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3일 토요일 오후. 서울시향이 주최하는 야외 고궁 음악회가 열리는 경희궁에 도착한 것은 시작 시간 보다 한시간 정도 이른 6시30분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려다 자리 배치 상황을 알아보기위해 궁 앞으로 갔다. 입이 쩍 벌어졌다. 발디딜 틈이 없었다. 아무리 무료라지만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일찌감치 나왔을까.시향 지휘자인 정명훈의 이름값을 실감했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가 하이서울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4일부터 11일까지 여는 축제의 전야제 음악회였다. 궁을 주제로 한 페스티발 답게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등 5대 궁궐은 물론 청계천 일대와 서울광장에서 다양한 공연과 전시회가 펼쳐졌다.
주최측이 마련한 좌석은 대략 5000석. 무료였지만 일부 자리는 서울시향에 기부한 사람들이나 행사 관계자및 귀빈을 위한 초대석이었고 나머지는 선착순으로 앉았다.그 뒤로 서 있는 사람, 그 너머로 무대 관람은 포기하고 소리만 듣겠다며 앉아있는 가족과 친구들.족히 1만명은 넘는 듯했다. 초대석은 시작 30분전 까지만 오면 된다고 했지만 그 자리도 상당수 찾다.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배가 꼬르륵 거리기 시작했다. 빵이라도 사올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뒤켠에 서있는 인파을 생각하면 나갔다 들어오기가 불편해 참아야 했지만 음악회가 끝나는 9시 까지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와이프 한테 자리를 내 자리를 보고 있으라고 한 뒤 혼자 나갔다. 정문인 흥화문 쪽으로 갔다. 그곳까지 사람들이 꽉 찼다.


밖으로 나가니 맥도날드가 보였다.반가워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포기했다. 앞에 긴 줄이 보였기 때문이다.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갔다. 작은 구멍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마트도 아닌 조그만 상점.안쪽으로 들어가니 웬걸. 사정은 맥도날드와 비슷했다. 조그만 상점안에 계산을 하려는 사람이 20여명은 족히 됐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쫄쫄이 굶고 있는 와이프 생각에 뒤쪽에 가서 섰다.10여분을 지나서 가까스로 계산대 앞까지 전진했다."오늘 평소보다 100배는 더 팔았죠" 삐질 삐질 땀을 흘리며 계산하던 주인은 "물건이 동났어요" 라며 씩 웃는다.
'문화의 힘'이었다. 문화가 살아 숨쉬면 찾는 사람들이 몰리고 그들이 쓰는 돈으로 주변 상권에 활력이 넘치는 문화의 경제적 효과. 롯데 경기가 열리는 날 부산 야구장 주변이 흥청대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 할까.
빵조가리를 들고 뛰어들어오다 이날 음악회를 주최한 서울시향의 이팔성 대표를 만났다."정말 대단합니다.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몰랐어요." 축하인사에 이 대표도 흐믓한 표정을 지었다.서울시향을 한국 최고의 악단으로 키운 음악 경영인다운 관록이 묻어났다.
음악회를 후원한 ibk기업은행도 뿌듯했을 게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대형 스크린을 통해 ibk의 홍보영상이 관람객들의 귀속을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Welcome to IBK World"로 시작되는 만화 홍보 영상 음악에 맞춰 흥얼 흥얼 했으니 후원 효과는 더 없이 컸으리라. 이 역시 예술의 경제적 효과다. 후원금액은 알 수 없지만 몰려든 인파와 새벽 1시20분 SBS로 방영된 것 까지 감안하면 아깝지 않은 투자였으리라.그들의 투자가 있었기에 서울 시민들이 흐믓한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7시30분.무대 조명이 밝아졌다. 숭정문이(경희궁의 가장 중요한 건물인 숭정전의 정문) 열리면서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한시간 동안 나는 베르디 풋치니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흠뻑 빠져들었다.

뉴저지에 살때 뉴욕의 허파라는 센트럴파크의 야외 음악회에 간적이 있다. 정교하게 다듬어 놓은 , 끝이 안보일 정도로 드넓은 잔디위에 삼삼오여 앉거나 누워 밤하늘을 수놓는 음악을 듣는 것은 축복이었다.
잔디 대신 철제 의자에 앉았지만 명장의 손끝을 타고 나온 아름다운 선율이 경희궁의 고풍스런 분위기를 타고 밤하늘을 수놓은 야외 음악회는 센트랄파크 연주회 못지않은 감동으로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서울시향 , IBK 기업은행 화이팅!!!!
****경희궁은/
1617년(광해군 9) 인경궁(仁慶宮)·자수궁(慈壽宮)과 함께 건축을 시작하여 162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처음에는 경덕궁(慶德宮)이라 하였으나,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고쳤다. 경희궁 자리는 원래 인조(仁祖)의 생부인 정원군(定遠君:뒤에 元宗으로 추존)의 잠저(潛邸)였는데, 여기에 왕기(王氣)가 서렸다고 하여 광해군(光海君)이 빼앗아 궁궐을 지었다.
숭정전(崇政殿)·융복전(隆福殿)·집경당(集慶堂)·흥정당(興政堂)·회상전(會祥殿)·흥화문(與化門) 등의 여러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1829년(순조 29)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燒失)되었으나, 1831년에 중건하였다. 그후 국권피탈 때에는 숭정전·회상전·흥정당·흥화문·황학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일본인들이 들어와 숭정전은 1926년 동국대학교 구내로 이전되고, 2년 후에 흥정당은 광운사(光雲寺)로 이건하였으며, 흥화문은 1832년에 박문사(博文寺)의 산문(山門)으로 이축되었다가 장충동 영빈관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황학정은 1922년 사직단(社稷壇) 뒤 등과정(登科亭) 터로 이건하였다.
1988년 경희궁 복원작업에 착수하여 흥화문은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이건하고, 숭정전은 새 건물을 지어 복원하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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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참여율이 높아진걸 보면여... 현대인의 찌들린 일상을 잊게하고 잠시나마 행복한시간이었겠어여. 문화가 가치창조의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드네요...
덕분에 우리 가족이 즐거웠습니다. 특히 아내와 아들내미가 종아하던데요. 아까 정선생님한테 음악회에 대한 얘기를 올리셨다는 말씀을 듣고서 지면으로 다시한번 감사드림니다. 저도 참으로 좋았습니다.
정선생님 사진이 거시기하군요 하하.......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