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산사에 갑자기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다.정갈한 소찬으로 공양을 하다 말고 밖을 내다보니 대형버스가 4대나 왔다.경주 기림사에서 온 불자들이라고 한다.총총히 계단을 올라 대웅전에 참배한 뒤 가르침을 청하는 이들을 향한 선사의 법문이 간절하다.
 “불자라면 어딜 가도 훌륭하다,거룩하다,존경스럽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돼야 합니다.불교적 인격을 갖춰야 해요.그러려면 우선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많이 읽으세요.읽고 또 읽어서 좋은 말씀들을 외우고 전하세요.그러면 아주 훌륭하고 거룩한 부처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그 모습을 그대로 본떠서 부처님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문수산 축서사.신라때 의상조사가 해발 1206m의 깎아지른 문수산을 병풍 삼아 800m의 고지에 창건한 사찰이다.일제 이후 폐사가 되다시피 한 것을 주지이자 선원장인 무여 스님(68)이 1988년부터 이곳에 주석하면서 오랜 중창불사 끝에 장엄한 대가람으로 가꿔 놓았다.
 무여 스님은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후 상원사,동화사,해인사,관음사,칠불사,망월사 등 제방 선원에서 20여년 동안 안거하며 정진했고,칠불사와 망월사 선원장을 지낸 선지식이다.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힘이 있고,한 마디 한 마디에 중생의 까막눈을 틔우고자 하는 간절함이 배어 있다.법문을 마친 무여 스님을 따라 거처인 삼성각에서 차 한 잔을 청했다.삼배를 올리는데 깎듯이 맞절을 하는 모습에서 하심(下心)이 묻어 나온다.
 -축서사라는 절이름이 특이합니다.어떤 뜻입니까.
 “독수리 취(鷲),깃들 서(棲),독수리가 산다는 뜻인데 뒷산(문수산) 형국이 독수리가 웅비하려는 모양이래요.또 ‘독수리 취’는 불교에서 ‘축’으로 읽기도 하는데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신 영축산을 산스크리트어로 음역하면 ‘축’에 가까워요.독수리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은 부처님과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하지요.그래서 축서사라고 하게 된 겁니다.축서사는 공부하기 좋은 곳이라 예로부터 참선,기도처로 유명했지요.”
 -폐사에 가까웠던 이곳을 중창하느라 힘드셨겠습니다.
 “축서사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팔자가 센 절이예요.머리가 좋아서 아는 것은 많은데 복이 없는 곳이라고 할까요.그래서 복스럽게,후덕하게 하려고 건물을 짓기 전에 성토를 많이 했어요.이만하면 공부하기도 괜찮고 사는 데에도 지장이 없을 듯합니다.”
 이즘에서 말머리를 무여 스님의 전공 분야로 옮겨야 했다.절을 아무리 잘 지었어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며,사람이 살아도 공부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 것인가.평생을 참선 납자로 살아온 무여 스님은 중창불사의 핵심을 승가와 재가를 위한 수행 및 교육공간 조성에 둬 왔다.그래서 보광전 오른편에 선원을 열었고 재가자를 위한 선원과 요사도 마련해 놓고 있다.
 -종무소에서 들으니 선방 스님들이 대단하시더군요.5개월 결사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선원은 지난 겨울 안거 때 개원했는데 하루 18시간씩 정진하고 있습니다.발심 납자 10명이 목숨을 걸다시피 하며 애를 쓰고 있는데 아주 대단한 일이지요.일단 5개월씩 두 번 정도 해보고 대중의 뜻을 수렴해 1년 혹은 3년 결사를 해볼 작정입니다.참으로 애쓰는 분들이 공부하는 수행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참선 공부를 하면 자기 자신이 달라지는 게 보입니까.
 “물론이지요.지혜로운 이라면 승속과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라도 해야 하는 게 수행입니다.안 하면 자기만 손해에요.마음을 닦고 참선하면 인생의 진정한 보람과 행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수행에서 자기의 행복을 못느끼는 사람은 반쪽 인생도 못된다고 합니다.”
 -수행을 하면 어떤 걸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과거 수십,수백생을 살면서 쌓은 이런저런 업으로 인해 마음이 아주 탁합니다.본심,근본마음,본바탕,불성을 타고났으면서도 그것이 있는 줄도,느낄 줄도 몰라요.그걸 발굴하는 작업이 수행이지요.그 쉬운 방법이 마음을 쉬는 것,비우는 것,놓는 것,일체 생각을 않는 겁니다.그런데 보통사람은 단번에 그렇게 할 수 없으니 화두로 의정을 일으켜 참구하면 일체 번뇌망상이 없어지고 마음이 고요해져요.그러면 마음이 맑아지고 오묘한 기분을 느끼는 데 그게 안락(安樂·편안하고 즐거운 상태)이요 법열(法悅·법에서 느끼는 즐거움)입니다.이게 수행에서 느끼는 것이지요.고요하면 맑아지고,맑아지면 오묘함을 느낍니다.그 정도만 돼도 몸에 어디 아프고 안 좋은 게 있어도 다 나아요.항시 싱글벙글할 정도로 즐겁게 살 수 있어요.”
 무여 스님은 “삼매 정도는 느껴봐야 수행이 왜 좋은지,행복이 뭔지 안다”고 했다.세속의 돈이나 명예,권세로 느끼는 행복은 그 때 뿐이지만 수행으로 느끼는 행복은 한 번만 느껴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정도로 오래 간다고도 했다.하지만 간화선은 어렵다고 흔히들 한다.스님은 “문제는 발심”이라며 “참으로 발심하면 그 자리가 부처 자리”라고 했다.
 이쯤에서 속인의 발칙한 궁금증이 도진다.스님은 어떻게 절에 들어와 어떻게 수행했을까.깨달음은 어떻게 얻었을까.안락과 법열을 느껴서 저토록 얼굴이 편안한 것일까.스님에게 출가한 내력부터 물었다.
 “제가 곱게 자란 편이에요.사회적 경험이 부족해서 책과 영화,연극,음악,미술 등을 통해 인생을 알려고 애를 썼지요.그런데 막상 졸업하고 직장에 다녀보니 너무 시시하더라고요.그러다 절에 가서 쉬고 싶어 해인사 암자에 가 있다가 출가하게 됐어요.처음에 송광사로 갔다가 좀더 깊은 산중을 찾아 간 게 오대산 상원사였어요.”
 무여 스님은 탄허 스님한테 사미계를 받고 법명도 탄허 스님이 지어주셨다고 했다.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세상에 부처님 같은 분은 없다는 뜻을 담았다.<초발심자경문>도 탄허 스님한테 배웠다.수계를 한 뒤 행자때부터 선을 시작해 20여 년 간 웬만한 선원은 다 다녔다.오대산 북대에 살 땐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좌선하다 잘 안 되면 의자에 앉아서 하고,그래도 잘 안 되면 서서 정진했다.눕지 않으니 이불은 아예 펴보지도 않았고 소제도 세수도 삭발도 않고 오직 정진 위주로만 살았다고 한다.
 -그토록 치열하게 정진하니 수행 전후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시겠던가요?
 “느끼고 말고요.의정을 일으키고 애쓰다 보면 어느 날 문득 화두가 간절해질 때가 있어요.그 순간 화두에 힘을 얻고,그러면 놓을래야 놓을 수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이 화두가 현전하게 돼요.그러면 가마솥에 물 끓듯 하던 번뇌망상이 아주 고요해지면서 마음이 맑아지고 오묘한 법열과 안락을 느끼게 되지요.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할 기분인데 그 극치가 바로 극락입니다.”
 -경험이 없는 보통 사람으로선 선뜻 이해하기 힘들겠군요.
 “여느 처사나 보살님들이 체험이 없으니까 정말 삼매에 들 수 있느냐,직업을 갖고 일하면서도 화두를 들 수 있느냐고 많이들 묻습니다.동정일여(動靜一如)한 상태부터 삼매의 경지라고 하는데 화두가 안 될 때에는 화두를 들면서 일하기가 어렵습니다.그러나 동정일여한 상태,항상 여여한 상태가 되면 앉으나 서나,오나 가나 화두에 변함이 없어요.좀 깊은 일도 여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무여 스님은 “세속 사람들은 ‘돈 많이 버세요’‘부자 되세요’ 하는 게 인사라지만 돈이나 명예,권세는 그 순간이 지나면 허망할 뿐만 아니라 그런 행복 뒤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따른다”며 “수행으로 찾은 행복은 한 번만 느껴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정도로 허망하지 않고 확실하고 분명하다”고 강조했다.불자들에게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隨·곳에 따라 주인이 되면 선 곳이 바로 진리라는 뜻)’을 자주 들려주는 것도 이때문이다.
 차담을 마치고 일어서면서 벽에 걸린 액자의 내용을 물으니 “한암 스님이 중국 원대 중봉선사의 가르침을 친필로 쓴 것을 복사한 것”이라며 뜻을 일러준다.‘도심견고(道心堅固·도 닦는 마음을 견고하게 가지고) 수요견성(須要見性·오로지 견성할 것만 생각하라) 착착화두(捉着話頭·화두를 붙들고 의정을 일으키되) 여교생철(如咬生鐵·생철을 씹듯이 하라)….’ 중봉선사의 지엄하고 자비로운 가르침이 한암 스님과 무여 스님을 거쳐 후학들을 경책하는 회초리로 다가온다.

“신격화되고 초인화된 붓다를 믿고 의지하는 것은 신앙심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불교에 대한 왜곡과 오해를 불러왔다.역사적 존재인 붓다를 인간적인 측면에서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신심을 정립하는 길이다.”
 1982년부터 서울 역삼동에 강남포교당을 열어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온 성열 스님(63)은 이렇게 지적한다.붓다를 신격화하면 불교학은 불교신학이 되며 승려는 붓다의 뒤를 잇는 수행자가 아니라 사제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
 성열 스님이 새로 펴낸 ‘고따마 붓다-역사와 설화’(문화문고)는 이런 관점에서 붓다의 생애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생생하게 풀어쓴 전기다.
 성열 스님은 이 책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려면 그가 살았던 시대가 어떤 변동기에 있었으며,붓다가 어떤 사람들과 교유했는지 알아야 한다”며 역사와 설화를 구분해 객관적으로 접근한다.초기경전과 각종 문헌자료 등을 토대로 붓다가 태어난 인도의 지리적·경제적·정치적·사회적 환경과 사상계의 변동,샤카(석가)족의 영토와 품성,정치형태,결혼관계 등을 꼼꼼히 짚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성열 스님은 “붓다가 살았던 시기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가 그리스와 마라톤전쟁을 벌였던 때였고,다리우스 1세가 서북인도를 침범했을 때 조로아스터교가 들어왔으므로 붓다도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붓다는 출가하기 전 서역출신의 스승으로부터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웨란자 지역에 안거하면서 서역의 말장수들도 만났다”면서 “동서교역이 활발하고 정치적 변동이 심한 시대에 살았던 붓다는 국제정세에도 상당히 밝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붓다는 자기가 살던 시대가 안고 있던 온갖 모순과 불합리를 깊이 통찰하고 그것을 일깨우고 개선하려 했던 역사 안의 존재였다”면서 “역사적 존재로서 인간 붓다가 가르친 삶의 방식을 구체적 체험을 통해 자기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504쪽,2만2000원.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술·담배로 정죄(定罪)하지 말라,성전건축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교회건축을 중단하라,배타적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 교파를 폐쇄하라.’
 개신교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공격적 비판을 가하는 이른바 ‘안티 기독교’나 비신자들의 주장이 아니다.호주의 선교공동체 GCN(Go Christian Network)의 한국인 담당목사인 조엘 박 목사가 최근 출간한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교회 비판’(박스북스)에 나오는 내용이다.
 국내에서 15년 이상 담임목사로 일하다 2005년부터 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 목사는 이 책에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나름의 파격적 대안과 주장을 제시하고 있어 교계 안팎의 논란이 예상된다.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개교회주의와 교단 우월주의,파벌,술·담배 규제,교회건축,잘못된 설교와 기도,목회자와 교인들의 감투의식,헌금,기복주의 등에 대한 그의 비판은 상당히 거칠고 직설적이다.
 우선 술·담배에 대한 견해다.박 목사는 한국교회가 술과 담배로 교인을 정죄하거나 구원과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술과 담배가 건강에 해로우므로 금하라고 권고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진리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예수님도 술에 대해선 아주 관용적이었다고 그는 설명한다.따라서 술·담배에 대한 ‘공습경보’를 ‘경계경보’로 바꿔 금지하지 말고 경계시키라고 그는 대안을 제시한다.교회의 세상 사이의 울타리를 제거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도,술·담배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전도의 문을 열기 위해서도 술·담배에 대해 한국교회가 결단할 때라고 그는 강조한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배타주의에 대한 지적도 신랄하다.그는 “한국교회의 지독한 배타성은 다른 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개교회주의로부터 시작된다”면서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다른 교회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지독한 개교회주의’를 성토한다.
 자기 교회만 옳고 다른 교회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도사리고 있다는 것.“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라”는 식으로 교인을 자신의 소유물이나 종으로 취급하는 목사, “우리 교회가 좋아”라거나 “우리 목사님이 좋아”라는 식의 유치한 개사곡 등은 배타의식에 젖어 있는 한국교회의 대표적 사례라는 설명이다.
 버스를 이용하거나 TV 설교방송을 통해 다른 지역 교인을 끌어오는 대형교회들에 대해서도 “올바른 교회관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한다.“교인들이 알아서 오는 데 어떻게 하느냐”는 대형교회의 설명에 대해선 “거주지역의 교회를 섬기며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단언한다.또 “신실한 신자로 인정받는 정치인,법조인,학자,교수,사업가들이 왜 대형교회에만 몰려 있는가”라며 출세했다고 교회를 옮기는 ‘철새교인’을 꼬집는다.
 이밖에도 그는 “교파주의는 다른 교회를 배타하기 위한 첨단무기”“성전건축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지적 무지의 만용”“다른 교회 교인을 끌어오는 데 주안점을 둔 총동원주일은 엄청난 도둑질” 등 거칠고 파격적인 주장을 편다.
 박 목사는 “교회 밖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가 여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정신을 차리고 성경적인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252쪽.1만원. 서화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