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서적에 관한 독후감과 무역을 하면서 느끼는 점을 주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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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등감 해소에 좋다 [홍사장의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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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해소를 위하여


동창회를 나가면 꼭 열등감을 자극하는 친구가 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 했던 녀석인데 나이들어 만나니 사회적 지위와 재산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난 항상 그 녀석보다 위치가 처졌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녀석과의 차이는 좀처럼 좁힐 수가 없다.


신문에 난 성공한 CEO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름을 듣기도 어려운 명품 옷을 입고는 겸손하게 앉아서 자기는 가정과 사회에서 모두 열심히 하려고 노력할 뿐이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어도 아이들이 스스로 잘 커서 좋은 대학에 잘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난 뭐지.


나의 학교 성적은 언제나 중간정도였고, 지금은 중간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 잘난 것이 없기에 잘난 사람들을 보면 기가 죽곤하였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나도 기가 죽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뭔가 획기적인 사건이 생겨서 생활이 윤택해졌다던가, 과거 학창시절의 성적표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았고, 다만 책장에 꽂혀있는 책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서 생긴 변화이다.


책에는 온갖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들이 써져 있다.


내가 주로 읽는 책은 경영이나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주된 내용들은 이웃과 착하게 협동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이 치열한 세계화.정보화의 시대에 어떻게 경쟁에서 살아남고, 1등으로 올라서서 오랫동안 견디는 가의 문제이다. 경제학은 그래도 효용이라든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등 좋은 말들도 있기는 하지만, 경영학은 경쟁에 관한 단어가 가장 많은 것같다. 브랜드도 경쟁이고, 생산비 절감도 경쟁을 위한 것이고, 마케팅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고, 경영전략도 경쟁을 염두에 둔 것이고, 기술혁신은 선투다툼의 최우선 수단이기도 하다. 이 모든 수단들을 합하여 경영학은 철저하게 기업의 경영에 정보와 수단을 제공하면서, 또한 기업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학문이다.


기업에 있어서 경쟁이란 대단히 명확한 것이다.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자는 존재한다. 수조원의 투자가 소요되는 반도체. 조선산업이나, 동네의 치킨 집이나 경쟁은 치열하다. 이 때 기업은 가격으로 경쟁을 할 지, 아니면 품질로 경쟁을 할지, 아니면 브랜드를 이용한 이미지로 결정해야 하는 데 어느 것이나 쉽지는 않다. 하지만 경영자의 판단이 어떠한 과정을 거쳤든간에, 시장의 판단은 아주 신속한 편이다. 기업이 내놓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이미 시장에 있는 경쟁자와 비교하여 상당한 정도의 우월성을 갖지 않는다면 시장은 바로 외면하고, 기업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기업을 평가하는 잣대는 아주 간단하다. 그 기업의 경쟁력은 어떻고, 수익성은 얼마인가이다. 종합적인 평가는 ‘주가’로 나타난다. 그런 평가과정을 거치고 나면 기업간의 우월은 칼로 무를 자르듯이 아주 분명하다. 따라서 기업의 일상적인 활동 또한 맺고 끊음이 칼같아야 하지만, 유독 인사관리만은 애매모호한 말들의 연속이다.


채용, 승진, 해고, 동기부여, 평가, 성과관리, 리더십.......

어느 경영에 관한 책치고 위의 단어가 나오지 않은 것이 있을까?

경영자에 관한 책치고 종업원이나 임원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잭 웰치의 위대한 승리를 읽어보니 4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거의 모든 부분이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다. 그 것은 그만큼 인간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한두명에서부터 수만명이 일하는 조직으로서의 기업의 평가는, 그 조직에 속한 개개인을 평가하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쉽게 느껴질 지경이다.


어째서 개개인을 평가하기가 그처럼 어려울까? 그 것은 아마도 인간은 평가하기에는 너무 많은 요소가 있어서 일 것이다. 마이클 포터의 경쟁론에 의하면 기업은 경쟁우위를 창출하기 위하여는 해당 기업의 제품이 포지션닝한 산업군내에서 비용절감과 차별화 높이기로 요약이 된다. 하지만 인간을 평가할 때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우선 인간은 포지셔닝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간단하게 맥킨지식 전략평가 매트릭스로 표현해보자.

 

 

 

 





초코파이는 어디까지나 초코파이로서 맛과 가격으로 평가되면 그 뿐이지만, 사람은 동일한 직장내에서도 인간은 이처럼 다양한 역할로서 포지셔닝이 가능하다. 또 역할에 따른 평가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느 부분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낮은 평가를 받는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인간은 없고, 평가해야할 사항이 많을수록 낮은 평가도 많이 받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없이 핑계를 대야한다. 옛 말에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고 한다. 일을 잘하지 못해서 핑계를 대야하고, 공부를 못해도 핑계를 대야하고, 약속시간에 늦어도 핑계를 대야하고, 돈을 못 벌어도 핑계를 대야하고. 우리는 매일 매일 핑계를 대야한다. 그런데 정말 난감한 것은 남과 비교 당했을 때 어떤 핑계를 대야하는 것이다. 핑계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책임회피일 수도 있지만, 자신을 비참하지 않게 하는 정당화의 한 방편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못하던 분야를 갑자기 잘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럴 듯한 핑계를 더 잘 만들 수 있다. 저속한 사람의 핑계는 설령 자신이 올라가지는 못하더라도,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자 3대 못간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누구는 머리는 좋은 데 인간성이 나빠서 곧 망할 것이다’ 등등... 그 들은 그럴 듯한 핑계거리를 만들 만한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에,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 곧 자신이 올라가는 줄 안다. 하지만 책을 좀 읽은 사람들은 좀더 고차원적인 핑계를 만든다. 나도 올라가고, 그 사람도 올라가는 그런 핑계 말이다.


내가 가장 자주 쓰는 핑계 :

나의 유전자는 그 동안 나와 비교했던 누구의 유전자보다도 더 많이 퍼질 확률이 훨씬 높다. 왜냐하면 나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개체(자식들)는 3개이지만, 대부분은 2개에 불과하거나 심지어는 1개일 뿐일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윈에 의하면 나의 유전자는 현 세상에 어떤 유전자보다도 가장 적응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남들에게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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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이런 책을


우선 모두 ‘비맞은 중’이 되어보자. ‘난 영어를 잘 할 수있어’, ‘이런 일은 내가 아니면 못해’, ‘아이들하고 노는 건 정말 재미있는 거야’,  중얼, 중얼, 중얼....... 끝없이 자기 최면을 걸고, 자아 도취에 빠지자. 열등의식에 빠지는 것보다는 오만에 빠지는 편이 낫다.

책방에 가면 리더십에 관한 책이 무척 많다. 몇 권정도는 읽자. 독자 여러분은 추종자가 되기 위하여 태어난 게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위대한 리더가 되기 위하여 태어났다. 단지 아직은 시기가 아니고, 다가올 시대를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것이다. 유명한 리더들도 알고 보면 독자 여러분보다 잘 난게 별로 없다. 리더십 책을 읽어보면 그 점은 분명히 나타난다.

열등감, , 경쟁론, 매트릭스, 인간평가, 이기적유전자, 필맥스, feelmax
posted at 2008/07/22 08:11: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책, 세상이 덜 무서워진다 [홍사장의 책읽기]

홍사장의 책읽기 

 

 

 

 

제 6장 능력있는 사람은 자신을 구하라! 그런데 도대체 누가 능력있는가?

         한스 페터 마르틴과 하랄트 슈만이 지은 ‘세계화의 덫’의 6장 제목이다.


탈규제화. 세계화 그리고 빠르게 일어나는 기술혁신은 엄청난 속도로 사회의 변화를 야기시키고 있다. 이런 발전 속도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세계관을 바꾸고 평생동안 최대 출력을 낼 각오가 되어 있지 않거나 그럴 형편에 있지 못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뒤처지게 되고 있다. 인생 계획이나 사업 목표에 대한 중요한 결단들이 흔히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내려지게 되고, 정치가들로부터는 ‘인스턴트 대책들’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세계화는 빠른 템포의 구조전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전환을 소화할 수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성은 분명히 모든 사람들에게 과도한 것이다. 이것은 평범한 투표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해 마지않는 이 시대의 거대 기업의 스타 경영자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신문에 보도되는 그 들의 부침을 보고 있다.


터보 자본주의 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는 그 들마저 그런데, 지구상의 아주 조그만 나라인 한국에서, ‘유비쿼터스’니, ‘컨버젼스’니 하는 디지털시대에 가장 전형적인 아날로그 제품인 양말, 그 것도 주시장도 아닌 틈새시장인 ‘발가락양말’을 수출하는 나로서는 정말 세상이 겁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허허벌판에 조선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주영도 아니고, ‘무어의 법칙’을 깨뜨리고 ‘황의 법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황창규도 아니다. 세상을 이끌어 갈 패기와 능력도 아직은 부족하고, 반도체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 들이 시대를 이끌어 갈 때에 난 나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두려움에 떨며 세상의 변화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


그 불안감속에서 생존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할수록 점점 더 확실해지는 것은 ‘홍재화’라는 개인은 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주어 풀어가거나, 아니면 문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이다. 불행히도 남에 대한 영향력은 전혀 없으면서, 남이 주는 영향은 그대로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결국 해결책을 찾기 위함보다는, 대응책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관점은 100만대군을 호령하는 제갈공명의 입장이 아니라, 본의아니게 100만대군의 맨 앞에서서 누구보다도 조조 군의 칼을 먼저 맞고 쓰러질 수 있는 이름없는 졸개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세상이 좀더 여유로와 진다면 그런 불쌍한 졸개들을 긍휼히 여기고 보호해주었을 텐데, 아직 그런 세상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세상이 쉽게 올 것 같지는 않다. 결국은 나와 내 가족이 살 길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최선이다. 국가에서는 많은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질 지도 의문이지만, 그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기업은 이제 인간을 위한 수단이기보다는 추상적인 소유주인 주주들로부터 부여받은 인격권을 무기로 하여 법인체 자체의 존속을 위하여, 그 안에 있는 인간의 결정권을 배제시킬 수 있는 ‘목적’ 그 자체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민단체는 그들의 정의로운 구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호구지책’에는 별다른 도움이 될 수없다.


(언제나 그랬지만 특히)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각자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 예술에 몰입하거나,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이웃을 위하여 일하거나, 신을 위하여 봉사할 수있을 것이다. 그 많은 방법중에 내가 택한 방법은 ‘가족기업’이다. 그 것은 나에게 생명을 부여해주신 부모에 보답하고, 나에게 생의 의미를 주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독자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 궁금하다.


난 그 길을 책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분야를 골고루 읽는 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은 먹고 사는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흔히 남들이 말하는 인생을 살찌게, 마음을 여유롭게, 자아실현을 위하여 고상하게 읽는 게 아니다. 남들이 나몰래 뭔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만들어서 저만치 나갈 때 조금이라도 뒤쳐지지 않으려고 책을 읽는다. 그 것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이다. 두려움이 커져갈 때에는 ‘무한능력’과 같은 책을 읽는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은 흘러가야만 하고,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이를테면 스스로에게 거는 ‘세뇌’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지만, 말을 해야 할 때는 적당히 유모도 섞어가면서 좌중을 무리없이 유도할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않되면 뒤집어 없는 고집도 있으면서, 가족을 위하여는 온 몸을 바치는 그야말로 성공한 사람들의 모든 습관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나’라는 세뇌를 시킨다. 자기계발서는 ‘나의 성공은 신의 계명과 자연의 조화에 따라 태고적부터 정해진 섭리일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을 갖기 위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하여도 필요하다.


반대로 커지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을 수없고, 내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은 역시 ‘미래의 트렌드’에 관한 책이다. 모든 미래 트렌드 책들의 공통적인 단어는 ‘변화, 속도, 불안정성’이다. 이러니 겁을 먹지 않을 수 있겠나. 사회학자들이 쓴 책들은 비관적으로 보는 반면에, 경영학자(경영자들이 아닌)나 과학 기술자들(과학자가 아닌)이 쓴 책은 낙관적으로 미래를 서술하는 게 일반적이다. 피터 드러커는 이제껏 우리가 배운 지식의 대부분이 5-10년내에 폐기될 것이니, 15년후에 필요할 지식, 기술, 도구들에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국가는 '기업가적 경제가 지식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는데 성공한 나라만이 국민의 복지를 유지할 수 있는 기업가 사회'임을 예고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래는 작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 정신의 화신인 나의 세상이 될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나의 성공을 정해놓은 신의 마음이 변했을 까봐, 자연의 섭리가 변했을 까봐, 그리고 피터가 나에게 부여한 기업가 사회의 건설의 의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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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을


세상이 두려운 것은 어느 한 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이 남보다 모자라고, 자신의 타고난 능력이 남보다 모자라고, 사회에서의 출발이 남보다 늦거나 불리하고, 어쩌다 실수를 해서 더 뒤처지고.......

세상은 빨리 변하는 데 어떻게 변할 지도 모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고.......


그래서 두려움은 더욱 더 커진다. 그 두려움을 피해가거나 극복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자신의 노력밖에는 별로 뚜렷한 방법도 없다. 복권말고는.


세상은 알 수록 겁이 난다. 그래서 책을 한시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옛날 조상들이야 열심히 논밭에서 일을 하면 가을에 수확할 수있지만, 현대인들이 모두 논밭에서 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손발보다는 머리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책말고 별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책을 읽어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어질 것인가’이다.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한 책을 읽는 게 좋다. 영어를 잘하면 영어로 된 책을, 춤을 잘 추면 춤에 관한 책을, .........

‘세상에서 이 것만은 내가 그 중에서 잘하고, 좋아한다’는 분야를 더 강하게 하는 책을 읽자. 자신감을 지탱해줄 곳을 더 강하게 하는 게 좋다. 그리고 강한 분야의 인근에 관한 책도 읽다보면 자신이 강한 부분이 점점 넓어짐을 알게 된다. 그럼 약한 곳은? 냅두는 거다. 세상에 약점없는 사람이 어디있나? 여유가 있다면, 약한 부분을 좀 덜 약하게 하는 것도 좋기는 하다.


책을 읽지 않아서 두려움이 없거나, 책을 조금은 읽어서 세상이 두렵거나, 두려움을 극복할 정도도 지혜가 쌓였거나........

홍사장의책읽기, 세계화의덫, 두려움, , 경영, 필맥스, Feelmax, 가족기업
posted at 2008/07/05 10:24: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발가락양말의 특허전쟁(2) [Feelmax 이야기]

오늘에사 핀란드 파트너가 보내준 특허에 관한 서류를 꼼꼼히 읽어보았읍니다.

영문 작은 글씨가 2단으로 6장이나 되어서 눈이 피곤하네요.

 

요약본만 읽어도 기가 막히더니, 전체를 읽어보니 아예 헛웃음이 나오네요.

일단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읍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미 시장에 널려있는 내용으로 그리 긴 서류를 만들어 감히 특허라고 신청을 했는 지,

그리고 그런 것이 특허로 인정이 되었는 지 이해가 되지 않읍니다.

 

그래서 우선 발가락양말을 만드는 기계업체에 장문의 문의 이메일을 보냈읍니다.

그나마 질문의 가치가 있다고 한 것만도 13개나 되었읍니다.

아마 기계업체에서도 저의 질문을 보고는 무슨 '자다 봉창을 두드리나?'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회사에서 낸 특허의 내용이 단 하나라도 인정된다면 그 회사의 기계 판매는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특허제도 자체에 대한 의심이 듭니다.

시장에 나와있는 발가락양말을 하나만 사보았어도 특허로 인정될 수없는 사안입니다.

창의성있는 발명가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그저 서류만으로 하나의 산업을 독식하겠다는 못된 사람들의 이용거리로 전락한 가장 단적인 예로 삼아도 될 정도입니다.

너무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이 특허되어있으니 상대회사에서 마음만 먹으면 미국 전체의 발가락양말의 생산과 판매에 대하여 좌지우지할 수있게 됩니다.

 

우리 양말은 뒷꿈치가 없는 모델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반박의 거리가 많읍니다.

그렇지만 더 확실하게 하고, 우리가 들어갈 비용을 그들에게 치루게 하기 위하여라도 좀더 많은 자료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굳어지고 있읍니다.

 

마침 지적재산권에 민감한 회사의 이름이 그 특허권 서류에 들어가 있읍니다.

제 희망대로 된다면 그 회사도 끌어들일 예정입니다.

어찌 보면 그 회사의 제품을 독점으로 사용할 수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으니까요.

 

이미 핀란드와 미국의 변호사들이 상의를 하고 있으니 좋은 소식이 오겠지만, 이 참에 저 자신도 동기부여를 해야할 만한 기회라고 여기고 있읍니다.

 

 

 

 

발가락양말, 특허, 필맥스, feelmax
posted at 2008/06/28 23:57: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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