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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 [시장의 모순]
 

사랑과 자유



자유(B2B21-1)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책 제목 :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저자 :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 공저


이 책은 멀리서 보면 제목이 마치 ‘사랑은 지독한 혼란’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이라는 글자는 아주 작게 씌여져 있고, 중간에 보일 듯 말 듯하게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인 두 사람은 부부이지만, 현대의 사랑을 보는 관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제목도 그렇게 정했을 지 모른다. 원서의 책표지를 보지는 못하였지만, 번역서의 책 표지가 원서의 책 표지를 이용하였다고 생각한다면 두 사람의 의견차이가 제목에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남자인 울리히 벡에게는 현대의 사랑은 너무나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이고, 여자인 엘리자베트 벡에게는 여자의 자유를 획득해가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 부부의 현대 사회에 관한 질문의 시점은 이렇다. “왜 그토록 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치 집단적 열광에 빠진 듯, 과거에는 결혼이 가져다 주는 지복이었던 것들을 포기하고 그 것을 새로운 꿈과 바꾸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왜 안전한 법률과 사회 안전망을 벗어나 ‘열린 결혼’관계로 함께 살아가거나 혹은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하는 걸까? 왜 독립성, 다양성, 변화등을 쫒아 자아의 새로운 페이지들을 빠르게 넘겨가며 혼자 살기를 선택하는 걸까? 그러한 꿈이 악몽을 닮아가기 시작한지도 한참 지났는 데도 말이다.” 이 질문의 핵심은 ‘개인화’이다. 그러나 개인화는 자유를 찾고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한 개별적 투쟁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체계적인 규율이나 도덕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사람이 노동 시장의 이러저러한 요구 조건에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 성별역할이 파괴되고,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성역할을 피괴하는 주역은 여성이고, 남성은 그저 그 과정을 쳐다보며 혼돈스러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에게는 너무나 혼돈스럽고, 여자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사회의 사랑은 다른 모든 종교와 같이 스스로의 신비로움을 벗으면서, 차가운 합리성의 명제로 변화해가고 있다.


책 제목 : 자유

저자 : 지그문트 바우만


모든 의지는 자유롭지만 어떤 의지는 다른 의지보다 자유롭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제약.구속을 받지 않는 소극적 자유와, 무엇을 하여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적극적 자유였다. 그런데 바우만은 나에게 새로운 자유의 의미를 제공하였다. 앞의 두 자유가 개인적 자유와 의지의 실행을 중시하는 절대적 의미의 자유였다면, 바우만의 자유는 사회적 관계에 제약을 받는 상대적 의미의 자유이다.

 

(그래프가 보이지 않으시면 본문의 위에 있는 링크에서 다운받으시면 됩니다.)

     



18세기 이전까지 생산과 분배행위가 직접적으로 그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제도들의 존속과 재생산을 지향하는 여러 사회적 규범들의 압력에 종속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생산과 분배는 친족에 대한 의무, 공동체에 대한 충성, 협동적 연대, 종교적 의례나 생활방식의 위계적 계층화등에 종속되어 있었다. 자본주의는 이 모든 외적인 규범들을 부적합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경제를 수단-목적 계산과 자유선택 행위라는 도전받지 않는 규칙의 영역으로 해방시켰다. 여기까지는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지향하는 ‘자유’의 의미가 같았다고 볼 수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발생시킨다. 경쟁은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로 나누고, 개인주의는 한계에 봉착한다. 그 것은 자유를 지원해줄만한 ‘자원’을 보유한 자만이 자유를 누릴 수있는 것이 ‘자유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즉, 내가 아무리 부산에 가고 싶어도 차표를 살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다면 자유는 헛된 것이다. 이제 기존의 의미를 갖는 자유는 끝이 난다. 소극적 자유->적극적 자유, 생산적 관점의 자유는 더 이상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결국 새로운 출구, 소비적 관점의 자유를 만들어 낸다. 남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면서 그 범위의 한계를 무한정 넓힐 수있는, 상품의 소비를 통한 만족을 느낄 수있는 자유로. 이제 ‘소비자의 자유’는 더 큰 만족과 더 적은 만족(쾌락) 사이의 선택이며, 합리성은 적은 만족보다 더 큰 만족을 고르는 것과 관련된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정착이후 소비자의 유한한 자원이내에서 누릴 수있는 선택의 자유가 현대적 의미의 자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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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  25세의 여자에요. 꿈도 많지요.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제가 생각해도 전 무척이나 자유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해요. 옛날 여자들은 어떻게 살았는 지, 참 답답해요. 현모양처라니. 내 인생을 즐기기도 바쁜 데, 자신을 가족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아요.


내가 생각해도 난 무척이나 자유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해요.  남녀는 동등하다고 생각하고요. 직업을 가지는 데 있어서 능력에 차이가 없는 만큼 고용에도 차별이 있어서는 않되고요.  남자 애인은 없지만, 섹스 파트너는 몇 명되요. 그들을 사랑하냐고요. 글쎄요. 짜릿한 감정은 좋지만, 결혼이 주는 속박이 싫어서 그냥 필요할 때만 만나요. 젊을 때 아이한테만 매달리는 것도 싫지요. 정말 나라는 인간은 정말로 자유를 사랑해요. 무언가가 나를 속박하는 것을 정말 싫어해요. 그래서 전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즐기고 있지요. 물론 사랑이 주는 속박으로부터도 자유롭게 살고있어요.


그런데 저도 세 번의 사랑을 했었답니다.


첫째 남자는 아주 부잣님 도련님이었지요.

우선 남자집에서 저희 집안을 보겠지요. 워낙에 제가 붙임성이 좋으니까 시부모가 되실 어른들이 절 좋아했지요. 그러데 변호사가 문제였어요. 헤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계약서를 들이밀더라고요. 결혼을 한 후에 해야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제시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이혼할 경우에 대비하여 예정된 위자료는 결혼 생활을 지속한 기간과 태어날 아이의 숫자에 비례해서 산정했더라고요. 아무리 있는 집안이지만 이래도 되나요. 자존심이 상하데요. 몸파는 여자도 아닌 사람을 너무 무시받는 기분도 들고요. 위자료 액수는 탐이 났지만, 그만 두자고 했지요.


두 번째 남자는 그저그런 중산층의 남자였어요.

직장도 그저 평범한 착한 남자였지요. 우리는 아무런 부담없이 서로 좋아했지요.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할려니 앞날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남자만의 월급으로는 왠만해서는 살기 어렵잖아요. 게다가 언제 해고되거나, 직장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고. 결국은 맞벌이를 해야하는 데,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아등바등 사는 모습이 떠오르데요. 집한칸 마련하여도 대부금 갚기도 빠듯한 그들의 생활이 저를 암담하게 만들더군요. 게다가 시부모를 모시지 않아도, 가끔은 찾아뵈야 하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런 부담은 없지만, 또 한 남자만 하고 사는 것도 어찌보면 속박이에요. 사실 요즘 남자들 믿기도 어렵고. 그러다 이혼하면 나만 손해인 것같고. 그래서 관두었지요.


세 번째는 가난한 사람이었어요.

멋있게 생겼지만, 좀비 기질이 있었어요. 직장을 가질려고 해도 변변치 못한 곳에서만 몇군데 전전하다 해고당했지요. 아무리 사랑이 좋다지만 구질구질하게 살기는 싫었어요. 그냥 몇 달 만나다 그만두었어요. 그래도 오랜 만난 편이지요.


그러면서 전 사랑이 이렇게 힘든지 비로소 알았어요. 그 때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사랑의 기술을 배우라고. 귀가 솔깃했지요. 그 기술만 있으면 쉽게 진정한 사랑을 하는 무슨 비법같은 건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건 ‘사랑을 하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거라네요. 상당한 인내와 이해심이 필요하지요. 전 가만히 앉아서 사랑받기를 좋아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그런 기술은 필요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와서 생각하니 사랑하기도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랑으로부터의 자유, 사랑이 주는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는 얻었는 데, 사랑으로의 자유, 조건이 없는 진정한 사랑으로의 자유는 아마도 제가 살아있는 한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사랑을 하고, 결실을 맺으려니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해야 하더군요. 바로 나에요. 나는 일을 하고싶어요. 이 사회에서 아주 멋있게 성공하고 싶거든요. 그러다보니 집을 떠나야하는 출장도 많고, 때로는 몇 년간 해외근무를 해야할 지도 몰라요. 현모양처요? 그거 정말 어려운 직업이에요. 저도 때로는 현모양처를 꿈꾸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사회를 알고부터는 포기했어요. 우선 남자들이 원하지 않아요. 요즘 남자들은 여자도 같이 벌기를 원해요. 그렇다고 직장과 가정을 같이 잘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요즘 직장이 얼마나 살벌합니까. 경쟁도 치열해서 뒤처지면 바로 짤려요. 그러니 직장과 살림을 같이 한다는 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죠. 나도 내가 살림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직장에 다니는 한 ‘살림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요. 그러니 ‘현모양처’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죠.


그런거 보면 우리 엄마.아빠가 부러울 때도 많아요. 젊었을 적에는 꽤나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는 데, 아직까지도 잘 살고 있어요. 신기하지요? 연애결혼도 아니고, 중매결혼인데도 말입니다. 아빠는 돈버느라 집에 계실 틈도 없이 밖에서 고생하시고, 엄마는 아빠와 우리 뒷바라지 하느라 자기를 희생하셨지만, 그런 삶도 괜찮아 보여요.


그런데 나는 엄마처럼되기도 어렵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마찬가지로 아빠같은 남자만나기도 그만큼 어려워요.


그래도 발렌타이데이때 초코릿을 사주는 남자도 많고, 화이트 데이 때 사탕을 사줘야 하는 남자도 많아요. 사랑받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잖아요. 


그냥 그러면서 살아야 할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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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해진 미래, 짧아진 직장의 안정성아래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돈, 시간, 사회적 지위, 가정, 우정....)은 미래를 위하여 유보하거나 아껴두어야 한다. 과거보다 실질 소득이 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도 언제까지 내 수중에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자유를 행하기 위하여는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누릴 수있는 자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사랑을 누릴 수있는 자유도 사실상 줄어들고 있다. 본질적으로 생존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인간의 조건 속에서 누가 자유로울 권리를 지니고 있는 가? 자유로울 권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사랑할 권리를 지니고 있는가?


발렌타인데이의 초코릿처럼 우리는 사랑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끝)

사랑, 자유, 지그문트바우만, 사랑은지독한혼란, 울리히벡, 홍사장의책읽기, 필맥스
posted at 2008/07/14 08:47: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책, 세상이 덜 무서워진다 [홍사장의 책읽기]

홍사장의 책읽기 

 

 

 

 

제 6장 능력있는 사람은 자신을 구하라! 그런데 도대체 누가 능력있는가?

         한스 페터 마르틴과 하랄트 슈만이 지은 ‘세계화의 덫’의 6장 제목이다.


탈규제화. 세계화 그리고 빠르게 일어나는 기술혁신은 엄청난 속도로 사회의 변화를 야기시키고 있다. 이런 발전 속도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세계관을 바꾸고 평생동안 최대 출력을 낼 각오가 되어 있지 않거나 그럴 형편에 있지 못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뒤처지게 되고 있다. 인생 계획이나 사업 목표에 대한 중요한 결단들이 흔히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내려지게 되고, 정치가들로부터는 ‘인스턴트 대책들’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세계화는 빠른 템포의 구조전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전환을 소화할 수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성은 분명히 모든 사람들에게 과도한 것이다. 이것은 평범한 투표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해 마지않는 이 시대의 거대 기업의 스타 경영자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신문에 보도되는 그 들의 부침을 보고 있다.


터보 자본주의 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는 그 들마저 그런데, 지구상의 아주 조그만 나라인 한국에서, ‘유비쿼터스’니, ‘컨버젼스’니 하는 디지털시대에 가장 전형적인 아날로그 제품인 양말, 그 것도 주시장도 아닌 틈새시장인 ‘발가락양말’을 수출하는 나로서는 정말 세상이 겁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허허벌판에 조선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주영도 아니고, ‘무어의 법칙’을 깨뜨리고 ‘황의 법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황창규도 아니다. 세상을 이끌어 갈 패기와 능력도 아직은 부족하고, 반도체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 들이 시대를 이끌어 갈 때에 난 나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두려움에 떨며 세상의 변화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


그 불안감속에서 생존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할수록 점점 더 확실해지는 것은 ‘홍재화’라는 개인은 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주어 풀어가거나, 아니면 문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이다. 불행히도 남에 대한 영향력은 전혀 없으면서, 남이 주는 영향은 그대로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결국 해결책을 찾기 위함보다는, 대응책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관점은 100만대군을 호령하는 제갈공명의 입장이 아니라, 본의아니게 100만대군의 맨 앞에서서 누구보다도 조조 군의 칼을 먼저 맞고 쓰러질 수 있는 이름없는 졸개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세상이 좀더 여유로와 진다면 그런 불쌍한 졸개들을 긍휼히 여기고 보호해주었을 텐데, 아직 그런 세상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세상이 쉽게 올 것 같지는 않다. 결국은 나와 내 가족이 살 길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최선이다. 국가에서는 많은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질 지도 의문이지만, 그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기업은 이제 인간을 위한 수단이기보다는 추상적인 소유주인 주주들로부터 부여받은 인격권을 무기로 하여 법인체 자체의 존속을 위하여, 그 안에 있는 인간의 결정권을 배제시킬 수 있는 ‘목적’ 그 자체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민단체는 그들의 정의로운 구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호구지책’에는 별다른 도움이 될 수없다.


(언제나 그랬지만 특히)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각자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 예술에 몰입하거나,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이웃을 위하여 일하거나, 신을 위하여 봉사할 수있을 것이다. 그 많은 방법중에 내가 택한 방법은 ‘가족기업’이다. 그 것은 나에게 생명을 부여해주신 부모에 보답하고, 나에게 생의 의미를 주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독자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 궁금하다.


난 그 길을 책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분야를 골고루 읽는 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은 먹고 사는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흔히 남들이 말하는 인생을 살찌게, 마음을 여유롭게, 자아실현을 위하여 고상하게 읽는 게 아니다. 남들이 나몰래 뭔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만들어서 저만치 나갈 때 조금이라도 뒤쳐지지 않으려고 책을 읽는다. 그 것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이다. 두려움이 커져갈 때에는 ‘무한능력’과 같은 책을 읽는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은 흘러가야만 하고,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이를테면 스스로에게 거는 ‘세뇌’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지만, 말을 해야 할 때는 적당히 유모도 섞어가면서 좌중을 무리없이 유도할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않되면 뒤집어 없는 고집도 있으면서, 가족을 위하여는 온 몸을 바치는 그야말로 성공한 사람들의 모든 습관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나’라는 세뇌를 시킨다. 자기계발서는 ‘나의 성공은 신의 계명과 자연의 조화에 따라 태고적부터 정해진 섭리일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을 갖기 위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하여도 필요하다.


반대로 커지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을 수없고, 내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은 역시 ‘미래의 트렌드’에 관한 책이다. 모든 미래 트렌드 책들의 공통적인 단어는 ‘변화, 속도, 불안정성’이다. 이러니 겁을 먹지 않을 수 있겠나. 사회학자들이 쓴 책들은 비관적으로 보는 반면에, 경영학자(경영자들이 아닌)나 과학 기술자들(과학자가 아닌)이 쓴 책은 낙관적으로 미래를 서술하는 게 일반적이다. 피터 드러커는 이제껏 우리가 배운 지식의 대부분이 5-10년내에 폐기될 것이니, 15년후에 필요할 지식, 기술, 도구들에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국가는 '기업가적 경제가 지식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는데 성공한 나라만이 국민의 복지를 유지할 수 있는 기업가 사회'임을 예고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래는 작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 정신의 화신인 나의 세상이 될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나의 성공을 정해놓은 신의 마음이 변했을 까봐, 자연의 섭리가 변했을 까봐, 그리고 피터가 나에게 부여한 기업가 사회의 건설의 의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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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을


세상이 두려운 것은 어느 한 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이 남보다 모자라고, 자신의 타고난 능력이 남보다 모자라고, 사회에서의 출발이 남보다 늦거나 불리하고, 어쩌다 실수를 해서 더 뒤처지고.......

세상은 빨리 변하는 데 어떻게 변할 지도 모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고.......


그래서 두려움은 더욱 더 커진다. 그 두려움을 피해가거나 극복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자신의 노력밖에는 별로 뚜렷한 방법도 없다. 복권말고는.


세상은 알 수록 겁이 난다. 그래서 책을 한시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옛날 조상들이야 열심히 논밭에서 일을 하면 가을에 수확할 수있지만, 현대인들이 모두 논밭에서 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손발보다는 머리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책말고 별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책을 읽어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어질 것인가’이다.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한 책을 읽는 게 좋다. 영어를 잘하면 영어로 된 책을, 춤을 잘 추면 춤에 관한 책을, .........

‘세상에서 이 것만은 내가 그 중에서 잘하고, 좋아한다’는 분야를 더 강하게 하는 책을 읽자. 자신감을 지탱해줄 곳을 더 강하게 하는 게 좋다. 그리고 강한 분야의 인근에 관한 책도 읽다보면 자신이 강한 부분이 점점 넓어짐을 알게 된다. 그럼 약한 곳은? 냅두는 거다. 세상에 약점없는 사람이 어디있나? 여유가 있다면, 약한 부분을 좀 덜 약하게 하는 것도 좋기는 하다.


책을 읽지 않아서 두려움이 없거나, 책을 조금은 읽어서 세상이 두렵거나, 두려움을 극복할 정도도 지혜가 쌓였거나........

홍사장의책읽기, 세계화의덫, 두려움, , 경영, 필맥스, Feelmax, 가족기업
posted at 2008/07/05 10:24: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지식사회의 모순 [시장의 모순]

 

단절의 시대화이트칼라의 위기

 

 

지식사회의 모순   (단절의 시대, 화이트칼라의 위기)


‘단절의 시대’는 2000년 판을 번역하였다지만, 시대적 배경은 초판이 발행된 1971년 전후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단절의 시대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 아닌 이미 2000년대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이루어진 시대이다.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지식’중심의 산업이 일어나고, 과거의 여러 요소들이 쓸모없이 변하고,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진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는 ‘지식사회의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작업을 프레이져가 ‘화이트 컬러의 위기’로 일단 시작을 한 것으로 보인다. 프레이져가 쓴 이 책은 여타의 세계화에 관한 책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모두들 환호하면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식기반의 사회’, ‘지식인들의 사회’가 얼마나 초라해질 수있는 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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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단절의 시대

저자 : 피터 드러커


1971년 경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2006년 또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어서 출간되었다. 피터 드러커가 말했던 단절의 시대가 거의 현실화된 것 같다. 그가 말하는 4가지의 단절가운데 가장 큰 것은 ‘지식의 지위와 권력의 변화’이다. 이 모든 단절의 근본동력은 지식이 지식자체에 영향을 미치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단절 :

        경제의 기반이 육체작업에서 지식작업으로, 사회적 지출의 중점은 눈에 보이는 재화에서 지식으로 바뀌었다. 지식이 사회의 중심에, 그리고 경제와 사회활동의 기초로 등장하게 되면서, 지식의 역할, 지식의 의미, 지식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조직의 단절 :

        과거에는 상하관계가 뚜렷한 조직적 권력기관으로서 정부가 유일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부에 새로운 기관들이 출현하였다. 새로운 기관들은 각각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병원, 기업, 대학 심지어는 정부기관조차도 상하관계를 따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같이 다양화된 조직들이 유기체적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각 조직은 최대의 효율성을 이룰 수있게 하는 것은 ‘통치’하는 정부밖에는 없다.


산업기술의 단절 :

        농업과 철강, 자동차 산업과 같이 19세기 초 발명품을 대량생산하던 산업들은 더 이상 선진국들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원동력을 제공할 수없게 되었다. 이에 대체할 만한 산업으로 정보산업, 해양산업, 신물질 개발산업 및 거대도시에서 생성될 새로운 산업이 있다. 이 변화와 혁신의 시대는 ‘지식기반 산업’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경제이론의 단절 :

        현재까지의 경제이론은 현재의 여러 자원 상황을 고려해 출발하고는 그 것을 미래의 판단근거로 삼았다. 이 것은 미래의 경제구조가 현재의 경제구조와 동일하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이는 경제가 균형을 이룰 수있다는 가설인데, 이 가설에는 ‘혁신.기술.지식’이 빠져있다. 또한 국제 경제학의 기본 이론인 비교우위론의 가정인 ‘토지.노동.자본’의 고정성 또한

노동.자본‘의 이동이 많아짐에 따라 타당성을 잃었다. 이처럼 과거의 경제이론들은 각 이론만다 취급하는 요소들을 별개로 다루었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를 넘어선 미시경제. 거시경제 그리고 세계경제를 하나의 ‘경제적 장’으로 통합시킬 수있는 새로운 경제이론이 필요하다.


책 제목 : 화이트 칼라의 위기

저자 : 질 안드레스키 프레이져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직장은 그리 빡빡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평생직장으로서 직업을 영위할 수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15%에 달하는 인플레이션, 실업율 8.5%에 점점 낮아지는 생산성, 그리고 외국에서 물밀듯이 들어오는 수입제품들로 인하여 미국 경제는 위기감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중앙정부와 주정부는 기업 합병과 인수가 활발히 일어날 수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이로서 미국에서는 회사의 인수합병이 황풍이 몰아치고, 인수합병이 끝날 때마다 기업들은 그동안 소요된 비용을 만회하기 위하여 엄청난 수준의 비용 삭감 및 정리해고 그리고 후생복지 혜택 축소등 화이트 칼라의 근로여건은 악화되었다. 정리해고가 일상화되다보니 직장에 대한 애착은 사라지고, 사라진 동료의 자리를 남아있는 사람들이 나누어서 감당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 근무시간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핸드폰과 노트북등 최신 사무기기를 이용해서 집에서도 일을 해야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연봉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직장이 안정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의료보험등 복리후생은 축소되고 있다.


이처럼 만신창이가 된 화이트 칼라의 근로환경 악화가 이제 미국 경제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열악한 근무환경에 지친 근로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보다 직원들을 투자자나 고객만큼 소중한 존재로 대우하는 것이 회사와 근로자 모두에게 유리한 것임을 기업들이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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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 지식사회와 지식경제로의 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인기있는 대답은 “일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고도화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답은 “인간의 근로수명(working life span)이 너무도 길어졌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이렇게 큰 변혁을 초래하는 데 토대가 된 것은 노동에 대한 수요가 아니라 노동의 공급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노동의 공급은 또한 지식의 등장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문제들을 설명한다. 부연설명을 해보자. 인간의 평균수명이 45세에서 65세이상으로 늘어나자, 15세에 육체노동 직종에 취직하는 것보다 대학을 졸업하고 25세에 지식근로 직종에 취직하는 것이 사람들이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2차대전이후 ‘교육 폭발’현상은 노동의 공급을 급격히 바꾸었다. 그 결과, 전통적 직업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 이후 20년간 미국 경제가 처한 근본적인 문제는 육체 노동자를 위한 일자리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식작업의 적절한 공급, 또는 지식수준을 기준으로 급료를 지불하는 직업의 공급이 얼마나 되는 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지식노동이 가능한 노동자의 공급 변화의 결과로 미국은 직업 그 자체가 그 것을 요구하든 않든 간에 순수한 의미의 지식직업을 창출하지 않으면 않되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지식작업은 고학력자가 생산성을 올릴 수있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지식산업이 있었기에 지식 근로자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지식 근로자 있었기에 지식작업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지식산업의 등장으로 인간은 보다 더 쾌적한 환경하에서 인간적인 삶과 행복을 누릴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화이트컬러’로 상징될 수있는 지식사회의 환상은 프레이져에 의하여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지식사회의 등장으로 지식인은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많은 활동영역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그 것은 지금껏 사람들이 경험했던 “정당한 하루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하루의 임금”이 아니라, “예외적인 하루(일자리는 고정이 아니기 때문에)의 작업에 대한 예외적인 임금”을 기대하는 힘겨운 프리랜서내지는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사회에 불과함이 드러났다. 지식이 육체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했지만, 오히려 더 긴 시간 정신노동의 스트레스를 불러왔다. 지식이 획일적으로 일원화되었던 정부의 지시로부터 벗어나게 했지만, 다원화된 조직의 최대 성과를 위하여 언제든지 비정규직으로 전락될 수있는 보호막을 거두어들였다. 지식이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켜 오랜 된 욕구와 필요사항을 충족시켰지만, 기대와 욕망의 수준을 넓힘으로써 삶의 만족도는 오히려 낮아지게 하였다. 지식은 기존의 경제활동을 변경시켰지만, 지식인의 분노는 커져가고 있다.


비개성적인 대량생산 시대로부터 개성을 뚜렷이 살릴 수있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었지만,  지식이 작업 그리고 성과의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은 지식인에게 책임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부과된 책임에 비하여 그들이 받는 급부는 이전에 비하여   별로 나아지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후퇴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지식사회는 위기로 빠지게 되었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를 꼽으라면 지식 근로자의 공급이 지나치게 많은 데다가, 이들이 할 수있는 상당부분이 컴퓨터등 자동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는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화를 드러커는 겁낼 필요가 없다지만, 미국 근로자는 겁을 내야한다. 중국과 인도 근로자는 환영해야 겠지만. 아마 이 책이 1971년 전후에 발간되고, 이 후 고용현황에 대한 수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IT산업이 처음 붐을 일으키던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여도 모든 사람들은 신기술이 기존의 일자리를 없애겠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낼 거라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 실질적인 일자리는 정리해고와 자동화로 줄어들고 있지만, 이 사회는 여전히 대학진학율을 높이는 것으로 부족하여 대학원 졸업해서 MBA를 따야만 지식사회에 겨우 발을 들여놓을 수있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지식사회는 더욱 발전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지식사회가 발전하고, 지식인이 늘어날 수록 사회에서 필요한 정도의 지식은 높아져 가고, 그 지식이 필요한 기간은 더욱 더 짧아져가지만, 일자리는 더 줄어드는 사회가 되어간다.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것을 피터 드러커는 예상을 했는 지 궁금하다.

피터드러커, 단절의시대, 화이트칼라의위기, , 경영, 시장의모순, 홍사장의책읽기, 필맥스
posted at 2008/05/23 09:01: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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