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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서적에 관한 독후감과 무역을 하면서 느끼는 점을 주제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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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홍사장의 책읽기'에 해당하는 글 21건
- 2008/07/05 책, 세상이 덜 무서워진다
- 2008/06/12 공공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 2008/06/06 책, 될수록이면 사서본다
- 2008/05/27 책, 사람과의 대화가 즐거워진다
- 2008/05/20 책, 미래에 쓰고 싶은 책을 준비하면서 읽는다
- 2008/05/09 책, 미디어의 서평을 읽는다
- 2008/05/02 책, 눈에 좋다
- 2008/04/25 책, 현재의 의미를 알게해준다
- 2008/04/15 책, 저자의 이야기 풀어가는 과정을 즐긴다.
- 2008/04/07 괴로우면 서점으로 간다
- 2008/04/02 파괴와 재구성
- 2008/03/28 책, 해외 여행시 시차적응에 도움이 된다
- 2008/03/21 책, 불면을 없앤다
- 2008/03/18 책, 치매를 예방한다
- 2008/03/15 책방 산책을 즐긴다
- 2008/03/13 책은 묻고 나는 대답한다
- 2008/03/10 기쁨이 길어진다.
- 2008/03/08 심심풀이로 읽는다
- 2008/03/08 책은 묻고 나는 대답한다.
- 2008/03/08 오만과 겸손을 배운다
- 2008/03/08 세상을 긍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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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능력있는 사람은 자신을 구하라! 그런데 도대체 누가 능력있는가?
한스 페터 마르틴과 하랄트 슈만이 지은 ‘세계화의 덫’의 6장 제목이다.
탈규제화. 세계화 그리고 빠르게 일어나는 기술혁신은 엄청난 속도로 사회의 변화를 야기시키고 있다. 이런 발전 속도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세계관을 바꾸고 평생동안 최대 출력을 낼 각오가 되어 있지 않거나 그럴 형편에 있지 못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뒤처지게 되고 있다. 인생 계획이나 사업 목표에 대한 중요한 결단들이 흔히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내려지게 되고, 정치가들로부터는 ‘인스턴트 대책들’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세계화는 빠른 템포의 구조전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전환을 소화할 수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성은 분명히 모든 사람들에게 과도한 것이다. 이것은 평범한 투표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해 마지않는 이 시대의 거대 기업의 스타 경영자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신문에 보도되는 그 들의 부침을 보고 있다.
터보 자본주의 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는 그 들마저 그런데, 지구상의 아주 조그만 나라인 한국에서, ‘유비쿼터스’니, ‘컨버젼스’니 하는 디지털시대에 가장 전형적인 아날로그 제품인 양말, 그 것도 주시장도 아닌 틈새시장인 ‘발가락양말’을 수출하는 나로서는 정말 세상이 겁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허허벌판에 조선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주영도 아니고, ‘무어의 법칙’을 깨뜨리고 ‘황의 법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황창규도 아니다. 세상을 이끌어 갈 패기와 능력도 아직은 부족하고, 반도체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 들이 시대를 이끌어 갈 때에 난 나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두려움에 떨며 세상의 변화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
그 불안감속에서 생존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할수록 점점 더 확실해지는 것은 ‘홍재화’라는 개인은 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주어 풀어가거나, 아니면 문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이다. 불행히도 남에 대한 영향력은 전혀 없으면서, 남이 주는 영향은 그대로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결국 해결책을 찾기 위함보다는, 대응책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관점은 100만대군을 호령하는 제갈공명의 입장이 아니라, 본의아니게 100만대군의 맨 앞에서서 누구보다도 조조 군의 칼을 먼저 맞고 쓰러질 수 있는 이름없는 졸개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세상이 좀더 여유로와 진다면 그런 불쌍한 졸개들을 긍휼히 여기고 보호해주었을 텐데, 아직 그런 세상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세상이 쉽게 올 것 같지는 않다. 결국은 나와 내 가족이 살 길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최선이다. 국가에서는 많은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질 지도 의문이지만, 그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기업은 이제 인간을 위한 수단이기보다는 추상적인 소유주인 주주들로부터 부여받은 인격권을 무기로 하여 법인체 자체의 존속을 위하여, 그 안에 있는 인간의 결정권을 배제시킬 수 있는 ‘목적’ 그 자체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민단체는 그들의 정의로운 구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호구지책’에는 별다른 도움이 될 수없다.
(언제나 그랬지만 특히)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각자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 예술에 몰입하거나,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이웃을 위하여 일하거나, 신을 위하여 봉사할 수있을 것이다. 그 많은 방법중에 내가 택한 방법은 ‘가족기업’이다. 그 것은 나에게 생명을 부여해주신 부모에 보답하고, 나에게 생의 의미를 주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독자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 궁금하다.
난 그 길을 책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분야를 골고루 읽는 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은 먹고 사는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흔히 남들이 말하는 인생을 살찌게, 마음을 여유롭게, 자아실현을 위하여 고상하게 읽는 게 아니다. 남들이 나몰래 뭔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만들어서 저만치 나갈 때 조금이라도 뒤쳐지지 않으려고 책을 읽는다. 그 것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이다. 두려움이 커져갈 때에는 ‘무한능력’과 같은 책을 읽는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은 흘러가야만 하고,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이를테면 스스로에게 거는 ‘세뇌’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지만, 말을 해야 할 때는 적당히 유모도 섞어가면서 좌중을 무리없이 유도할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않되면 뒤집어 없는 고집도 있으면서, 가족을 위하여는 온 몸을 바치는 그야말로 성공한 사람들의 모든 습관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나’라는 세뇌를 시킨다. 자기계발서는 ‘나의 성공은 신의 계명과 자연의 조화에 따라 태고적부터 정해진 섭리일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을 갖기 위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하여도 필요하다.
반대로 커지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을 수없고, 내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은 역시 ‘미래의 트렌드’에 관한 책이다. 모든 미래 트렌드 책들의 공통적인 단어는 ‘변화, 속도, 불안정성’이다. 이러니 겁을 먹지 않을 수 있겠나. 사회학자들이 쓴 책들은 비관적으로 보는 반면에, 경영학자(경영자들이 아닌)나 과학 기술자들(과학자가 아닌)이 쓴 책은 낙관적으로 미래를 서술하는 게 일반적이다. 피터 드러커는 이제껏 우리가 배운 지식의 대부분이 5-10년내에 폐기될 것이니, 15년후에 필요할 지식, 기술, 도구들에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국가는 '기업가적 경제가 지식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는데 성공한 나라만이 국민의 복지를 유지할 수 있는 기업가 사회'임을 예고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래는 작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 정신의 화신인 나의 세상이 될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나의 성공을 정해놓은 신의 마음이 변했을 까봐, 자연의 섭리가 변했을 까봐, 그리고 피터가 나에게 부여한 기업가 사회의 건설의 의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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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을
세상이 두려운 것은 어느 한 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이 남보다 모자라고, 자신의 타고난 능력이 남보다 모자라고, 사회에서의 출발이 남보다 늦거나 불리하고, 어쩌다 실수를 해서 더 뒤처지고.......
세상은 빨리 변하는 데 어떻게 변할 지도 모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고.......
그래서 두려움은 더욱 더 커진다. 그 두려움을 피해가거나 극복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자신의 노력밖에는 별로 뚜렷한 방법도 없다. 복권말고는.
세상은 알 수록 겁이 난다. 그래서 책을 한시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옛날 조상들이야 열심히 논밭에서 일을 하면 가을에 수확할 수있지만, 현대인들이 모두 논밭에서 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손발보다는 머리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책말고 별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책을 읽어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어질 것인가’이다.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한 책을 읽는 게 좋다. 영어를 잘하면 영어로 된 책을, 춤을 잘 추면 춤에 관한 책을, .........
‘세상에서 이 것만은 내가 그 중에서 잘하고, 좋아한다’는 분야를 더 강하게 하는 책을 읽자. 자신감을 지탱해줄 곳을 더 강하게 하는 게 좋다. 그리고 강한 분야의 인근에 관한 책도 읽다보면 자신이 강한 부분이 점점 넓어짐을 알게 된다. 그럼 약한 곳은? 냅두는 거다. 세상에 약점없는 사람이 어디있나? 여유가 있다면, 약한 부분을 좀 덜 약하게 하는 것도 좋기는 하다.
책을 읽지 않아서 두려움이 없거나, 책을 조금은 읽어서 세상이 두렵거나, 두려움을 극복할 정도도 지혜가 쌓였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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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오늘 도서관갔었지, 내가 읽을 책도 빌려왔어?
회사를 다니건, 회사를 하건 간에 일하는 도중에 쉬고 싶은 때가 많다. 전날 저녁에 과음을 했다거나, 감기에 걸렸다거나 했는 데 어디가서 마땅히 쉴 때는 없어 힘들어 했던 경험을 누구가 했을 것이다. 그럴 때 나는 회사의 자료실로 갔다. 옆 동료에게는 자료실로 가서는 구석자리를 하나 잡아서 책을 하나 펴놓고 한동안 쉬다가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자료실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한마디는 거의 나의 농땡이에 대한 면죄부나 마찬가지였다. 상사나 선배들이 보기에는 뭔가를 하려고 자료실에 가는 생각이 들고, 사실 나도 사우나에 간다거나 커피숍에 가서 쉬는 것보다는 죄책감이 덜 들었다. 그리고 또 자료실에 가서 놀다보면 어쩔 수없이 회사에 관련한 자료들을 들쳐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일에 대한 아이디어도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까 자료실가는 게 아주 놀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둔지 10여년이 넘었어도 아직도 자료실에 가면 아가씨였던 사서 들하고 눈인사정도는 할 수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독립을 하고 내 사업을 하면서는 독자적인 자료실이나 서재를 갖지 못하면서 책 속에서 노는 재미를 한동안 잊었다. 그저 필요한 책, 읽고 싶은 책을 사서볼 뿐이었다. 그렇게 10여년을 지내다 요즘 다시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신설동에 있는 ‘동대문도서관’과 돈암동에 있는 ‘아리랑 도서관’을 주로 다닌다. 동대문도서관은 고등학교 때부터 다녀서 무척 친근하다. 시설이 좀 낡기는 했지만 보유하고 있는 장서의 수도 꽤 되어서 빌릴 만한 책도 많다. 아리랑 도서관은 최근에 지어서인지 깨끗하지만 좁은 게 흠이다. 이 두 곳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장소이다. 책을 그저 빌려보는 곳으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쉬는 곳이면서 자극을 받는 곳이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한달에 10권정도를 읽는 것이 꽤 많다고 여겼는 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10권을 가볍게 넘어서기 시작하였다. 그 것은 책을 읽을 수있는 시간이 늘어나서라기 보다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져서 인 것같다. 아마도 습관화되다보니 책읽기가 익숙해져서 그런 것같다. 그러다보니 손에 닿는 책의 범위가 더 넓어졌고, 그 책들을 모두 사서 보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게다가 내 책만 빌리는 것이 아니라, 집 사람의 책도 빌려주고, 아이들의 책도 빌려주다 보니 도서관을 방문할 일이 많아졌다. 그 전에는 나와 집사람이 읽는 책은 확실하게 나뉘어졌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같이 읽는 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도서관행이 집사람의 관심을 끌기에 이르렀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것이 어찌보면 앞에서 ‘독서의 경제학에서 말한 것처럼 될수록이면 사서 보라는 말’과 모순되는 것같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다. 다시 한번 그래프를 그려보자.
앞 장에서는 될수록이면 책을 사서 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내 책을 절대로 남에게 주면 사회적 효용은 늘어나지만 나의 총 효용은 거기서 멈춘다고했다. 그렇다면 남의 책을 내가 받는 경우는 어떨까?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책이란 사과와 같은 소비재와 달리 계속해서 사용이 가능한 지식재이라서 사용할 수록 만족도(효용)은 지속적으로 증대한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나 공짜로 얻은 책이나 초기 투자비용은 같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빌리건, 친구에게 빌리건 책을 계속해서 빌려보는 데는 지속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직선이 오른 쪽 위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남에게 공짜로 얻은 책은 초기 투자비용만으로 충분하다. 반면에 내 돈을 주고 책을 사면 교통비+시간+책 값이 들어가기 때문에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역시 공짜로 남에게 얻는 책이 가장 경제적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문제가 많다. 왜냐하면 책을 공짜로 받는 사람이 흔하지 않고, 설령 받는다하여도 자신이 원하는 책인가가 문제이다. 원하지 않는 책을 받았을 때는 오히려 읽지도 않으면서 보관하는 공간만 차지하기 때문에 만족도는 마이너스라고 볼 수있다. 그렇다면 남의 책이지만 맘에 드는 책을 가지려면 빼앗거나, 사정하는 수밖에 없는 데 이는 사회적 체면이 망가지고, 주는 사람과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실리를 얻지만, 명분을 잃어버리는 셈이다.
따라서 남에게 공짜로 책을 받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기꺼이 제공하는 경우가 아니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의 마음은 누구나 같아서 남의 책을 받고 싶어도 내 책을 주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도 남의 사무실이나 집에 가면 책장부터 뒤지기는 하지만, 왠만해서는 함부로 달라고 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로 빌려보는 곳이 공공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이 나의 총 효용면에서나 사회적 체면을 관리하는 면에서 오히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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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이렇게
가끔은 주위의 도서관에 가보자. 그리고 열람실에 가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부를 해보자. 도서관에 가면 열심히 공부하는 청춘들을 볼 수있다. 그 들을 볼 때마다 젊은 시절을 돌이켜 볼 수있어 좋다. 내가 젊었을 때 저렇게 열심히 공부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 사이에서 보이는 중년 이상의 사람을 보면 나 역시 분발해야 한다는 각성을 하게 된다. 또 사실 책은 도서관에서 읽을 때 가장 책을 읽는 기분이 들고, 내용도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책대신 멀티미디어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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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서보는 것이 좋을 까, 아니면 빌려서 보는 것이 좋을까?
한 마디로 사정이 허락하는 한 사서 보는 것이 절대 좋다. 비용과 효용을 따져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이룬다.
경영학의 기본 원칙이다.
이에 비하여 경제학의 기본원칙이라고 든다면, 효용의 극대화이다.
즉, 내가 가진 돈은 한정되어 있는 데, 여러 가지 물건을 구매할 때, 물건의 비용과 구매 비율을 나의 만족도가 최대가 되는 지점을 정하는 문제이다.
경영학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책을 빌려보는 것은 사서 보는 것에 비하면 분명히 이익을 극대화시킨다. 왜냐하면 투자비용이 적기 때문에, 산출이 극히 미미하더라도 투자대비 산출비율은 꽤 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투자비용이 ‘0’이 될 수는 없는 것은 책을 빌리고, 돌려주기 위해서는 도서관에 가거나, 혹은 친구를 만나기 위한 교통비나 커피 값, 또는 시간등의 비용이 있으니까. 이 원칙에 충실한 사람들은 책을 왜 사서보냐고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남의 책을 얻어보고 돌려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책을 샀으면, 남과 돌려보고, 선물로 주는 것이 더 나은 투자가 될 수있다. 왜냐하면 한권의 책으로 여러 사람이 보기 때문에 투자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더 이상의 추가 산출은 발생할 수없다. 왜냐하면 또 다시 그 책을 볼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효용 극대화의 원칙에서 보면 책을 사는 것이 더 나은 투자가 될 수있다. 우선 책은 한 번의 소비로 사라지는 물건이 아니다. 즉, 사과처럼 많이 먹을 수록 효용이 떨어지는 제품이 아닌 것이다. 자꾸 읽으면 읽을 수록 효용이 높아지는 지식재인 것이다. 한계효용 체감이 아닌 한계효용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일단 한번 사서 읽으면 이루고자 하는 한계효용은 달성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책방에 돈을 지불할 때 이미 효용극대화를 위한 선택이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그 다음부터는 책의 효용이 투자비용 대비하여 늘어나는 일만 남았다. 투자비용이 일정한 상태에서 그 책을 한줄만 읽고, 아주 약간의 효용만 늘어나도 총 효용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단 한번 사서 내가 갖게된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가치는 높아진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일반적인 소비재나 자본재와는 다르다.
사과의 효용가치는 맛, 배부름이다. 따라서 일단 소비된 사과는 다시 그 효용을 되살릴 수없다. 반면에 책의 효용가치는 읽는 즐거움, 어떤 사실을 알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의 증대이다. 언제든지 되살릴 수 있는 가치들이다. 빌려보았으면, 빌리는 비용과 시간을 추가 부담해야 하지만, 내 책장에 꽂혀있으면, 언제든지 추가 비용없이 되살릴 수 있는 효용들이다.
혹시라도 말이 어려울까봐, 껌과 책을 비교해보자.
어렸을 적에 외할머니네 가면 외사촌 누나의 껌씹는 것을 참 웃기고, 더럽다고 생각했었다. 껌을 하루 종일 씹고 단물이 다 빠진 것을 벽에 붙여놓았다가 다음 날 또 씹는 것이었다. 무슨 맛일까. 아마도 맛은 없었겠지. 단지 되씹는 재미에 그랬을 것이다. 책이라는 것도 그렇다. 처음에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로 단숨에 읽어내려 간다. 그러고 책을 반납하면, 되씹는 재미가 없어진다. 10원짜리 껌을 단물만 빼먹고 버리면 그냥 10원짜리에 불과하지만, 그 다음날도 다시 씹으면 15원짜리는 되는 것이다. 책도 그렇다. 되씹으면 되씹을 수록 그 값어치는 올라가는 것이다. 책 제목만 다시 보아도 최소한 100원은 올라갈 것이 아닌가. 우리 주변에 보면 삼국지를 열 번이고, 스무번이고 읽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 지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그 만큼 읽을수록 재미가 있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사람들은 좋은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한번보고 잊어버릴 책이 아니라, 두고 두고 되씹을 수 있는 책을 사면, 한번의 투자로 여러 번 다시 볼 수있고, 그에 따라서 책을 산 사람의 총 효용은 계속적으로 증가한다. 아마 다른 어떤 소비재보다는 책에서 그런 횡재를 할 확률이 높다. 아무리 좋은 옷도 자꾸 입으면 시들해지고, 유행도 지난다. 하지만 책은 비교적 유행을 덜 타고, 남이 뭐라하든 신경쓸 필요가 없다. 게다가 100년전에 나온 책을 읽는다한들 누가 뭐라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남에게 주는 것에 대한 투자비용 계산은 어떻게 해야 할 까? 그 것은 그냥 한권을 사서 자기가 읽고 버렸을 때와 같은 결과가 될 것이다. 남이 읽어서 얻은 효용은 남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의 기본적인 가정인 ‘이기적 인간’이라는 전제와 완전히 동떨어진 개념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지식재의 최대 장점인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효용이 늘어나는 ‘한계효용 체증의 법칙’의 혜택을 받을 수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타적 관점’에서 보면 남의 효용이 증가하니까, 사회적 총 효용이 증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설령 책을 사서 본 나의 효용만큼 내가 책을 주어서 읽은 사람이 같은 정도의 효용이 발생한다 하여도, 생산자의 잉여는 전혀 발생하지 못한다. 소비자처럼 생산자 역시 이 사회의 구성원인만큼 사회적 총 효용을 따진다면, 생산자 측면에서의 이익도 또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다른 소비재처럼 책은 중국에서 수입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온전히 국내 생산자의 이익이 증가하는 것이다. 사회적 총 효용(총 이익)을 책을 사봤다면 소비자 이익+생산자 이익이 같이 발생하지만, 남에게 주었다면 단지 소비자 이익만이 추가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래서 책은 개인적 이익으로 보나, 사회적 이익으로 보나 사서 보는 것이 좋다.
게다가 내 책을 가지고 사회적 복지향상을 따지기에는 난 너무 이기적이다. 내가 책을 준 사람이 그 책을 읽음으로써 분명히 새로운 효용이 창출되고, 그에 따라 소비자의 이익이 증가한다. 이 것은 도서관 운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도서관 운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적 총 효용이 증가하는 것이고, 사회의 복지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남의 책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지만, 내 책은 나의 효용증대에 기여하면 그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하는 것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은 책을 남에게 권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도 좋은 책을 읽어서 좋고, 나도 내 책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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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이런 책을
사정이 허락한다면 책을 사서 보는 것이 좋다. 언젠가는 다시 보게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면 공공 도서관이나 사내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도 좋다. 어떤 책을 사서 보고, 어떤 책을 빌려보는 가는 자신의 관심사와 일에 대한 도움을 주는 가를 판단하는 문제이다.
우선 업무에 관한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사는 것을 권장한다. 생존에 필요한 실력을 늘리는 데 가능한 최대의 투자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도 있지만, 자기 돈을 들인 것과 빌려보는 것은 책을 대하는 자세에 차이가 난다. 우선 책에 낙서를 하지 못한다. 빌린 책은 깨끗이 보고 반납해야 하지만, 산 책은 자기 생각을 얼마든지 적고, 포스트 잇을 붙일 수 있다. 그리고 꼭 업무에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계속해서 볼 만한 책들, 요리 책이라던가 주식에 관한 책들은 대체로 여러 번 보는 책이다. 특히 요리 책은 사서 읽는 게 아니라 목차만 보았다가, 필요할 때 펼쳐보는 책이다.
하지만 심심풀이로 읽는다거나, 잠시 마음의 위안이 될 만한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가끔씩은 헌 책방도 들러볼 만한다. 헌 책방이 둘러보면 생각지도 않은 책을 싸게 살 때도 많다. 헌 책방의 책이라고 해서 얕보면 안된다. 꽤 깨끗하다. 어떤 책은 새 책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을 찾아내는 행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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