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서적에 관한 독후감과 무역을 하면서 느끼는 점을 주제를 합니다.
Today : 72 | Total : 25,179
skin by freelog.net
책, 내가 읽고 내가 해석한다 [홍사장의 책읽기]

 중이미지보기

 

 

 

에리히 프롬의 ‘자유에서의 도피’에 의하면 현대의 개인은 경제적, 정치적인 속박에서 자유로워졌다. 또한 새로운 조직에서 활동적이고, 독립된 역할을 다하면 적극적인 자유를 쟁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전의 안정감과 귀속감을 가져다주고 있던 주변과의 관계도 결별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이 세계의 중심인 듯한 폐쇄적인 생활은 끝장났으며, 세계는 끝도 한도 없고, 동시에 공포로 가득찬 것이 됬다. 인간은 폐쇄적인 사회에서 고정된 지위를 잃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신의 생활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즉, 우리를 속박하던 것으로부터 자유로와짐으로서 소극적 의미의 자유인 ‘...으로부터의 자유’는 획득하였다. 그러나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인 ‘....으로의 자유’는 사실상 점점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공식은 우리의 생활 어느 면에서나 적용된다고 볼 수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독서로부터의 자유’는 획득했지만, ‘독서로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마치 자유를 얻기 위하여 피를 흘려야 하는 것처럼.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로부터의 자유 -> 컴퓨터, 인터넷

        상급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기 위한 독서로부터의 자유 ->사회진출


모든 사람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라는 것이 생긴지도 얼마되지 않았지만, 학교처럼 지루해 하는 곳도 드물다. 그러니 사람들이 학교 밖으로 나오면 복수라도 하듯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잊어버리고, 책을 놓아버린다. 극히 예외적인 사람도 있지만. 자의든 타의든 간에 학교에서는 책을 읽어야 하지만,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은 책으로부터 자유로와졌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었다.


컴퓨터.인터넷. DMB.mobile phone 등등의 단어들은 우리가 언제든지 어디서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있게 해주는 도구들이다. 책에서 모든 정보를 얻던 시대에는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책에서, 내지는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책에서 정보를 얻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진화되는 유비쿼터스시대에는 언제든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스크린을 통해서 손쉽게 얻을 수있다. 외울 필요도 없어졌다. 다만, 엄지 손가락으로 핸드폰의 자판만 꼼지락거리면 정보를 얼마든지 찾을 수있게 된 것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지은 ‘독서의 역사’에 의하면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만하여도 책은 진흑판에 만들어지거나, 파피루스에 적거나 양피에 적거나 하여 두루마리처럼 접어서 펼쳐 보는 형태였다. 그리고 일일이 손으로 써서 책을 만드는 필사(筆寫)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란 기본적으로 아주 귀하고 비싸서 귀족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서민들은 책을 보유하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다. 여자들은 내용이 가벼운 연예소설 정도나 읽는 것이 허락되었고, 노예들은 글을 읽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심지어 노예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은 교수형감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배우려는 흑인들이 있었다. 이 들은 독서를 하기에는 온갖 종류의 규율이 있었고, 이 규율은 책을 읽고자 하는 욕망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요즘은 어떠한 계급의 사람도 책을 읽는 데 있어서 방해받지 않으며 오히려 권장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를 속박했던 갖가지 독서에 관한 속박은 이미 풀어진 상태이다.  자유의 획득이 주는 고독감, 개인적 독립감이 주는 공포로 말미암아 자유를 두렵게 하고, 자유를 두려워하게 하듯이, 독서의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가 주는 ‘읽는 것에 대한 두려움내지는 귀차니즘’은 ‘독서가 주는 즐거움으로의 자유를 향한 행동’을 억압한다. 책은 돈많은 귀족의 고상하고 사치스런 소장품의 자리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싸고 보기 좋게 편집된 책들이 한국에서만 일년에 3만5천종 이상이 나온다고 한다. 언제든지 가질 수 있지만, 실제로 책을 사는 사람이나 양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프루스트는 ‘욕망은 모든 것을 번성하게 하지만,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게 만든다’고 했다. 독서의 자유를 완전하게 소유한 우리는 독서에 관한 것이 시들해졌나보다.


이러한 독서로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하여는 독서 그 자체가 풍기는 이미지를 벗어버려야 한다. 책을 읽고는 싶은데 잘 읽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독서론들은 지나치게 부담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책을 읽을 때는 엄숙해야하고, 뭔가를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이러한 엄숙하면서도, 읽은 책은 반드시 어디엔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독서란 마음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든가, 실생활에 유용해야 한다는 목적성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우리는 흔히 독서를 성공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으로 여기고, 이를 강조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용도(잠자기 위한수면제, 시간을 때우기 위한 심심풀이 땅콩, 분노를 억제하기 위한 안정제...)가 있다. 목적이 있는 수단은 수단의 용도를 제한하지만, 목적이 열려있는 수단은 용도가 다양해질 수 있다.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만, 그저 그 때 그 때의 기분에 맞는 독서를 하다보면 자연히 몸에 익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독서는 모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다.


활이 춤추며 날아가지만 결국에는 과녘을 맞추고, 미사일도 오차 범위내에서 흔들리며 날아가듯이 독서도 한 방향만을 지속해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없다. 경제.경영에 관한 책도 있고,  인문.과학 서적도 있고, 역사,예술에 관한 서적도 있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떤 분야에 대한 책만 읽어나가는 것은 참 지루한 독서라고 본다.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면 옆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다.


책을 고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익을 목적으로 한 책의 선택은 독서를 따분한 행동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요즘의 서점에 가면 경영.경제 서적이나 실용분야의 책들이 다른 어떤 분야의 책들보다 많이 팔리고 있는 것을 볼 수있다. 왜냐하면 책의 매대의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책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합리성,합목적성뿐처럼 보인다.  독서를 통한 자아개발이나 윤리성 함양, 자아실현등은 뒤로 처진 느낌이다. ‘실용적인 독서’, 그 것도 뭔가 즉각적인 효용성을 얻어낼 수있어야만 하는 독서가, 요즘의 유일한 ‘독서의 목적’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독서의 목적이 다양해지지 않고, 폭이 좁아지고 있다.  책의 판매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이러한 목적성이 가지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이는 ‘독서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우리가, ‘독서로의 자유’를 추구할 이유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책을 세속적인 목적에 상관없이 오직 스스로만을 위하여 독서할 권리를 추구하여야 한다. 그 것은 보다 적극적인 자유의지에 의한 노력이 필요로 하는 행동이다. 외형상으로 보면 우리는 ‘독서 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진정한 독서로의 자유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내가 그 책을 해석하는 것이다.

----------------------------------------------

이럴 때 이런 책을


배리 슈워츠의 ‘선택의 패러독스’에 의하면 우리의 선택이란 그리 자유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제품의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면 마치 그 브랜드가 내 친구인 것처럼 다정하게 느껴지고,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독서의 실용성도 마찬가지다. 그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심한 현대사회가 권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사회’라는 것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사회는 무수한 변화가 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사회의 구성원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돌아보지 않고, 사회 안에 있는 것만 보려고 한다. 숲속에 있는 사는 사람이 숲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 자체에 관한 책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 사회학’등 사회학도 하나의 학문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분야는 아니다. 그의 책은 좌.우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않아서 이념적 거부감이 적다.


남이 권하는 책, 남이 많이 읽는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내가 관심을 가져볼 만한 책을 골라보자. 그러기 위하여는 책방에 가서 평소 가보지 않던 서가 쪽을 가는거다. 예술하는 사람은 여행분야, 경제 분야 쪽도 가보고, 경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인문.과학.예술분야의 책이 있는 곳에 가보자. 의외로 읽을 책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 껏 전혀 관심이 없던 분야의 책을 고르게도 된다. 어느 날 갑자기 토정비결, 주역등에 관심이 생겨날 수도 있고, 제2외국어에 관심이 생길수도 있다. 현실적 이득을 떠나서 정말 인간으로서 나의 속을 풍부하게 해줄 것같은 새로운 취미가 생길 수도 있다.

자유로부터의도피, 에리히프롬, , 자유, 적극적자유, 소극적자유, 필맥스, feelmax
posted at 2008/08/13 12:02: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다이어리를 바꾸면서 [홍사장의 생각]

요즘은 생각이 참 복잡하였읍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 데 무엇부터 해야할지, 그게 먼저할 만큼 중요한지,

현재하고 있는 것은 잘하고 있는 지, 앞으로 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더군요.

 

그러자 갑자기 여지껏 잘 쓰던 다이어리가 싫어졌읍니다.

종이가 작은 것이었읍니다. 그 속에다가 갖은 종류의 일거리들을 분류해서

적다보니 더 이상 두꺼워질 수가 없었읍니다.

글씨도 적게 써야 하는 것도 싫어졌읍니다.

무엇보다도 생각이 다이어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쓰는 것도 뜸해졌읍니다.

그래서 다이어리 속지도 바꾸어보았지만, 떠난 정이 돌아오지 않았읍니다.

 

큰 맘먹고 다이어리를 큰 것으로 바꾸었읍니다.

꽤 비싸네요.

거기다가 속지도 바꾸니 또 비용이 들어가고요.

고연히 쓸 데없는 짓했다는 생각이 들고요.

 

무엇보다 옛날 다이어리에서 새 다이어리로 옮겨적는 게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읍니다.

옮겨적고 다시 새롭게 해보고 하면서 적응하는 데 어줍잖게 열흘이나 걸렸읍니다.

하기사 5년여에 걸쳐 만들어오던 다이어리 정리방법이었읍니다.

그러면서 머리 속이 차차 정리가 되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다시 다이어리를 착실하게 쓰게 되고, 않쓰는 부분은 떼어내고,

새로운 분류를 만들어서 인덱스하고.....

 

대충 되었다 싶어서 새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니는 데,

아직도 옛 다이어리가 옆에 있읍니다.

적당히 낡아버린 나의 습관들과 사고방식들이 아직 떠나기 싫은 모양입니다.

아님 떠나보내기 싫은지도......

 

 

다이어리, 필맥스, FEELMAX
posted at 2008/07/31 20:02: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이 여름에 새로운 기대거리가 생기다 [Feelmax 이야기]

엊그제 핀란드 파트너로부터 이메일이 왔습니다. 태국의 Bangkok Rubber PLC라는 회사와 태국에 필맥스 Footware제품을 판매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방콕러버사는 태국에서 가장 큰 소비재 회사인 Saha Group의 계열사라고 합니다.


맨발로 걷는 느낌을 주는 barefoot shoes라는 컨셉트가 새롭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지요. 방콕 러버사는 태국에서 Ecco, Lacoste, Nike, Timberland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회사로 계열사 중에서 Bankok Athletics Ltd는 13개의 Sport Town store를 소유하고 있고 약 300여개의 판매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태국의 신문에도 이러한 사실이 현지 영자신문과 유력 일간지에 소개되었습니다.


현지어로 된 기사와 영문으로 된 기사를 사진으로 보내왔는 데, 영자지인 The Nation지이 기사는 포토로그에 같이 올립니다.


이제 Feelmax도 새로운 회사가 되어야 할 것같습니다. 이전에는 발가락양말이라는 단일 품목에 집중했었다면, 이제는 신발이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생산에는 연관성이 전혀 없지만 판매자의 입장에서 보면 Footware라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신발을 하게 된 것도 오랜 고민 끝에 나왔던 것입니다. 많은 품목들을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제품에 일관성이 없으면 Feelmax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이 사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각화’와 ‘전문화’의 고민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묘수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태국에서의 Feelmax제품 판매는 신발위주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발가락 양말의 판매도 같이 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생산을 하고 있는 저로서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한 이제까지는 핀란드를 통하여 신발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태국의 공장에서 직접 물건을 수입하면 수입원가나 기간 면에서 상당한 절감요인이 생기게 됩니다.


조만간에 이와 관련된 더 좋은 소식이 올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 여름 새로운 기대거리가 생겼읍니다.

필맥스, 브랜드, 일관성, feelmax, barefoot
posted at 2008/07/28 10:09: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나의 스케쥴
 2008/08 
S M T W T F S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포토로그
최근 북마크
다녀간 이웃
블로그 이웃
새로 등록된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