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벤처 2.0 시대 [뉴미디어 세상] 2009/06/19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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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산업에서 최근 두드러진 점은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 벤처를 창업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인물들이나 이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미국에서 2005년을 전후해 웹2.0 기업들이 본격화되면서 제2의 벤처붐이 일었다면 웹2.0기업의 활약이나 산업에서의 파급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혹은 한국에서는 애시당초 웹2.0 성격이 상당히 반영된 1세대 기업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것을 한국 인터넷 산업에서도 2기가 시작됐다고 표현하고 싶다.또는 유행처럼 일었던 말을 활용한다면 인터넷 벤처 2.0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굳이 한국에서 웹 2.0보다 1세대들의 복귀 또는 재도전을 2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이들이 한국 인터넷 산업에서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점과 함께 이들이 시도하는 서비스들의 동향,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움직임이 한국적인 벤처 창업 현실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벤처 1세대들의 새로운 도전.
이런 경향은 2007년부터 일찌감치 시작됐다.NHN의 창업자이자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손꼽히는 김범수 사장이 그해 여름 NHN USA 사장을 그만두고 공식적인 모든 직함을 내놓고 다시 야인으로 돌아간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김범수 사장은 작년에 위지아이닷컴을 오픈하면서 벤처 창업 일선에 복귀했다.
 나성균 사장과 함께 네오위즈를 만들었던 장병규 사장이 비슷한 시기 움직인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장병규 사장 역시 게임개발사인 블루홀스튜디오를 만들고 벤처 창업 일선에 다시 뛰어들었다.장병규 사장은 이미 그 이전에 첫눈이라는 매우 실험적인 검색 벤처를 시도한 바 있으니 그는 공식적으로만 3번째 창업을 하게 되는 셈이다.
 한국 인터넷 산업의 대부로도 불리던 허진호 전 인터넷기업협회 회장도 일선에 복귀했다.그는 물론 창업이라는 형태를 띄진 않았지만 인터넷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해 왔기에 그의 움직임도 주목되고 있다.
 1999년 프리챌을 창업해 한국 인터넷 벤처 1세대 인물에 속하는 전제완 사장도 최근 유아짱을 창업하면서 일선에 복귀했다.전제완 사장은 신개념의 쇼핑몰이란 컨셉으로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옥션 창업자였던 이준희 사장은 하루에 딱 한가지 물품만 파는 원어데이라는 쇼핑몰로 이 분야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싸이월드 창업자로 잘 알려진 형용준 사장은 최근 신개념의 오디션 사이트 스토리투필름닷컴(story2film.com)을 오픈,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 이와는 조금 사례가 다르지만 안영경 핸디소프트 사장은 지난 해 4년여만에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왜 1세대의 복귀인가.
1세대들 복귀의 표면적인 이유는 간단하다.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위해서다.그리고 아주 실험적인 일을 하기엔 기존의 조직은 덩치가 너무 크다.이들의 DNA 자체가 벤처 DNA라는 설도 있지만,Who knows? (어떤 이들은 몸속에 벤처의 피가 흐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공동 창업자 또는 자신이 만든 조직과의 갈등 때문인 경우도 있다.이 역시 기존의 조직에서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가 어려워진 케이스다.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안정된 곳을 뛰쳐나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케이스라면 정말 이들이야말로 일찌기 경제학자 케인스가 언급한 야수와도 같은 기업가 본능을 가진 인물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두에서 1세대들의 복귀를 매우 한국적인 상황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이는 새로운 벤처 기업 발굴,지원에 인색한(혹자는 전혀 없다고도 한다) 한국적인 벤처 투자 상황에 비춰 볼때 기존의 성공을 통해 자금력을 갖춘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벤처 창업을 하는 사례 자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악화되는 벤처 창업 환경이 1세대들의 복귀를 이끌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년전과 다른 점? 같은 점?
사람은 같다.하지만 그들의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이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성공의 경험이다.그리고 이것은 바로 가장 큰 독이 될 수도 있다.어쨋든 이들의 성공 경험은 일찌기 보기 힘든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이들의 움직임이 항상 주목되는 이유다.
성공 경험만 있는 게 아니다.일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과거의 성공을 기반으로 자금 기반을 갖추고 있다.외부에서 돈을 끌어올 필요도 없고,혹 그런 시도를 하다가도 여의치 않으면 그냥 자기 돈을 투자해서 하면 된다는 거다.
 돈도 있고 경험도 있지만,이게 다는 아니다.이들은 여전히 아이디어로 반짝인다.김범수,전제완,장병규,이찬진 등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은 팔팔한 20대들 못지 않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로 의욕에 불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새로운 시도는 또 다른 대박을 낳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건 아무도 모른다.아이디어와 돈,그리고 경험의 3박자를 모두 갖췄지만 이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불확실한 시장의 힘이기도 하다.
 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뭘까? 사람이다.그러고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보여도 역시 사업은 혼자 할 수 있는게 아니다.정말 적재 적소의 쓸만한 인물을 찾기란 그들이 창업하던 10년,15년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왜? 이제는 이 분야에도 NHN,엔씨소프트,다음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안정된 직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인재들을 흡수해간다.인력 시장에서의 배고프고 가난하던 시절은 끝났는지도 모른다.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는 눈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이들의 두번째(혹은 세,네번째)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보자.

인터넷, 벤처, 김범수, 전제완, 장병규, 허진호, 이준희, 창업 댓글(1) l 트랙백(0) l 스크랩
프리챌 창업자들의 행적 [뉴미디어 세상] 2009/05/02 0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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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 사장의 소식을 접하게 된 이후로 나는 계속해서 당시 그와 함께 프리챌을 창업했던 인물들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제완 사장이 2002년 12월 3일 급작스럽게 구속된 이후 아주 짧은 시간에 전제완 사장이 만든 프리챌이란 기업은 해체돼버렸다.전 사장의 표현대로 200명이 넘는 직원들 중 2명을 제외하고 모두 회사를 나갔고 창업자는 한명도 프리챌에 남아 있지 않게 되는 상황이 됐다.1999년 7월 전제완 사장의 집에 모여 (주)자유와 도전을 만들었던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또 2000년 1월 최초로 서비스를 오픈할 당시 주축이 됐던 30여명의 준 창업 멤버들은 어디 있을까?

아직 절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들의 행적을 보는 것은 한국 인터넷을 인물 중심으로 보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이들 중 상당수가 그 뒤로도 업계에 남아 계속 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제완 사장과 일부 창업멤버들에 따르면 1999년 전제완 사장 집에서 모여서 프리챌의 최초 사명인 (주)자유와 도전을 만들기로 결의한 사람은 모두 7명이라고 한다.전제완,윤태중,김용진,이태신,예덕호,이정수,김정준.이들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조인한 인물들로는 문규동,이확영,변창원,이상원,서해진 등이 있다.약간씩 엇갈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주 초창기엔 이들 12명이 중심이 됐던 것 같다.

전제완 사장의 행적은 이미 여러 차례 썼으니 생략하기로 하겠다.이 중 가장 특이한 인물은 예덕호씨인데,이 분은 지금은 선교사가 되어 해외에 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김용진씨 역시 업계를 떠난 인물인데 이 분은 지금 동화마루라는 기업의 사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업계에 남아 있다.이태신 프리챌 부사장은 프리챌에서도 CTO등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인물로서 지금은 SK에 인수된 코난테크놀로지의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다.김정준씨는 넥슨에서 일하고 있고 윤태중 이사는 전제완 사장이 구속되고 새롬기술에 인수된 프리챌홀딩스가 부도처리되는 과정을 보면서 회사를 나와 계속해서 전제완 사장과 함께 하고 있다.지금은 전제완 사장이 새로 창업한 유아짱의 이사로 일하고 있다.이정수씨에 대해선 분명치 않은데,연대 전산과를 나와 삼성SDS에서 일하다 프리챌 창업의 동지가 된 이 분 역시 업계에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창업 멤버 중 몇몇은 NHN으로 갔다.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온 서해진씨는 지금 NHN에서 일하고 있고 문규동씨 역시 NHN에서 일하고 있다.변창원씨 역시 NHN으로 자리를 옮겼고,전제완 사장이 최고의 실력자라고 극찬해 마지 않았던 이확영씨는 NHN으로 일찌감치 자리를 옮겨 재작년까지 NHN재팬에서 일하다 당시 김범수 NHN 창업자가 NHN을 떠나 아이위랩을 새로 창업,위지아라는 일종의 집단 지성 사이트를 오픈하는데 참여해 맹활약하고 있다.이확영씨는 아이위랩의 CTO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00년 1월 프리챌이 사이트를 오픈할 당시에는 인원이 이보다 훨씬 더 많아진 상태였는데(프리챌은 급속도로 직원이 늘어난 회사였다) 앞에 언급한 인물들과 2000년 1월 당시 새로 합류한 인재들의 현재 모습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올리도록 하겠다.

전제완, 프리챌, 윤태중, 김용진, 이확영, 김범수, NHN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2002년 프리챌 매각 비화-프리챌이 SK에 매각됐다면?(2) [원기가 만난 사람들] 2009/04/24 1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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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프리챌 창업자가 전하는 2002년-2003년 프리챌 매각 비화.이전 글인 '프리챌이 SK에 매각됐다면(1)'에 이어지는 글입니다.이 글은 프리챌 매각을 시도해왔던 전제완 사장이 직접 밝힌 내용입니다.SK 등 관련된 분들의 반론이나,보충 설명 등을 모두 환영합니다.>


-구속되고 난 뒤엔 회사를 매각하는 일도 타격을 받았을 텐데
 프리챌 인수에 관심이 있었던 기업들이 내가 구속된 이후 전부 프리챌 인수를 포기했다.그러면서 회사의 자금난이 가중돼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얘기를 당시 프리챌의 오건석회장, 우지형사장, 이상열사장 등 접견 온 사람들로부터 들었다.

 

-그러면 누가 딜을 책임지고 했나.
 당시 구속후 모든 실무적인 딜은 우지형사장과 이상열사장이 진행했고 오건석회장은 딜에 직접적인 관여 없이 최종 결과만 보고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출소후에 SK딜을 보류하고 새롬과의 딜을 선택하게 된 것도 우지형사장이 오건석회장에게 SK와 새롬의 매각금액이 동일하고-실제로는 100억차이가 나는데-전제완이의 잔여부채를 상여처리함으로써 탕감하겠다는 홍기태회장의 방침과 새롬측이 프리챌홀딩스 메모시재 25.2억으로 고발한다는 협박 등을 받고 우지형사장의 잘못된 보고로 인해 결국 새롬딜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지형사장은 당시 새롬기술의 대표이사였던 홍기태사장과는 공군장교 동기였고 삼성그룹 입사동기란 인간적 친분을 바탕으로 프리챌을 새롬에 매각하는 딜을 진행해 왔다는 것을 나는 출소 후에 알게 됐다 그런데 그는 새롬과의 딜을 진행하게 되면서 당시 구속된 나에게는 다른 어떤 딜도 성사가 되지 않고 오직 새롬만 프리챌인수에 관심이 있다고 보고를 했다.
 
-그럼 실제로 당시에도 다른 딜이 진행되고 있었던 건가?
 2002년 12월 24일 당시 내 변호인인이였던 김상연변호사(서정법무법인)가 찾아와 새롬딜이 성사가 되었고 여러가지 자금 사정상 처리할 서류작업이 많으므로 새롬과의 딜을 위해 프리챌 지분에 대한 인수의향서,금전소비대차,질권설정계약 등에 대한 위임서를 요구했다.당시 새롬과의 딜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아무런 의심없이 당연히 위임서에 싸인을 했다.

 

그런데 당시 내 친구 한 명이 율촌의 윤세리변호사로부터 SK가 프리챌 인수의 뜻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이에 당시 프리챌홀딩스의 사외이사였던 조명현 교수(고려대 경영학과)가 나서 SK측의 서진우 사장 (와이더댄닷컴),가종현 부사장,전주호 상무 그리고 윤세리 변호사 등과 함께 하이야트호텔에서 오후 3시경에 만나 오후 9시까지 프리챌 인수에 관한 의견을 조율했다.

 

-인수 합의가 이뤄졌나
 당시 프리챌의 재무담당이었던 이성복상무로부터 내 부채가 총 200억이라고 들었던 조명현 교수 등은 SK가 프리챌을  인수하겠다는 뜻을 확인하고 SK측이 프리챌 및 드림챌,(주)현찰 등 내 지분을 150억에 인수하여 프리챌에 있던 내 개인 명의의 대여금을 전액 다 상환하고 ㈜프리챌홀딩스의 내 지분을 담보로 50억의 대출을 발생시켜 전제완 개인의 외부 부채를 상환한다는 구조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SK와 프리챌의 본협상은 2002년 12월 26일 오전 3시에 합의에 도달,㈜새롬기술보다 좋은 조건의 SK딜을 당시 참석한 프리챌 및 프리챌홀딩스 관계자들이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그 자리에서 MOU를 맺기로 참석자 전원이 합의하였으나,(이상열사장이 작성한 일지에 보면 SK와 새롬과의 딜규모가 50%차이가 났으며 당연히 SK딜을 하겠다고 명확히 나와 있다) 우지형사장이 이렇게 중요한 딜을 맑은 정신으로 아침에 계약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여 집에 가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같은 날 오전 9시에 MOU 싸인을 위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후 전원이 다 일단 귀가했다.헤어진 후 서진우사장은 최태원회장에게 프리챌인수에 대한 보고를 한 것으로 들었으며 우지형사장은 모처에서 홍기태사장을 만난 것으로 나는 들었다.

 

-그럼 홍기태 사장에게 다 보고가 됐다는 건가?
오전에 서진우 사장 등 일행이 프리챌을 방문,몇시간 전에 합의한대로 SK와 프리챌이 MOU 싸인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꾼 우지형 사장이 SK딜을 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서진우 사장은 결국 최종 의사결정자인 전제완사장의 결정을 통해 딜을 진행할 수 밖에 없게 됐다고 한다.

 서진우 사장의 상황 설명을 들은 프리챌홀딩스 사외이사였던 조명현 교수,임동욱 박사 등은 나를 구치소로 방문해 SK딜을 설명하고 최종 컨펌을 받기로 하고 특별 면회 신청을 해 왔다.그래서 2002년 12월 27일 오후 3시에 만났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새롬측의 홍기태 대표이사는 첫째, 딜과정에서 알게된 프리챌홀딩스 메모시재 25.2억에 대해 전제완사장 및 프리챌홀딩스의 등기이사였던 오건석회장,우지형사장,이상열사장 및 사외이사까지 전부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했다.둘째 당초 인수하지 않기로 하였던 ㈜현찰닷컴도 추가로 인수해 인수금액을 일정 금액 상향하여 SK딜과의 차이를 줄여주겠다고 제의하였으며,셋째 그래도 전제완 사장의 부채가 남는다면 그것은 상여처리하여 전제완 사장의 프리챌 부채를 없애주면 결과적으로 전제완의 부채가 전부 소멸되므로 SK와의 딜과의 규모가 결국 같게 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후 상여처리 등은 전혀 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난 프리챌에 100억이 넘는 부채가 남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그리고 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부분등이 인정되어 2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2년간 복역후 2004년 11월 30일 출소하게 됐다.

 

-SK와의 딜이 막판에 성사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나?
 내가 이미 새롬과의 MOU를 위임하는 싸인을 했고 그를 위해 대표이사에서 사임까지 했기 때문에,더욱이 당시 막 감옥에 와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밖에서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몰라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무엇보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아무도 감옥에 있는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즉 당시 상황은 나에게 얘기해주지 않으면서 나를 배제하고 일이 진행됐던 것이다.

-어쨋든 SK과의 딜은 성사되지 못했다.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는 건가?
 무엇보다 SK와 새롬기술은 프리챌 인수에 있어서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SK는 프리챌에 자금을 투자하고 키워서 활용할 생각이었지만 새롬기술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그 이후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프리챌이 새롬에 인수된 직후 프리챌의 모든 임직원이 2명을 남고 모두 퇴직했다.관계회사를 포함해 200명이 넘는 임직원이 불과 2년만에 모두 퇴직했다.나는 최고의 인재를 가려 뽑았다고 자부하고 있었고 실제 이들은 현재 네이버,구글,다음,네이트,CJ 등 각 정보통신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프리챌에 100억과 이자포함하여 140억에 상당하는 부채가 남아있게 됐고 2년간의 실형을 선고 받게 됐다.새롬기술은 나의 이런 부채를 감안해 줄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정당한 가격에 인수가 돠었다면 이 자금은 전부 프리챌의 제 대여금 상환이으로 회수되어 프리챌 주주의 이익이 보호됐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이다.

프리챌, 전제완, 새롬기술, SK, 드림챌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