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테마 칼럼'에 해당하는 글 36건

출처 : 한경닷컴 > 세계in 게시판
원문 : http://www.hankyung.com/board/view.php?no=308&id=theme_3&ch=comm

하늘과 땅과 사람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친구는 하나 !
하늘과 땅과 사랑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지구촌은 하나 !

하늘만큼 / 땅만큼  ....  지구촌 여러분 !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그 실천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극은 불가능한 세계를 향한 열망과 그 실패의 도정에서 역설적으로 그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숭고한 파토스에 의해 구성되며 , 열망과 패배가 충돌하는 순간 한시대를 추동했던
강렬한 비극의 불꽃은 어두운 심연으로 사그라들고 , 남은 빈공간을 채우는 것은 씁쓸한
자기 모멸과 환멸의 자의식뿐입니다.
어느 시인이 비극을 상실한 채 폐허가 되어버린 , 영혼을 잃어버린 현재의 풍경에 자아의 내면을
겹쳐 놓은 표현을 이야기한것입니다.
양극화 방향속에서 노선을 상실한 채 길가에 우두커니 서있는 자의 혼란과 분열을 향한
우리시대의 우울한 내면 풍경을 비추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 냉혹한 거리속에서 난해한 미래의 자본주의적 현실속에 놓여 있는 모습속에서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잉여와 축적을 통해 냉혹한 삶과 원리를 강요하는 사회속에서의
심미적이고, 윤리적인 것을 박탈하는 벌거벗은 자본의 한계, 자본의 이기주의는 , 세계 어린이
명작 동화속의 벌거벗은 임금님의 어린아이의  시각적인 진실한 모습속에서 , 세상을 바라보는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는 우리의 삶을 우스꽝스런 소극으로 연출하고 있는 지구촌의 세상 엿볼수 있는 모습이 믿음과 소망과 희망과 실천을 포기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바로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자라고 생각해 봅니다.

어느 사상가의 노랫 소리의 외침속에서
우리들은 죄인이 되어 있는것입니다.
하늘이여 , 땅이여 , 사람들이여 ...
저 죽음을 응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죽음을 끝내 지켜주기 바랍니다.
저 죽음을 다시 죽이지 말기를 바랍니다.
지구촌에서는 행복이 더 많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의 축제를 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든것을 평화 수호를 외치는 , 평화롭고 단순한 인생과 삶의 모습이였으면 , 좋겠습니다.
지구촌의 미래 경영속에서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합리화 시키는
질문하고 있는 모습속에서 , 사회속에서의 조직속에서 자기 검열의 키워드적인 언어는 자아를
둘러싼 자본주의적 시스템의 정당성에 대한 , 자본주의가 주장하는 평화의 경쟁과 생존 행위 그것에 대한 물음과 함께 인권과 생명윤리법은 나란히 버려진 현재의 세상속의 풍경에 겹쳐 놓는다.
비천한 세계에 놓인, 타락한 세상을 자기를 폭로함으로써 세계의 정당성을 회의하는 다수결의
원칙들 이러한 자기 노출은 비극을 상실한 단순한 다수결의 원칙 즉 시스템마저, 상실한 시대의
원칙인지 아이러니한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미래의 경영은 다수결의 원칙에서 결정한 단순한  문명의 모습인 시스템일것이다.
스스로를 썩은 시간속의 아들 딸 이라고 국제적 무한 경쟁속의 세계화의 모습들 , 낙오자와 오류자와 악성 바이러스로 명명하면서 사회체계속에서 폐배자와 폐륜아 , 탕자의 자아에 대한 환멸을 사회를 비유하며, 사회를 상대로 드러낸다.

20세기 중반의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 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 조합원을 숙청 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 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 교도를 숙청 했다.
나는 개신교도 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독일에서 서 있는 모습에서 바라본 , 세상 을 비유하였을 것이다.
세상 어디에서 바라 보는가에 따라 , 숙청된 사회의 모습은 달라질것이다 .
지구촌 사회속에서 나 자신도 모르게  숙청되어 있는지도 모르면서도
우리들은 자신의 주체사상을 가지고, 인권으로 생명윤리법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자신을 지켜주던 명예는 사라지고 , 수치심과 치욕을 상실한 " 어른들의 시간을 살아가야하는
우리 아들, 딸들은 침묵으로 굳어진 혀를 가지고 , 어른들의 시간이 지나가길 바랄뿐일것이다.
상실한 존재의 모습을 그 이름을 불러보지도 못하고 그누구도 구원을 생각해 보지도 못하는것 같다.  세상 체계의 커다란 웃음소리는 냉소와 환멸로 가득찬 " 나쁜 냄새" 를 퍼뜨릴뿐이다.
명예와 위치와 직위와 직업과 가정속의 가장 그리고 교육을 상실하고 폐배해가는 모습, 폐인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속에 자아의  상실한 영혼 없는 , 영혼이 한 없이 초라한 , 누추하고 비루해지는
세상체계의 과정속에서 비루한 현실과 몰락의 시간의  살아가야하는 생명존재의 위치는 우울함
그리고 그 속에 스며든 우리의 아들과 딸들 그리고 지구촌 환란속에 죽음의 이미지를 은폐하고
있을 따름일것이다.  " 예수의 고난은 전 세계의 평화의 호소 입니다 "

생명은 태어나기에 위대한 것입니다.
생명 예찬을 하기에 지구촌에서 유지를 할수 있는것입니다.
진리는 생존이며 경쟁을 통해 자유케 한다는 것입니다.
우주 공간에는 지구촌에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믿음과 희망, 그실천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거라는 시대에도 , 개화기 시대에도, 과도기 시대에도 , 현재에도
현실에도 , 미래에도 , 성탄절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 하나님이 구원 하신다 " 는 뜻을 가진다.
예수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지구촌에서 아주 흔한 이름중에서 일반적인 이름중에 속한다.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랄것이다.
한 사람이 독점한 신성불가침의 이름이 아니라
일반적인 이름이 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
그것은 바로 " 예수 "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 하나님의 구원 과 해방 " 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어떤 상황에서도 꺽이지 않고
21세기 전후 근대화적인 현실속에서도 미래속에서도 , 서민속에 있기를 바라듯이
사회 체계의 바닥에 맥맥이 흐르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
예수 께서 오신것은 , 섬김을 받으려 온것이 아니라 , 섬김을 주기 위해서 왔다는
말씀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라는 흔한 이름을 가지고 , 그 이름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담았을것이다.
모든 고통과 환란을 당한 사람들이 . 예수라는 이름을 외침으로 , 호소했기에
" 예수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이 되었기에 , 결코 이 이름의 의미를 감소 시키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끝없이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의 세월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민중들의 믿음과 희망이 얼마나 끈질기게 이어져 왔는가를 이야기 하는것이다. 그러므로 " 예수 "라는 이름은  민중들의 믿음과 영생과 염원을 떠나서는 이해할수 없는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바로 고난과 환란의 역사속에서 , 서민들의 애환과 같이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이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의 노래 가락을 붙잡듯이 , 붙들듯이 ...!
예수의 이름은 고난의 역사속에서 , 서민속에서 ...
하나님과 함께 하며, 구원의 확신을 간절히 염원하는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 성령의 불이 충만한 모습의 역사를 일으키는 ...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예수의 이름이다.
따라서 예수의 이름을 찾으므로써 , 구원을 얻는다는  " 임마누엘 " 의 모습인것이다.

" 보이는 물질의 세계는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 "
보이지 않는 세계는 신의 존재 확인 즉 로고스의 세워져있는 가치가 진리이다.
언어에는 창조력 과 사상의 힘 즉 서로가 통하는 협력의 힘 즉 각인력, 견인력 이라는
놀라운 힘이 내제 되어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라.
우리가  흘리는 언어는  씨앗이 되어 , 믿음속에서 창조적 긍정의 힘이 작용하여
열매가 맺혀지는것이다. 만일 빵의 양식이 부족하고 , 세상이 춥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너무 작은 심장을 가졌기 때문일것이다.
에머슨은 생각하는일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일이라 보았지만 그보다
어려운 일은 생각한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다.
한 사람의 생각과 그로인한 행동의 여파는 우주에 까지 영향을 끼칠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창조적인 사고를 키우는 자기 학습법으로 선택한것은
신의 존재에게 기도를 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에 집중을 하며 초점이 흔들리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모습이
우주에 까지 영향을 끼칠수 있는것이다.
신의 존재에게 기도하는 실천에 옮기는 창조적 행동의 미학이 필요한것이다.

" 거룩한 땅으로 바라보기 "
긍정적인 힘이 영향을 주는 모습의 땅 .
모든 의( 義 ) 를 이루는 허락한 땅의 모습들 .
우리의 손으로 거룩한 일을 하는  모습의 땅 .
우리들의 얼굴이 신실한 모습의 땅 .
선( 善 )을 향하고 받는 고난의 모습의 땅.
약속의 말씀과 언약의 믿음, 순종으로 기도하는 실천하는 모습의 땅.
무지개가  약속하는  , 영원한 언약된 모습의  땅 .
목자들이 자기 양을 지키기 위한 모습의 땅 .
영장의 기쁨으로 사랑을 전하는 충만한 모습의 땅 .
온 국민이 합의 일치하여, 세계적인 행사를 맞이하는 모습의 땅 .
천사들이 받치고 있는 생명의 길, 축복된 모습의 땅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는 모습의 땅.
노동법이 알파와 오메가 같이 영원한 생명 윤리법으로 영원한 언약을 지키는 모습의땅 .
국제적 무한 경쟁 시대의 양극화, 지구촌 구석 구석 경제와 법치주의가 회복되는 모습의 땅.

거룩한 땅이란 ?
" 너의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발에서 신발을 벗으라.
그리고 신을 벗은 맨발로 그, 땅을 밟아 보라.
얼마나 거룩한 땅인지 알것이다. "
무한 경쟁시대의 양극화 회복은 1% 가 주는 행복한 모습입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길이 있습니다.
하늘에는 하늘의 길 ( 天理 : 하늘의 이치 ) 가 있고
지상에는 지상의 길이 있습니다.
홍익 교육 사상과 전인 교육 사상으로 잘 가르치는 이치의 길입니다.
별들도 , 들풀들도 다 자연으로 향하는 제 길을 갑니다.
사람들도 , 자연으로 향하는 사람의 길이 있습니다.
자연으로 향하는 세상 모든 만물들은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가야할길 , 가지 말아야 할길, 가고 싶은길, 갈수없는 길
바로 자연의 이치 즉 근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는 인간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산소를  못먹으면  ,생명은 죽는 우주의 이치때문입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는 길 , 지금은 갈수 없지만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길
가기 싫지만 , 어쩔수 없이 가야 하는 길 ,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많은 길을 만납니다.
가고 싶은 길과 의지대로 갈수 있는 길만 있으면 , 좋겠지만
우리 앞에 놓인 길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길입니다.
그 사람은 세상 전체속에서 일부가 되어 길을 잘못 들어 갔습니다.
욕심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할일은 비난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세상 전체가 옳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옳은 길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살아 있는 양심이  그것을 가리켜 주니까요 !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길을 핑계 거리로 생각하며, 가는지 알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길은 핑계 거리가 수 없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득세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실을 보면 나쁜 사람이 더 부귀 영화를 누리는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의 길은 핑계거리가 수없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늘의 일치속에서 음양의 조화를 부정하면 , 인과 응보 라는것도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 , 시대마다의 역사 , 현실의 역사속에서 인과 응보를 받는 역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는 격언이 하늘의 이치이며
세상 사회 공동체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옳은 길은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이 인과 응보를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등대의 빛이 되어 그것이 함께 가는 길이고 거룩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도반 ( 道 反 ) 의 길입니다.
바로  촛불 집회 의 의미를 이야기하면 , 횃불 이나 봉기하는 불  같은것은 , 강한 면과 같은
뭉치면 살고 , 흩어지면 죽는다는 결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촛불이라하면 , 모두가 조심을 하지 않으면 , 촛불은 꺼지고 맙니다.
함께 , 조심하면서 촛불이 꺼지지 않게 , 서로가 협력하는 모습이 도반의 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진짜이유는 제가 딛고 , 선 땅위에서 가야할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생명과 평화를 중심에 놓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면 큰길이 열릴것입니다.
빨리만 갈려고 하다보면 그것으로 인해 놓치는 것도 있기에 가끔은 천천히 가는 것도 좋습니다.
지구촌의 역사속에서 인과 응보를 받은 역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땅을 바라만 보아도 , 행복한 동행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촌 사회 안에서는 떨어질때와 올라갈때가 있습니다.
사회속에서 떨어질때 우리는 무엇을 무엇을 내 버리는 가요 ?
가정파괴, 애써 쌓아올린 정체성과 평판, 소중한 자아를 내 버린다.
야망을 내버리고, 탐욕을 내 버리고,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이성을 내 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떨어지는가 ?
천국 과 지옥 , 선과 악, 열정속으로 공포속으로, 터무니 없는 영원하지 못한 기쁨속으로
떨어질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떨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모두 높은곳에서, 넓은곳에서 , 깊은곳으로 , 떨어져 한참 하강하고 있는중이다. 우리는 신의 은총으로부터 추락하고 있다면 은총과 함께 추락하게 해 달라고 은총을
향해서 추락하게 해달라고  기도 하자 !
우리가 고통과 나약함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면 , 즐거움과 강력함을  행해서도 떨어지자.
우리가 죽음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다면 , 삶을 향해서 떨어져 보자.
우리는 지금 현실속에서 무엇을 향해 떨어지고 있습니까 !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꼭두야 꼭두야 , 아라리 난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타박 타박 타박네야 ! 아라리 난네.
자원의 완성은 행복한 동행입니다.




출처 : 한경닷컴 > 세계in 게시판
원문 : http://www.hankyung.com/board/view.php?no=305&id=theme_3&ch=comm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 행복한 동행 / 작성자 : 조옥현 ( cho.ok.hyun )

하늘과 땅과 사람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친구는 하나 !
하늘과 땅과 사랑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지구촌은 하나 !

하늘만큼 / 땅만큼 ... 지구촌 친구들 ,사랑해요 .

지구촌 세상에는 악당 세력이 있다.
이 조직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관할하고, 조정하기 위해 있는것이다.
이 세상의 신으로서 행세하는 악당 조직은 뛰어난 전략을 가지고 있다.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조직내에는 각기 다른 기능을 가지고 행세한다.
그 세가지는 , 정사 와 권세와 능력이다.

1, 정사
정사 (政 使) 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의사를 뛰어넘어 발언권을 행사하거나
의지를 구현한다는 뜻과 관련되어 있다.
악당 세력은 인간의 권위구조속에 교묘히 침투하여 이를 통해 지배하려고 획책한다.
악당 세력은  하나님보다 , 한끝발 낮은것을 이야기 할수 있다.
하나님은 분노와 진노와 무력행사를 심판을 할수 있으며 , 우주와 지구의 인류와 삼라만상을
자연적으로 치유를 할수 있다.
하지만 악당 세력은 모든것을 할수 있지만 , 특히 무력행사를 최고의 능력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하나님과 같은 구원론 즉 자연적으로 치유를할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한끝발 낮은자들이다.
특히 사탄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인간의 잘못된 판단과 이기적인
선택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지배의 손길을 뻗쳐왔다.
하지만 하나님은 집단적으로 , 전체적인 모습으로, 심판론과 구원론을 표현 하고 계십니다.
사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악당 세력도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보복은 못하고
일부분을 가지고 본보기를 삼으며 , 악당 세력 노릇을 하고 있을따름이다.
특히 권세나 권위 구조라 하면 우리 생활이 모든면과 맞닿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것이다.
국가관계의 정부, 학교 , 사회집단 , 사업체, 종교 관계, 동우회, 가정 안에도
권위 구조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구촌의 사회안에는 있는 구조에서 권위자가 없거나 권위에 대한 복종이 없는 곳에는
혼돈과 반역이 있으며, 악당 세력이 지배한다.
따라서 이같은 제도가 파괴된 만큼 악당 세력은 무법천지 , 야 ! 우리 세상이라고 외치며
사회를 혼돈 시키며 쳐 먹는다.
따라서 이같은 제도가 파괴된 만큼 사탄은 세상을 일시적으로 다스리는듯이 되어었다.
성경속에서도 항상 사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경속에서는 하나님의 로고스적인 존재를 항상 확인 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엑스트라 지나가는
사람처럼 시대마다, 역사마다, 출연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빛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것도
사탄의 몫이다.  성경속의 말씀속에서는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도 항상 성경의 말씀을
읽음으로 해서 사탄의 존재를 인류와 함께 삶을 영위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경속에서는 항상 사탄의 모습이 존재하는것도 , 하나님의 모습같이 볼수 있는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잠재력속에서 , 영적으로 비공식적으로 하지만
하나님은 공인된 모습으로 예언서의 약속, 언약속에서 나타내십니다.
보이지 않는 비공인적으로 세계속으로, 사탄은 세가지 방법으로
이와 같은 국경과 인종과 사상의 벽을 무너뜨리려고 애쓰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방법은 경건치 않은 지도자들을 등장 시키는것이다.
지도자가 종교의 진리적 구원론의 원칙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고
다스리지 않을때 권위의 벽은 무너져 내린다.
악당 세력이 그를 통해서 들어와서 다스리도록 허용하고 만다.
모든 권위는 사탄의 공격 대상이 된다.
두번째 방법은 , 사회의 방어벽을 파괴 시키는 것은 권위를 도외시 하는것이다.
곧 지도자가 지도자 되지 않는것이다. 부모가 부모 되지 못하며
자식이 자식 노릇을 못하는 것, 그리고 교사가 교사되지 못하는것이다.
지도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만큼 빈자리에 어둠의 정사가 들어와 다스리게 된다.
세번째 방법은 ,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거역이다.
간단 명료하게 말하자면 거역의 영은 곧 권위를 거부하는것이다.
그것은 우리 위에 부여된 모든것으로 부터 벗어 나려고 하는 욕구이다.
거역과 만용과 사술은 권위 구조와 개인의 삶속에 똑 같은 결과를 가져 온다.
이 둘의 관계는 모두가 어둠의 세력과 직접 연계되어 있는것이다.

2, 권세  ( 權世 )
악당 세력의 두번째 기능은 흔히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 재개발 도시속에서 , 신도시속에서
허가권을 따내어 상권 다툼을 주도하는 경제 주의 세력을 말한다.
국가 관계안에서 , 지방 과 지역을 장악하고, 힘과 능력을 부리는 세력을
뜻하는 말로 " 권세가 ( 權世價 ) 라고 이야기 한다.
권세는 어둠속에서 법도를 장악하고 , 국민들에게 힘을 과시하고, 독재와 독점하는 세력을 말한다. 권세는 단지 자신들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만들어 자신의 왕국을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력을
미치는 그런 존재이다. 지구상의 악당 세력은 세계 지도안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만들어 배치 시킨다. 그러므로 무질서하게 자신들의 지역을 자기들의 군대를 흟어 놓은것이 아니다.
지구촌속에서 남의 지역을 무질서하게 돌아다니며 , 서로 좌충 우돌하게 상대편을 만들어 놓는다.
지구촌의 악당세력의 전략은 암스텔담의 윤락 여성과 콜롬비아의 집없는 아이들을 다스리는 전략은 각각 다르다. 유능한 지휘관 처럼 , 이땅에 대한 악당 세력은 잘 작성된 전략 지도를 가지고
수립한다. 지구촌의 악당 세력은 나라와 지역, 도시, 동네, 경제 기업적 상권, 가정 그리고 혈연 까지도 잘 파악하고 있다 한다.
성경속의 사탄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전쟁터에 대해 잘알고 파악하여, 혼돈을 만들어 전략을 세워 놓고 있는것이다.
21세기의 사회의 모습은 범죄와의 전쟁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것이다.

3, 능력 ( 能 力 )

악당의 세력은 조직을  점 조직으로 운영하여 ,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활동한다.
악당들의 세번째 기능은 능력 또한 잘 드러나지 않게 , 주도 면밀하게 지능적으로, 견고하게
자신의 터전을 관리하고 있다.
사회속의 국민들을 악과 면밀하게 연관관계를 만들어서 , 꼼짝못하게  죄를 조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이것은 악을 만연 시키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이라고 말할수 있는것이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 이기적으로 사는 만큼 , 악당의 세력들은 우리 사회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반대로 살면서 사탄에게 넘겨준 권위만큼 정확히
그만큼만 악당 세력은 권세를 휘두르고 있는것이다.
지구촌의 사탄의 활동은 우리의 죄된 본성에 따라 결정하고, 그만큼 죄값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 그것은 곧 죄를  통해서 악당 세력이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관 관계를 맺고 있으며 , 우리들을 압제, 탄압하도록  허용하게 되는것이다.
따라서 사탄은 우리들의 다양한 죄악의 형태마다 , 세력을 갖고 , 악의 세력이 위세를 떨치게 만들어 지구촌 전체로 벋쳐서 , 활동을 하게 만든다.
지구촌의 악당들에게 ,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어,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한다.
항상 협박으로, 무기를 삼고, 활동하는것 또한 특징으로 이야기 할수 있는것이다.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것이 아니요 ,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 대항이라 " ( 엡 6: 12 )
이 말씀은 체계있는왕국 , 저직된 군대에 대한 묘사이다.

모세 오경 에는 천사에 관한 말씀이 나오는데 , 천사는 마지막때에 의인과 악인을 분리, 분별 시킬것이다. 새로운 유토피아( 신세계 ) 를 건설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인간으로 대체하고  곧 영혼을 뺏기 위한 우주적인 시합에서 ( 핑퐁외교 ) 자신을 감추고 몰래 숨어 들어오는 사탄의 세력을
인간의 마음( 영혼 ) 을 뺏기지 못하게 천사들이 막는다는 , 이야기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구촌은 거대한  망상의 가장자리에서 흔들거리고 있다.
지구촌, 우리의 모습은 환상적인 , 미래의 멋진  신세계 ( 유토피아 )로 표현하며, 해방된 인류라고 하는 찬란한 거짓 약속이 제공하는 행복감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걷게 될것이다.
바로 21세기 전후, 사회체계의 변화속에서 , 사회주의해체를 통해 , 지상낙원 이라는 블랙채널을 통해서 경험하였기에 , 허상과 허구, 거짓됨을 이야기 할수 있는것이다.
정사와 권세 , 정치, 경제, 싸움에 있어서 기계적인 우상 그리고 첨단 과학 무기들, 그 악한 통치의 세력이 우리의 의식 심층부에 너무도 깊이 파고 들어와 일반적인 포스트 모던니즘에서 그러하듯이 목소리가 클수록 더욱 높이 , 우상적인 모습이 커질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 인간의 성차별에 대한 왜곡된 개념들 속에서 가부장적인 구조들을 자기들에게서 제거하고서
가부장 제도를 성차별만이 존재할수 있다고 해방을 주장하고 들있다.
하나님의 개념속에서는 가부장의 남성적인 모습을 성차별속으로 개입 시켜 , 자꾸 이성의 평등속에서 혼돈과 해방과 갈등과 대립 시켜 남성과 여성을 올바른 의지를 흔들어 놓고
페미니스트의 표현 된 미래의 모습들을 이야기 해본다.
지구촌의 음과 양의 조화된 모습은 성경속에서도 남성과 여성을 창조의 진리라고 이야기한다.
" 인간의 성에 대한 왜곡된 개념들 , 이성의 왜곡 , 신을 지칭하는 언어들의 잘못된 구조들
인류의 자유와 건강한 관계를 저해하고 , 그러므로 완전히 살아있다는 행복한 느낌을
가질 가능성을 미래적으로 방해하는 왜곡된  표현들을 회복, 치유 시켜 남녀의 결혼관계의 모습은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진리 불변의 인류는 하나된 모습이라고 생각하여야 할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일원론적 영성적 모습으로 , 개종과 성적 풍토, 이성의 역할 , 가족의 구조들의
근대화적으로 와서 점점 , 자유, 평등, 을 외치는 목소리가 미래로 갈수록 점점 더 커지는 것은
첨단 과학의 사회, 도시의 속에서 이야기할수 있을것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 모든 힘든일은 기계에 의지를 하기에 분업화와 전문화속에서
남성의 직업과 여성의 직업이 구분과 구별이 점점 힘들다는 원인도 있을것이다.
21세기 전후 국제적 무한 경쟁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시대적인 역할은 근본적으로 변화 하였으며
이는 인간의 성개념들에 있어서의 거대한 변혁을 대변하는것이다.
여성 상위시대 운동의 근대화를 이론가들은 " 개혁주의 운동이 아니라
혁명적인 운동 이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 진정한 영성은 조금도 부끄럼이 없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계시한 성경의 계시와 창조의 질서에 따른 모습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바르게 잘 가르쳐야 한다는 계몽 사상이 필요할것이다.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하늘에 응하고
하늘과 땅은 사람 즉 생명윤리법, 노동법에 응한다.
하지만 인자들아 !
세상 모든 재앙과 모든 도적이 쳐들어와도
부끄럽지 않는일을  하는것이 복이라네, 축복이라네 !
지구라는 질그릇에 채울수 있는것은 ?
우리들의 달란트면 충분합니다.
생명은 태어나기에 위대한것입니다.
생명예찬을 하기에 지구촌에서 유지를 할수 있는것입니다.
" 예수님의 고난은 전세계의 평화의 호소입니다. "
한번 죽은것은 사람에게는 정하신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 히브리서 9: 27-28 ) 심통난 사람은 심통 냄새를 풍기고, 행복한 사람에게서는 기쁜 냄새가 나고
무관심한 , 이기적인  사람, 모두가 다 주위에 마음이 삶에 냄새가 나고 . 무관심한, 이기적인사람
모두가 다 주위에 마음이 삶에 냄새입니다.
인간의 사상, 사고를 재단할 권리는 어느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의 헌법안에서만이 자유를 누리고, 살수 밖에 없는 권리, 바로 인류의 언약의 약속입니다.
창세기 시대부터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자연스럽게 살았던것이 권리며
의무와 자유라고 구원의 삶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규칙아래 순종하는 삶만이 행복과 기쁨으로 낙원으로 살아 갈수 있는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이요 , 영생입니다.
또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살아남은자만이 역사의 증인입니다.
지구촌의 공동체는 사망이 있습니까 ?
생명이라는것은 사망의 권세를 이긴자를 통하여 받은 생명입니다.
사망을 이기는 생명의역사는 그리스도께 있는것입니다.
그 생명을 믿음으로 받은자로서는 움직일때에 완전한 인격도 생활도 이루어질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아멘으로 은혜를 주며, 영원한 영광을 받으실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이요 , 영생입니다. / 영원한 아멘을 구하는것입니다.
피할수 있는 재난은 서로가 양보하여야 지구촌에서 행복해 질수 있는것입니다.

자연이란것은 우리의 심장박동수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고 , 자율 신경계의 조화를
되찾아 주는 생체 자기 제어 ( Biofeed baok ) 효과 를 정해준다.
냄새 후각과 시각이 어우러지며, 신선한  기억을 되찾아 주기도 한다.
이러한 개념이 자연스러움의 하나님의 내음입니다.
우리의 근원이며, 신체의 신비함을 자랑할수 밖에 없는 인류의구원론이다.
지구촌의 되물을수 있는곳에서 소리, 색깔 , 맛, 냄새, 촉감,을 가슴에 담게 된다.
자연은 천지  창조부터 인간의 근원적 본질로 설명되고 있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이런 자유를 공평하게 안겨 줍니다.
인류의 발자취를 찾을수 있는곳이 우리들의 자연과 생명의 근원입니다.
우리의 환경을 가설 세트장으로 만들지 맙시다.
우리의 시각적인 기능은 그선정적 색채의 자극을 더 요구할것이며
마비 감성, 측 면역성은 더욱 자극적인 환경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 정도면 우리가 저지른 과오를 어느 정도 용서를 받을수 있을까 ?
실로 우리시대, 우리세대가 만든것은 , 믿을수 있는 실명제의 인증이 되어야 하며
책임을 질줄아는 , 책임감있게 , 만든것은 믿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토 불이 ( 身土不利 )  즉 우리것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오류가 없는 표현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믿을수 없는 역사의 공동체가 우리 세대라는 이야기는 듣지 맙시다.
새것같은 사회구조가 어느날 느닷없이 갈라지고 무너져 지구촌의 인류를 경악케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환경을 가설의 세트장으로 만들지 맙시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엉레리 꼴레리 아리랑 !/ 꼭두야 꼭두야 아라리 난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타박 타박 타박네야 , 아라리 난네 !

자원의 완성은 행복한 동행입니다.


출처 : 한경닷컴 > 세계in 게시판
원문 : http://www.hankyung.com/board/view.php?no=304&id=theme_3&ch=comm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 행복한 동행
하늘과 땅과 사람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친구는 하나 !
하늘과 땅과 사랑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지구촌은 하나 !

하늘만큼 / 땅만큼  ... 인권의 국가는 고난 뿐이 없다.

촛불 시위는 봉헌인가 !
촛불 기도는 독일 베르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유럽을 변화 시켰습니다.
세계화 개방 개혁 정책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데올로기즘 문화 , 이지메 문화속에서
파수꾼으로 변화 시켰습니다.
보호 정책속에서 세계가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냉전 시대에서 화해를 이끌어냈습니다.
지구촌 사회체계 를 변화가 되었습니다.
유인력의 힘이 작용하듯이 촛불의 빛으로 이끌렸습니다.
유인력의 능력의 영향으로 자석에 이끌리듯이 불을 밝혔습니다.
지구촌의 모든 믿음 그리고 평화 기도의 힘이 작동시켰습니다.
잘선택을 했기에 ...!
잘못 선택을 했기에 ...!
긍정의 힘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선택은 골라서 취하는 즐거음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버려야 하는 아픔입니다.
촛불 시위 집회 / 봉헌 ...!
쉽지 않는 선택과 결정이 때론
우리 삶에 찾아오기도 하고 피부로 느낄수도 있습니다.
똑 같은것이라면 비교라는 말을 쓸수 없듯이
무언가 다른것이 있기에 간절히 촛불 기도와 평화 봉헌을 합니다.
생활과 믿음에서도 우리는 선택과 결정이 필요 합니다.
인생의 반려자 처럼 확신과 믿음들 !
한번 결정하면 바꿀수 없듯이 ...!
바로 촛불 시위에서 봉헌까지 세계 인권 선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버릴수 없고 바꿀수 없는 역사와 같이 믿음과 확신들 !
촛불 집회에 봉헌 하듯이 국가가 변화 하듯이 ...
지구촌의 모습으로 나타낼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이 인정되는 공인, 공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촛불 시위 / 평화 봉헌 / 평화 수호 / 과잉 진압속에서 ...!
하나님의 하나된 지구촌 모습이 꼭 필요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구촌에 의인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세상을 멸망을 못시킨다네 !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은 전세계 평화의 호소입니다.
생명은 태어나기에 위대한것입니다.
생명예찬을 하기에 지구촌에서 유지를 하는것같이 촛불로 빛을 발합니다.
촛불의 빛은 한발 한발 지구촌으로  세계의 인권선언을 하듯이
앞으로 조금씩 한발 한발 희망으로 , 소망으로 다가서고 나가는 모습들입니다.
빛의 밝기는 하나가 된 지구촌 모습으로 믿음속에서 나타 납니다.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빛은 더욱 더 영롱하고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되어  , 지구촌에 성탄절이 세워져 있듯이
지구촌 평화의 날에  한빛으로 이야기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전세계의 평화의 호소로 나타납니다.
세계 인권인이 되어 적극적 평등 실천 과 실현조치로 나타 납니다.
요즘 촛불 집회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인들이  시민들에게 지구촌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믿음으로 이겨나가겠다고 약속 했습니다.
언약의 약속을 이행하고 있는 모습들로 ...!
신앙속에서 황금률의 법칙으로
로고스 존재확인의 가치 창조로 표현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시대마다, 역사 마다, 계속 태어나기에 위대한것입니다.
생명예찬을 하기에 지구촌에서 유지를 하는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식의 정보화 시대에 부와 경쟁력을 갖추고
승리할수 있는 힘의 주요 원천은 물적 자원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과 창조적인 가치의문화를 이야기 할수 있는것이다.
세상을 바꾼 , 시대적 역사속에서 선구자들의 발상의 도구들을
하나 하나 응용하여, 21세기에 다시 쓴다고 해도 , 역사는 변화될것입니다.

그 촛불이 하나 하나씩 모여서 지구촌을
온세상을 밝히듯이 밤마다 거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가 함께 못살겠다는 촛불 시위가 아닙니다.
온세상을 밝히듯이 밤마다 거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지구촌이라는 질그릇에는 무엇으로 채울것인가 !
우리들의 달란트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듯 합니다.

함께  촛불 기도를 하듯이 / 함께 촛불 시위를 하듯이
우리는 촛불 기도 집회 행사로 나타냈습니다.
여리고 돌고 있듯이 행사로 거대한 성벽을 무너뜨리듯이 나타 납니다.
지구촌 함께 하나가 되면 모든것이 가능하다는
모습으로 공인과 공식이 된 모습으로 봉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소망  합니다. !
촛불 시위 집회가 촛불이 꺼진 모습이 아닌
지구촌을 밝히듯이 / 지구촌이야기가밝혀지듯이 ...
더 많은 촛불 들이 온 세상에 밝혀지기를 그리고
마침내 하나 하나의 행렬이 되어
지구촌의 등불이 되어 창조주의 사람처럼
마음껏 찬양할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서 과거가 사라지듯이
사람의 인생과 삶으로 만들어 집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
말할수 있는 사회와 언론의 자유 , 종교 집회의 자유
사회 보장 되듯이 사람이 사는 사회, 인권 탄압이 없는 사회,
사람이 일체가 되는모습의  지구촌으로 꼭 필요 합니다.
어린아이의 시각적인 모습으로 바라보는 세상 으로 그 모습을
무서워하는 모습으로 / 두려워 하는 모습들이 꼭 필요 합니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요 !
기적을 보고싶은가 ?  그렇다면 자네가 기적이 되게나 !/하는 모습들 !
자원의 완성은 행복한 동행입니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사랑한다면
이름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 하라.
평화의 기쁨을 가장 사랑한다면
얼굴을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 하라.
용서하는 마음은
가장  강한 인내 와 가장 힘있는 용기를 가진자의 가치 창조
로고스 존재 확인의 가치의 창조이다.
바로 촛불 시위집회로 종교인들이 시민들과 함께
평화 집회로 모여든 모습이다.

마음의 평화는
용서하는 인내속에 싹이 트고
평화의 기쁨은
용서하는 용기속에서 열매가 익는다.
수백 수천마디의 바른 말과 옳은 진리를 외치는것도
단 한번의 용기있는 용서를 앞서지는 못한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 촛불 집회, 국민 역량 보여준 용서다.
강력 , 강압 , 진압들 ....하나의 공동체를 행한 용서다.
21세기 전후 안보 양극화 사회 체계, 개방 개혁 문화정책
돌무더기 무너지는 정책 , 도미노 현상  ... 평화의 기쁨으로 보여준 용서다.

용서하고 싶은것은 용서하고
용서하고 싶은 사람은 용서하는것은 용서가 아니다.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일
결코 용서해서는 안될 사람들
용서할수 있는 용기만이 평화의 기쁨을 남긴다.
멸시받고 천대받고 해침을 당할때가 참으로 용서할 기회다.
잠시 눈을 감고 , 최대의 인내와 용기를 발휘하여
거짓 아닌 참된 마음으로 용서하라.
그리고 용서의 대가를 요구하지 마라.
대가를 바라는것은 탐욕에서 비롯된 거짓 용서다.
용서의 대가는 마음의 평화의 기쁨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한다.

공산주의가 아무리 미워도 어떻게 할것인가 ?
멸망 시킬것인가 ? 용서할수 밖에는 없는것이다.
나가 나가 모두 싸우러 나갈것인가 ?
우리는 촛불 평화 집회로 용서할수 밖에 없는것이다.
분단의 장벽이 여전히 이 땅을 갈라 놓고 있지만
장벽을 넘나들여 철새가 날아오는 모습들을 보면
분노를 삭히지만 ...
우리들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촛불 평화 기도하는 용서하는 모습입니다.
촛불 시위 집회하는 용서하는 모습들입니다.
장벽을 넘나들며 서로에게 대한 신뢰를 넓혀가는 모습으로 용서할것입니다.
장벽 너머에 사는 동포를 위해 늘 기도 하는 모습입니다.
머지 않아 이루어질 평화 통일을 간절히 바라며
촛불 집회는 타들어 가듯이 용서하는 마음이 생겨 날것입니다.
용서하는 모습 , 기도하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화해하는 모습은 영원한 승리입니다.

21세기 전후 세계화 양극화 개방 개혁 문화속에서
21세기 첨단 과학 시대를 맞이한 컴퓨터만이 가능한 모습속에서
바코드 물류 혁명, 경제 패권주의 , 사회체계의군사력 충돌 등을
그것을 수용 시키고 관리하는 모습그리고  포함시키는
유비퀘터스바이오칩 RFID 시대로 이야기 하여야 할것입니다.
작은 불빛이 되어 온 세상을 , 온누리를 비추듯이
구원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할때입니다.
촛불이 꺼지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촛불 잔치를 하듯이 , 촛불 시위집회를 뛰어넘어서
인종과 사상과 국경을 초월한 종교의 신앙과 믿음이 하나가 되어야
차별없이 , 분별있게 , 뛰어넘어가서 초월하듯이 지구촌이 함께
손에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 , 뭉쳐서 모여들어 하나의 지구촌을 만들어야 할것입니다.

하늘에서 개벽의 소리로, 천녀의 소리로 ...!
하늘의 음성을 우리의 모습으로 증거하여야 할것입니다.
기적을 보고 싶으면 자네들이 기적이 되게 ...!
위기속에서 기회가 있듯이
촛불 시위 집회에서 뛰어 넘어야 자구촌을 기도 하듯이
지구촌을 봉헌하듯이 만족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기도를 할때입니다.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서 쏟으면
내 진노의 불로 명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 하였으니라 . ( 겔 22: 27-31 )

위대한 지도자는 비젼과 일상의 간격을 메워주는 교육자여야 한다.
그러나 자기가 선택한 길을 사회가 따라 오게 하기 위해
혼자서 그길을 걸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꼭두야 꼭두야 아라리 난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타박 타박 , 타박네야 , 아라리 난네. !

자원의 완성은 행복한 동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