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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서적에 관한 독후감과 무역을 하면서 느끼는 점을 주제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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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자유에서의 도피’에 의하면 현대의 개인은 경제적, 정치적인 속박에서 자유로워졌다. 또한 새로운 조직에서 활동적이고, 독립된 역할을 다하면 적극적인 자유를 쟁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전의 안정감과 귀속감을 가져다주고 있던 주변과의 관계도 결별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이 세계의 중심인 듯한 폐쇄적인 생활은 끝장났으며, 세계는 끝도 한도 없고, 동시에 공포로 가득찬 것이 됬다. 인간은 폐쇄적인 사회에서 고정된 지위를 잃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신의 생활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즉, 우리를 속박하던 것으로부터 자유로와짐으로서 소극적 의미의 자유인 ‘...으로부터의 자유’는 획득하였다. 그러나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인 ‘....으로의 자유’는 사실상 점점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공식은 우리의 생활 어느 면에서나 적용된다고 볼 수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독서로부터의 자유’는 획득했지만, ‘독서로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마치 자유를 얻기 위하여 피를 흘려야 하는 것처럼.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로부터의 자유 -> 컴퓨터, 인터넷
상급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기 위한 독서로부터의 자유 ->사회진출
모든 사람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라는 것이 생긴지도 얼마되지 않았지만, 학교처럼 지루해 하는 곳도 드물다. 그러니 사람들이 학교 밖으로 나오면 복수라도 하듯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잊어버리고, 책을 놓아버린다. 극히 예외적인 사람도 있지만. 자의든 타의든 간에 학교에서는 책을 읽어야 하지만,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은 책으로부터 자유로와졌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었다.
컴퓨터.인터넷. DMB.mobile phone 등등의 단어들은 우리가 언제든지 어디서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있게 해주는 도구들이다. 책에서 모든 정보를 얻던 시대에는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책에서, 내지는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책에서 정보를 얻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진화되는 유비쿼터스시대에는 언제든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스크린을 통해서 손쉽게 얻을 수있다. 외울 필요도 없어졌다. 다만, 엄지 손가락으로 핸드폰의 자판만 꼼지락거리면 정보를 얼마든지 찾을 수있게 된 것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지은 ‘독서의 역사’에 의하면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만하여도 책은 진흑판에 만들어지거나, 파피루스에 적거나 양피에 적거나 하여 두루마리처럼 접어서 펼쳐 보는 형태였다. 그리고 일일이 손으로 써서 책을 만드는 필사(筆寫)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란 기본적으로 아주 귀하고 비싸서 귀족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서민들은 책을 보유하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다. 여자들은 내용이 가벼운 연예소설 정도나 읽는 것이 허락되었고, 노예들은 글을 읽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심지어 노예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은 교수형감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배우려는 흑인들이 있었다. 이 들은 독서를 하기에는 온갖 종류의 규율이 있었고, 이 규율은 책을 읽고자 하는 욕망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요즘은 어떠한 계급의 사람도 책을 읽는 데 있어서 방해받지 않으며 오히려 권장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를 속박했던 갖가지 독서에 관한 속박은 이미 풀어진 상태이다. 자유의 획득이 주는 고독감, 개인적 독립감이 주는 공포로 말미암아 자유를 두렵게 하고, 자유를 두려워하게 하듯이, 독서의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가 주는 ‘읽는 것에 대한 두려움내지는 귀차니즘’은 ‘독서가 주는 즐거움으로의 자유를 향한 행동’을 억압한다. 책은 돈많은 귀족의 고상하고 사치스런 소장품의 자리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싸고 보기 좋게 편집된 책들이 한국에서만 일년에 3만5천종 이상이 나온다고 한다. 언제든지 가질 수 있지만, 실제로 책을 사는 사람이나 양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프루스트는 ‘욕망은 모든 것을 번성하게 하지만,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게 만든다’고 했다. 독서의 자유를 완전하게 소유한 우리는 독서에 관한 것이 시들해졌나보다.
이러한 독서로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하여는 독서 그 자체가 풍기는 이미지를 벗어버려야 한다. 책을 읽고는 싶은데 잘 읽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독서론들은 지나치게 부담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책을 읽을 때는 엄숙해야하고, 뭔가를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이러한 엄숙하면서도, 읽은 책은 반드시 어디엔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독서란 마음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든가, 실생활에 유용해야 한다는 목적성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우리는 흔히 독서를 성공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으로 여기고, 이를 강조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용도(잠자기 위한수면제, 시간을 때우기 위한 심심풀이 땅콩, 분노를 억제하기 위한 안정제...)가 있다. 목적이 있는 수단은 수단의 용도를 제한하지만, 목적이 열려있는 수단은 용도가 다양해질 수 있다.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만, 그저 그 때 그 때의 기분에 맞는 독서를 하다보면 자연히 몸에 익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독서는 모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다.
활이 춤추며 날아가지만 결국에는 과녘을 맞추고, 미사일도 오차 범위내에서 흔들리며 날아가듯이 독서도 한 방향만을 지속해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없다. 경제.경영에 관한 책도 있고, 인문.과학 서적도 있고, 역사,예술에 관한 서적도 있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떤 분야에 대한 책만 읽어나가는 것은 참 지루한 독서라고 본다.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면 옆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다.
책을 고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익을 목적으로 한 책의 선택은 독서를 따분한 행동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요즘의 서점에 가면 경영.경제 서적이나 실용분야의 책들이 다른 어떤 분야의 책들보다 많이 팔리고 있는 것을 볼 수있다. 왜냐하면 책의 매대의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책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합리성,합목적성뿐처럼 보인다. 독서를 통한 자아개발이나 윤리성 함양, 자아실현등은 뒤로 처진 느낌이다. ‘실용적인 독서’, 그 것도 뭔가 즉각적인 효용성을 얻어낼 수있어야만 하는 독서가, 요즘의 유일한 ‘독서의 목적’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독서의 목적이 다양해지지 않고, 폭이 좁아지고 있다. 책의 판매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이러한 목적성이 가지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이는 ‘독서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우리가, ‘독서로의 자유’를 추구할 이유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책을 세속적인 목적에 상관없이 오직 스스로만을 위하여 독서할 권리를 추구하여야 한다. 그 것은 보다 적극적인 자유의지에 의한 노력이 필요로 하는 행동이다. 외형상으로 보면 우리는 ‘독서 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진정한 독서로의 자유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내가 그 책을 해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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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이런 책을
배리 슈워츠의 ‘선택의 패러독스’에 의하면 우리의 선택이란 그리 자유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제품의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면 마치 그 브랜드가 내 친구인 것처럼 다정하게 느껴지고,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독서의 실용성도 마찬가지다. 그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심한 현대사회가 권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사회’라는 것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사회는 무수한 변화가 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사회의 구성원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돌아보지 않고, 사회 안에 있는 것만 보려고 한다. 숲속에 있는 사는 사람이 숲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 자체에 관한 책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 사회학’등 사회학도 하나의 학문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분야는 아니다. 그의 책은 좌.우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않아서 이념적 거부감이 적다.
남이 권하는 책, 남이 많이 읽는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내가 관심을 가져볼 만한 책을 골라보자. 그러기 위하여는 책방에 가서 평소 가보지 않던 서가 쪽을 가는거다. 예술하는 사람은 여행분야, 경제 분야 쪽도 가보고, 경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인문.과학.예술분야의 책이 있는 곳에 가보자. 의외로 읽을 책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 껏 전혀 관심이 없던 분야의 책을 고르게도 된다. 어느 날 갑자기 토정비결, 주역등에 관심이 생겨날 수도 있고, 제2외국어에 관심이 생길수도 있다. 현실적 이득을 떠나서 정말 인간으로서 나의 속을 풍부하게 해줄 것같은 새로운 취미가 생길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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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
 
책 제목 :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저자 :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 공저
이 책은 멀리서 보면 제목이 마치 ‘사랑은 지독한 혼란’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이라는 글자는 아주 작게 씌여져 있고, 중간에 보일 듯 말 듯하게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인 두 사람은 부부이지만, 현대의 사랑을 보는 관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제목도 그렇게 정했을 지 모른다. 원서의 책표지를 보지는 못하였지만, 번역서의 책 표지가 원서의 책 표지를 이용하였다고 생각한다면 두 사람의 의견차이가 제목에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남자인 울리히 벡에게는 현대의 사랑은 너무나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이고, 여자인 엘리자베트 벡에게는 여자의 자유를 획득해가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 부부의 현대 사회에 관한 질문의 시점은 이렇다. “왜 그토록 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치 집단적 열광에 빠진 듯, 과거에는 결혼이 가져다 주는 지복이었던 것들을 포기하고 그 것을 새로운 꿈과 바꾸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왜 안전한 법률과 사회 안전망을 벗어나 ‘열린 결혼’관계로 함께 살아가거나 혹은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하는 걸까? 왜 독립성, 다양성, 변화등을 쫒아 자아의 새로운 페이지들을 빠르게 넘겨가며 혼자 살기를 선택하는 걸까? 그러한 꿈이 악몽을 닮아가기 시작한지도 한참 지났는 데도 말이다.” 이 질문의 핵심은 ‘개인화’이다. 그러나 개인화는 자유를 찾고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한 개별적 투쟁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체계적인 규율이나 도덕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사람이 노동 시장의 이러저러한 요구 조건에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 성별역할이 파괴되고,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성역할을 피괴하는 주역은 여성이고, 남성은 그저 그 과정을 쳐다보며 혼돈스러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에게는 너무나 혼돈스럽고, 여자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사회의 사랑은 다른 모든 종교와 같이 스스로의 신비로움을 벗으면서, 차가운 합리성의 명제로 변화해가고 있다.
책 제목 : 자유
저자 : 지그문트 바우만
모든 의지는 자유롭지만 어떤 의지는 다른 의지보다 자유롭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제약.구속을 받지 않는 소극적 자유와, 무엇을 하여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적극적 자유였다. 그런데 바우만은 나에게 새로운 자유의 의미를 제공하였다. 앞의 두 자유가 개인적 자유와 의지의 실행을 중시하는 절대적 의미의 자유였다면, 바우만의 자유는 사회적 관계에 제약을 받는 상대적 의미의 자유이다.
(그래프가 보이지 않으시면 본문의 위에 있는 링크에서 다운받으시면 됩니다.)
18세기 이전까지 생산과 분배행위가 직접적으로 그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제도들의 존속과 재생산을 지향하는 여러 사회적 규범들의 압력에 종속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생산과 분배는 친족에 대한 의무, 공동체에 대한 충성, 협동적 연대, 종교적 의례나 생활방식의 위계적 계층화등에 종속되어 있었다. 자본주의는 이 모든 외적인 규범들을 부적합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경제를 수단-목적 계산과 자유선택 행위라는 도전받지 않는 규칙의 영역으로 해방시켰다. 여기까지는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지향하는 ‘자유’의 의미가 같았다고 볼 수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발생시킨다. 경쟁은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로 나누고, 개인주의는 한계에 봉착한다. 그 것은 자유를 지원해줄만한 ‘자원’을 보유한 자만이 자유를 누릴 수있는 것이 ‘자유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즉, 내가 아무리 부산에 가고 싶어도 차표를 살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다면 자유는 헛된 것이다. 이제 기존의 의미를 갖는 자유는 끝이 난다. 소극적 자유->적극적 자유, 생산적 관점의 자유는 더 이상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결국 새로운 출구, 소비적 관점의 자유를 만들어 낸다. 남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면서 그 범위의 한계를 무한정 넓힐 수있는, 상품의 소비를 통한 만족을 느낄 수있는 자유로. 이제 ‘소비자의 자유’는 더 큰 만족과 더 적은 만족(쾌락) 사이의 선택이며, 합리성은 적은 만족보다 더 큰 만족을 고르는 것과 관련된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정착이후 소비자의 유한한 자원이내에서 누릴 수있는 선택의 자유가 현대적 의미의 자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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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 25세의 여자에요. 꿈도 많지요.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제가 생각해도 전 무척이나 자유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해요. 옛날 여자들은 어떻게 살았는 지, 참 답답해요. 현모양처라니. 내 인생을 즐기기도 바쁜 데, 자신을 가족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아요.
내가 생각해도 난 무척이나 자유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해요. 남녀는 동등하다고 생각하고요. 직업을 가지는 데 있어서 능력에 차이가 없는 만큼 고용에도 차별이 있어서는 않되고요. 남자 애인은 없지만, 섹스 파트너는 몇 명되요. 그들을 사랑하냐고요. 글쎄요. 짜릿한 감정은 좋지만, 결혼이 주는 속박이 싫어서 그냥 필요할 때만 만나요. 젊을 때 아이한테만 매달리는 것도 싫지요. 정말 나라는 인간은 정말로 자유를 사랑해요. 무언가가 나를 속박하는 것을 정말 싫어해요. 그래서 전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즐기고 있지요. 물론 사랑이 주는 속박으로부터도 자유롭게 살고있어요.
그런데 저도 세 번의 사랑을 했었답니다.
첫째 남자는 아주 부잣님 도련님이었지요.
우선 남자집에서 저희 집안을 보겠지요. 워낙에 제가 붙임성이 좋으니까 시부모가 되실 어른들이 절 좋아했지요. 그러데 변호사가 문제였어요. 헤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계약서를 들이밀더라고요. 결혼을 한 후에 해야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제시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이혼할 경우에 대비하여 예정된 위자료는 결혼 생활을 지속한 기간과 태어날 아이의 숫자에 비례해서 산정했더라고요. 아무리 있는 집안이지만 이래도 되나요. 자존심이 상하데요. 몸파는 여자도 아닌 사람을 너무 무시받는 기분도 들고요. 위자료 액수는 탐이 났지만, 그만 두자고 했지요.
두 번째 남자는 그저그런 중산층의 남자였어요.
직장도 그저 평범한 착한 남자였지요. 우리는 아무런 부담없이 서로 좋아했지요.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할려니 앞날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남자만의 월급으로는 왠만해서는 살기 어렵잖아요. 게다가 언제 해고되거나, 직장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고. 결국은 맞벌이를 해야하는 데,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아등바등 사는 모습이 떠오르데요. 집한칸 마련하여도 대부금 갚기도 빠듯한 그들의 생활이 저를 암담하게 만들더군요. 게다가 시부모를 모시지 않아도, 가끔은 찾아뵈야 하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런 부담은 없지만, 또 한 남자만 하고 사는 것도 어찌보면 속박이에요. 사실 요즘 남자들 믿기도 어렵고. 그러다 이혼하면 나만 손해인 것같고. 그래서 관두었지요.
세 번째는 가난한 사람이었어요.
멋있게 생겼지만, 좀비 기질이 있었어요. 직장을 가질려고 해도 변변치 못한 곳에서만 몇군데 전전하다 해고당했지요. 아무리 사랑이 좋다지만 구질구질하게 살기는 싫었어요. 그냥 몇 달 만나다 그만두었어요. 그래도 오랜 만난 편이지요.
그러면서 전 사랑이 이렇게 힘든지 비로소 알았어요. 그 때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사랑의 기술을 배우라고. 귀가 솔깃했지요. 그 기술만 있으면 쉽게 진정한 사랑을 하는 무슨 비법같은 건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건 ‘사랑을 하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거라네요. 상당한 인내와 이해심이 필요하지요. 전 가만히 앉아서 사랑받기를 좋아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그런 기술은 필요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와서 생각하니 사랑하기도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랑으로부터의 자유, 사랑이 주는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는 얻었는 데, 사랑으로의 자유, 조건이 없는 진정한 사랑으로의 자유는 아마도 제가 살아있는 한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사랑을 하고, 결실을 맺으려니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해야 하더군요. 바로 나에요. 나는 일을 하고싶어요. 이 사회에서 아주 멋있게 성공하고 싶거든요. 그러다보니 집을 떠나야하는 출장도 많고, 때로는 몇 년간 해외근무를 해야할 지도 몰라요. 현모양처요? 그거 정말 어려운 직업이에요. 저도 때로는 현모양처를 꿈꾸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사회를 알고부터는 포기했어요. 우선 남자들이 원하지 않아요. 요즘 남자들은 여자도 같이 벌기를 원해요. 그렇다고 직장과 가정을 같이 잘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요즘 직장이 얼마나 살벌합니까. 경쟁도 치열해서 뒤처지면 바로 짤려요. 그러니 직장과 살림을 같이 한다는 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죠. 나도 내가 살림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직장에 다니는 한 ‘살림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요. 그러니 ‘현모양처’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죠.
그런거 보면 우리 엄마.아빠가 부러울 때도 많아요. 젊었을 적에는 꽤나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는 데, 아직까지도 잘 살고 있어요. 신기하지요? 연애결혼도 아니고, 중매결혼인데도 말입니다. 아빠는 돈버느라 집에 계실 틈도 없이 밖에서 고생하시고, 엄마는 아빠와 우리 뒷바라지 하느라 자기를 희생하셨지만, 그런 삶도 괜찮아 보여요.
그런데 나는 엄마처럼되기도 어렵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마찬가지로 아빠같은 남자만나기도 그만큼 어려워요.
그래도 발렌타이데이때 초코릿을 사주는 남자도 많고, 화이트 데이 때 사탕을 사줘야 하는 남자도 많아요. 사랑받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잖아요.
그냥 그러면서 살아야 할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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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해진 미래, 짧아진 직장의 안정성아래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돈, 시간, 사회적 지위, 가정, 우정....)은 미래를 위하여 유보하거나 아껴두어야 한다. 과거보다 실질 소득이 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도 언제까지 내 수중에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자유를 행하기 위하여는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누릴 수있는 자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사랑을 누릴 수있는 자유도 사실상 줄어들고 있다. 본질적으로 생존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인간의 조건 속에서 누가 자유로울 권리를 지니고 있는 가? 자유로울 권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사랑할 권리를 지니고 있는가?
발렌타인데이의 초코릿처럼 우리는 사랑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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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선택
시장이 선택의 자유를 풍부하게 한다
선택의 대안이 많을수록 기회비용은 높아간다.
포기해야할 대안이 많은 시장에서 행복할 수있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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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저자 : 이 정전
시장이란 가격을 매개로 자유롭게 거래하는 장소다. 돈만 있으면 실제로 시장에서 우리는 마음대로 할 수있다. 거래가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이미 시장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예찬론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가 있다면, 그것은 “시장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시장이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고 하더라도 무한정 주는 것이 아니라 매우 한정된 범위 안에서 준다는 점, 그리고 모든 종류의 자유를 골고루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1) 비록 시장이 소극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복지의 분배 측면에서는 시장은 결코 다른 어떤 체제보다도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많은 학자들이 복지분배의 심한 불평등을 낳고 있다는 점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큰 약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리 각 개인들에게 자유가 풍성하게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 자유를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데에 필요한 복지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그런 자유는 사실상 소용없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 자유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며 나아가서 자기계발의 기회를 상실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개인의 자기계발 기회마저 심하게 편중되는 경향이 있어서 결국 자기계발의 자유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2)
자유가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다. 민주주의에는 자유뿐만 아니라 평등도 중요하다. 시장은 평등을 지향하는 제도는 분명히 아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시장은 오히려 불평등을 이용하며 그것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시장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건 하나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비민주적인 제도라고 말할 수있다. 3)
평등도 중요하고, 약자의 보호도 중요하고, 경제적 풍요도 중요하다면 결국 각 영역별로 알맞은 정의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중요하다. 그래서 경제영역에서는 성과주의, 즉 경제원리에 입각해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생산을 많이 하도록 하며, 정치영역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해서 분배를 고르게 하고, 사회화영역에서는 필요의 원칙에 따라 잘 나누어 쓴다면 조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4)
책 제목 : 선택의 패러독스
저자 : 배리 슈워츠
카뮈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나, 아니면 커피를 마셔야 하나?” 이것은 삶의 모든 문제가 선택의 문제라는 뜻이다. 매순간 우리는선택을 하며, 우리 앞에는 늘 대안이 있다. 실존은, 적어도 인간의 실존은 사람들이 하는 선택으로 정의된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우리가 전례없이 더 많은 선택과 결정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5)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은 기본적으로 주변의 환경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뜻보면 이것은 선택의 기회가 가능한 한 확대되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바로 그 점에서 현대의 미국 사회에서 무력감은 드문 감정이어야 마땅하다. 1966년과 1986년에 여론조사자 루이스 해리스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질문들에 동의하는 지 물었다. “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소외된 기분을 느낀다.”, “내 생각은 더 이상 주요하지 않다.” 전자의 질문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1966년에 9퍼센트였으나, 1986년에는 37퍼센트로 늘어났다. 후자의 질문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1966년에 36%에서 1986년에는 60%로 늘어났다. 이와 같은 역설에는 두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선택과 통제의 경험이 점점 확대되면서, 그에 대한 기대 역시 높아질 수있다. 자율성을 가로막는 장벽들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남은 장벽들은 한층 더 당혹스러울 수있다. 경주장에서 개들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기계 토끼를 앞서갈 수없듯이 우리의 삶에서 통제의 현실이 아무리 해방적이어도 통제에 대한 기대와 동경을 앞서갈 수없다. 둘째, 더 많은 선택이 반드시 더 많은 통제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시점에서는 너무 많은 기회에 압도당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통제력 대신 무력감을 느낄 수있다. 선택의 기회는 현명하게 선택하는 법을 모를 때 절대로 축복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암에 걸리면 스스로 치료법을 선택하고 싶은 지 물었던 조사가 있었다. 대다수의 응답자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제로 암에 걸린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절대 다수의 응답자들이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예상 속에서 좋아보이는 것이 현실에서도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삶과 죽음의 차이를 뜻할 수도 있는 선택을 할 때, 어떤 선택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된다.6)
선택과 자율에 대한 논의에서 또 하나 알아야 할 점은 여러 면에서 사회적 연결은 자유와 선택, 그리고 자율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결혼은 특정한 상대방에 대한 헌신을 약속함으로써 당사자의 성적 혹은 감정적 파트너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 그리고 진지한 우정은 당신에게 지속적 연대를 요구한다. 누군가의 친구가 되는 것은 때로 당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가족에게도 적용될 것이고, 좀더 강도 높은 차원에서 종교단체들에 참여하는 일에도 적용된다. 대부분의 종교단체들은 소속원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인생을 살고 동료 신자들의 삶에도 도움이 될 것을 요구한다. 결국 비록 상식에 반하는 것을 보이기는 해도, 행복에 가장 크게 공헌하는 것은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한데 묶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이것은 선택의 자유가 충만한 삶을 보장한다는 일반적 상식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7)
"제한은 없어. 너는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단다.“ 어항 속의 아빠 물고기가 아기 물고기에게 말한다. 아빠 물고기는 어항 속의 삶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모르는 것같다. 하지만 그것이 꼭 우물안 개구리를 뜻하는 걸까? 어항 속의 삶은 제한적이지만 안전하기 때문에 아기 물고기는 굶거나 먹힐 염려없이 자유롭게 실험하고 탐구하고 창조하고 삶을 영위할 수있다. 어항이 없다면 제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기 물고기는 생존을 하기 위해 그 모든 힘과 시간을 써야만 한다. 제약이 있는 선택, 제한이 있는 자유는 어항 속의 아기 물고기처럼 우리의 삶에서 온갖 놀라운 가능성을 상상하게 해준다.8)
후회없는 선택을 위한 11가지 원칙
1. 언제 선택할지 선택하라
2. 세심한 선택자가 되어라
3. 더 만족하고 덜 극대화하라
4. 기회비용의 기회비용을 생각하라
5. 결정을 돌이킬 수없는 것으로 만들어라
6. 감사하는 태도를 연습하라
7. 후회를 적게하라
8. 적응을 예상하라
9. 기대를 통제하라
10. 사회적 비교를 줄여라
11. 제약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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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의 경제학자들도 시장이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을 자유롭게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단순히 개인을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시장은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도구도 된다. 따라서 가능하면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시장에 맡겨서 해결하는 것이 사회를 좀더 자유롭고 좋은 사회로 만든다고 적극적인 주장을 펴는 경제학자들도 많다. 이들이 염두에 두는 시장이란 자유경쟁이 보장된 시장이다. 이들에 의하면 1) 시장은 풍부한 선택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각 개인을 자유롭게 한다. 자유 경쟁이 보장된 시장에서는 대체로 다수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자유롭게 거래하게 마련이다. 2) 시장은 폭넓은 다양성을 인정한다. 예컨대 같은 구두라도 온갖 다양한 모양과 색깔로 소비자들의 다양한 구미를 최대한 충족시켜준다.9)
자유로운 시장에서 우리는 최대의 만족을 얻기 위한 선택을 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언뜻보면 답은 쉬운 것같다. 수많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 답을 우리의 내부에서 얻는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안다는 것은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떤 느낌을 가져다 줄 것인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10) 현명한 선택은 우리의 목표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우선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목표와 충분히 좋은 것을 선택하는 목표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최고만을 추구하고 받아들일 때 당신은 ‘극대화자’이다. 극대화자는 자신이 하는 모든 구매나 결정이 반드시 최고이기를 고집한다. 그러나 무엇이 최고인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대안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나의 결정 전략으로서 극대화는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며, 대안들의 수가 늘어나면 그 부담은 한층 더 커진다. 극대화자의 대안은 ‘만족자’이다. 무언가에 만족한다는 것은 충분히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만족자는 나름대로 기준과 표준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기준을 충족시킬 때까지만 탐색을 하며, 그 시점이 되면 탐색을 중단하다.11)
극대화자는 만족자보다 ‘객관적으로’ 더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주관적으로’ 더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극대화자가 상당한 탐색 후에 스웨터를 사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스웨터는 가장 운이 좋은 만족자가 아니라면 어떤 만족자가 찾아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다. 그는 이 스웨터에 대해서 어떤 기분일까? 그는 이 스웨터를 사는 데 들어간 시간과 노력에 화가 날까? 더 좋을 수도 있다는 다른 대안들을 상상할까? 그는 친구들이 더 좋은 선택을 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까? 그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훝어보면서 그들이 더 좋은 스웨터를 입고 있는 지 신경쓸까? 극대화자는 이 모든 의심들 때문에 속이 상할 수도 있지만, 만족자는 편안한 기분을 느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12) 극대화는 효율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그의 목표가 가장 좋은 것을 얻는 것이라면, 그는 현실이 부과하는 제약들의 지배를 받는 타협들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극대자는 자신의 선택에서 만족자들과 같은 수준의 만족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삶의 모든 분야에서 그는 늘 조금만 더 알아보면 더 좋을 것을 찾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매달릴 것이다.13)
그러나 그가 노력하면 할수록 그가 최선이면서 최고의 대안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고려해야 할 대안의 수가 많아지고 포기한 대안들의 매력적인 특성이 축적될 수록 우리가 선택하는 대안에서 비롯되는 만족은 줄어기 때문이다. 이것은 추가적인 대안들이 우리의 행복에 해가 될 수있는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는 포기한 대안들을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고려했지만 선택하지 않은 그 모든 대안들 때문에 우리가 한 결정에서 얻는 만족이 희석되는 실망스러운 경험을 한다. 이와 같은 기회비용의 누적적이고 부정적인 효과를 감안한다면, 결정을 할 때 기회비용을 아예 무시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기회비용이 결정을 복잡하게 만들고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면, 왜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가? 하지만 아쉽게도 어떤 잠재적 투자가 좋은 것인지 알려면 다른 대안들이 가진 매력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이것은 일자리, 휴가지, 의료 서비스, 혹은 그밖에 거의 모든 것에 적용된다. 일단 대안들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기회비용의 문제는 피할 수없게 된다. 하나의 대안이 나머지 대안들보다 모든 측면에서 분명히 더 나은 경우는 아주 드물다. 선택은 거의 언제나 무언가 다른 가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회비용에 대한 생각은 현명한 선택과 결정의 필수적 요소라고 할 수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가능성들의 집합을 제한해서 기회비용의 축적이 그 모든 대안들을 불만스러운 것으로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14)
그런데 극대자가 만족할 가능성이 낮은 이유가 더 있다. 시장경제 자체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끝없는 욕망으로 인해서 늘 불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 욕심이 강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노동시장에서 노동공급을 원활하게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시장에서 번 돈을 상품시장에서 펑펑 써서 상품이 잘팔리게 해준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다른 어떤 체제보다도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할 수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만스럽게 만들어야만 잘 굴러갈 수있는 그런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15) 시장이 선택의 자유를 풍부하게 한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돈이 있는 사람에게만 통하는 애기라는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아예 시장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따라서 선택의 자유를 풍부하게 누리지도 못한다. 시장은 재력에 비해서 자유를 베푼다. 즉 돈에 비례해서 자유를 누릴 수있다.16) 보통 사람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노동시장에서 보내고, 여가시간에는 물질 소비적 활동위주의 치열한 소비생활을 영위한다고 보면, 결국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베푸는 자유란 주로 쇼핑을 마음대로하고 소비를 마음껏 즐길 수있는 그런 자유다. 상품을 되도록 많이 사주어야만 경제가 잘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종류의 자유야말로 진정한 자유이며 참된 행복의 원천이라는 식의 착각을 은연중에 퍼뜨린다.17)
어떤 조사에 의하면 극대화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삶에 덜 만족했고, 덜 행복했고, 덜 낙천적이었고, 더 우울증을 경험했다. 극대화자는 종종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인 우리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중요한 요인이다.18) 우리 모두는 자라면서 삶에는 선택과 기회의 포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인간 진화의 역사에서 이것은 매우 배우기 힘든 교훈이다. 선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어렵다. 잘 선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에서 잘 선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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