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바다가 조아조아
운주사, 가을비-르클레지오 [여백]

 

운주사, 가을비-르클레지오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 

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 분이었으나 한 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 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 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서울거리에 

젊은이들, 아가씨들

시간을 다투고 초를 다툰다.

무언가를 사고팔고,

만들고, 창조하고, 찾는다.

운주사의 

가을 단풍 속에

구름 도량을 바치고 계시는

두 분 부처님을

아뜩 잊은 채


찾고 달리고

붙잡고 쓸어간다

로아*의 형상을 한 돌부처님

당신(堂神)을 닮은 부처님

뜬 눈으로 새는 밤

동대문의 네온 불이

숲의 잔가지들 만큼이나

휘황한 상점의 꿈을 깨실까?


세상 끝의

바다 끝의

분단국

겁에 질려

분별을 잃은 듯한 나라


무엇인가을 사고 파는

점을 치고

밤거리를 쏘다닌다

서울이 불 밝힌 편주(片舟)처럼 떠 다닐때


고요하고 정겨운

인사동의 아침

광주 예술인의 거리

청소부들은 거리의 널린 판지들을 거두고

아직도 문이 열린 카페에는 두 연인이 손을 놓지 못한다.


살며, 행동하며

맛보고 방관하고 오감을 빠져들게 한다

번데기 익는 냄새

김치 

우동 미역국

고사리 나물

얼얼한 해파리냉채

심연에서 솟아난 이 땅엔

에테르 맛이 난다.


바라고 꿈을 꾸고 살며

글을 쓴다.


세상의 한 끝에서

사막의 한 끝에서

조명탄이 작열하며 갓 시작한 밤을 사른다.


갈망하고 표류하고

앞지른다

간판에 불이 들어 온다

숲의 부러진 나뭇가지들 처럼

나는 여기서 휘도는 바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 속으로 회색의 아이들을 눕히는 바람에 대해

매운 사막의 관위로


기다리고 웃고 희망을 가지고

사랑하고 사랑하다

서울의 고궁에

신들처럼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눈매는 붓끝으로 찍은 듯하다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 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르 클레지오 2001년 10월 22일


*로아의 신

 곧은 콧대에 반원형 눈썹을 한 긴 얼굴의 이 아프리카신

 아이티를 거쳐서 한국 불교 평상심속에서도 발견된다.


프랑스의 대표소설가로 20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한파로 알려진 그의 대표작은 조서,사막,혁명 등이 있다.

한국 독자엔 황금물고기로 잘 알려졌다.


저자가 2001년 대산문화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운주사를 찾았다

운주사(雲住寺)는 전남 화순에 있는 절이다

2001년 이맘때 운주사에 비가 내렸나 보다.

가을비가 내리는 산사을 걷으며

그 곳에서 천불탑의 경이로운 전설을 듣고 시를 남긴다.

바로 운주사, 가을비다.



운주사.르클레지오, 노벨문학상
posted at 2008/10/13 11:37:00 트랙백(0) | 댓글(0) |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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