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워싱턴에서 경선 패배를 자인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힐러리>
힐러리 클린턴의 눈가에 이슬 같은 물기가 배었다. 대권의 꿈을 접은 이 순간. 경쟁자였던 버락 오바마 일리노이주 출신 초선 의원에게 무릎을 꿇은 그녀의 눈물샘이 결국 터졌다. 경선기간중 힘들었을때도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지지자들이 힘을 보태 일어섰지만 오늘은 아니다.
그녀의 패배는 어디서 온 것일까. 어떻게 고작해야 전체 인구의 10% 밖에 안되는 흑인 출신에게 쓴잔을 마셔야 했을까.
여성의 한계? 글래스 실링(glass ceiling, 유리천장. 회사내에서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차별. 기업은 물론 다른 조직에도 사용되며 여성은 물론 흑인 같은 소수인종의 차별에도 쓰일 수 있음)의 여전히 두터운 벽? 대통령 부인의 한계?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패인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첫째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미국 정치는 돈과 비례한다.선거는 누가 돈을 많이 모으느냐에 달려있다. 오바마는 인터넷을 통해 개미들로부터 한푼 두푼 모았다.티끌은 태산을 이뤘다. 힐러리가 인터넷을 통한 풀뿌리 모금을 시작한 것은 오바마가 이미 훑고 지난간지 1년이 흐른 후였다.이메일, 블랙베리를 활용한 유세전에서도 오바마에게 뒤졌다. 바뀐 시대상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시대변화에 올라타는 것은 이미지가 승패를 가름하는 현대전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기업전쟁이든 정치전쟁이든 이미지를 선점하는 것은 21세기 경쟁시대를 헤쳐나가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쇼를 하라.쇼'라는 카피로 스타덤에 오른 KTF를 봐라. 4000만 국민들이 흥얼거리는 이 한마디는 이미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줬다.
둘째 팀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올드 보이(old boys,옛날 인물)'였다.
초스피드로 바뀌는 요즘의 이미지 전쟁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변화에 능숙한 신세대들이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있거나 옛 관습에 젓어있는 사람들로 이들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선초반 힐러리의 수석 전략가는 마크 J 펜 이었다. 그는 1992년과 96년 남편 클린턴의 대권 쟁취를 뒷받침했던 노련한 정치참모였다. 그가 이끄는 전략가들이 힐러리의 경선전을 진뒤지휘했다. 이들의 결정적 실수는 오바마의 저력을 앝잡아 본 것.그들은 초선의 경험없는 오바마가 대통령 부인으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 많은 힐러리의 대안이 되지 못할 것으로 과신했다.그래서 초반 4-5곳에서 대승을 거둬 오바마의 기세를 꺾으면 대세를 잡을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강했다. 힐러리 진영이 초반 승기를 예상하고 모은 돈을 거의 다 쏟아부었지만 싸움은 갈수록 힘들어졌다. 돈이 말라갔다.
오바마의 메세지인 '변화(change)'의 흡인력이 그렇게 셀 줄 몰랐던 것.힐러리도 변화를 얘기했다. 그러나 액센트가 달랐다. 힐러리는 "변화가 필요한 나라를 이끌 준비가 돼 있는 후보"를 힘주어 역설했지만 "변화"를 단순하게 외친 오바마의 파괴력에 밀렸다
변화 메세지는 오바마가 당선되면 미국이 어떡해든 달라질 것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줬다. 오바마가 '인식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실질과 인식은 다르다. 이미지 시대에는 인식의 힘이 실질의 힘을 누른다.이를 간파하지 못한 힐러리 참모진은 초반 전선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셋째 내분이 일어났다.
패배는 늘 적전분열이나 내부이탈에서 비롯된다.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다는 통설은 힐러지 캠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수석 전략가인 마크 펜과 또다른 핵심 참모인 해롤드 아이크는 오바마라는 대적을 앞에 두고 으르렁거렸다.펜은 중도성향으로 숫자만을 따지는 인물.반면 아이크는 노조에 가까운 자유주의자.그들이 한 팀에서 제대로 선거전략을 세우기 힘들었는데도 한 배에 올라탔다.둘은 원색적인 말로 서로를 비난했다.힐러리의 변호인이자 토론 코치인 로버트 바넷이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제발 그만해"
넷째 작은 실수가 역전의 기회를 날려버렀다.
오바마에 결정적인 위기가 닥쳤다.오바마의 정신적 종교적 스승인 흑인 목사 제레미아 라이트의 원색적인 미국 모독 발언이 공개된후 오바마 인기는 한때 싸늘하게 식었다. '갓뎀 아메리카 (이런 *** 미국,빌어먹을 미국)' 발언을 한 그의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백인들의 지지가 현격하게 떨어졌다. 힐러리에겐 전례없는 기회였다. 힐러리는 그 기회를 작은 실언으로 날려 버렸다.힐러리는 1996년 영부인으로 보스니아를 방문했던 당시 비행장에서 저격수들의 총탄을 피해 차량에 올라야 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당시 영접을 받으며 평온하게 차에 오르는 TV화면이 공개됐다. 엉겹결에 한 작은 거짓말이 대세를 뒤바꿀수도 있는 절호의 찬스를 발로 차버린 셈이다.
다섯째 전술 구사에 한 발 늦었다.
경선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슈퍼 델리기트(super delegates)다. 각 주에 배정된 투표권외에 별도로 투표권을 갖는 사람들이다.민주당 전국위원회 멤버, 민주당 출신 주지사, 상하원, 민주당의 다른 지도자들이다.850명 정도다.이들은 경선중에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후보를 결정짓는 전국위원회에서 표를 던진다.하지만 이들이 힐러리와 오바마 둘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경선기간중 대체로 나타난다.언론은 그들을 포함해 유효 득표수를 계산한다.
힐러리는 주별 유세에서 승기를 잡으면 슈퍼 델리기트도 따라올 줄 알았다. 하지만 경선이 불리하게 진행되자 슈퍼 델리기트 공략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했다.그 사실을 알았을때는 이미 늦었다. 오바마는 몇개월 앞서 슈퍼 델리기트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었던 것.
힐러리의 패배는 기업이든 정부든 승리하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돌아선 민심을 잡으려는 이명박 정부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나 뒤돌아 볼 일이다.

<시카고에서 6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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