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에 '와인 미라클'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파리의 심판이라고 불리는 1976년의 한 사건을 영화한 것인데요. 당시 무명의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들이 샤토 라투르 등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초특급 와인들을 압도하면서 근대 와인 역사상 잊혀지지 않을 명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아마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이란 말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도 아마 이 사건이 계기가 됐을 겁니다. 유명 잡지 편집장을 비롯해 비교 시음에 참가한 9명의 와인 전문가들은 와인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테이스팅을 하고는 맛있다고 생각하는 순서를 백지에 제출했습니다.
이후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마케팅 수단으로 확고히 자리잡습니다. 칠레 체드윅이라는 와이너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들은 베를린을 시작으로 도쿄,토론토,서울 등 주요 도시를 돌며 자사 와인을 프랑스 보르도,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최고급 와인들과 '맞짱'뜨게 하는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서울에선 몇 달 전에 있었는데,저도 테이스터 자격으로 참석을 했습니다. 파리의 심판에 테이스터로 참여했으며 영국의 유명 와인 잡지 편집장을 역임한 인물이 참관인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등장한 와인은 샤토 무통 로칠드,샤토 마고(이상 보르도),사시까이아,티냐넬로(이상 토스카나)를 비롯 체드윅사의 비냐드 체드윅,돈 막시미아노 등이었습니다. 당시 1위의 영예는 샤토 마고가 차지했습니다. 체드윅으로선 아주 만족할 결과는 아니지만 돈 막시미아노가 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저는 돈 막시미아노늘 1위로 뽑았더군요.역시 와인 테이스팅의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이달 초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드루뜨라는 프랑스 네고시앙(와인 도매상)이 자사 와인인 '에쌍'을 샤토 슈발 블랑,샤토 무통 로칠드와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더군요. 물론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요.그날 호텔 레스토랑 소믈리에를 비롯 꽤 많은 전문가들이 참석했는데 다행인 것은 아무도 자신이 마신 와인이 어떤 것인지 맞추질 못했다는 겁니다. 저 역시 '에쌍'만 맞추고 나머진 틀렸습니다.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보르도 생테밀리옹의 최고급 와인인 슈발 블랑을 난생 처음으로 마셨다는 황홀감만은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딱 한가지 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크게 보면 세 가지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파리의 심판이나 체드윅의 예에서 보듯이 맛있는 순서대로 고르라고 한 다음,나중에 해당 와인이 무엇인지 공개하는 식입니다. 두번째는 테이스팅할 와인이 무엇인지 공개는 하되 마실 땐 라벨을 가리고 나중에 자신이 마신 와인이 무엇인지 맞추는 방식입니다. 드루뜨의 사례가 이같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 방법은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책에서 나왔듯이 무작정 해당 와인이 무엇인지 맞추는 겁니다.
사실 마지막 방법으로 언급한 테이스팅은 실제 세계에선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올해 방한한 젠시스 로빈슨 여사(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컬럼니스트)는 자신도 "(이런 방식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아주 복잡한 퍼즐 놀이일 뿐"이라고 일축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재미삼아 할 수는 있을 지언정 쉽게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지요.
첫번째나 두번째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지인들끼리 와인을 마실 때 아주 즐거운 놀이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은박지만 있으면 되거든요. 레스토랑 점원에게 은박지를 빌려서 라벨을 가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놀이를 하면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테이스팅을 하면서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해당 와인의 맛을 머리속에 기억하기가 쉽다는 겁니다. 와인 이름도 쉽게 외워지고요.
단 좀 더 놀이를 재미있게 하려면 다양한 방법을 적용하면 좋습니다.같은 품종이되 생산지가 다른 와인을,혹은 똑같은 와이너리에서 만든 가격대별 와인을,아니면 같은 와인이되 빈티지가 다른 것을 비교하는 식으로 말이죠.<박동휘 최진석 기자의 Wine Island http://blog.hankyung.com/donghui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