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생맥주'에 해당하는 글 1건

올 여름 참 더웠지요. 일본도 무지 더웠습니다. 섬나라인 일본은 특히 습기가 많은 무더위로 유명합니다. 끈적끈적하고 불쾌지수 높은 일본의 여름이지만, 한가지 매력이 있습니다.맛있는 생맥주입니다.후덥지근한 저녁 이자카야(선술집)나 식당에 들어가 시원한 생맥주 한잔 마시는 게 일본의 여름을 즐기는 방법중 하나죠.


 말이 나왔으니까 얘기지만 일본 생맥주는 참 맛있습니다.일본에 여행이나 출장을 와서 생맥주를 마셔 본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한국의 생맥주와는 정말 다릅니다.크리미한 거품에 살짝 쏘면서도 부드럽게 감기는 시원한 맛.일본에 3~5년 근무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주재원들이 일본을 떠나 가장 그리운 것으로 꼽는 게 생맥주란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 생맥주입니다.산토리는 이 맥주가 '대박'을 내면서 최근 삿포로맥주를 제치고 일본내 3위 맥주업체로 부상했습니다.일본 맥주업계 1위는 기린, 2위는 아사히 입니다. chabs@hankyung.com

 

‘일본 생맥주는 왜 맛있는 걸까.’‘한국은 왜 그런 생맥주를 못 만들까.’일본에서 생맥주를 마실 때마다 이런 의문을 가졌습니다.처음엔 원료의 질이 다르거나, 맥주를 발효·정제하는 기술 등이 일본이 뛰어나서 그러려니 했습니다.그러나 알고 보니 그게 정말 중요한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일본 생맥주가 맛있는 이유에는 여러가지 분석이 있습니다만 제가 취재를 통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은 다음의 세가지 입니다.

 

 첫째, 철저한 온도관리 때문입니다.생맥주의 맛은 온도관리가 열쇠입니다.이에 앞서 생맥주와 일반 맥주의 차이를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군요.생맥주는 맥아즙을 발효 숙성시켜 여과만 하고, 가열과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아 효모가 살아 있다는 게 일반 맥주와의 차이입니다.효모가 살아 있기 때문에 생(生) 맥주라고 부르는 것이죠.이 살아 있는 효모가 신선한 맛을 내는 핵심입니다.

 

 문제는 이 효모가 계속 살아 있으려면 온도 관리가 중요하다는 겁니다.효모가 살아서 생맥주가 제 맛을 낼 수 있는 최적 온도는 보통  2~3℃라고 합니다.당연히 맥주회사들은 생맥주를 출고할 때 이 온도에 내보냅니다.문제는 유통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입에 도달할 때까지 이 온도가 유지될 수 있느냐 입니다.일본에선 그게 된답니다.냉장차 운반, 판매점에서의 냉장보관 등 철저하게 온도관리를 하기 때문이죠.

 

 근데 한국에선 이게 안된다는 겁니다.제조업체가 출고할 때는 분명히 2~3℃에 내보내는데 중간 운반과정에서, 판매점 보관 과정에서 이 온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 일쑤죠.서울 시내에서도 생맥주통을 LP가스통 처럼 일반 트럭에 싣고 다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지 않습니까.생맥주의 생명인 온도관리가 안되는 단적인 현장이지요.그러니 한국의 생맥주는 맛이 없는 겁니다. 

 

 둘째, 판매점의 위생관리입니다.생맥주가 제 맛을 내려면 판매점에서 생맥주 통과 생맥주 따르는 기계 등을 항상 깨끗이 청소·소독하고 관리해야 한답니다.그렇지 않으면 생맥주가 전달되는 관 등에 ‘비어스톤(Beer stone)’이란 찌꺼기가 생겨 맛을 변질시킨다고 합니다.맛만 변질시키는 게 아니라 세균의 온상이 돼 소비자의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일본의 생맥주 판매점은 이 관 등을 매우 위생적으로 관리한답니다.생맥주 기계의 매뉴얼대로 매일 소독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죠.무엇이든지 매뉴얼에 나온 대로 철저히 지키는 일본인들의 특성이 여기에서도 발휘되는 것이죠.하지만 한국의 많은 생맥주 판매점에선 기계의 위생관리 매뉴얼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합니다.이게 생맥주 맛의 결정적 차이를 발생시키는 원인중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선한 맥주만 판다’는 프로정신입니다.앞서 설명했듯이 생맥주는 효모가 살아 있는 맥주인 만큼 신선도가 생명입니다.일본의 많은 술집 주인들은 생맥주를 하루 판매량 만큼만 갖다 놓고 팝니다.손님에게 그날 받아온 가장 신선한 생맥주만을 제공한다는 프로정신, 다시말해 장인정신을 갖고 있어서 이지요.하룻밤을 묵힌 생맥주를 손님에게 낸다는 걸 금기시 합니다.


 실제 일본에선 좀 늦은 시간에 음식점 등을 찾아 생맥주를 주문하면 '생맥주가 다 떨어졌다'며 병맥주를 권하는 곳이 꽤 있습니다.하루치 생맥주만 갖다 놓기 때문이죠.그러나 한국에서 생맥주 시켰는 데 '다 떨어졌다'고 하는 술집 보셨습니까. 한국의 생맥주 집에선 무조건 20ℓ짜리 제일 큰 통으로 몇개씩를 갖다 놓고 2박3일 파는 게 일반적이라고 합니다.신선도에서 차이가 나다 보니 맛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일본 생맥주가 맛있는 이유는 일본인들의 철저함, 매뉴얼 준수, 그리고 장인정신 등의 산물이란 생각입니다.바로 일본 경제가 강한 요소들이 생맥주 맛에도 그대로 녹아 있는 셈이죠. 한국 경제도 좀더 강해지려면 생맥주 맛부터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