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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미 모든 철학자, 사기꾼, 정치가, 경영자, 시인, 소설가들이 수천년에 걸쳐서 되풀이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거리를 던져준다. <로미오와 쥴리에>, <성춘향과 이도령>, <카사노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물론 남의 이야기를 너무 자기 이야기처럼하는 바람에 진부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랑을 가지고 수백페이지의 책을 풀어가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랑의 이야기에 푹 빠지고 있다.
<과학의 종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제목일 것같다. 그리고 실없는 책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어보면 정말 과학의 종말이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인간은 무한히 발전할 수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존 호건이 쓴 책에 의하면 과학은 이미 종말이 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개념’의 발견은 없고, 이제는 발견된 개념을 발전시켜 실용화시키는 ‘과학기술’의 향상만이 있다고 하니까.그러면서 그는 지리학을 예로 든다. “우리는 마치 거대한 대륙을 탐험하는 탐험가와 흡사하다. 그런데 그 탐험가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거의 모든 방향의 끝까지 도달했고, 주요 산맥과 강들을 지도에 그려 넣었다. 아직 채워넣어야 할 무수한 세부적인 지형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끝없는 지평선은 남아있지 않다.” 이러한 발견의 한계는 거의 모든 과학 분야에서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생물학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는 겨우 3가지 -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나의 수정란 세포가 어떻게 다세포 생물체로 발달하는가 그리고 중추신경계는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 가-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리학도 마찬가지이다. 물리학도 양자역학이나 이중나선구조 또는 상대성 이론과 필적할 정도로 중요한 발견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지난 수십년간 그러한 발견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철학, 물리학, 우주론, 진화생물학, 사회과학, 신경과학, 케오플렉서티, 한계론, 과학적 신학, 기계과학의 종말을 설파한다. 이제 과학-진지하고 순수하며 경험적 과학-은 끝났다고 한다.
이처럼 모든 책의 핵심은 간단하다. 길어야 서너줄이면 수백페이지의 내용을 요약할 수있다. 교과서처럼 백화점식 주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따라서 책을 읽으려면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말을 ‘어떻게 풀어가는 가?’가 더 중요하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한두줄이면 된다. 그런데 왜 저자들은 그 간단한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우선은 독자를 설득시켜야 한다. 그런데 달랑 한줄로 ‘내 생각은 이러니 그렇게 아쇼’ 하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수많은 뿌리가 빨아들인 자양분의 결과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한마디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야 말로 진짜로 우리가 배워야할 많은 것이 있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 그에 걸맞는 사례와 논리,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풀어갈 때, 얼마나 지루하지 않게,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풀어가는 가이다.
만일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옛날에 옛날에 신데렐라가 있었는 데, 못된 계모와 이복 자매들한테 구박을 받다가, 왕자님을 만나서 행복한 결혼을 했데요’라고만 하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아무도 감동을 받지 못한다. 신데렐라가 왜 구박을 받게 되고, 어떻게 구박을 받았으며, 어떻게 해서 요정을 만나고, 왕자님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 지의 과정을 풀어가는 동안에 슬퍼하고, 화내고, 기뻐하면서 감정이입이 된다. 99%의 소설과 영화는 해피엔딩, 권선징악이다. 끝이 뻔히 보이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난 월드컵 때 조차도 경기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아침 인터넷으로 어느 팀이 이겼는 지, 그 결과만 확인한다. 그러니 도무지 남하고 축구.야구등 운동경기에 대한 대화가 되지 않을 뿐더러, 나역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정말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박지성이 전반 몇 분경에 골인을 시켰는 데, 왜 오프사이드가 아닌지, 심판을 오심을 한 것에 대한 분노를 느끼면서 그 경기에 어떻게 감독이 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열변을 토한다. 그는 정말로 운동경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은 결과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뒷면에 써있는 유명한 사람들의 추천사나, 저자의 서문만 읽어서는 책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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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을
내가 보기에 미국사람들이 지은 책이 대체로 읽기가 쉽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쓴 책에 비하여 사례가 많이 들어가고, 문장이 평이하다. 일본 책을 번역한 것이 오히려 읽기가 난해할 때가 많다. 한국 사람들이 지은 책은 이전에 비하여 독자들에게 굉장히 친절해졌다. 우선 글자가 크고, 책 편집이 읽기에 편하다. 어떤 책은 논리적으로 책을 풀어가다가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아직은 부족한 듯하다. 그 것은 바로 ‘사례’를 별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번번한 사례없이 형이상학적인 설명문으로 채우는 책도 많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는 책을 쓰는 사람을 꼽으라면, 제레미 러프킨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만일 그가 ‘소유의 종말’이나 ‘노동의 종말’같은 책을 칸트처럼 썼다면 그는 결코 지금의 명성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의 모든 책은 사례로 시작해서, 사례로 끝난다. 한 페이지당 3-4개의 사례가 나오고, 400-500페이지짜리 책을 그렇게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권당 1,000개 이상의 사례가 들어있다는 말이 되고, 이 정도로 사용할려면 적어도 몇 배이상의 사례를 수집했어야 한다. 그 사례를 찾기가 힘들어 사건 하나를 두고서 몇 페이지를 그 배경과 영향을 말로 설명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런 책은 읽기에 지루함을 주기도 하거니와 독자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사건이 있을 때 이전에 유사한 사건들을 사례로 들고, 그 예상되는 영향을 또 다른 사례로 풀어가면 독자들은 지루하지도, 난해하지도 않는다. 저자의 수고로움은 독자들의 편안함으로 보답받는다. 그래서 그의 책은 어느 페이지를 펴보아도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전혀 없다. 그리고 그 사례는 기억에 남기 쉽다. 철학책처럼 쓸 수 있는 내용을 그는 이야기 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재미없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어야 하는 재미가 있다. |
서점가서 사서 읽어보고 서평 올리겠습니다.
참 재미있는 책일거라는 생각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계속 올릴텐데 굳이 사보실 것까지야......
지금 책을 두권 비교해서 서평을 쓰는 것도 조만간에 책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아직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 책의 원고를 써가는 대로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