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정말 마음놓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이 즐거울 때이다. 업무상으로 즐거운 것은 금방 사라지게 된다. 항상 후속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업무상의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다. 아무리 태산같은 즐거움이라도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이 커지면 커지는 대로 즐거운 걱정, 일이 줄어들면 줄어드는 대로 괴로운 걱정이다. 하지만 집안 일은 다르다. 큰 아이가 시험을 잘보면 잘봐서 좋고, 못보면 다음에 더 잘 볼 수있어서 좋고. 키가 커지면, 날씬해서 좋고, 살이 찌면 건강해져서 좋고. 그 다음 일이 걱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집안일이 잘되는 데, 누가 경쟁하자고 할 일도 없다.. 그냥 마음놓고 즐거워하면 된다. 그래서 회사를 경영하려면 집안이 즐거워야 한다. 아무리 회사 일이 잘되도 집안이 걱정되면 얼굴이 굳어지지만, 회사 일이 어렵더라도 집안일이 잘되면 회사일도 ‘잘 되겠지’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즐거움을 그대로 간직하면 되지만, 괴로움을 어떤 식으로든 풀어야 한다. 그런데 즐거움을 친구나 친척들과 나눌 수있지만, 괴로움을 나누기가 어렵다. 즐거움은 상대가 나에게 해 줄 것이 없다. 그냥 같이 기뻐해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괴로움은 다르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부담을 준다. 젊어서의 괴로움은 장밋빛 연애 때문에 겪는 괴로움이 대부분이지만, 나이들어 겪는 괴로움은 남이 풀어줄 수있는 괴로움이 별로 없다. 대부분의 경우 여러 사람이 복잡하게 얽혀서, 그 실타래의 시작과 끝도 알 수가 없다. 그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사정을 모르는 친구에게 하소연해봐야 이해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괴로움은 혼자 풀어갈 수밖에 없다. 술을 먹고 상대에게 나의 괴로움을 이야기하면 상대가 들어주기는 하겠지만, 그 이상은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괴로움이 돈 때문에 오는 것이라면 상대는 더욱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내가 돈이 없어 괴로워 하는데,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돈이 남아서 괴롭다고 나누어 줄 수도 없는 것이고, 모자란다고 해서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해봐야 해결책이 나올 리가 없고, 가정사의 문제를 남에게 이야기해봐야 가장인 나만 창피하다. 그래서 남에게 이야기해봐야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부담을 주기 십상이다. 괴로운 일이 있을 때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같이 술먹어 봐야 몸만 괴롭다.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대도 괴롭다. 거래선에는 괴롭다는 말하기도 더욱 껄그럽다. 어디 차라도 끌고 교외로 나가서 울려고도 해보았지만, 억지로 울려고 해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때문에 난 누구를 만나 하소연하기 보다는 책방으로 간다. 우선 책방으로 가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아 여기있는 책들은 변함없이 여기있구나! 나도 지금 이 자리에 들어섰다. 책들과 무언의 인사를 한 뒤에, 그 들사이로 들어선다.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돌아보면서 온갖 상상을 한다. 대개의 기술적인 문제들은 해법이 간단하다. 될까? 안 될까?, 되면 최선책은 이 것이고, 안되면 차선책은 이거다. 그리고 선택권을 상대에게 넘긴다. 그러면 보통의 경우는 일이 풀린다. 하지만 사람간의 관계, 자금관계, 미래 예측등은 좀처럼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머리 속은 거의 멍하고, 가슴은 답답하다. 그저 몽유병환자처럼 책 사이를 거닌다. 이렇듯 책장 사이를 걸을 때는 마치 세상의 모든 번뇌와 쾌락사이를 산보하는 기분이다.
3000년전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만드는 십장노릇하다가, 조선시대로 건너가서 뒷골목에서 난장판을 친다. 때로는 머나먼 300억광년전 우주에서 빅뱅이 일어나는 곳에 가보기도 하고, 그리 오래전이 아닌 백만년 전의 공룡을 만나기도 한다. 사진 속의 환상적인 풍경 속에 가보기도 하고, 컴퓨터 그래픽의 화려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가보기도 한다. 일종의 현실 회피라고나 할까. 그러다보면 세속적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풀어지면서, 마음도 풀어지는 기분이다.
책 제목하나는 사색거리 하나다. 어느 책장 앞에서 천천히 책 제목을 읽어나간다. 그 순간에 눈에 띠는 책 제목은 ‘찰나의 사색’의 주제이다.
- <당신의 직원은 최고인가?> 그럼 나는 최고의 직원을 뽑을 수있나?
-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길> 그래 나도 그 길을 갈 수있어!
- <한국에 제2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난 항상 위기인데, 좋구만.
- <부자사전> 역시 우리나라는 부동산을 해야 되,
그 찰나의 사색은 또 다시 현재의 나와 연결되었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한다.
수많은 사색의 거리들이 내 속에서 나의 현존하는 괴로움과 한 바탕 씨름을 하다보면 나의 괴로움은 제 풀에 지친다. 잊어버리던가, 나중에 일이 닥치면 다시 고민하던가, 해결책을 찾아내던가, 아니면 괴로움 자체를 모른척하던가.
---------------------------------
이럴 때 이런 책을
정말 괴로울 때는 부딪치지 말고 도망가는 게 최선이다. 자꾸 부딪치려고 하면 할수록 내 맘만 아프다. 잊을 수 없는 바에는, 피할 수없는 바에는 내가 받을 상처를 적게하는 편이 최선이다. 남을 탓해도 소용이 없다. 그저 내 탓이다. 그럼 난 누구 탓을 할까?
운명을 탓하자. 책방에 가면 주역, 토정비결, 사주 책들이 의외로 많다. 그 중에서 토정비결을 집어들자. 토정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태어난 년,월,일만 알면 된다. 그냥 서가에 서서 5-10분만 보면 금방 나의 금년 운수를 알 수있다. 금년 운수가 괴롭다고 나오나? 그럼 또 내년 운수를 보자. 내년 운수도 나쁜가? 그럼 후년 운수를 보자. 이 정도 보면 나의 운수는 어느 새 복이 쌓이고, 집안은 화평해진다. 토정비결은 우리 민족이 수백년에 걸쳐 검증한 책이다. 이만한 권위를 가질 수있는 책이 책방에 있는 수 십만권중에서 몇권이나 되겠는가. 믿자, 믿고 또 믿는 것이다. 단, 나한테 좋을 때까지만. 이렇게 일단 토정선생의 음덕을 받고나면 기분이 많이 풀어진다. 사주나 주역은 보기가 어렵다. 그저 심심풀이 삼아서 해석하는 방법만 읽어보자. 무슨 말인 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이 있고, 그 운명이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그냥 그 속에서 나에게 좋을 것 같은 말들을 찾아내서 이 건 ‘나한테 꼭 맞네!’라고 감탄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운명은 나하고 절친한 친구가 된다.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탓하지 말자. 이성보다는 감성이 중시되는 시대에 그게 무어 그리 중요한가. 나의 괴로움이 풀어지면 좋은 것이지, 다시 자신감을 찾으면 되지. |
신혼 초 대구에서 전주로 시집와서
핸드폰도 삐삐도 없는 시절 남편은 제가 없어지면(?) 서점으로 절 찾으러 왔었습니다.
내 힘들때 유일하게 아무말 안 하고 묵묵히 들어준 친구는 책이고, 서점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글이 재미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