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까까머리 시절, 현상액에 들어간 인화지가 피사체를 서서히 토해내는 장면에 감동을 먹은 후 인연을 맺은 사진. 지금은 질풍노도시절처럼 열정적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진은 나의 평생 동반자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진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은 지금에도, 나는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한다. 빛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그 빛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은 마음에 극단적인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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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경제학 – 去華就實 [포토에세이]

 아는 사람 중에 사진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3천만원 어치의 장비를 구입한 사람이 있었다. 사진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아마추어가, 그것도 10여 년 전에….

니콘 F4를 기본으로, 라이카, 핫셀블라드까지 라인업하고 600미리 ED렌즈를 비롯, 다수의 렌즈를 장만한 것이다. 이른바 자세부터 잡으려고 한 것이다.

이 분의 경우는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 준거로 삼은 대상이 조류사진 작가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새의 눈까지 자세히 찍으려면 초점거리가 엄청난 망원렌즈가 필요하니 장비에 많은 비용을 부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덕분에 렌즈를 빌려 쓰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분의 조류촬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20~30% 깎인 값으로 장비를 환금조치 했다.

 

사진뿐만 아니라 모든 취미생활에 있어서 먼저 질러놓고 시작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취미생활뿐만 아니라 일반 상품을 구입하는 데에도 잘 모르면 비싸게 줘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경제적 여건이 아무리 좋아도 제품을 선택할 때는 필요성을 고려하는 것이 전제 조건 아닌가.

 

초등학교 때 부친께서 캐논 EE17이라는 하프사이즈 카메라(필름 한장으로 두 장을 찍는 소형 카메라)를 사오셨다. 필름 한 통을 넣으면 50장이 넘게 나오니 참 경제적인 카메라였다. 그럼에도 함부로 셔터를 누르지 않아, 어떤 경우에는 필름 한 통 안에 여름 사진과 겨울 사진이 같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을 그리 자주 찍지 않고, 크게 확대할 일도 없다면 이 카메라로 충분한 것이다. 그래도 이 카메라는 거리와 조리개, 셔터 스피드를 조정해야 하는 나름대로 어려운 카메라였다. 그래서 나는 그 카메라에 손댈 수가 없었다.

중학교 진학을 하자, 학교에 사진반이 있었다. 집에 있는 카메라를 제대로 써보겠다는 단순한 동기로 가입을 하게 되었고, 그 카메라로 열심히 찍었다. 사진을 알수록 카메라의 한계를 느끼게 되자 거의 매일 꿈 속에서 카메라를 새로 사는 꿈을 꾸게 됐다. 마침내 고등학교 들어가자 마자 단식투쟁을 하며 카메라를 사달라고 졸라댔다. 집안이 넉넉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카메라는 재산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열정을 부모님이 알고 있던 터라, 결국 꿈에 그리던 SLR 카메라를 얻게 되었다.

당시에 생각하고 있던 카메라는아사히펜탁스 스포트메틱이었다. 고등학교 사진반 선배들은 대다수 거리계 연동식 2안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사진을 잘 찍는 한 선배가 그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카메라 가게에 가서 산 것은 아사히펜탁스 KM이었다. 스포트메틱보다 진 일보 한 수동 카메라였다. 같이 나섰던 아버님이 지르신 것이다.

 

 

당시에 펜탁스의 M시리즈와 함께 인기를 구가했던  K시리즈 중 수동적 기능이 탁월했던 K

너무 기쁜 나머지 한 달 이상을 밤마다 만지고 닦고 핀트 맞춰보고, 껴안고 자기도 했다. 그래서 그 카메라는 정말 눈감고 찍을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사실상 그 카메라로 구도 잡고 노출 맞추고 거리 맞추는데 1~2초면 충분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스냅사진을 찍으려면 그 정도의 스킬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카메라는 그런 정성을 배반하지 않고 좋은 사진을 선사해줬다. 결국 군대에 가서 사진병으로 근무할 때도 이 카메라를 가지고 갔다.

 

요즘 DSLR 카메라 열풍이 불고 있다. 처음 나왔을 때 현재의 똑딱이카메라 스펙에도 못 미치는 기능으로 천만원에 가까운 고가였지만 지금은 더 우수한 기능으로 100만원 안팎까지 가격이 떨어져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지만 100만원이 아마추어들에게 그리 싼 가격은 아닐 것이다.

주위에 DSLR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 중엔 자동(P)에 놓고 더 이상의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럴 거라면 가격면이나 휴대성 등을 고려할 때 똑딱이' 카메라가 훨씬 낫지 않은가...

 

去華就實’--- 화려함보다는 실리를 추구한다는 말이다. 이는 기업이나 가정에서도 새겨야 할 말이지만 사진을 새로 시작하거나, 새로 카메라를 구입할 때 자신의 사진의 목적과 부합되는 카메라를 고를 필요가 있다. 정말로 기능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껴졌을 때 그 때 투자를 해도 늦지 않다.

내 돈 내가 쓰는데 뭔 소리?”라 반문할 수 있겠지만, 겉멋으로 사진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카메라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사진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봤다 

카메라, 장비, 하프사이즈, DSLR
posted at 2007/12/02 15:32:00 트랙백(0) | 댓글(4) |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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