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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종말 [시장의 모순]
 

과학과 종교의 종말 


과학은 지식의 범위를 넓히지 못하고 있다. 다만, 깊게 할 뿐이다.

종교는 우리를 높은 곳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깊은 곳으로 이끌고 있다.


과학의 끝이 철학이라면, 종교의 끝은 지옥인가 아니면 신의 죽음인가?

그렇다면 인간 지성의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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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종교의 종말

저자 : 샘 해리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며, 만사가 잘 될 것이다.” 대부분 종교 교리들이 이 이상 장엄하거나 불가해하지는 않다. ‘결국은 모두 잘 될 것이라’ 신앙은 이 명제의 진실성이 현재에 느껴지고 미래에 확보되기 위한 수단으로써 제공된다. 그러한 매커니즘의 ‘실존’, 몇 마디 기도를 하고 빵 한 개를 먹는 것이 효과적인 구원의 수단이라는 사실, 신이 모든 사람을 지켜보고 귀 기울이고 은총을 나눠주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즉, 교리와 현실의 문자적 일치)이 신자들에게 유일무이한 중요성을 띤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신의 책들이 오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있는가? 그 책들 ‘스스로’가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론상의 이러한 블랙홀은 빠른 속도로 우리 세계에서 빛을 앗아가고 있다. 각 세대의 자녀들은 종교적 명제들은 다른 명제들이 거쳐야 하는 정당화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고 교육받기 때문에, 문명화는 아직도 터무니없는 비상식의 공세 아래 놓여있다.


종교가 가지는 문제는 종교라는 그 진실에다 비이성이라는 독약을 너무 많이 섞었다는 점이다. 종교적 도덕공동체라는 개념은 인간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많은 역설들을 해결한다. 나치 수비대가 화장터에서의 매일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의 아이들에게 다정한 아버지가 되는 것은 어찌된 연유인가? 대답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 하루 종일 그가 고문하고 죽였던 유대인들은 그의 도덕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의 도덕 공동체 밖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공동체의 성질과는 정반대되는 존재였다. 유대인에 대해 그가 가진 믿음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었던 자연스런 인간의 동정심과는 동떨어진 무자비함에 길들여졌다. 불행하게도 종교는 여기에 빛보다는 어두움만 보태주었다. 신앙은 인간의 성스러운 관습(주장은 넘쳐나고 증거는 빈약한 것이 특징인)이라는 생각이 최고의 영광으로 인식되기에는 너무나 끔찍하다.  인간 단합에 대한 진정한 이유들을 찾아주기 보다, 종교는 민족 본위의 단합을 제공하고 허구의 사실을 민족의 특징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분명 우리의 종교 전통들은 지적인 면에서 그 효력을 잃었고 정치적으로는 파멸했다. 영적 경험은 인간 정신의 자연적인 경향임에 확실하지만 그것을 구체화시킬 수있는 증거가 부족한 것은 믿을 필요가 없다. 확실히 이성과 영성과 윤리를 우리의 생각 안에 공존시키는 일은 가능해야만 한다. 이는 우리 최대 관심사에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는 일이다. 그것은 또한 신앙의 최후가 될 것이다.




책 제목 : 과학의 종말

저자 : 존 호건


존 호건은 순수과학은 미래의 연구를 통해 지식의 증감은 있을 수 있겠지만, 더 이상 위대한 발견이나 혁명을 낳지 못할 수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가 인터뷰한 과학자들이 말하는 과학의 종말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의 한계

벤틀리 글새스는 “우리는 자연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만 자연을 분석할 수있습니다. 자연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금까지 한번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밀도가 높고, 온도가 낮고, 에너지가 높은 그런 영역으로 말입니다. 이런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근본적인 한계를 밀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정교하고 비싼 장비와 기구들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과학에 지워지는 한계는 바로 인류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2) 발견의 종말

스티브 와인버그는 ‘궁극의 이론에 대한 꿈’에서 초전도 초거대 입자가속기를 비롯해서 그밖의 어떤 가속기도 궁극의 이론을 직접 확인해줄 수없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결국 물리학자들은 그 이론에 다다르기 위한 안내자로 수학적 아름다움이나 일관성에 의존하지 않을 수없는 것이다. 게다가 궁극의 이론은 실제적인 가치를 담고 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가 인정한 사실들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궁극의 이론으로 밝혀지는 우주의 모습이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의미있는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주가 이해가능할 수록 그 모습은 점점 더 무의미해질 것이다.”


3) 과학의 성공

셀던 글래쇼는 과학의 발전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무지하고 반과학적인 궤변가들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가 속한 입자물리학 분야가 “받고 있는 위협은 전적으로 다른 측면에서, 즉 이 분야가 거둔 성공에서” 온다는 것이다. 지난 10년동안의 연구는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을 확증하는 무수한 사례들을 양산했지만, “작은 결함이나 사소한 모순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 우리를 좀더 야심적인 이론으로 인정할 어떤한 실험적 암시나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생물학자인 벤틀리 글래스는 과학이 유한할 뿐만 아니라 이미 그 끝이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마치 거대한 대륙을 탐험하는 탐험가와 흡사하다. 그런데 그 탐험가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거의 모든 방향의 끝까지 도달했고, 주요 산맥과 강들을 지도에 그려넣었다. 아직 채워 넣어야 할 무수한 세부적인 지형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지평선은 남아있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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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생물학 계간지’에서 글래스는 과학이 절정기에 도달하고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할 증거를 제시했다. 생물학 분야에서 발견이 이루어지는 속도에 대한 그의 분석에 따르면 발견의 속도는 생물학자들의 수 및 그들에 대한 지원금의지수함수적 증가와 보조를 맞추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놀라운 업적들이 이루어지는 속도가 부인할 수 없을만큼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수확체감의 시대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런 진전을 계속 유지시키려면 더 많은 과학적 노력이 쏟아부어지고, 더 많은 연구비가 지원되어야만 한다. 이 행진은 곧 멈출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연구에 소요되는 인적자원과 경비에는 극복하기 힘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기에 과학은 너무도 빠른 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발전속도가 무한히 계속되리라는 식의 착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회적 사업으로서의 과학에는 분명히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만약 과학이 금세기 초와 같은 속도로 발전을 계속했다면, 선진 공업국들의 예산 전체를 삼켜버리고 말았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과학, 특히 순수과학에 대한 예산지원에 분명한 제약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명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런 감속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로 1993년 미국 의회가 초전도 초거대 입자가속시 계획을 중단시킨 사건을 들었다. 이 거대한 입자가속기는 물리학자들을 쿼크와 전자 이하의 소우주의 깊은 영역으로 들어갈 수있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장치였으며, 제작에 들어가는 총 비용은 80억달러에 불과했다. 글래스는 생물학에서 위대한 혁명은 이미 지나간 것같다고 말했다. “나로서는 생물의 진화에 대한 다윈의 견해나 유전의 본질에 대한 멘델의 이해와 같은 포괄적이고 중대한 발견이 다시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현재 알려져 있는 지식구조에 새로 많은 지식들이 추가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대한 진전의 상당 부분은 벌써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형성되어가고 있는 개념적 우주에 진실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의 여부가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주류 종교가 말하고 있는 정서적.영적 결핍을 겪고 있음을 부정할 수없다. 그리고 그 것들은 과학적인 방식이건, 다른 방식이건 이 세상을 그저 이해만 하는 것으로는 절대 채워질 수없는 결핍들이다. 우리네 존재에는 확실히 성스러운 차원이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고매한 목적일 수있다. 그러나 그 성스러운 차원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시험 불가능한 명제들, 예를 들어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거나, 꾸란이 신의 말이라는 등을 믿는 신앙은 필요치 않음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채고 있다. 이슬람과 서방세계가 상호 멸망의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미래는 바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경전을 무시하는 법을 배우는 미래다. 우리는 이제 제한없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인류가 서로 공존하는 유일한 길은 믿음을 수정하려는 의지임을 깨달았다. 증거와 주장에 대한 개방성만이 우리 모두가 공존하는 세상을 보존해 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이성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교리에 의해 이견을 보이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증거를 위해 상호에게 질문하는 그러한 정신은 신앙과는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성을 대표하던 ‘신학’과 ‘과학’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종말을 논하는 시대가 되었다. 과학은 스스로의 발전에 힘입어 더 이상 ‘자연의 놀랍고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는 데 실패하고 있고, 그 발전을 지탱해줄 자원의 부족으로 인하여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있다. 대신에 더 좁지만 깊은 세계, 세상의 거의 모든 분야를 현미경처럼 미세하게 분해하여 연구를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것은 과학의 발전했고, 인간의 능력(지적,물질적인 면에서)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학은 스스로의 발전에 의하여 제한받는 반면에, 종교는 그 자체로는 수천년전과 변함이 없으나 인간이 변했기 때문에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고 한다. 샘 해리스의 ‘종교의 종말’은 종교가 종말에 가까워졌다는 뜻이 아니라, ‘종교는 소멸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샘 해리스의 희망과는 달리 종교분쟁은 핵전쟁으로 끝을 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대라는 예수의 기본 가르침을 교회가 어떻게 살인과 약탈의 교리로 변형시켰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야말로 이해할 수없는 수수께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수수께끼가 아니다. 공존 불가능한 다양한 목적들을 정당화하는 성경의 이질성과 명백한 자기 모순은 가장 우선시되는 문제가 아니다. 확실한 범인은 신앙 교리 그 자체이다. 사람이 증거도 없이 어떤 명제(불신자는 지옥가고, 유대인은 아기들의 피를 마신다 등)가 진실임을 믿을 때 그는 그 어떤 일도 할 수있게 된다. 우리 종교들간에 이루어지는 경합은 제로섬 게임이다. 우리의 종교들은 본질적으로 서로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에 종교 폭력의 가능성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있다. 전쟁 기술의 진보로 마침내 종교적 차이점과 종교적 믿음들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었다. 우리는 엄청난 숭의 이웃들이 순교의 형이상학이나 요한계시록의 문자적 진실 혹은 수천년동안 신실한 신도들의 정신을 지배해온 모든 환상적인 개념을 믿는다는 사실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않된다. 왜냐하면 몇몇 종교적 국가들은 지금 생화학 무기와 핵무기로 무장한 상태이니까.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고지식함이 (전쟁과 같은)최종 국면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자인 호킹은 궁극의 이론이 우주에서 신을 배제시키고 모든 신비를 벗겨낼 것이라는 생각이다. 스티브 와인버그와 마찬가지로 호킹 역시 신비주의, 생기론,창조론을 우주의 기원이라는 마지막 도피처로부터 몰아내기를 원했다. 이들 과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이 세상이 법칙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신의 자비에 의하여 작동한다고 보기는 너무 강력한 증거들이 많다. 톰 해리스와 같이 ‘인류평화가 종교에 의하여 망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희망처럼 ‘종교적 정체성의 종말’이 가까워져 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환상과 빛이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인간은 고독함과 자신이 이방인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기억(종교의 종말?)과 약속의 땅에 대한 희망(과학의 종말?)을 박탈당한 그의 유랑생활을 구제할 길은 없다.(카뮈)


시장의모순, 과학의종말, 종교의종말
posted at 2008/03/08 00:19: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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