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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발전은 자유를 가져다 준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견제를 받고 있다.
자유를 바탕으로 발전한 두 체제의 분리는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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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자유로서의 발전
저자 : 아미티아 센
발전은 부자유의 주요 원천인 국가의 과도한 억압과 같은 것들의 제거만이 아니라, 빈약한 경제적 기회로 인한 빈곤 역시 없애야 한다. 전례없는 전반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현대 세계에는 과반수가 넘는 많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자유마저 부정되고 있다. 실질적 자유의 결핍은 경제적 빈곤과 직접적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더 많은 소득과 부를 원하는 이유들은 많다. 그러나 소득과 부 자체가 바람직한 목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가치있는 삶을 가져다줄 더 큰 자유라는 목적에 대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부의 유용성은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있는 가에 있다. 부는 우리가 실질적 자유를 성취하도록 도와준다. 부의 원천인 시장은 전형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득과 부의 경제적 기회를 확장하도록 작용한다. 시장 매커니즘을 임의로 통제하면, 시장의 부재에 따른 결과로 인해 자유가 제한 될 수있다. 경제적 기회의 박탈은 사람들이 시장이 제공하는 경제적 기회와 긍정적 결과를 갖지 못할 때 생길 수있다. 일반적으로 시장 시스템이 빠른 경제성장과 생활 수준 향상의 원동력이 된다는 경험적 증거들이 많다. 시장 기회를 제한하는 정책은 시장 시스템에 의한 경제 번영으로 생길 수있는 실질적인 자유의 증진을 제한할 수있다.
경제적 번영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선택권의 자유를 갖게 하고 더 성취감있는 삶을 살 수있게 한다. 마찬가지로 더 많은 교육, 향상된 건강관리, 향상된 의료보호, 그리고 사람들이 실제로 향유해야 할 실제적인 자유에 영향을 미칠 수있는 원인이 되는 다른 요소들 역시 성취감있는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은 “사회적 발전”이 진정 “발전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단. 왜냐하면 이와 같은 것들은 생산성, 경제성장, 개인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더 오랫동안 더 자유로우며, 더 풍족한 삶을 살 수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자유란 발전의 근본적인 목적일 뿐만 아니라 일차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안전을 증진시킨다. 교육과 보건시설의 형태로 나타나는 사회적 기회들은 경제적 참여를 제고한다. 거래와 생산에 참여하기 위한 기회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제적 편의성은 사회적 시설을 위한 공공 자원 뿐만 아니라 개인의 풍요를 가져온다. 상이한 유형의 자유들은 서로를 강화시킨다. 그리고 발전을 통한 자유의 증대는 인간을 도구적 수단으로서의 ‘인간자본’이 아닌 목적적 수단으로 중요시하는 ‘인간능력’의 향상에 주목해야 한다.
개인적인 자유는 시장, 행정부, 정당 반정부적 조직, 사법부, 대중매체 그리고 일반적인 사회공동체등 사회적 다양성을 통하여 이루지고, 사회적 발전은 이러한 다양한 제도와 그들의 상호 작용의 통합에 의하여 이루어 진다. 이처럼 수많은 조각들이 ‘개인의 자유 신장’과 ‘사회적 공익’이 공헌할 때 ‘자유로서의 발전’은 이루어질 것이다.
책 제목 : 부와 민주주의
저자 : 케빈 필립스
1982년에서 1999년 사이에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4백명의 평균 순자산은 1982년의 2억3천만 달러에서 26억 달러로 증가했는 데 이는 명목가치로 10배이상의 증가이며 불변 가격으로는 5배이상이다. 약 1백만 가구가 넘는 최상위 1% 전체가 명목가치로는 150%정도, 실질 가치로는 75%정도 재산이 늘어났다. 반면 인플레 조정뒤 미국인 중간층 20%의 (주택 자산을 포함한)순자산 가치는 1983년에서 1995년 사이에 10% 하락했다가 1998년과 1999년 증가했으나 2000~2001년 다시 하락했다. 금전적 자산가치의 하락 뿐만 아나라, 90년대 들어 각종 혜택과 의로보험 수혜 폭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 점도 저소득층 비숙련 노동자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1982년~1996년간 오랫동안 계급간 형평의 제고에 크게 기여해 온 것으로 간주된 이 혜택은 상층부에는 풍부하게, 하층부에는 인색하게 주어지게 된 것이다. 하층부에서는 노동자들의 임시직 비율이 늘어나고 이들은 각종 혜택에서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노동 통계국에 따르면 최하위 10% 노동자의 26%만이 기업이 제공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 데, 이는 1982년의 49%보다 크게 감소한 것이었다. 중간층 종업원들의 경우에는 1996년 84%였는 데 이 역시 1982년의 90%보다 감소한 것이다.
이와 같은 노동자와 공동체의 희생으로 얻어진 기업이윤은 자본과 주주들에게 흘러들어갔다. 2000년 현재 개인 투자가들이 갖고 있는 전체 주식의 40%정도를 최상층 1%가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1950년의 고용확대, 공동체의 복지, 민주적 자본주의에 대한 헌신의 이면에서 국지적이고 협소한 부의 집중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그들이 지고 있는 정치적 부채는 미국에서 근대적 기업의 등장은 언제나 정치에 의존했다는 점이다. 시장을 신성시하거나 자유방임을 선전하는 연설은 박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오직 정부만 관련 법규를 바꿀 수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대중의 영향력은 비선출직 전문가들이 국가의 정책 결정에 전례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줄어들었다. 법관과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역할은 확대되었고, 백악관과 의회에 대한 기업과 은행의 영향력은 선거운동 기부금과 로비 자금이 커지는 것에 비례해서 증대되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서구의 유권자들은 경제에 대한 정치적이고 대중적인 통제권을 상실하고 있다. 사실상 “탈 민주화”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부는 시장과 정치, 양자의 산물이다. 역사학자 윌 듀런트와 에이리얼 듀런트에게는 “부의 집중은 능력의 집중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이며 역사에서 정기적으로 반복된다. 부의 집중속도는 도덕과 법이 허용한 경제적 자유에 따라 다양하다......... 최대의 자유를 허용하는 민주주의는 부의 집중을 가속화시킨다. ” 그러나 그들은 폭력적이든 평화적이든 부의 재분배는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 부와 분배를 재촉진하는 민주주의 간에는 내적인 긴장이 존재한다. 하지만 21세기 미국이 직면한 부와 민주주의의 불균형은 최소한 전통적인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더 이상 지탱할 수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장신학(theology)과 비선출직(관료, 기업 경영인, 금융자본가등) 리더십이 정치와 선거를 대체하고 있다.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민주주의를 새롭게 할 것인지, 아니면 부가 새롭고 덜 민주적인 체제-다른 이름으로 말하면 금권정치를 공고하게 만들 것인지의 기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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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비참함을 제거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쓸모없는 정치적 자유와 시민권을 보장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경제적 필요의 강력함이 정치적인 자유의 절박성을 제거하기보다는 증가시킨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부와 민주주의가 양립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공화국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문제이다. 18세기말과 19세기 초 외관상 평등한 사회처럼 보인 미국도 조만간 유럽못지 않게 부가 집중될 수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소수의 엘리트들은 이를 은근히 희망하고 있다. (부와 민주주의에서)
두 권의 책은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지만, 인간의 삶에 질에 대한 순서적 과정이라고 볼 수있다. ‘....발전’은 인간이 자유를 이루기 위한 발전에는 필수적으로 경제적 발전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정치적 발전과 경제적 발전은 상관성이 별로 없으며, 때로는 경쟁적이기 조차 하다고 하는 것이다.
우선 아미티아 센이 말하는 자유스러우면서 발전된 국가의 모델을 예로 들자. 아마도 ‘미국’이 가장 적합한 예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야말로 20세기 전반에 걸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가장 잘 발전시킨 대표적인 국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나라도 있고, 미국보다 더 민주적인 나라도 있겠지만, 미국처럼 두 개의 체제를 같이 발전시킨 나라는 없다. 문제는 발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이다. 발전은 자유의 가능성과 맺어진 중대한 약속이다. 때문에 발전에 대한 개념은 부의 축적, GNP 및 다른 소득관련 변수들의 증대를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 경제 성장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것을 넘어서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인 시장매커니즘이 효율성에 기여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효율성이 번영과 풍요 또는 효용들에 의해 판단되는 전통적인 경제적 결과들은 개인의 자유라는 관점에서도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효율성의 결과는 그 자체가 분배상의 평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시장 메커니즘의 자유-효율성과 자유-불평등 문제의 심각성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심각한 권리의 박탈과 빈곤은 평등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민주적 사회이거나 소수의 수중에 부가 집중된 사회는 양립할 수없다. 그러나 사회는 자신의 리듬을 지니고 있어 성장과 몰락의 패턴을 반복하는 데, 이 과도기에만 두가지가 일시적으로 둘다 가질 수있다. 확실히 이러한 주기성은 시장 절대주의를 우롱하는 것이다. 투기의 붕괴, 과잉공급, 독점에 의한 왜곡등이 주기적으로 생겨날 때마다 시장 선봉자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적 관점은 빗나갔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쉽게 중첩되고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반드시 분리되어 유지되어야 한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브래들리는 미국의 정치가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 둘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미국의 이상을 이루고 있는 각기 다른 부분들이며 그 이상을 살아 있는 것으로 유지하는 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타락시키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에 달려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혼동이라고 했다. 그 혼동의 예로, 1984년 정치학자 존 잘러와 허버트 맥클로스키의 연구결과는 “분명하게 (평등,자유, 사회적 책임 그리고 복지 일반을 강조하는) 민주적 가치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이 (재산, 이윤 시장이라는) 자본주의의 원칙에 대해 가장 낮은 지지를 보였으며, 역으로 자본주의의 원칙에 대한 지지가 강할 수록 민주적 가치에 대한 지지가 낮게 나타났음”을 보여주었다.
시장과 정치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애매모호한 논리는 결국 매우 단순화시킬 수있다. ‘달러 한 장에 투표권 한 장’, 불평등은 현금이 추동하는 시장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 많이 소유할 수록 더 많이 구매할 수있다. 구매는 선이다. 구매력이 커질수록 당신의 행동은 더 정당화될 수있다. 구매행위는 시장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사업과 부가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민주정치는 구매가 아닌 투표가 핵심 행위이며, 조직된 자금력에 비해 열세에 놓여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상받을 수있는 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보면 완전한 정보의 유통을 전제로 하는 시장매커니즘의 힘은 사회적 평등과 정의를 위한 기초적인 사회적 기회들을 창출할 수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와 발전’이 가장 많이 결합된 모델이라고 할 수있는 미국에서 부는 정치의 부패와,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숭배 논리와 경제적 진화론에 힘입어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1979년에서 1989년 사이 미국에서 인구의 최상위 1%가 차지하는 부의 비율은 22%에서 39%로 거의 배가까이 늘어났다. 90년대 중분 일부 경제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70년대 중반 이후 늘어난 모든 소득의 70%가 인구의 최상위 1%에게 돌아갔다. 또한 1945년 이후 수십년동안 조직 노동자의 수가 최고조에 이르고 포드나 GE의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유럽의 은행경영진보다 잘살던 시절, 미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일본이나 유럽의 국가보다 적었다. 1980년까지 미국인들은 아직 일본인보다는 노동시간이 적었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인보다는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냈다. 1990년에서 1995년 상이 미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드디어 일본의 일중독자보다 많아져 1999년의 ILO(국제노동기구)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은 선진 산업국가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가 되었다.
한마디로 ‘부는 편중되었고, 삶의 질은 악회되었다’는 뜻이다.
‘....발전’은 인류사회가 당연히 가야할 과정을 말했지만, 그 결과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 해결방법의 초점은 재화 그 자체가 아니라 재화에 의해 얻을 수있는 자유에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아미티아 센은 알고 있을까?
그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다. “......뿐만 아니라 과정에 대한 고려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직 그도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