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관리를 못했습니다. 바빴다는 핑계를 댈 수 밖에 없군요. 올림픽 열기가 막 시작되기 전 4일부터 6일까지 대만을 갖다왔습니다. 그 많은 출장과 여행속에서도 공교롭게 못가본 나라. 2시간 밖에 걸리지 않더군요.참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그런데도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역시 외교관계가 없다는 슬픈 현실때문이죠. 1992년. 소련 중국과 수교해야 하는 노태우 정부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하지만 너무나 야멸차게 그리고 단칼에 관계를 끊는  바람에 대만에서 정말 야속했을 겁니다. 그런 아쉬움과 섭섭함과 분노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때는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죠. 우리가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햐 땀을 흘릴때 한걸음 더 나간 나라였으니까요.지금도 대만 사람들의 생활은 선진국 냄새가 나더군요.퇴근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일찌감치 귀가하는 풍조. 밤 늦게 까지 술 먹고 흥청대는 모습은 볼 수 없는 거리.점심시간에도 직장인들이 몰려다니지 않고 인근 식당에서 혼자서 간단히 처리하는 문화, 깨끗한 매너. 우리가 뒤늦게 그들을 잡아채고 잘 살게 돼 한국을 동경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지식들의 단교조치에 대한 비난. 언론의 후하지 않은 인식등은 36-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속에 등골을 싸늘하게 만들더군요.

 

차이나 포스트 였습니다. 중립적인 영자신문이라고 하더군요. 그 사설이 영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지난 5월 총통(대통령)에 당선된 마잉주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제살리기를 모토로 내걸었지만 실제 물가가 오르고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다는 요지였습니다. 그런데 리드(신문 글의 첫 문장)를 읽고 마음이 상했습니다. "마잉주 대통령이 이웃 한국의 이명박대통령 보다 결코 낫다고 할 없다" 마 총통을 꼬집었지만 고전하는 우리 대통령에 빗대 기분이 나빴습니다.

 

사실 마 총통은 별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대만 정치사에서 특이한 사람입니다. 대만은 어떤 나라입니까.장개석 총통이 1949년 모택동의 군사 정권에 쫓게 대만으로 밀려와 세운 국민당 정부의 지도잡입니다.장 총통의 후손들은 본토 수복을 염원한 사람들입니다.대만 섬에 잠시 와 있다는 손님 같은 기분이었습니다.그래서 죽은 후에도 시체를 땅속에 묻지 못하도록 했답니다.본토로 돌아갈때까지 땅에 묻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정권에 속한 마 총통인데도 파격적으로 중국과 손을 잡고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바꿔 놓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총통에 당선됐습니다.

 

당선되자 마자 처음으로 한게 중국과 대만의 전세기 허용을 통한 중국 사람들의 대만 단체 관광허용.대만의 까다로운 중국투자 규제 완화. 중국 주주들이 일정 비율 이상인 중국 기업의 타이베이 증시 상장 허용. 친중국 정책을 쏟아냈습니다. 중국을 활용해 경제를 살리고 중국을 활용해 대만을 좀더 글로벌한 나라로 바꿔놓겠다는 국가리모델링 작업이죠.

 

리모델링의 대표적인 조치의 하나가 중국과 외교전쟁을 그만둔다는 것입니다.대만은 그동안 수교국을 뺏기지 않기위해 돈을 외교를 사는 달러외교, 수표외교를 펼쳐왔습니다.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만 관심을 쏟는 외교 현실에서 주권국가의 모양새를 유지하려는 절박한 몸부림이었습니다.

 

현재 수교국가는  고작해야 23개국입니다.그것도 눈꼽만큼 작은 나라가 대부분이죠.모두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만을 방문했던 날 대통령궁 앞이 요란했습니다.의장대가요란스러웠습니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왔었나 봅니다.나중에 알아보기 호주 옆의 땅콩 만한 나라였습니다. 나우루. 인구는 1만3천명 밖에 안되죠.그래도 이들을 잘 맞아줄 수 밖에 없는게 대만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중국과 달러외교전쟁을 그만두기로 함에 따라 앞으론 많이 바뀔 겁니다. 외교관계가 없는 미수교국들에 손을 벌리는 저자세 외교는 볼 수 없겠죠.한국도 영향이 클 겁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누가 가면 대만의 높은 사람들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이젠 그렇지 못하겠죠.

 

중국이 어느 정도 까지 대만의 자존심을 지켜줄지는 미지수입니다. 외교전쟁을 안한다고해도 대만을 절대로 주권국가로, 독립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을게 확실하기 때문입니다.조금이라도 입맛에 어긋나면 언제 그랬냐싶게 대만을 윽박지르거나 안보위협을 가할 지 모릅니다.하지만 지금은 대만의 새 정부를 잘 대해주는 것 같습니다. 마 총통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죠.

 

대만의 올림픽 출전 명칭을 놓고도 얼굴을 붉힐 뻔 했습니다. 중국 언론들이 대만을 중국 영향권에 있는 나라로,시쳇말로 속국처럼 분류하기위해 바람을 잡았죠. '중국-타이베이'로 보도하기 시작한 겁니다. 대만이 발끈했습니다. 절대 중국이라는 명칭을 앞에 쓸 수 없다고 반발했죠.그래서 타협한 명칭이 '중화-타이베이' 입니다. 중국 정부가 '중화-타이베이'를 받아들인 거는 세계의 눈이 쏠리는 올림픽 기간중 시끄럽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마 정부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배려이기도 하죠.우리에겐 별 차이 없는 듯 하지만 그들에겐 아주 중요한 겁니다.

 

 마 총통은 지난 12일 파라과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5월 취임후 첫 해외순방입니다. 도미니카공화국과 파나마도 방문합니다.우리 대통령이 당선되면 4강 외교부터 하는 것과 참 다르지만 그럴수 밖에 없습니다. 수교국이 고작해야 23나리이기 때문이죠.파라과이만 해도 대만에 참 중요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새로 대통령에 당선된 파나마의 페르난도 루고가 마 총통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공약의 하나로 중국과 외교관계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거죠. 그렇게 되면 당연히 대만과 외교관계는 끊어지는 겁니다.  대만이 중국과 외교전쟁을 벌이지 않겠다고 했고  중국도 협조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수교국이 바뀔지 모르는 파라과이 케이스를 중국이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됩니다.

 

파라과이는 콩을 많이 생산합니다.세계 4위 수출국입니다. 중국이 중요한 시장입니다. 당연히 중국과 손을 잡아야 겠죠. 대만으로선 위기상황입니다. 그래서 첫 순방국으로 그 지역을 택했나 봅니다.

 

순방은 참 검소합니다. 전세기를 타지 않습니다.일반 여객기로 갑니다. 중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들르는데 별다른 행사가 없습니다.미국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생각입니다. 대만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중국과의 외교마찰 요인입니다.그런 소지를 없애기위해 남미로 가는 일반 여행객이 미국에서 트랜짓하는 정도 이상의 특별한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대통령으로서도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지금도 대통령궁에서 자지 않고 개인 사저에서 출퇴근한다고 합니다.그리고 대통령궁에서 식사할때도 도시락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대만엔 도시락 문화가 발달돼 있습니다.도시락 먹으면서 회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 총통도 점심시간에 도시락 시켜놓고 회의를 한다고 하더군요.주서울 대만 대표부에 있는 사람들이 전해준 얘기입니다. 마 총통은 법무부 장관 시절 혼다 소형차를 직접 몰고 출퇴근 했다고 합니다.

 

대만은 새롭게 비상하려 합니다.대만 해협을 한달음에 건너와 자신을 먹어버릴 것 같은 중국 등에 타고 재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먹혀버릴 거 라는 걱정도 많습니다.하지만 새 정부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중국과의 경제는 이미 실과 바늘 처럼 얽혀버렸다.따로 놀 수가 없다.외교적 마찰을 벌여봐야  좋을게 없다. 차라리 더 가까워지고 그래서 더 의존적이 되면서 마치 옛 영국 연방체제의 한 나라 처럼 살아가면 좋지 않겠는가"

 

대만의 앞날이 주목된다.

 

*사진은 나중에 올려놓겠습니다.  

  <7일 워싱턴에서 경선 패배를 자인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힐러리>

 

 

 힐러리 클린턴의 눈가에 이슬 같은 물기가 배었다. 대권의 꿈을 접은 이 순간. 경쟁자였던 버락 오바마 일리노이주 출신 초선 의원에게 무릎을 꿇은 그녀의 눈물샘이 결국 터졌다. 경선기간중 힘들었을때도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지지자들이 힘을 보태 일어섰지만 오늘은 아니다.

 

 그녀의 패배는 어디서 온 것일까. 어떻게 고작해야 전체 인구의 10% 밖에 안되는 흑인 출신에게 쓴잔을 마셔야 했을까.

 

 여성의 한계?  글래스 실링(glass ceiling, 유리천장. 회사내에서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차별. 기업은 물론 다른 조직에도 사용되며 여성은 물론 흑인 같은 소수인종의 차별에도 쓰일 수 있음)의 여전히 두터운 벽?  대통령 부인의 한계?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패인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첫째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미국 정치는 돈과 비례한다.선거는 누가 돈을 많이 모으느냐에 달려있다. 오바마는 인터넷을 통해 개미들로부터 한푼 두푼 모았다.티끌은 태산을 이뤘다. 힐러리가 인터넷을 통한 풀뿌리 모금을 시작한 것은 오바마가 이미 훑고 지난간지 1년이 흐른 후였다.이메일, 블랙베리를 활용한 유세전에서도 오바마에게 뒤졌다. 바뀐 시대상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시대변화에 올라타는 것은 이미지가 승패를 가름하는 현대전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기업전쟁이든 정치전쟁이든 이미지를 선점하는 것은 21세기 경쟁시대를 헤쳐나가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쇼를 하라.쇼'라는 카피로 스타덤에 오른 KTF를 봐라. 4000만 국민들이 흥얼거리는 이 한마디는 이미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줬다.

 

둘째 팀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올드 보이(old boys,옛날 인물)'였다.

 

 초스피드로 바뀌는 요즘의 이미지 전쟁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변화에 능숙한 신세대들이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있거나 옛 관습에 젓어있는 사람들로 이들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선초반 힐러리의 수석 전략가는 마크 J 펜 이었다. 그는 1992년과 96년 남편 클린턴의 대권 쟁취를 뒷받침했던 노련한 정치참모였다. 그가 이끄는 전략가들이 힐러리의 경선전을 진뒤지휘했다. 이들의 결정적 실수는 오바마의 저력을 앝잡아 본 것.그들은 초선의 경험없는 오바마가 대통령 부인으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 많은 힐러리의 대안이 되지 못할 것으로 과신했다.그래서 초반 4-5곳에서 대승을 거둬 오바마의 기세를 꺾으면 대세를 잡을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강했다. 힐러리 진영이 초반 승기를 예상하고 모은 돈을 거의 다 쏟아부었지만 싸움은 갈수록 힘들어졌다. 돈이 말라갔다.

 

 오바마의 메세지인 '변화(change)'의 흡인력이 그렇게 셀 줄 몰랐던 것.힐러리도 변화를 얘기했다. 그러나 액센트가 달랐다. 힐러리는 "변화가 필요한 나라를 이끌 준비가 돼 있는 후보"를 힘주어 역설했지만 "변화"를 단순하게 외친 오바마의 파괴력에 밀렸다

 

변화 메세지는 오바마가 당선되면 미국이 어떡해든 달라질 것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줬다. 오바마가  '인식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실질과 인식은 다르다. 이미지 시대에는 인식의 힘이 실질의 힘을 누른다.이를 간파하지 못한 힐러리 참모진은 초반 전선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셋째 내분이 일어났다.

 

패배는 늘 적전분열이나 내부이탈에서 비롯된다.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다는 통설은 힐러지 캠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수석 전략가인 마크 펜과 또다른 핵심 참모인 해롤드 아이크는 오바마라는 대적을 앞에 두고 으르렁거렸다.펜은 중도성향으로 숫자만을 따지는 인물.반면 아이크는 노조에 가까운 자유주의자.그들이 한 팀에서 제대로 선거전략을 세우기 힘들었는데도 한 배에 올라탔다.둘은 원색적인 말로 서로를 비난했다.힐러리의 변호인이자 토론 코치인 로버트 바넷이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제발 그만해"

 

넷째 작은 실수가 역전의 기회를 날려버렀다.

 

오바마에 결정적인 위기가 닥쳤다.오바마의 정신적 종교적 스승인 흑인 목사 제레미아 라이트의 원색적인 미국 모독 발언이 공개된후 오바마 인기는 한때 싸늘하게 식었다. '갓뎀 아메리카 (이런 *** 미국,빌어먹을 미국)' 발언을 한 그의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백인들의 지지가 현격하게 떨어졌다. 힐러리에겐 전례없는 기회였다. 힐러리는 그 기회를 작은 실언으로 날려 버렸다.힐러리는 1996년 영부인으로 보스니아를 방문했던 당시 비행장에서 저격수들의 총탄을 피해 차량에 올라야 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당시 영접을 받으며 평온하게 차에 오르는 TV화면이 공개됐다. 엉겹결에 한 작은 거짓말이 대세를 뒤바꿀수도 있는 절호의 찬스를 발로 차버린 셈이다.

 

다섯째 전술 구사에 한 발 늦었다.

 

경선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슈퍼 델리기트(super delegates)다.  각 주에 배정된 투표권외에 별도로 투표권을 갖는 사람들이다.민주당 전국위원회 멤버, 민주당 출신 주지사, 상하원, 민주당의 다른 지도자들이다.850명 정도다.이들은 경선중에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후보를 결정짓는 전국위원회에서 표를 던진다.하지만 이들이 힐러리와 오바마 둘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경선기간중 대체로 나타난다.언론은 그들을 포함해 유효 득표수를 계산한다.

 

힐러리는 주별 유세에서 승기를 잡으면 슈퍼 델리기트도 따라올 줄 알았다. 하지만 경선이 불리하게 진행되자 슈퍼 델리기트 공략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했다.그 사실을 알았을때는 이미 늦었다. 오바마는 몇개월 앞서 슈퍼 델리기트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었던 것.

 

힐러리의  패배는 기업이든 정부든 승리하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돌아선 민심을 잡으려는 이명박 정부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나 뒤돌아 볼 일이다.

 

 

 <시카고에서 6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오바마>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본격화되기 전에 쓴 글입니다)

 

 

쇠고기 개방에서 촉발된 촛불시위가 국가를 전복(?)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매일 밤 벌어지는 촛불 시위는 서울 한복판을 마치 해방구 처럼 만들어놨다. 시위의 배후세력을 지목해도 소용없을 만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도 늘고 있다. 법질서를 어기는 일부 세력을 잡아들여봐야 허망한 일이기도 하다.

 

2008년 5월30일 대한민국은 벼랑끝으로 몰렸다. 상식이 있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시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민주노총이 가세하고 야당이 장외투쟁에 뛰어들고  대학생들까지 조직적으로 거리에 나서는 극한 상황을 개탄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이 시점에서 과감하게 주장한다.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라고. 하루빨리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하라고.

 

'쇠고기 재협상'을 줄기차게 반대해온 한국경제신문의 부국장으로선 엉뚱한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방법 말고는 지금 끓어오르는 대한민국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없다. 왜 그런가.

 

첫째 이번 시위의 발단은 쇠고기 개방 절차의 허망함이다.한승수 총리는 땅에 떨어진 정부신뢰가 본질이라고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선물로 허겁지겁 제시한 쇠고기 개방 약속이 방아쇠가 됐다. 물론 쇠고기는 개방해야 한다.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쇠고기 수입을 막았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하지만 개방에는 순서가 있고 개방을 위한 협상에도 기술이 필요한 법이다.대통령의 방미에 허겁지겁 맞춰 협상을 속전속결로 처리한 농림수산식품부의 잘못은 아무리 탓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쇠고기 용어에 빠삭한 전문 통역도 없었고 , 합의문 번역도 엉망인 엉터리 협상을 해놓고 장관이라는 사람이 얼굴을 들고 다닌다는게 말이 되는가?  개방으로 기본 방향을 잡되 시간을 두면서 차분하게 했더라면 이 꼴이 안났을 것이다. 옷도 하나씩 벗어야지.

 

정부로선 FTA(한미자유무역협정) 의회 비준이 시급했으리라. 미국 의회에 비준을 압박하려면 당연히 쇠고기 수입 약속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협상에는 지켜야 할 ABC가 있다.

 

정부가 그것을 헌신짝 처럼 버리고 눈먼 봉사처럼 달려든데 대해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미국 가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입맛 맞춰주느라고 국민들의 자존심을 팔았다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가 끓어오르는데도 개방 고시를 강행했다. 근저엔 부시 대통령에 선물을 빨리 주고픈 MB의 조급함이 깔려 있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떠 빨리 빨리 공사를 끝내버리려는 건설사 CEO의 결과지상주의라고 할까,

 

정부의 어설픈 협상이 쇠고기 개방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주창해온 기자와 같은 우파 까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MB가 협상을 미숙하게 한 농림수산식품부의 정운천 장관을 경질하고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협상내용을 번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 장관은 '죽은 목숨' 이다. 국민들에게 짓밟히고 야당에 두드려맞고 여당에서도 외면받는 장관이 숨을 쉰다고 해서 정상적인 행정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정 장관을 날려버리는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정 장관 경질은 곧 협상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경질의 이유를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하고 그 이유에 맞춰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쇠고기 수입 개방 고시를 철회하고 합의문을 찢어야 한다. 미국과 대판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더 큰 국익을 포기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다.

 

 정 장관이 야당의 해임 결의안이 제출됐을때 책임을 지고 사퇴했더라면 다행이었겠지만(장관이 대통령의 인허가 없이 사표내는 것도 쉽지는 않음) 이제와서 정 장관을 자르면 MB가 항복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국가 전체적으로도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밉지만 그렇다고 자꾸 뺨을 때려봐야 내 얼굴만 아플 뿐이다.

 

미국 정부는  이렇게 진퇴양난에 빠진 한국 정부에 먼저 손을 내밀어 도와줘야 한다. 어려울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하지 않는가.

 

둘째 시위가 확산되고 장기화하면서 상당수 한국민의 머리속 깊이 박혀있는 '반미감정'이 폭발하면 한국도 문제지만 미국도 엄청난 손실을 입는다. 지금은 '반 미국 쇠고기' 시위인지, '반 이명박 시위'인지, '반미 시위'인지  헷갈린다. 모든 요인이 짬뽕되 촛불로 타오르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미 감정이 수면위로 솟아오를지 모른다.

 

 

 

반미로 번지면 미국의 손실도 크다. 29일 환경운동연합이 인사동 맥도날드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인 것을 보았는가? 섬뜩했다.그런 시위가 맥노날드에서만 있으란 법이 없다.미국을 상징하는 시설물 앞에서 시위가 빈발하고 미국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번지면 그때는 늦는다.

 

국내 쇠고기 유통업자들이 정식 수입재개이후에도 매장안에 미국산 쇠고기를 진열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할 만큼 미국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이 편치 않다.

 

셋째 9.11 뉴욕 쌍둥이 빌딩 테러 때도 그랬다.당시 이슬람 테러 세력의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을때 미국 기업들은 숨죽이며 조사한게 있었다.도대체 전 세계에 투영된 미국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그런 이미지가 미국 제품의 판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업들은 조사결과를 토대로 이미지 광고에 주력했고 해외로 파견되는 기업인들에 대해 대대적인 교육을 실시했다.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현지인을 예의바르게 대하라고.

 

한국에 수출하는 미국 기업들은 지금 이 순간 긴장해야 한다. 미국제품 불매운동으로 번질 우려가 조금이라도 보이기 전에 하루빨리 그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방법은 미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에 부탁하는 것이다. 낭떠러지에서 간당 간당하는 한국 정부를 도와주라고. 쇠고기 수입 조건을 더 까다롭게 할 수 있도록 재협상의 길을 열어주라고 .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 밖에는 해법이 없다.촛불시위가 시민혁명 같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도록 막을 방법이 별로 없다.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민과 소통을 잘하라고 , 신뢰를 쌓으라고, 잘못을 인정하라고, 장관들을 경질하는 인적쇄신을 단행하라고, 제발 민의를 잘 들으라고 독촉한들 쇠고기 수입 조건을 바꾸지 않으면 성난 민심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기자는 다음달말께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라도 겁없이 먹을 것이다. 미국에 4년 살면서 별별 부위를 값싸게,그리고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광우병을 걱정해본 적은 눈꼽 만큼도 없다. 뼈를 밤새 고았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국민들은 광우병을 걱정하고 자존심을 내던져버린 쇠고기협상에 분노하고 있다.그 분노를 달래고 실망을 어루만져주는 길은 협상문을 손질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치욕스럽고 당혹스러운 일이다.

 

미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미국 수출업자들이 20-30개월 이상된 쇠고기는 한국민이 걱정하는 현실을 감안해 수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방법도 있다. 그 약속을 정부 차원에서 문서화하는 재협상이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미국이 그런 아량을 베풀면 MB는 즉각 두가지를 단행해야 한다.

 

첫째 진짜 솔직한 사과다. 상황인식을 잘못했다는 반성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태가 오도록 몰고간 사람들을 경질해야 한다. 협상장에서 헛발질한 농림수산식품부 정운천 장관, 쇠고기문제로 헛소리를 하고 논문표절의혹을 샀던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특별교부금을 뻔뻔하게 사용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은 교육과학기술부 김도연 장관을 당장 퇴진시켜야 한다.

 

한번 임명한 장관은 웬만하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함으로써 예측가능한 정책을 수행토록 해야 한다는게 기자의 일관된 지론이지만 100일도 안돼 정권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국정이 망가지는 비상 상황에선 문제 장관들의 교체를 주춤거려서는 안된다.

 

 인적쇄신은 청와대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새 정부 들어서 인사가 엉망진창이다.요즘 인사는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 진영'이 좌지우지 한다고 한다.청와대 인사라인의 핵심이 모두 이 의원 수족들이다. 어떤 자리에 도저히 이해안되는 인사가 앉으면 십중팔구는 이 의원과 연계해서 생각해보면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게다가 청와대 수석이라는 사람들도 왕초보들이다. 류우익 비서실장을 필두로 청와대를 이끌고 가는 수석 진영은 국정의 컨트롤타워다. 행정부를 전면에 내세워 국정이념을 실천하는 두뇌라고 할까. 이 두뇌들이 정치 경험이 일천한 아마추어여서 대립과 갈등으로 첨예하게 맞붙는 지금의 국면을 타개할줄 모른다. 아니 그런 국면을 초래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

 

 공기업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알 수 있다.정부는 250여개의 공기업을 분야별로 나눠 구조조정을 하겠다며 기관장들을 대상으로 일제히 사표를 받았다.정치 철학이 안맞는 노무현 정부 코드 인사를 솎아낼 필요는 있겠지만 임기가 두세달 밖에 안남은 기관장까지 쫓아내는 유치한 짓을 하고 있다. 나가는 사람에게 경영실패라는 낙인까지 찍어 쓸데없는 원망을 자초하고 있다.

 

 그래서 장관과 수석진영의 대대적인 교체가 불가피한 시점에 와있다.

 

 

둘째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는 시스템을 정비하라는 거다. MB는 상고를 다녀야 했고 대학때 환경미화원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을 정도로 어렵게 자랐다고 했지만 그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착각이다.MB는 그렇게 자랐지만 현대건설에 들어간 이후 모든 직장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고 기업인 귀족이었다. 열심히 일은 했겠지만 최고경영자로서 명예를 누리고 부를 쌓으면서 지내온 세월이 수십년이다. 사람은 얼마나 과거를 잘 잊는가. 엊그제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MB의 몸과 마음의 DNA 역시 어릴적 가난이 아니라 현대건설 시절 최고의 CEO 일지 모른다. 본인은 밑바닥 생활을 잘 안다고 말을 하지만 그런 생활을 안한지 수십년 된 사람으로서 현실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강부자(강남의 부동산 부자)'아닌가. 하루 빨리 민의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

 

 시스템 개혁에는 정치력 발휘를 중요한 요소로 삼아야 한다. CEO 대통령 이명박은 정치인 이명박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민과 소통하고 갈등 세력을 포용하는 노련한 정치인 역할이 더 중요하다. 본인 스스로 정치 초년병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종로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불명예스럽게 사퇴하기 전까지 잠시 의정생활을 한게 정치인 생활의 전부 아닌가.서울시장으로서 업적을 남겼지만 그것은 주로 건설행정이었다. 올바른 정치가 무엇인지를 원로들에게 수시로 묻고 배워야 한다.

 

 

 

 미국이 솔선해서 한국을 돕고 MB는 과감한 인적 쇄신과 시스템 개혁에 나선다면 청계천의 촛불이 어둠속에서 헤매는 이 정부를 옳은 길로 안내하는 등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