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까까머리 시절, 현상액에 들어간 인화지가 피사체를 서서히 토해내는 장면에 감동을 먹은 후 인연을 맺은 사진. 지금은 질풍노도시절처럼 열정적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진은 나의 평생 동반자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진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은 지금에도, 나는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한다. 빛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그 빛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은 마음에 극단적인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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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의 실루엣 –양지와 음지의 교차점 [포토에세이]

 

 한 때 회사에 사진반을 조직한 적이 있었다. 자발적이였다고 하기보다 동료 후배들로부터 등 떠밀려 이루어진 것이었다. 매년 회사에 서클을 등록하고 알량한 서클지원금을 타내려면 얼마나 복잡했던지귀차니스트의 대표격인 내가 운영을 했으니 그 모임이 오래갈 턱이 없었다. 결국 3년을 넘지 못하고 말아먹었다.

 그래도 초반에는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여 회원들을 데리고 많은 것을 가르치려 노력을 했다. 그런데 사진을 잘하고 빨리 배우는 사람들은 역마살이 있어서인지 회사도 잘 그만두었다. 사진은 역마살 있는 사람이 잘한다. .. 역마살이 없다.

 

 한번은 산정호수로 물안개 촬영을 나갔다. 이곳 가을에 물안개가 잘 피어 오른다는 정보가 있었다. 12일 일정으로, 도착날엔 여유 있게 술도 한잔할 요량이었다.

 냉랭한 가을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저녁 호젓한 호숫가이런 데서 술을 안 마셔주면 바커스 신이 노할 것 같았다.

 민박 주인에게 안줏거리 준비가 되냐고 했더니 도토리묵 무침과 막걸리가 죽여준다며 권했다. 주인 말대로 도토리묵 맛은 죽음이었다분위기까지 죽여주는 바람에 그날 모두 술에 취해 죽어버렸다.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눈을 뜨니 날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 모두들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체로 호숫가로 뛰어나갔다. 그래도 많이 늦지는 않아 안개가 수면에 조금 남아 있었다. 붉고 노랗게 물든 가을 산, 푸른 하늘 그리고 안개이 이상 훌륭한 사진 소재는 없었다.

 

 

양지와 음지가 교차되는 곳의 실루엣.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던 중, 호수 코너를 돌아가는 지점에서 거대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맞은 편 산은 아침햇살을 고스라니 받고 있었고 그것을 배경으로 큰 나무는 그늘이 져서 거대한 실루엣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아침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포인트를 잡아주고 있었다. 술이 다 깨어버렸다. 양지와 음지의 교차 지점에서 만들어낸 한 폭의 그림이었다.

 

 한 때 실루엣 사진이 좋아 실루엣만 찍으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연구도 많이 했다. 실루엣은 역광 상태의 불투명한 물체와 노출 차가 큰 밝은 배경이 만나서 이루어진다.

해를 물체 뒤에 놓고 찍으면 모든 게 실루엣화 되겠지만 그런 단순한 방법 말고 다양한 상황의 실루엣을 만나려면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촬영자의 등 뒤에 반사광선이 약한 장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출은 배경에 맞추어야 까맣게 떨어진다. 눈으로 봐도 새까맣게 보일정도로 노출차가 크면 평균 노출을 줘도 되겠지만, 눈으로 봐서 디테일이 보이면 평균노출보다 1~2단, 경우에 따라선 3단 정도 부족하게 노출을 줘야 한다.

동굴 안에서 바깥 배경으로, 또는 실내에서 밝은 창을 배경으로 했을 경우 실루엣이 잘 되는데, 이는 내부 반사광선이 약하기 때문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모두 실루엣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반사광이 강하기 때문인데, 야외에서 실루엣을 얻으려면, 해질()녘이 좋고(쉽고) 그냥 하늘을 배경으로(뚝방 같은 곳) 할 때는 흐린 날이 반사광이 약해서 더 좋다.

 

 

해 뜰녘에는 100% 실루엣이 보장된다. 대청봉에 오르다 한 컷.

 

지금은 산정호수가 많이 상업화되어 좀 번잡해졌지만, 그래도 아침 물안개는 여전하지 않을까?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도토리묵의 맛은 여전할지 궁금해진다.

 

명성산에서 바라본 산정호수

 

산정호수, 실루엣, 물안개, 단풍, 반사광
posted at 2008/04/30 15:06:00 트랙백(0) | 댓글(6) |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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