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http://www.hankyung.com/board/view.php?no=14&id=_column_269_1&ch=comm
유통 공룡의 가격파괴 : PL 제품의 유혹
2007년 10월, 이마트의 대대적인 PL 제품 런칭으로 유통업계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 1.8리터는 1,630원인데 이마트 콜라 1.5리터는 790원에 불과하다. 물론 코카콜라보다 브랜드 파워에서 밀리고 맛도 약간 차이가 나지만 반값 수준인 가격은 이 두 가지 열세를 극복하고도 남는다. 실제로 이마트 콜라는 코카콜라보다 2배 이상 판매되고 있다. 이밖에도 이마트는 3천 가지 정도의 생활용품을 기존업계 1위 상품보다 47퍼센트 이상 싸게 팔고 있다.
소비자 반응은 즉각 나타났고 PL 제품의 매출은 급격히 늘고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싼 제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PL 제품이 대기업 생산품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품질에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장점도 있다.
PL은 PB(Private Brand)라고도 불리는데 유통업체의 자체 상표 제품을 의미한다. PL 제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은 자체 상표로 제품을 직접 조달해 제품 원가에 포함되는 관리비와 물류비, 마케팅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거대 유통기업은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PL 제품을 생산하고 수급할 수 있는 지배력이 크다.
이에 따라 해외 유통업체의 PL 제품 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막스앤스펜서의 경우는 아예 100퍼센트 PL 제품이고, 월마트와 데스코도 최고 50퍼센트에 육박한다. 이마트는 2006년 매출액 기준 PL의 비중이 10퍼센트 미만이지만 앞으로 PL의 비중을 30퍼센트까지 늘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롯데마트는 현재 3,900여 종류의 PL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2006년에는 전체 매출의 12퍼센트에 해당하는 4,500억 원의 매출을 PL에서 올렸다. 롯데마트는 2010년까지 PL의 매출을 전체 매출의 20퍼센트까지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홈플러스는 4,300여 종류의 PL 제품을 판매하는데 2006년 전체 매출 중 PL의 비중은 18퍼센트 정도였다.
물론 PL 제품의 비중이 높아지면 소비자는 더 싼 가격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지만, 기존 제조업체의 가격 경쟁력은 취약해지게 된다. 실제로 유통업체의 가격결정권은 더욱 높아지고 있고 심지어 유통이 생산을 장악해 가격까지 쥐락펴락하는 경우도 있다.
PL 제품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고, 같은 소비로 돈을 줄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PL 제품을 통한 유통업체의 저가 마케팅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저가 항공의 뿌리치기 힘든 유혹
저가 항공사는 기존에 비행기를 타던 사람들의 주머니를 가볍게 해주고, 이전에 비행기 대신 기차나 고속버스 등 육상교통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비행기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 소비자로서는 기차나 고속버스보다 싼 값에 빨리 갈 수 있는 비행기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저가 항공사는 기존의 항공기 시장과 육상교통 시장의 대체 효과를 내며 이들의 시장을 빼앗고 있다.
저가 항공의 핵심은 경비절감 극대화에 있고 대부분의 저가 항공사는 단일 기종 운영을 통한 항공기 정비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최소의 서비스만을 제공해 서비스 비용도 절감한다. 예를 들면 수화물은 유료이고 짐을 승객이 직접 내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내에서의 물품 판매를 확대하고 공짜 음료수도 제공하지 않는다. 공항도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교외의 공항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승객은 갈수록 늘고 있다.
저가 항공사는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의 대표적인 저가 항공사 라이언에어는 최근 4년 동안 승객이 두 배로 늘어나는 성장세를 기록했는데, 연간 승객 수가 5,000만 명에 이른다. 또 다른 저가 항공사 이지제트는 평균 100달러 미만의 운임으로 유럽 내의 노선을 운용하며 연간 승객 수가 3,300만 명에 이른다.
이밖에도 유럽에는 수십 개의 저가 항공사가 성업 중이고 미국과 아시아 전역에서도 저가 항공사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자동차 신제품 가격이 200만 원대?
우리에게 싼 차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티코도 1991년 출시 당시 300만 원 정도였는데,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08년에 200만 원대 자동차가 나온다니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을 거슬러 물가를 초월한 놀라운 가격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피아트는 인도의 타타자동차와 공동으로 10만 루피(230만 원 정도) 정도의 초저가 자동차 양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2008년 중반에 출시할 계획을 최근 실현시켰다. 만약 이것이 출시되면 초저가 자동차로 기록될 것이며 신흥시장에서 비중이 큰 인도의 자동차 시장을 무섭게 점유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타타자동차의 초저가 자동차 개발의 원동력은 저렴한 인도의 인건비이다. 단지 저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술자들의 수준이 높아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인력 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최대출력 33마력인 소형엔진과 자동차 외관은 스틸을 기본으로 하되 플라스틱을 상당 부분 적용한다는 점도 저가격의 요인이다.
또한 이들은 마케팅 비용 최소화를 위해 대대적인 광고도 하지 않을 것이고 특정 딜러들을 통해 독점 판매하던 전통적인 생산 유통체제를 폐지하고 대리점을 통해 주문을 받게 될 것이다. 더불어 각 대리점에서 고객의 수요가 있을 때마다 자동차를 조립, 판매해 생산원가를 절감한다는 전략도 갖고 있다.
2006년 브릭스에서 팔린 자동차는 1,351만 대 정도이다. 최대 시장인 미국이 1,655만 대였고, 유럽이 1,462만 대인 것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큰 시장임에 틀림없다. 브릭스에서 팔린 자동차 가운데 저가 자동차는 478만 대로 3분의 1에 이른다. 더욱이 신흥시장에서는 고유가로 인해 경차 수요가 연평균 10퍼센트씩 늘어 5년 후에는 865만 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저가 자동차란 보통 1만 달러 이하의 자동차를 말한다. 흔히 경차로 불리는 자동차는 저가 자동차의 가격 기준에 부합하는 셈이다. 그런데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흥시장에서는 저가 자동차보다 훨씬 싼 초저가 자동차가 등장하고 있다.
2004년에 출시된 르노닛산의 저가형 자동차 ‘로간’의 가격은 7,000달러 정도이다. 이 자동차는 출시 이후 2006년까지 누적판매대수 40만 대를 넘어섰다. 로간은 인건비가 저렴한 루마니아에서 생산되어 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수출되는데 2006년 판매량은 25만 6천 대이고 이것은 전년대비 70퍼센트 증가한 수치이다. 로간은 현재 북유럽의 다치아(Dacia)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브라질 등의 남미에서도 생산할 계획이다.
크라이슬러는 중국 체리자동차와 합작해 초저가 자동차를 개발하기로 했고, 혼다는 500만 원대, 도요타는 400만 원대의 배기량 1000cc 이하 모델을 개발 중이다. 현대차그룹도 중국과 인도에서 400만∼500만 원대 초저가 자동차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저가 자동차 개발에 뛰어든 기업으로는 GM, 포드, 폴크스바겐, 스즈키 등의 자동차 회사를 비롯해 IT 기업인 애플이 있다.
초저가 자동차의 등장은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흥시장 사람들도 차를 소유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현재 기준으로 도저히 차를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과 차를 구입할 생각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차를 판매할 가능성을 열게 된 것이다. 더욱이 선진국 중심의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라면 개발도상국은 아직 시장 초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직 차를 살 만한 여력이 있는 사람이 드물다. 그렇다고 그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초저가 자동차를 개발해 그들이 자동차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만들고, 나아가 미래에 주머니 사정이 좋아질 때 더 비싼 자동차를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낫다.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www.digitalcreator.co.kr)
* 본 칼럼은 제가 쓴 책 <소비자가 진화한다 (김용섭 저, 김영사, 2008. 3)>의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궁금하시다면 책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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