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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가족, 사회학적 가족
생물학적 가족은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다.
사회학적 가족은 유전자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유전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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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이기적 유전자
저자 : 리차드 도킨스
유성생식은 자기 복제가 아니다. 개체군이 다른 개체군에 의해 오염되듯이 한 개체의 자손은 성적 파트너에 의해 오염된다. 당신의 자식은 당신의 절반밖에 안되고, 당신의 손자는 당신의 1/4밖에 안된다. 몇 세대가 지났을 때, 기껏해야 당신은 당신의 아주 작은 부분-몇 개의 유전자-을 가진 다수의 자손을 기대할 수있을 뿐이다. 비록 자손들이 당신의 성(姓)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개체는 안정한 것이 아니다. 정처없이 떠도는 존재이다. 염색체 또한 트럼프 놀이의 카드처럼 즉시 섞이고 곧바로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섞인 카드 자체는 살아남는다. 바로 이 카드가 유전자이다. 유전자는 교차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고 단지 파트너를 바꾸어 행진을 계속할 따름이다. 물론 유전자들은 계속 행진한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유전자들은 자기 복제자이고 우리는 유전자들의 생존기계인 것이다. 유전자는 질질학적 시간을 사는 거주자이다. 유전자는 영원하다.1)
개개의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것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증대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개개의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어 이를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 책에서 우리는 ‘그것’이 다수의 다른 개체내에 동시에 존재하는 분산된 존재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유전자가 남의 몸속에 앉아있는 자기 복제까지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개체의 이타주의로 나타나겠지만 그 것은 어디까지나 유전자의 이기주의에서 생겨난 것이다.2)
책 제목 : 가족사회학
저자 : 조 정문, 장 상희
전통적 관점은 법적 결혼, 자녀양육, 합법적이고 배타적인 성생활등을 가족의 고유한 기능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동거가족, 자녀양육을 하지 않는 무자녀 가족, 성생활을 부부관계에만 한정하지 않는 가족 등 전통적 관점이 강조하고 있는 기능들을 수행하지 않는 가족들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가족 정의는 이런 가족들을 포함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전통적 관점은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을 보편적인 가족제도로 암묵적으로 가정한다. 하지만 핵가족이외의 가족도 많다.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적 가족 생활들이 등장하고 있다. 동거가족, 무자녀 가족뿐만 아니라 독신가족, 동성애 가족, 한부모가족, 재혼가족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가족들은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 관점에 따르면 비정상적 가족으로 볼 수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다양한 가족생활들도 정상적인 가족생활 속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가족정의의 문제점으로 인해, 최근에는 전통적인 가족을 가족 연구의 준거로 삼을 것이 아니라 가구(household)를 가족 연구의 준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3)
물론 다양한 가족들을 가족에 포함시키게 되면 가족의 정의에 혼란이 생길 수있다. 가족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에 의하면, 가족은 자녀양육, 소비활동, 성생활, 공동거주 등이 이루어지는 단위이다. 그러나 무자녀 가족은 자녀양육을 하지 않으며, 성적으로 개방된 결혼에서는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도 성생활을 허용한다. 따라서 고전적인 가족정의는 다양한 가족을 포함시키는데 한계가 있으며, 다양한 가족생활들을 가족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가족을 <일상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직된 항구적인 집단>정도로 폭넓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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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는 느슨하면서도 자율적인 사회관계가 확산될 것이며, 이러한 인간관계는 전자공간에만 한정되지 않고 가족생활에도 스며들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남성과 여성간의 성역할 구분이 약화되면서 부부간 상호 독립이 강조될 것으로 그리고 부모-자녀 관계에서는 세대차이가 커지고 부모의 자녀에 대한 권위가 약화되면서 부모와 자녀간의 자율이 강조될 것으로 지적되었다. 이렇게 된다면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개성과 자유 그리고 자율을 억압하는 가족생활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서로를 구속하는 결혼보다는 독신이나 동거, 일단 결혼 한 후에도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개방결혼, 서로가 서로를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 때는 언제라도 헤어질 수있는 결혼생활등도 나타날 수있다. 가족 구성원의 자율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현대사회에서는 핵가족의 배타성, 즉 핵가족 중심의 일상생활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있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독신으로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자유롭게 공동체를 결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취미나 가치관이 유사한 사람들이 공동가족을 결정하기도 할 것이다.5) 공동가족도 구성원 상호간 친밀감과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면에서는 전통적인 가족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전통가족처럼 혈연, 상대방에 대한 구속, 의무, 위계적 관계,의존,몰입 등에 기초하지 않고 개인의 선택, 자율, 수평적 관계, 개방성등을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은 약화되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수있는 새로운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6)
비전통적인 가족의 유형을 살펴보면 독신가족, 자발적 무자녀 가족, 동거가족, 한부모 가족, 집단혼적 가족, 동성커플등이 있다. 이들 가족의 특징을 살펴보면 전혀 이기적 유전자의 특성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유전자’는 자신의 복제자를 영원히 존재시키기 위하여 자신이 들어가있는 개체(사람, 동물등)를 더 많이 퍼지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비전통적 가족들은 일단 자식을 낳는 데 소극적이거나,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인간은 과연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유전자의 개체지배’를 벗어난 것인가?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동물이 스스로 개체수의 조절하는 이유는 두가지로 말하고 있다. 1) 집단을 위한 자원을 과잉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2) 자기의 살아남는 새끼 수를 실제로 최대화하기 위해서, 즉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을 받아 산아제한을 실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이론이든 그 동물들이 행하는 ‘개체수 조절행태’에는 이견이 없다.
이들 동물들이 산아제한을 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생활구역내의 동종 개체들의 ‘밀도’에 영향을 받는다. 윈-에드워즈에 의하면 저녁때 찌르레기가 큰 무리를 이루거나 많은 모기가 문기둥의 상공을 윙윙거리고 있을 때 그들은 스스로 자기 개체군의 밀도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른 그의 주장은 개체는 무리 전체의 이익을 위해 출생률을 자제하고, 개체군의 밀도가 높을 때는 출생률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므로, 그들이 개체군의 밀도를 추정하는 어떤 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7) 생각이다. 그 수단에 대하여는 유전자의 도박이라는 학자도 있고, 호르몬의 영향이라는 학자도 있지만, 일단 밀도조사가 끝나면 동물들은 개체수를 조절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를 어미 새를 예로 들자. 어미새는 애낳기와 애키우기 사이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한 마리의 어미새 또는 한 쌍의 짝이 구할 수있는 먹이와 자원의 총량이 그들이 키울 수있는 새끼 수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동물학자인 데이비드 랙에 의하면 자연선택은 이들 한정된 자원들로부터 최대의 유리함을 유도하도록 초기의 한 둥지의 알의 수를 조정한다고 한다.8)
왜냐하면 과다하게 출산하는 개체가 불리하게 되는 이유는 개체군 전체가 그 때문에 절멸해버리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새끼 중에 살아남는 수가 적기 때문이다. 과잉 산란 유전자는 이것들을 지닌 새끼들 중 소수만이 성체에 달하므로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일이 없다.9) 지나치게 많이 새끼를 낳는 것보다는 한정된 자원하에서 적당한 개체수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새끼들의 생존을 보장해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어떻게 해서 적정한 수의 개체수를 유지할까?
세력권 : 많은 동물들은 어떤 범위의 지역을 방위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 데, 박물학자들은 그 지역을 가리켜 ‘세력권’이라 한다. 대개의 암놈은 세력권이 없는 수놈과는 짝짓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사귀던 수놈이 패하고 다른 수놈이 그 세력권을 차지하면 암놈은 재빠르게 그 승자편으로 자리바꿈을 하는 일도 종종 있다. 성실히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종의 경우에도 암놈은 수놈과 개체적으로 결합되기 보다는 오히려 수놈이 소유하는 세력권과 결혼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개체군이 낳을 수있는 새끼의 총수는 이용가능한 세력권 수에 의해 제한되고 만다. 10)
순위제 : 많은 동물의 집단에서 각 개체가 서로 개체로서의 특징을 배우고 다시 누구과 싸울 경우, 누구에게는 이기고 누구에게는 항상 패하는 가를 학습한다. 그 결과 각 개체는 각 개체는 싸워도 이길 자신이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상대에 대해서는 그들은 싸우지 않고 항복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순위제’라고 한다. 윈-에드워즈에 의하면 세력권내에서 순위가 높은 수놈만이 번식할 수있다는 규칙이 ‘감수’되는 결과 개체수는 별로 증가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너무 많은 새끼를 낳은 수에야 비로소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대신에 동물의 개체군은 순위와 세력권을 가지고 형식적인 다툼을 이용하여 실제로 기아에 의한 희생자가 발생할 수있는 수준보다 약간 적게 개체수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11)
어째 요즘의 우리 사회를 보는 것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좁은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지난 수십년간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이제는 일자리가 오히려 급격히 줄어드는 형국이다. 결국 밀도는 높아지고,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일자리는 줄어들고.
지금까지는 가족이라는 집단의 영속과 번영 그리고 개인의 가족에 대한 몰입을 강조해왔다면, 정보사회에서 가족에게 주어진 과제는 가족이라는 네트워크에 속해 있는 개인의 개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원활한 교류를 유지하는 것이 될 것이다.12) 그리고 이런 가족은 가장이라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의사소통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점 그리고 응집된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연결망으로서 가능하다는 점에서 네트워크 가족이라는 명칭도13)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서로 공통된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거나 보통의 가족이라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것보다 적은,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집합체들을 가족이라고 부를 수있을까? ‘이기적 유전자’의 지시를 받지않은 그들 사이에서 과연 서로간에 ‘이타적 행동’이 어느 만큼 나올 수 있을까? 공동체 구성원간의 친밀감이 생물학적 연대감을 초월할 수있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에서는 이제 생물학적 가족은 줄어들고, 사회학적 가족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인간에게도 ‘지나치게 높은 밀도와 제한받는 자원’이 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결국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다름없이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면 현재의 ‘저출산’은 분명 동물세계의 ‘개체수 조절행동’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학적 가족이 늘어나는 것은 ‘개체수 조절행동’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볼 수있다.
동물세계나 인간세계나 결국 생태계의 유지를 위하여는 ‘먹고 살만한 환경’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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