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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 [시장의 모순]
 

사랑과 자유



자유(B2B21-1)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책 제목 :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저자 :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 공저


이 책은 멀리서 보면 제목이 마치 ‘사랑은 지독한 혼란’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이라는 글자는 아주 작게 씌여져 있고, 중간에 보일 듯 말 듯하게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인 두 사람은 부부이지만, 현대의 사랑을 보는 관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제목도 그렇게 정했을 지 모른다. 원서의 책표지를 보지는 못하였지만, 번역서의 책 표지가 원서의 책 표지를 이용하였다고 생각한다면 두 사람의 의견차이가 제목에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남자인 울리히 벡에게는 현대의 사랑은 너무나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이고, 여자인 엘리자베트 벡에게는 여자의 자유를 획득해가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 부부의 현대 사회에 관한 질문의 시점은 이렇다. “왜 그토록 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치 집단적 열광에 빠진 듯, 과거에는 결혼이 가져다 주는 지복이었던 것들을 포기하고 그 것을 새로운 꿈과 바꾸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왜 안전한 법률과 사회 안전망을 벗어나 ‘열린 결혼’관계로 함께 살아가거나 혹은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하는 걸까? 왜 독립성, 다양성, 변화등을 쫒아 자아의 새로운 페이지들을 빠르게 넘겨가며 혼자 살기를 선택하는 걸까? 그러한 꿈이 악몽을 닮아가기 시작한지도 한참 지났는 데도 말이다.” 이 질문의 핵심은 ‘개인화’이다. 그러나 개인화는 자유를 찾고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한 개별적 투쟁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체계적인 규율이나 도덕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사람이 노동 시장의 이러저러한 요구 조건에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 성별역할이 파괴되고,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성역할을 피괴하는 주역은 여성이고, 남성은 그저 그 과정을 쳐다보며 혼돈스러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에게는 너무나 혼돈스럽고, 여자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사회의 사랑은 다른 모든 종교와 같이 스스로의 신비로움을 벗으면서, 차가운 합리성의 명제로 변화해가고 있다.


책 제목 : 자유

저자 : 지그문트 바우만


모든 의지는 자유롭지만 어떤 의지는 다른 의지보다 자유롭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제약.구속을 받지 않는 소극적 자유와, 무엇을 하여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적극적 자유였다. 그런데 바우만은 나에게 새로운 자유의 의미를 제공하였다. 앞의 두 자유가 개인적 자유와 의지의 실행을 중시하는 절대적 의미의 자유였다면, 바우만의 자유는 사회적 관계에 제약을 받는 상대적 의미의 자유이다.

 

(그래프가 보이지 않으시면 본문의 위에 있는 링크에서 다운받으시면 됩니다.)

     



18세기 이전까지 생산과 분배행위가 직접적으로 그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제도들의 존속과 재생산을 지향하는 여러 사회적 규범들의 압력에 종속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생산과 분배는 친족에 대한 의무, 공동체에 대한 충성, 협동적 연대, 종교적 의례나 생활방식의 위계적 계층화등에 종속되어 있었다. 자본주의는 이 모든 외적인 규범들을 부적합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경제를 수단-목적 계산과 자유선택 행위라는 도전받지 않는 규칙의 영역으로 해방시켰다. 여기까지는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지향하는 ‘자유’의 의미가 같았다고 볼 수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발생시킨다. 경쟁은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로 나누고, 개인주의는 한계에 봉착한다. 그 것은 자유를 지원해줄만한 ‘자원’을 보유한 자만이 자유를 누릴 수있는 것이 ‘자유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즉, 내가 아무리 부산에 가고 싶어도 차표를 살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다면 자유는 헛된 것이다. 이제 기존의 의미를 갖는 자유는 끝이 난다. 소극적 자유->적극적 자유, 생산적 관점의 자유는 더 이상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결국 새로운 출구, 소비적 관점의 자유를 만들어 낸다. 남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면서 그 범위의 한계를 무한정 넓힐 수있는, 상품의 소비를 통한 만족을 느낄 수있는 자유로. 이제 ‘소비자의 자유’는 더 큰 만족과 더 적은 만족(쾌락) 사이의 선택이며, 합리성은 적은 만족보다 더 큰 만족을 고르는 것과 관련된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정착이후 소비자의 유한한 자원이내에서 누릴 수있는 선택의 자유가 현대적 의미의 자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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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  25세의 여자에요. 꿈도 많지요.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제가 생각해도 전 무척이나 자유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해요. 옛날 여자들은 어떻게 살았는 지, 참 답답해요. 현모양처라니. 내 인생을 즐기기도 바쁜 데, 자신을 가족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아요.


내가 생각해도 난 무척이나 자유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해요.  남녀는 동등하다고 생각하고요. 직업을 가지는 데 있어서 능력에 차이가 없는 만큼 고용에도 차별이 있어서는 않되고요.  남자 애인은 없지만, 섹스 파트너는 몇 명되요. 그들을 사랑하냐고요. 글쎄요. 짜릿한 감정은 좋지만, 결혼이 주는 속박이 싫어서 그냥 필요할 때만 만나요. 젊을 때 아이한테만 매달리는 것도 싫지요. 정말 나라는 인간은 정말로 자유를 사랑해요. 무언가가 나를 속박하는 것을 정말 싫어해요. 그래서 전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즐기고 있지요. 물론 사랑이 주는 속박으로부터도 자유롭게 살고있어요.


그런데 저도 세 번의 사랑을 했었답니다.


첫째 남자는 아주 부잣님 도련님이었지요.

우선 남자집에서 저희 집안을 보겠지요. 워낙에 제가 붙임성이 좋으니까 시부모가 되실 어른들이 절 좋아했지요. 그러데 변호사가 문제였어요. 헤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계약서를 들이밀더라고요. 결혼을 한 후에 해야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제시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이혼할 경우에 대비하여 예정된 위자료는 결혼 생활을 지속한 기간과 태어날 아이의 숫자에 비례해서 산정했더라고요. 아무리 있는 집안이지만 이래도 되나요. 자존심이 상하데요. 몸파는 여자도 아닌 사람을 너무 무시받는 기분도 들고요. 위자료 액수는 탐이 났지만, 그만 두자고 했지요.


두 번째 남자는 그저그런 중산층의 남자였어요.

직장도 그저 평범한 착한 남자였지요. 우리는 아무런 부담없이 서로 좋아했지요.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할려니 앞날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남자만의 월급으로는 왠만해서는 살기 어렵잖아요. 게다가 언제 해고되거나, 직장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고. 결국은 맞벌이를 해야하는 데,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아등바등 사는 모습이 떠오르데요. 집한칸 마련하여도 대부금 갚기도 빠듯한 그들의 생활이 저를 암담하게 만들더군요. 게다가 시부모를 모시지 않아도, 가끔은 찾아뵈야 하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런 부담은 없지만, 또 한 남자만 하고 사는 것도 어찌보면 속박이에요. 사실 요즘 남자들 믿기도 어렵고. 그러다 이혼하면 나만 손해인 것같고. 그래서 관두었지요.


세 번째는 가난한 사람이었어요.

멋있게 생겼지만, 좀비 기질이 있었어요. 직장을 가질려고 해도 변변치 못한 곳에서만 몇군데 전전하다 해고당했지요. 아무리 사랑이 좋다지만 구질구질하게 살기는 싫었어요. 그냥 몇 달 만나다 그만두었어요. 그래도 오랜 만난 편이지요.


그러면서 전 사랑이 이렇게 힘든지 비로소 알았어요. 그 때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사랑의 기술을 배우라고. 귀가 솔깃했지요. 그 기술만 있으면 쉽게 진정한 사랑을 하는 무슨 비법같은 건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건 ‘사랑을 하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거라네요. 상당한 인내와 이해심이 필요하지요. 전 가만히 앉아서 사랑받기를 좋아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그런 기술은 필요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와서 생각하니 사랑하기도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랑으로부터의 자유, 사랑이 주는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는 얻었는 데, 사랑으로의 자유, 조건이 없는 진정한 사랑으로의 자유는 아마도 제가 살아있는 한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사랑을 하고, 결실을 맺으려니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해야 하더군요. 바로 나에요. 나는 일을 하고싶어요. 이 사회에서 아주 멋있게 성공하고 싶거든요. 그러다보니 집을 떠나야하는 출장도 많고, 때로는 몇 년간 해외근무를 해야할 지도 몰라요. 현모양처요? 그거 정말 어려운 직업이에요. 저도 때로는 현모양처를 꿈꾸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사회를 알고부터는 포기했어요. 우선 남자들이 원하지 않아요. 요즘 남자들은 여자도 같이 벌기를 원해요. 그렇다고 직장과 가정을 같이 잘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요즘 직장이 얼마나 살벌합니까. 경쟁도 치열해서 뒤처지면 바로 짤려요. 그러니 직장과 살림을 같이 한다는 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죠. 나도 내가 살림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직장에 다니는 한 ‘살림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요. 그러니 ‘현모양처’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죠.


그런거 보면 우리 엄마.아빠가 부러울 때도 많아요. 젊었을 적에는 꽤나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는 데, 아직까지도 잘 살고 있어요. 신기하지요? 연애결혼도 아니고, 중매결혼인데도 말입니다. 아빠는 돈버느라 집에 계실 틈도 없이 밖에서 고생하시고, 엄마는 아빠와 우리 뒷바라지 하느라 자기를 희생하셨지만, 그런 삶도 괜찮아 보여요.


그런데 나는 엄마처럼되기도 어렵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마찬가지로 아빠같은 남자만나기도 그만큼 어려워요.


그래도 발렌타이데이때 초코릿을 사주는 남자도 많고, 화이트 데이 때 사탕을 사줘야 하는 남자도 많아요. 사랑받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잖아요. 


그냥 그러면서 살아야 할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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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해진 미래, 짧아진 직장의 안정성아래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돈, 시간, 사회적 지위, 가정, 우정....)은 미래를 위하여 유보하거나 아껴두어야 한다. 과거보다 실질 소득이 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도 언제까지 내 수중에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자유를 행하기 위하여는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누릴 수있는 자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사랑을 누릴 수있는 자유도 사실상 줄어들고 있다. 본질적으로 생존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인간의 조건 속에서 누가 자유로울 권리를 지니고 있는 가? 자유로울 권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사랑할 권리를 지니고 있는가?


발렌타인데이의 초코릿처럼 우리는 사랑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끝)

사랑, 자유, 지그문트바우만, 사랑은지독한혼란, 울리히벡, 홍사장의책읽기, 필맥스
posted at 2008/07/14 08:47: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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