업 영역을 모두 담당했고,미국 시장 개척,중국 법인 설립 등 회사 역사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초창기 한게임 유료화 모델을 만든 이도 그였고 NHN의 인사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열정이나 최근까지 행적을 볼 때 아주 최근의 사건이 아닌 다음에야 급작스런 휴직을 결정한 이유를 찾기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해 보인다.

<2006년 9월 중국 베이징 중간촌에 위치한 NHN 중국 법인에서 만난 김정호 대표.당시 그는 중국 지도를 보여주며 중국 사업에 대한 열의를 보였었다.>

 

◆NHN과 게임산업협회 모두 상당한 타격 불가피

그에 대해서 이처럼 좀 길게 설명을 한 이유는 그가 가진 위치 때문이다.NHN 내부에서는 네이버와 한게임 양쪽 사업의 균형을 모두 잡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업멤버였고,한국 게임산업 측면에서는 최근 산업협회장을 맡아 20억 달러 수출 목표를 세우기도 했었다.

휴직이긴 하지만,어쨋든 현장에는 없는 것이다.그리고 NHN 내부의 관측처럼 그가 회사를 떠나는 수순을 밟는 것이라면 결국 NHN의 한게임 부문은 지금의 정욱 한게임 본부장이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게임산업협회장의 대리 업무는 어떻게 될 지 아직 윤곽이 그려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의 공백이 가져올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그가 임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그가 가진 균형잡힌 시각이나 열정을 대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정호, NHN, 네이버, 한게임, 중국, 게임산업협회, 이해진, 김범수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인터넷벤처 2.0 시대 [뉴미디어 세상] 2009/06/19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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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산업에서 최근 두드러진 점은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 벤처를 창업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인물들이나 이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미국에서 2005년을 전후해 웹2.0 기업들이 본격화되면서 제2의 벤처붐이 일었다면 웹2.0기업의 활약이나 산업에서의 파급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혹은 한국에서는 애시당초 웹2.0 성격이 상당히 반영된 1세대 기업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것을 한국 인터넷 산업에서도 2기가 시작됐다고 표현하고 싶다.또는 유행처럼 일었던 말을 활용한다면 인터넷 벤처 2.0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굳이 한국에서 웹 2.0보다 1세대들의 복귀 또는 재도전을 2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이들이 한국 인터넷 산업에서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점과 함께 이들이 시도하는 서비스들의 동향,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움직임이 한국적인 벤처 창업 현실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벤처 1세대들의 새로운 도전.
이런 경향은 2007년부터 일찌감치 시작됐다.NHN의 창업자이자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손꼽히는 김범수 사장이 그해 여름 NHN USA 사장을 그만두고 공식적인 모든 직함을 내놓고 다시 야인으로 돌아간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김범수 사장은 작년에 위지아이닷컴을 오픈하면서 벤처 창업 일선에 복귀했다.
 나성균 사장과 함께 네오위즈를 만들었던 장병규 사장이 비슷한 시기 움직인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장병규 사장 역시 게임개발사인 블루홀스튜디오를 만들고 벤처 창업 일선에 다시 뛰어들었다.장병규 사장은 이미 그 이전에 첫눈이라는 매우 실험적인 검색 벤처를 시도한 바 있으니 그는 공식적으로만 3번째 창업을 하게 되는 셈이다.
 한국 인터넷 산업의 대부로도 불리던 허진호 전 인터넷기업협회 회장도 일선에 복귀했다.그는 물론 창업이라는 형태를 띄진 않았지만 인터넷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해 왔기에 그의 움직임도 주목되고 있다.
 1999년 프리챌을 창업해 한국 인터넷 벤처 1세대 인물에 속하는 전제완 사장도 최근 유아짱을 창업하면서 일선에 복귀했다.전제완 사장은 신개념의 쇼핑몰이란 컨셉으로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옥션 창업자였던 이준희 사장은 하루에 딱 한가지 물품만 파는 원어데이라는 쇼핑몰로 이 분야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싸이월드 창업자로 잘 알려진 형용준 사장은 최근 신개념의 오디션 사이트 스토리투필름닷컴(story2film.com)을 오픈,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 이와는 조금 사례가 다르지만 안영경 핸디소프트 사장은 지난 해 4년여만에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왜 1세대의 복귀인가.
1세대들 복귀의 표면적인 이유는 간단하다.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위해서다.그리고 아주 실험적인 일을 하기엔 기존의 조직은 덩치가 너무 크다.이들의 DNA 자체가 벤처 DNA라는 설도 있지만,Who knows? (어떤 이들은 몸속에 벤처의 피가 흐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공동 창업자 또는 자신이 만든 조직과의 갈등 때문인 경우도 있다.이 역시 기존의 조직에서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가 어려워진 케이스다.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안정된 곳을 뛰쳐나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케이스라면 정말 이들이야말로 일찌기 경제학자 케인스가 언급한 야수와도 같은 기업가 본능을 가진 인물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두에서 1세대들의 복귀를 매우 한국적인 상황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이는 새로운 벤처 기업 발굴,지원에 인색한(혹자는 전혀 없다고도 한다) 한국적인 벤처 투자 상황에 비춰 볼때 기존의 성공을 통해 자금력을 갖춘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벤처 창업을 하는 사례 자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악화되는 벤처 창업 환경이 1세대들의 복귀를 이끌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년전과 다른 점? 같은 점?
사람은 같다.하지만 그들의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이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성공의 경험이다.그리고 이것은 바로 가장 큰 독이 될 수도 있다.어쨋든 이들의 성공 경험은 일찌기 보기 힘든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이들의 움직임이 항상 주목되는 이유다.
성공 경험만 있는 게 아니다.일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과거의 성공을 기반으로 자금 기반을 갖추고 있다.외부에서 돈을 끌어올 필요도 없고,혹 그런 시도를 하다가도 여의치 않으면 그냥 자기 돈을 투자해서 하면 된다는 거다.
 돈도 있고 경험도 있지만,이게 다는 아니다.이들은 여전히 아이디어로 반짝인다.김범수,전제완,장병규,이찬진 등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은 팔팔한 20대들 못지 않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로 의욕에 불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새로운 시도는 또 다른 대박을 낳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건 아무도 모른다.아이디어와 돈,그리고 경험의 3박자를 모두 갖췄지만 이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불확실한 시장의 힘이기도 하다.
 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뭘까? 사람이다.그러고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보여도 역시 사업은 혼자 할 수 있는게 아니다.정말 적재 적소의 쓸만한 인물을 찾기란 그들이 창업하던 10년,15년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왜? 이제는 이 분야에도 NHN,엔씨소프트,다음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안정된 직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인재들을 흡수해간다.인력 시장에서의 배고프고 가난하던 시절은 끝났는지도 모른다.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는 눈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이들의 두번째(혹은 세,네번째)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보자.

인터넷, 벤처, 김범수, 전제완, 장병규, 허진호, 이준희, 창업 댓글(1) l 트랙백(0) l 스크랩
프리챌 창업자들의 행적 [뉴미디어 세상] 2009/05/02 0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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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 사장의 소식을 접하게 된 이후로 나는 계속해서 당시 그와 함께 프리챌을 창업했던 인물들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제완 사장이 2002년 12월 3일 급작스럽게 구속된 이후 아주 짧은 시간에 전제완 사장이 만든 프리챌이란 기업은 해체돼버렸다.전 사장의 표현대로 200명이 넘는 직원들 중 2명을 제외하고 모두 회사를 나갔고 창업자는 한명도 프리챌에 남아 있지 않게 되는 상황이 됐다.1999년 7월 전제완 사장의 집에 모여 (주)자유와 도전을 만들었던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또 2000년 1월 최초로 서비스를 오픈할 당시 주축이 됐던 30여명의 준 창업 멤버들은 어디 있을까?

아직 절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들의 행적을 보는 것은 한국 인터넷을 인물 중심으로 보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이들 중 상당수가 그 뒤로도 업계에 남아 계속 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제완 사장과 일부 창업멤버들에 따르면 1999년 전제완 사장 집에서 모여서 프리챌의 최초 사명인 (주)자유와 도전을 만들기로 결의한 사람은 모두 7명이라고 한다.전제완,윤태중,김용진,이태신,예덕호,이정수,김정준.이들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조인한 인물들로는 문규동,이확영,변창원,이상원,서해진 등이 있다.약간씩 엇갈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주 초창기엔 이들 12명이 중심이 됐던 것 같다.

전제완 사장의 행적은 이미 여러 차례 썼으니 생략하기로 하겠다.이 중 가장 특이한 인물은 예덕호씨인데,이 분은 지금은 선교사가 되어 해외에 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김용진씨 역시 업계를 떠난 인물인데 이 분은 지금 동화마루라는 기업의 사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업계에 남아 있다.이태신 프리챌 부사장은 프리챌에서도 CTO등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인물로서 지금은 SK에 인수된 코난테크놀로지의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다.김정준씨는 넥슨에서 일하고 있고 윤태중 이사는 전제완 사장이 구속되고 새롬기술에 인수된 프리챌홀딩스가 부도처리되는 과정을 보면서 회사를 나와 계속해서 전제완 사장과 함께 하고 있다.지금은 전제완 사장이 새로 창업한 유아짱의 이사로 일하고 있다.이정수씨에 대해선 분명치 않은데,연대 전산과를 나와 삼성SDS에서 일하다 프리챌 창업의 동지가 된 이 분 역시 업계에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창업 멤버 중 몇몇은 NHN으로 갔다.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온 서해진씨는 지금 NHN에서 일하고 있고 문규동씨 역시 NHN에서 일하고 있다.변창원씨 역시 NHN으로 자리를 옮겼고,전제완 사장이 최고의 실력자라고 극찬해 마지 않았던 이확영씨는 NHN으로 일찌감치 자리를 옮겨 재작년까지 NHN재팬에서 일하다 당시 김범수 NHN 창업자가 NHN을 떠나 아이위랩을 새로 창업,위지아라는 일종의 집단 지성 사이트를 오픈하는데 참여해 맹활약하고 있다.이확영씨는 아이위랩의 CTO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00년 1월 프리챌이 사이트를 오픈할 당시에는 인원이 이보다 훨씬 더 많아진 상태였는데(프리챌은 급속도로 직원이 늘어난 회사였다) 앞에 언급한 인물들과 2000년 1월 당시 새로 합류한 인재들의 현재 모습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올리도록 하겠다.

전제완, 프리챌, 윤태중, 김용진, 이확영, 김범수, NHN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