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벼는 익울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지만, 난 벼가 아니다. 이제 난 좀더 오만해질 필요성을 느낀다. 세상에 대하여 당당하고, 거만하게 대하면서 살 것이다. 사실 난 그동안 너무 겸손했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자신감이 부족했던 거다.
살다보면 자신감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떤 조직의 방패막이도 없이 자기 힘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나, 조직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하는 사람에게나 넘쳐나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자신감이란 놈은 항상 자기에게 붙어있지 않다. 때로는 온 몸에 달라붙어 마치 총을 맞아도 죽지 않을 것같이 만들기도 하지만, 정작 있어야 할 때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 때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 놈이 없으면 머리도 잘 굴러가지 않아 남들이 보기에 터무니없는 일도 저지를 수있다. 그런데 그럴 때는 남들이 충고를 해도 들리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자신감은, 내가 나를 믿는 힘은, 남이 나를 믿도록 강요하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 그 것 참 희한하다고나 할까.
사실 일의 성과와 자신감은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다. 자신감이 있으면 않될 일도 되게한다.
벤처사업을 하고있는 후배이야기다. 이 친구는 정말 온 몸이 패기로 넘쳐있다. 하는 업무분야도 소프트웨어를 프로그래밍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가진 것도 없는 놈이 그야말로 자신에 대한 믿음하나로 버티고 있다. 남들이 보면 사기꾼 소리를 듣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난 그 녀석이 좋다. 녀석의 패기가 좋아서이다.
자신감은 겸손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상당히 약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자는 오만해야 한다. 어차피 수많은 참모와 조언자들이 있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반대하는 사람과 아첨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경영자가 겸손이라는 미덕 때문에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다보면 기업을 평범하게 밖에 경영하지 못한다. 겸손을 강조하다보면 자신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오만한 것이 낫다. 오만함이라는 단어와 자신감이라는 단어는 사실 거의 비슷한 의미다. 단지 자신감은 남을 좀 더 배려한다는 의미를 갖을 뿐이다. 자신감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겸손을 말하기 보다는 오만함의 아픔을 겪고 난 후에 겸손을 말하는 편이 낫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겸손한 것은 자신감의 부족으로 비춰질 수있다. 홍하상이 지은 ‘이병철VS정주영’을 보면 그 들이 겸손했다는 구절은 없다. 만일 정주영이 자신의 처지를 잘알고 겸손하게 처신했다면 아무 것도 세우지 않은 조선소 부지의 사진만을 가지고, 영국에서 차관을 빌리고, 그리스에서 배를 주문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병철이 겸손했다면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반도체 공장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고, 설령 세웠다하더라도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역시 맥스웰 몰츠의 ‘성공의 법칙’을 보아도 성공하기 위하여 겸손하라는 말은 없다. 그러고 보니 성공한 기업가의 미덕중에는 '겸손‘은 없다. 오히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을 추진해가는 실행력이 더 중요한 항목이다. 겸손한 학자나 정치가의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겸손한 장사꾼이나 경영자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토머스 네프등이 지은 ’CEO가 되는 길‘에서도 역시 겸손한 경영자의 모습을 말한 성공한 기업인은 없다. 왜냐하면 기업을 경영하기 위하여는 끝없는 경쟁에서 항상 상대를 이겨야 한다. 겸손하게 ’나는 이만큼만 차지할 테니, 경쟁자인 당신은 이만큼만 차지하시오‘라고 한다면 당장 경쟁자는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려고 할 것이고, 공정거래위원에서 ’담합‘이라고 고발이라도 할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는 경쟁자에 대하여 항상 이길 수있다는 ’오만함‘을 유지하여야 한다. 자신의 회사를 항상 최고로 유지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면 기업은 항상 2등으로 처지고, 결국에는 경쟁에서 낙오된다. 그 것이 경영.경제분야의 주된 논조이다. 그리고 난 주로 그런 류의 책을 읽는다. 내가 읽는 책에는 거의 인간적 겸손이나 자아완성이라는 단어는 없다.
책을 읽다보면 ‘겸손’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다. 경제.경영분야의 책에서 경영자의 겸손의 미덕에 대하여 단 한줄이라도 언급한 책을 아직 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끝없는 성취욕이 강조된다. 그런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의 책이 늘어날 수록 내심의 깊어지는 자신감을 느낄 수있다. 부지런히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나의 지식이 남과 비교하여 모자라지 않을 수있다는 오만감이 함께 섞여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경영을 잘 할 수있다는 자신감이 높아가고 있다. 게다가 난 내가 읽은 책들을 회사의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해볼 수있었다. 그냥 쉽게 말하면 구멍가게에 불과한 규모이지만, 나름대로 세계적인 네트워크도 있고, 브랜드도 있고, 마케팅 전략도 써보고, 경영전략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처럼 경영에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자는 별로 없을 것라는 자신감도 생기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영웅이 되지도 못하였고, 훌륭한 경영자도 되지 못하였다. 그 것은 이제껏 내가 나를 ‘겸손’이라는 잣대로 나를 억눌렀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겸손해지려고 애쓰기 보다는 오만해지려고 한다. 오만할 수 있는 위치에 가야 비로소 겸손의 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겸손이 별 도움이 되지 못함을 다시 깨달았다.
오만과 겸손은 모순이지만, 공존하는 것이다. 책을 읽을 수록 나는 많이 안다고 오만해지지만, 오만의 결과 또한 많이 알수록 또렷해진다. 그 오만함 때문에 내가 쌓아온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있다는 두려움 또한 커져간다. 어느 순간에 뛰쳐나올지 모르는 오만함은 주위 사람을 무시할 수도 있다. 그로 인하여 나에 대한 주위의 평가는 바닥으로 내팽겨쳐질 수도 있고, 나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 모든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수있다는 두려움 엮시 커져간다. 그 두려움은 나로 하여금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지만 이 책의 독자들에게는 겸손하기 보다는 차라리 오만해지라고 권한다. 골프를 칠 때 홀에 공을 쳐넣는다. 이 때 힘조절을 적게 주면 홀에 못미쳐서 공이 멈춰버린다. 그래서 차라리 공이 홀을 지나칠 정도의 힘을 더 많이 주어야 한다. 살면서 '겸손' 때문에 힘을 줄이기 보다는 차라리 ‘조금만 더 오만’한 것이 낫다.
이제 독자에게 묻습니다.
오만해질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그럼 그 오만을 어떻게 표현하실 건가요?
근거없는 자신감은 자만이고, 표현이 정제되지 오만은 ‘허풍’이 되버립니다.
이제까지 했던 모든 오류들은 하늘이 다 여러분을 가르치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험난한 과정을 거친 뒤에 인류의 발전을 위하여 여러분이 성공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주위사람들에게 겸손하게 설명할 수있다면, 여러분은 ‘오만의 도’를 깨우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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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을
오만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믿어야 한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는 오만해질 수없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감을 살려주는 책부터 보자.
그런 다음에 오만해지기 위해서는 오만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알아야 한다. 우선 잭 웰치의 책을 읽자. 수 많은 사람을 해고하고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면서 살고있는 잭 웰치가 얼마나 오만한지 알 필요가 있다. ‘중성자 탄’이라는 비난을 무시해버리면서 자신감있게 경영하였던 힘을 배우자. 오만과 허풍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조조’의 치밀한 전략을 겸비한 실행력과 ‘장비’의 보이는 힘에 근거한 성급함의 차이점을 다시 읽어보자.
그리고 나만 자신감을 갖아서는 일이 않된다. 왜냐하면 세상은 주위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하 직원, 동료, 상사의 자신감을 세워야 한다. 자신감으로 뭉친 나의 협력자들이 바로 나의 힘이다. 나의 자신감을 전염시켜야 한다. 그 것은 바로 ‘칭찬’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부하.동료들에게는 칭찬을 하자. 그리고 상사에게는 기분좋은 ‘아부’를 하는 것이다. 전유성이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고 했다. 내가 아부하는 것은 나의 상사도 안다. 그렇지만 자기 잘났다고 대드는 놈보다, 자기를 낮추고 아부하는 부하가 예뻐보이는 것은 사람인 이상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지나치게 오만해서는 않될 경고문으로 ‘기업 성장을 방해하는 10가지 증상’을 읽자. 항상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오만한 생각이 치명적인 결과를 나타내는, 그래서 거꾸로 ‘자신의 부족함’을 항상 인식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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