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우리는 무언가를 풀어가는 민족이라고 했다. 이어령교수가 한일문화를 비교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풀어가면서 생활하는 민족이라서, 매듭도 풀고, 원한도 풀고, 출산도 몸을 푼다고 하고, 긴장도 풀어버린다. 풀다 풀다 더 이상 풀게 없는 상태인 심심한 상태도 풀어버린다. 그래서 심심풀이 땅콩이 나온다.
그런데 살다보면 이렇게 심심한 상태가 참 많다. 특히 버스, 지하철, 비행기 등 운송수단을 타고 다니는 시간은 정말 심심한 시간이다. 무엇을 할 수가 없는 공간이고, 시간이다. 그저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도착하기만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나하고 돌아보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통화하기도 하고, MP3를 듣고, 잠을 자고한다. 발달된 디지털 기기 덕분에 요즘은 누구나 지겨울 시간이 별로 없는 것같다. 지하철에서 보면 핸드 폰이 있는 사람은 문자 메세지를 나누거나, 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 딸아이도 보면, 길을 걸어가면서도 친구들과 계속해서 문자를 주고받고, 핸드 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팔짱을 끼고 같이 걸어가지만, 사실 따로 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난 그런 딸과 걸어가는 게 마음이 편치 않은 데,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한다. 우선 핸드폰을 할 수 있는 것을 나열해보자. 전화통화, 계산기, 전자사전, 게임, 디지털 카메라, MP3, 문자 메시지, 메모장, 전자수첩. 아마 이 정도는 요즘 핸드폰의 기본 사양이지 결코 고급 사양은 아니다. 게다가 조금 더 고급이라면 전자북,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들어갈 수도 있다.
제러미 러프킨은 ‘소유의 종말’에서 우리가 즐기는 수단이 다양해졌음을 과거 돈을 천시하던 예술가덕임을 말한다. 슈퍼마켓에 없다뿐이지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이 어디 상품뿐이랴. 과거에는 그야말로 가진 자들의 과시적 소비로만 여겨졌던 예술마저도 이제는 상품의 범주에 들어가고 있다. 예술과 예술가를 시장에 빼앗긴 문화는 공유하는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고 생산하고 창조할 수 있는 강력한 목소리를 상실했다. 이런 문화적 고사 상태의 의미를 사람들이 처음으로 절감하게 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앤디 워홀이 캠벨사의 수프 통조림같은 상품을 그려서 예술 작품이라고 내놓았을 때 전통 문화는 벌써 소비문화로 이행한 지 오래였다. 한때는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던 예술이 이제는 시장이 내세우는 가치의 가장 중요한 전달자, 가장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다. 과거 문화란 비교적 여유가 있는 계층들이 남는 시간을 보다 고상하게 즐기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제 문화란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즐기는 수단이 되었다. 본질은 같지만, 소비자의 지불 가능액수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생산품은 예술가의 혼이 담긴 작품이 아니라, 시장의 수요에 따라 판매를 미리 염두에 두고 생산되는 것이다. 마치 공장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문화.예술 -> 귀족, 부유층의 심심풀이
엔터테인먼트 -> 부류에 상관이 없음. 다만, 지불능력에 따라 종류가 나누어지는 심심풀이
컨텐츠 -> 디지털 기기에 들어가 있는 모든 종류의 심심풀이들
앨 리버만은 ‘엔터테인먼트 마케팅혁명’에서 오늘날의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는, 크리에이티브 상품이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금맥처럼 눈앞에 보이는 시장을 정확히 반영하는 전략적 조사 분석 과정을 통해 양산된다고 하였다. 이는 곧 문화산업이라는 말의 등장으로 대변한다. 이전에는 인간본성의 가장 고급한 특성으로 소수의 특권층과 향유하던 예술은 ‘소비자들이 지불할 의사’만큼을 인정하는 상품으로서 인정을 받아야만 하게 되었고, 예술가 또한 문화라는 경제 분야에서 경쟁을 하기 위한 생산자로서 간주되기 시작하였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지배받는 문화시장에서 예술과 오락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을 통털어 문화산업으로 불리우면서,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의 중요한 생산수단으로 변모할 뿐이다.
이제 문화는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기기 속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콘텐츠 산업이 커질수록 그 컨텐츠를 즐기는 방법은 점점 단일화되고 있다. 핸드 폰이다. 이 세상의 온갖 문화와 예술이 단 하나의 수단으로 흡수되고 있으며, 따라서 문화와 예술의 형식도 디지털에 맞도록 적응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제 핸드폰만 있으면, 영화.드라마.공연 예술.책등 온갖 즐거움뿐만 아니라, 모빌 인터넷과 동영상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제 마음을 따로 먹을 필요도 없다. 어디서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을 수있고, 볼 수있다. 정말 내가 보기에 요즘 사람들은 심심할 틈이 없다. 할 일은 없어도 즐길 만한 수단과 내용이 무척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컨텐츠가 들어있는 디지털기기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왜 번거롭게 책을 한권 더 들고 다녀야지?’라고 물으신다면.........................
물론 디지털은 책이 갖지 못하는 장점도 있다. 손바닥만한 기기하나면 책 100권이 들어가니 얼마든지 다양한 아이템을 즐길 수있으니 그 유혹 또한 만만치 않다. 나도 그런 장점 때문에 PDA를 사고, 전자사전을 샀으니까. 그러나 디지털 기기는 우선 화면이 너무 작다. 그래서 핸드폰이나 휴대폰 PDA의 조금 더 넓은 화면도 책만한 넓이는 아닐 뿐더러, 일목요연하지가 않다. 기차든 버스든 끊임없이 조금씩 흔들리는 곳에서 조그만 스크린을 보기에는 눈이 너무 피곤하다. 눈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책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읽은 책을 모아놓은 책장을 둘러보는 재미 또한 디지털 심심풀이가 주지 못하는 것중의 하나이다.
나의 책장에는 책들이 어떤 종류별로 분류해서 놓지는 않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책장에 꽂혀있다. 경제.경영분야, 취미로 하는 사진이나, 컴퓨터 관련 책이나, 인문서적이나, 과학관련 서적이 마구 뒤섞여 있다. 한번은 정리해볼까도 했지만, 우선 수자도 많지 않은데다가, 한군데 모아놓여 있으니 책 전체가 한눈에 다 들어오니까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래도 어느 한권을 책을 다시 보려면 책장 전체를 흟어 보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핑계 김에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모든 책들에게 눈인사를 주게 되니 이 또한 즐거움이다. 어떤 때는 멍한 상태로 그저 책장만을 쳐다보는 일도 많다. 무슨 특별한 아이디어를 찾는다기 보다는 책장을 그냥 보는 것이다. 책이 늘어나면서 그런 일들이 많아졌다. 때로는 내 자신이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이렇게 노력하면서 살고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빠져들다보면 책장은 내가 세워가는 ‘유토피아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비춰주는 스크린이 되어있곤 한다.
나의 책, 언젠가 갖게 될 나의 서재는 아들에게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 놈은 그 놈의 책과 서재를 따로 갖도록 할려고 한다. 똑같지 않은 생각을 하고, 똑같지 않은 삶을 살아갈 텐데, 나의 책을 물려줄 필요가 없다. 설령 똑같은 책을 필요로 하더라도, 그 책에 쓰게될 낙서는 다른 내용이 될 터이니까.
욕심같아서는 내 무덤에 서재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싶다. 별다른 취미거리가 없는 불쌍한 내 영혼은 분명 천국에서도 별로 할거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심풀이 땅콩은 정말 맛있다. 심심풀이로 읽는 책도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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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이런 책을
돌아다니면서 심심할 시간이 많을 것같을 때는 적당한 부피의 읽지 않은 책을 가지고 나가는 게 좋다. 너무 얇거나, 거의 다 읽은 책은 길거리에서 다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너무 부피가 큰 책은 들고 다니기에 부담스럽다. 그리고 내용도 조금은 가벼운 게 좋다. 왜냐하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내리다 보면 읽는 흐름이 자주 끊어진다. 따라서 문단이나 각 장이 길지 않고, 중간 중간에 다른 일을 해도 지장을 받지 않는 책이 적당한다. 마시멜로나 배려와 같은 우화집들도 괜찮다. 여행관련 책, 사진집과 같은 취미서적도 좋고, 월간지. 주간지류도 외출했을 때 심심풀이로 읽을 만하다.
하지만 심심하더라도 돌아다니면서 심심하지 않고, 사무실. 장거리여행. 다방과 같은 곳에서 오래 기다리면서 심심할 것같으면 좀 무겁고, 심각한 내용의 책을 권한다.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사색하면서 읽을 수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기왕에 서재와 책장을 갖추신 분들께는 별로 할말이 없지만, 책장을 살 때는 책의 높낮이를 고려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책장을 주문할 때 책을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책을 놓는 높이를 일정하게 하는 바람에 공간의 낭비가 많았다. 그리고 될수록이면 책장에는 유리를 끼우는 것이 좋다. 먼지가 많이 끼는 데다, 남의 손타는 것을 방지하기에 딱 좋다. 그리고 책장에는 책만 꽂아두는 게 보기에도 편하고, 정리도 잘된다. 책장에 cd나 잡지를 꽂아두면 분위기가 매우 산만해진다. 책 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천천히 보다보면 그 자체로 빠져들 때가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