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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사회의 모순 [시장의 모순]

 

단절의 시대화이트칼라의 위기

 

 

지식사회의 모순   (단절의 시대, 화이트칼라의 위기)


‘단절의 시대’는 2000년 판을 번역하였다지만, 시대적 배경은 초판이 발행된 1971년 전후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단절의 시대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 아닌 이미 2000년대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이루어진 시대이다.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지식’중심의 산업이 일어나고, 과거의 여러 요소들이 쓸모없이 변하고,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진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는 ‘지식사회의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작업을 프레이져가 ‘화이트 컬러의 위기’로 일단 시작을 한 것으로 보인다. 프레이져가 쓴 이 책은 여타의 세계화에 관한 책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모두들 환호하면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식기반의 사회’, ‘지식인들의 사회’가 얼마나 초라해질 수있는 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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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단절의 시대

저자 : 피터 드러커


1971년 경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2006년 또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어서 출간되었다. 피터 드러커가 말했던 단절의 시대가 거의 현실화된 것 같다. 그가 말하는 4가지의 단절가운데 가장 큰 것은 ‘지식의 지위와 권력의 변화’이다. 이 모든 단절의 근본동력은 지식이 지식자체에 영향을 미치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단절 :

        경제의 기반이 육체작업에서 지식작업으로, 사회적 지출의 중점은 눈에 보이는 재화에서 지식으로 바뀌었다. 지식이 사회의 중심에, 그리고 경제와 사회활동의 기초로 등장하게 되면서, 지식의 역할, 지식의 의미, 지식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조직의 단절 :

        과거에는 상하관계가 뚜렷한 조직적 권력기관으로서 정부가 유일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부에 새로운 기관들이 출현하였다. 새로운 기관들은 각각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병원, 기업, 대학 심지어는 정부기관조차도 상하관계를 따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같이 다양화된 조직들이 유기체적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각 조직은 최대의 효율성을 이룰 수있게 하는 것은 ‘통치’하는 정부밖에는 없다.


산업기술의 단절 :

        농업과 철강, 자동차 산업과 같이 19세기 초 발명품을 대량생산하던 산업들은 더 이상 선진국들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원동력을 제공할 수없게 되었다. 이에 대체할 만한 산업으로 정보산업, 해양산업, 신물질 개발산업 및 거대도시에서 생성될 새로운 산업이 있다. 이 변화와 혁신의 시대는 ‘지식기반 산업’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경제이론의 단절 :

        현재까지의 경제이론은 현재의 여러 자원 상황을 고려해 출발하고는 그 것을 미래의 판단근거로 삼았다. 이 것은 미래의 경제구조가 현재의 경제구조와 동일하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이는 경제가 균형을 이룰 수있다는 가설인데, 이 가설에는 ‘혁신.기술.지식’이 빠져있다. 또한 국제 경제학의 기본 이론인 비교우위론의 가정인 ‘토지.노동.자본’의 고정성 또한

노동.자본‘의 이동이 많아짐에 따라 타당성을 잃었다. 이처럼 과거의 경제이론들은 각 이론만다 취급하는 요소들을 별개로 다루었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를 넘어선 미시경제. 거시경제 그리고 세계경제를 하나의 ‘경제적 장’으로 통합시킬 수있는 새로운 경제이론이 필요하다.


책 제목 : 화이트 칼라의 위기

저자 : 질 안드레스키 프레이져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직장은 그리 빡빡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평생직장으로서 직업을 영위할 수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15%에 달하는 인플레이션, 실업율 8.5%에 점점 낮아지는 생산성, 그리고 외국에서 물밀듯이 들어오는 수입제품들로 인하여 미국 경제는 위기감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중앙정부와 주정부는 기업 합병과 인수가 활발히 일어날 수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이로서 미국에서는 회사의 인수합병이 황풍이 몰아치고, 인수합병이 끝날 때마다 기업들은 그동안 소요된 비용을 만회하기 위하여 엄청난 수준의 비용 삭감 및 정리해고 그리고 후생복지 혜택 축소등 화이트 칼라의 근로여건은 악화되었다. 정리해고가 일상화되다보니 직장에 대한 애착은 사라지고, 사라진 동료의 자리를 남아있는 사람들이 나누어서 감당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 근무시간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핸드폰과 노트북등 최신 사무기기를 이용해서 집에서도 일을 해야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연봉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직장이 안정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의료보험등 복리후생은 축소되고 있다.


이처럼 만신창이가 된 화이트 칼라의 근로환경 악화가 이제 미국 경제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열악한 근무환경에 지친 근로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보다 직원들을 투자자나 고객만큼 소중한 존재로 대우하는 것이 회사와 근로자 모두에게 유리한 것임을 기업들이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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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 지식사회와 지식경제로의 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인기있는 대답은 “일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고도화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답은 “인간의 근로수명(working life span)이 너무도 길어졌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이렇게 큰 변혁을 초래하는 데 토대가 된 것은 노동에 대한 수요가 아니라 노동의 공급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노동의 공급은 또한 지식의 등장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문제들을 설명한다. 부연설명을 해보자. 인간의 평균수명이 45세에서 65세이상으로 늘어나자, 15세에 육체노동 직종에 취직하는 것보다 대학을 졸업하고 25세에 지식근로 직종에 취직하는 것이 사람들이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2차대전이후 ‘교육 폭발’현상은 노동의 공급을 급격히 바꾸었다. 그 결과, 전통적 직업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 이후 20년간 미국 경제가 처한 근본적인 문제는 육체 노동자를 위한 일자리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식작업의 적절한 공급, 또는 지식수준을 기준으로 급료를 지불하는 직업의 공급이 얼마나 되는 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지식노동이 가능한 노동자의 공급 변화의 결과로 미국은 직업 그 자체가 그 것을 요구하든 않든 간에 순수한 의미의 지식직업을 창출하지 않으면 않되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지식작업은 고학력자가 생산성을 올릴 수있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지식산업이 있었기에 지식 근로자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지식 근로자 있었기에 지식작업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지식산업의 등장으로 인간은 보다 더 쾌적한 환경하에서 인간적인 삶과 행복을 누릴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화이트컬러’로 상징될 수있는 지식사회의 환상은 프레이져에 의하여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지식사회의 등장으로 지식인은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많은 활동영역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그 것은 지금껏 사람들이 경험했던 “정당한 하루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하루의 임금”이 아니라, “예외적인 하루(일자리는 고정이 아니기 때문에)의 작업에 대한 예외적인 임금”을 기대하는 힘겨운 프리랜서내지는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사회에 불과함이 드러났다. 지식이 육체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했지만, 오히려 더 긴 시간 정신노동의 스트레스를 불러왔다. 지식이 획일적으로 일원화되었던 정부의 지시로부터 벗어나게 했지만, 다원화된 조직의 최대 성과를 위하여 언제든지 비정규직으로 전락될 수있는 보호막을 거두어들였다. 지식이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켜 오랜 된 욕구와 필요사항을 충족시켰지만, 기대와 욕망의 수준을 넓힘으로써 삶의 만족도는 오히려 낮아지게 하였다. 지식은 기존의 경제활동을 변경시켰지만, 지식인의 분노는 커져가고 있다.


비개성적인 대량생산 시대로부터 개성을 뚜렷이 살릴 수있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었지만,  지식이 작업 그리고 성과의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은 지식인에게 책임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부과된 책임에 비하여 그들이 받는 급부는 이전에 비하여   별로 나아지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후퇴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지식사회는 위기로 빠지게 되었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를 꼽으라면 지식 근로자의 공급이 지나치게 많은 데다가, 이들이 할 수있는 상당부분이 컴퓨터등 자동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는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화를 드러커는 겁낼 필요가 없다지만, 미국 근로자는 겁을 내야한다. 중국과 인도 근로자는 환영해야 겠지만. 아마 이 책이 1971년 전후에 발간되고, 이 후 고용현황에 대한 수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IT산업이 처음 붐을 일으키던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여도 모든 사람들은 신기술이 기존의 일자리를 없애겠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낼 거라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 실질적인 일자리는 정리해고와 자동화로 줄어들고 있지만, 이 사회는 여전히 대학진학율을 높이는 것으로 부족하여 대학원 졸업해서 MBA를 따야만 지식사회에 겨우 발을 들여놓을 수있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지식사회는 더욱 발전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지식사회가 발전하고, 지식인이 늘어날 수록 사회에서 필요한 정도의 지식은 높아져 가고, 그 지식이 필요한 기간은 더욱 더 짧아져가지만, 일자리는 더 줄어드는 사회가 되어간다.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것을 피터 드러커는 예상을 했는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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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2008/05/23 09:01: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책, 저자의 이야기 풀어가는 과정을 즐긴다. [홍사장의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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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미 모든 철학자, 사기꾼, 정치가, 경영자, 시인, 소설가들이 수천년에 걸쳐서 되풀이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거리를 던져준다. <로미오와 쥴리에>, <성춘향과 이도령>, <카사노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물론 남의 이야기를 너무 자기 이야기처럼하는 바람에 진부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랑을 가지고 수백페이지의 책을 풀어가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랑의 이야기에 푹 빠지고 있다.


<과학의 종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제목일 것같다. 그리고 실없는 책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어보면 정말 과학의 종말이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인간은 무한히 발전할 수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존 호건이 쓴 책에 의하면 과학은 이미 종말이 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개념’의 발견은 없고, 이제는 발견된 개념을 발전시켜 실용화시키는 ‘과학기술’의 향상만이 있다고 하니까.그러면서 그는 지리학을 예로 든다. “우리는 마치 거대한 대륙을 탐험하는 탐험가와 흡사하다. 그런데 그 탐험가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거의 모든 방향의 끝까지 도달했고, 주요 산맥과 강들을 지도에 그려 넣었다. 아직 채워넣어야 할 무수한 세부적인 지형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끝없는 지평선은 남아있지 않다.” 이러한 발견의 한계는 거의 모든 과학 분야에서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생물학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는 겨우 3가지 -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나의 수정란 세포가 어떻게 다세포 생물체로 발달하는가 그리고 중추신경계는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 가-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리학도 마찬가지이다. 물리학도 양자역학이나 이중나선구조 또는 상대성 이론과 필적할 정도로 중요한 발견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지난 수십년간 그러한 발견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철학, 물리학, 우주론, 진화생물학, 사회과학, 신경과학, 케오플렉서티, 한계론, 과학적 신학, 기계과학의 종말을 설파한다. 이제 과학-진지하고 순수하며 경험적 과학-은 끝났다고 한다.


이처럼 모든 책의 핵심은 간단하다. 길어야 서너줄이면 수백페이지의 내용을 요약할 수있다. 교과서처럼 백화점식 주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따라서 책을 읽으려면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말을 ‘어떻게 풀어가는 가?’가 더 중요하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한두줄이면 된다. 그런데 왜 저자들은 그 간단한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우선은 독자를 설득시켜야 한다. 그런데 달랑 한줄로 ‘내 생각은 이러니 그렇게 아쇼’ 하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수많은 뿌리가 빨아들인 자양분의 결과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한마디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야 말로 진짜로 우리가 배워야할 많은 것이 있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 그에 걸맞는 사례와 논리,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풀어갈 때, 얼마나 지루하지 않게,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풀어가는 가이다.


만일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옛날에 옛날에 신데렐라가 있었는 데, 못된 계모와 이복 자매들한테 구박을 받다가, 왕자님을 만나서 행복한 결혼을 했데요’라고만 하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아무도 감동을 받지 못한다. 신데렐라가 왜 구박을 받게 되고, 어떻게 구박을 받았으며, 어떻게 해서 요정을 만나고, 왕자님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 지의 과정을 풀어가는 동안에 슬퍼하고, 화내고, 기뻐하면서 감정이입이 된다. 99%의 소설과 영화는 해피엔딩, 권선징악이다. 끝이 뻔히 보이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난 월드컵 때 조차도 경기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아침 인터넷으로 어느 팀이 이겼는 지, 그 결과만 확인한다. 그러니 도무지 남하고 축구.야구등 운동경기에 대한 대화가 되지 않을 뿐더러, 나역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정말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박지성이 전반 몇 분경에 골인을 시켰는 데, 왜 오프사이드가 아닌지, 심판을 오심을 한 것에 대한 분노를 느끼면서 그 경기에 어떻게 감독이 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열변을 토한다. 그는 정말로 운동경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은 결과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뒷면에 써있는 유명한 사람들의 추천사나, 저자의 서문만 읽어서는 책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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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을


내가 보기에 미국사람들이 지은 책이 대체로 읽기가 쉽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쓴 책에 비하여 사례가 많이 들어가고, 문장이 평이하다. 일본 책을 번역한 것이 오히려 읽기가 난해할 때가 많다. 한국 사람들이 지은 책은 이전에 비하여 독자들에게 굉장히 친절해졌다. 우선 글자가 크고, 책 편집이 읽기에 편하다. 어떤 책은 논리적으로 책을 풀어가다가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아직은 부족한 듯하다. 그 것은 바로 ‘사례’를 별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번번한 사례없이 형이상학적인 설명문으로 채우는 책도 많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는 책을 쓰는 사람을 꼽으라면, 제레미 러프킨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만일 그가 ‘소유의 종말’이나 ‘노동의 종말’같은 책을 칸트처럼 썼다면 그는 결코 지금의 명성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의 모든 책은 사례로 시작해서, 사례로 끝난다. 한 페이지당 3-4개의 사례가 나오고, 400-500페이지짜리 책을 그렇게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권당 1,000개 이상의 사례가 들어있다는 말이 되고, 이 정도로 사용할려면 적어도 몇 배이상의 사례를 수집했어야 한다. 그 사례를 찾기가 힘들어 사건 하나를 두고서 몇 페이지를 그 배경과 영향을 말로 설명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런 책은 읽기에 지루함을 주기도 하거니와 독자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사건이 있을 때 이전에 유사한 사건들을 사례로 들고, 그 예상되는 영향을 또 다른 사례로 풀어가면 독자들은 지루하지도, 난해하지도 않는다. 저자의 수고로움은 독자들의 편안함으로 보답받는다. 그래서 그의 책은 어느 페이지를 펴보아도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전혀 없다. 그리고 그 사례는 기억에 남기 쉽다. 철학책처럼 쓸 수 있는 내용을 그는 이야기 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재미없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어야 하는 재미가 있다.

, 경영, 홍사장의책읽기, 시장의모순, 과학의종말, 사랑
posted at 2008/04/15 09:16:00 댓글(3) l 트랙백(0) l 스크랩
동시성의 사회 [시장의 모순]

 자유와 상생

동시성의 과학, SYNC

 

 

동시성의 사회

                

공생하는 모든 존재들이 함께 서로 돕고 사는 것을 상생의 원리이다.

동조란 ‘영향을 주고받되 이를 통해 서로의 무언가가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상생의 원리를 공유하는 집단만이 공조를 일으킬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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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동시성의 과학, 싱크

저자 : 스티븐 스트로가츠


주위를 둘러보면 도처에 은하, 세포, 생태계, 인간등 놀라운 구조들이 존재하고있다. 모두가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데 성공한 구조들이다. 오늘날 이런 수수께끼는 모든 과학을 매혹시키고 있다. 질서가 어떻게 스스로 발생하는 가를 우리가 명백하게 이해할 수있는 상황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최초로 알려진 사례중 하나는 완전히 반복적인 구조가 포함된 ‘물리 공간’에서 생겨나는 특수한 종류의 질서다. 이 질서는 온도가 빙점이하로 떨어지면 언제나 발생한다. 수조개의 물 분자가 자발적으로 결합해서 단단하고 대칭적인 얼음 결정이 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질서를 ‘시간 속에서’ 설명하려고 들면 많은 문제가 나타난다. 동시에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가장 단순한 가능성조차 파악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우리가 동시성이라고 부르는 질서다.1)


인상적인 것은 지속적인 동조이다. 두 가지 사건이 일정기간 이상 계속해서 동시에 일어난다면 이 같은 동조는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예컨대 ‘함께 생활하는 여성들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서로의 월경주기가 같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말레이시아 강변의 망그로브 숲에서는 밤마다 수만마리의 반딧불이가 동시에 불을 켰다 어둠 속에 잠기기를 반복한다’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모두 꿰뚫는 큰 주제는 복잡성 이론의 핵심요소 중 하나인 ‘동조’라는 현상이다. 동조란 ‘영향을 주고받되 이를 통해 서로의 무언가가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반딧불이처럼 동시에 깜박이거나 레이저의 빛 입자처럼 파동의 위상이 같아지는 것이 모두 동조에 해당한다.2) 하나의 세포안에서 폭포처럼 이어지는 생화학적 연쇄반응과 그 세포가 암으로 변화할 때 그 반응이 붕괴되는 과정을. 주식시장이 붐을 일켰다가 붕괴되는 과정을. 뇌 속에 있는 뉴런 수조개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의식이 출현하는 것을. 원시 수프에서 그물처럼 일어나는 생화학적 연쇄반응으로부터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이 모두의 공통점은 복잡한 그물로 연결된 무수한 행위자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경우에 놀라운 패턴이 자발적으로 생겨난다. 우리 주변 세계의 풍요로움에 가장 큰 몫으로 기여하는 것은 자기 조직화이다.3)


이 새로운 과학은 연결된 진동자들에 초점을 맞춘다. 반딧불이 무리, 행성들, 박동조절 세포들은 모두 진동자들의 집단이다. 어느 정도 규칙적인 시간 간격으로 스스로를 계속 되풀이하는 진동은 순환하는 존재란 말이다. 반딧불이는 반짝이고 행성들은 궤도를 돌고, 박동조절 세포들은 방전한다. 둘 이상의진동자들이 물리,화학적 과정을 통해 서로 영향을 미칠 수있다면 이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반닷불이들은 빛으로 통신한다. 행성들은 서로 중력으로 당기고 있다. 심장 세포들은 전류를 앞뒤로 통과시킨다. 이런 예들이 시사하듯이 자연은 진동자들이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채널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런 대화의 결과는 흔히 동조로 나타난다. 모든 진동자가 하나처럼 움직이는 것이다.4)




책 제목 : 자유와 상생

저자 : 이 근식


상생의 원리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생명 및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권리와 똑같이 이들의 정당한 권리를 존중하면서 이들과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감을 말한다. 즉, 공생하는 모든 존재들이 함께 서로 돕고 사는 것을 상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절대적으로 소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존재도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소중하며 다른 존재가 있음으로 비로소 나의 존재가 가능하기 때문에 나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생의 원리에서 우리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있을 것이다.5)인간사와 세상은 극히 복잡하고 다양하므로 모든 사물은 갈등이나 대립의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갈등관계 덕분에 각 존재들은 존재하는 의의를 가질 수있으며, 갈등과 모순에서 발생하는 긴장관계를 통해 양쪽 모두 타락과 안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발전할 수있다. 남성과 여성, 이기심과 이타심,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자유방임주의와 개입주의, 진보와 보수의 대립등이 그러하다. 만일 남성이 없으면 여성이 존재할 수없으며, 이기심과 이타심 어느 하나만 존재하는 사회는 유지될 수없을 것이고, 평등에 대한 고려없는 자유만의 추구는 자유를 타락시킬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만으로 100% 경제를 운영하거나, 사회주의 경제를 100% 운영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개입주의 위주의 경제 정책이나 방임주의 위주의 경제정책은 시대에 따라서 변해왔다. 당신은 좌익이냐, 우익이냐라는 질문을 받고 Jackson 목사는 “새는 양쪽 날개로 날아갑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서로 도움이 되는 갈등을 “상생의 갈등”이라고 부를 수있을 것이다.6)


인간사에 있기 마련인 갈등을 적대적 갈등으로 파악하면 서로 적으로 공격해 모두가 피해를 입지만, 상생의 갈등으로 파악하면 갈등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경쟁덕분으로 양쪽 모두 타락과 안일에 빠지지 않고 자기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발전해 나갈 수있을 것이다. 자유와 상생, 자유와 평등, 진보와 보수, 이기심과 이타심,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가 모두 그러하다. 윤리의식을 상실한 인간은 영리한 동물에 불과하며, 윤리의식이 없는 천재는 인류의 재앙이며, 윤리의식의 요체는 상생의 정신일 것이다. 윤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현실 개선을 위한 노력을 멈출 수없을 것이다. “천지와 같이 넓고 자유로운 나라, 그러면서도 사랑의 덕과 법의 질서가 우주 자연의 법칙과 같이 준수되는 나라가 되도록 우리나라를 건설하자”고 백범선생은 말했다. ‘자유롭고도 사랑으로 가득찬 나라’, 즉 자유와 상생이 충만한 나라가 동서고금을 통한 우리 인류의 이상향일 것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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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동조는 우리 인간에게 쉽게 일어난다.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우리에게 흔히 기쁨을 준다. 우리는 서로 맞춰서 춤을 추고 합창을 하고 팀으로 공연하기를 좋아한다. 가장 세련된 형태의 지속적인 동조는 장관일 수있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일치된 동작이 그 예다. 다음 순간 음악이 어떻게 전개될 지, 무용의 다음 동작이 무엇이 될지 모를 때 청중의 예술적 감상은 더 고양된다. 지속적인 동조는 지성, 계획, 안무의 표시라고 우리는 해석한다. 그래서 전자나 세포같이 의식이 없는 존재들 사이에서 동조가 일어나면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8) 인간의 집단동조는 대부분이 의도된 것이다. 노래나 춤을 함께 부르고 추고, 발을 맞춰서 구르고, 축구경기장에서 파도타기 응원을 하는 것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이 협력하려고 노력할 때 실제로 나타나는 집단 행동도 놀라운 것일 수있다.9) 그러나 같은 종류의 생물이라 하더라도 집단내의 동질성이 없다면 동조는 일어나지 않는다. 집단의 동질성을 점차 높여가도 동질성이 어떤 임계치에 도달할 때까지는 동조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부 진동자가 자발적으로 주파수를 맞춰서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상호 동조는 물이 얼어서 얼음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상전이와 유사하다는 발견이다.10)


아마도 한국사람들이 경험했던 가장 큰 동조라면 2002년 월드컵 당시에 온 국민이 빨간 색을 입고 다니면서 ‘대~한~민~국’을 외쳤을 때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의 동질성은 점차 엷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예로서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공동체의 동요이다. 고령화, 결혼 기피, 이혼과 범죄의 증가 현상은 최근 우리 경제의 침체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소득 수준의 상승에 따른 장기추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 선진국들에서 이런 현상들이 일반적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IMF이후 이혼율과 범죄율이 급증하고 출산율이 급감한 것은 경제의 급속한 침체로 실업과 빈곤이 급증한 것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가장의 실직은 이혼을 증가시키고, 빈곤은 범죄의 가장 큰 요인이 되며, 공동체의 약화는 사랑과 신뢰의 상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결혼율과 출산율 감소, 이혼율 상승은 가정이라는 기초 공동체가 약화되고 있고, 범죄의 증가는 국가 공동체가 동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11) 최근 직장이라는 공동체 역시 크게 흔들리고 있다. IMF 환란 이전에 정상적인 직장들은 대개 단순한 영리단체가 아니라 종업원들이 떠나지 않고 정년까지 근무하면서 생의 보람과 안정을 찾을 수있었던 일종의 공동체였다. 그러나 IMF환란이후 나타난 사오정과 오륙도, 삼팔선과 이태백이라는 유행어에서 알 수있듯이, 조기정리해고가 확대되면서 대부분의 직장들이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고 단순한 영리추구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평균 수명이 일흔 살이 넘는 나라에서 국민들이 나이 마흔에 정리 해고되어 인생의 절반가량을 안정된 직장없이 살아가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가정, 국가, 직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의 와해는 현재 우리 사회에 심각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낳고 있다. 공동체의 와해는 단순히 생활의 궁핍화, 건강과 재산의 사실 등과 같은 경제적, 육체적 폐해를 초래함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나아가 인간 사이의 애정과 신뢰의 상실이라는 정신적 파탄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초래한다.12)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를 전혀 모르고, 또 자신이 고생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가장 불우한 처지에 빠졌을 때 대비하여, 가장 불우한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는 데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13)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기본적으로 인정하면서 자유,평등,박애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에 부합함과 동시에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분배정의의 원칙으로는 다음의 세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 기여도의 원칙이다. 이는 생산에 기여한 것에 비례하여 각자의 분배 몫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면과 창의력으로 생산에 크게 기여한 사람은 그만큼 많이 받고, 기여가 적은 사람은 적게 받는 것이 정의에 합당하다. 2) 기회균등이다. 민주 사회에서의 평등은 기회균등이다. 기여도 원칙에 의한 차등분배가 공평한 분배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인정받으려면, 모든 구성원에게 생산에 기여하여 자신의 능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3) 절대빈곤의 퇴치이다. 즉 모든 사라에게 최소한의 의식주, 의료, 교육 및 교통과 같은 기본재는 최소한 공급되어야 한다. 이유를 묻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공동체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14) 공동의 문제에서는 많은 경우 개인간에 이해상충이 발생하고 이런 경우에는 개인주의가 아닌 다른 원리내지 관점이 필요한데, 상생의 원리가 이 역할을 할 수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의 개인주의가 경시하는 것은 인간생활에서의 공생(共生)이라는 측면이다. 우리들은 공간적으로 보면 우주의 허공에서 나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척, 친지, 온 국민, 나아가서 모든 인류 및 동식물을 비롯한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선조와 후손과도 서로 도와가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공간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나는 무수한 다른 존재들과 함께 공생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개인성(개체성)과 공동체성(사회성)의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는 데, 이중 개인성에서의 원리를 자유라고 한다면, 공동체성의 원리를 상생이라고 말할 수있을 것이다.15) 자유와 상생이 충만한 사회가 될 때 우리 사회는 ‘반딧불이가 한 여름밤에 펼치는 빛의 향연’을 펼치듯이 우리 인간들도 동조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인간간의 동조는 인간 표현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에서도 마찬가지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은 역설이다. 발레, 음악 심지어 마음이 동조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사랑이 그 예이다. 차이점은 이런 것들이 더 유순한 형태의 동조로서 마음이 없거나 굳어있거나 야만적으로 단조롭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기 좋아하는 자질을 구현하고 있다. 지성, 감성, 가장 높은 종류의 공감을 통해서만 올수있는 단란함 등이다. 서로의 동조에 더하여 우리는 주위 세계와도 동조하고 있음을 때때로 느낀다.16)

자유와상생, 동시성의 과학, 공조, 싱크, 홍사장의책읽기, 시장의모순, , 경영, 동조
posted at 2008/04/12 18:40:00 댓글(2)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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