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새로 도입된 청약가점제와 분양가상한제 확대 등의 영향으로 아파트 분양·청약시장이 양극화되고 있다.인기지역은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는 반면 비(非)인기지역은 유례없이 참담한 분양성적을 보이고 있는 것.특히 장기 무주택자를 우대하는 가점제가 도입되기는 했지만 이들 중에는 구매능력이 부족한 수요자들이 많다 보니 가격이 저렴하고 위치가 좋은 단지로만 수요자가 몰리는 ‘청약 쏠림’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이렇게 분양성적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분양가 상한제 확대와 함께 분양권 전매제한이 더욱 강화되면서 수요자들이 극도로 신중하게 청약에 나서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또 가점제 시행으로 수요자들이 점수를 쌓기 위해 청약통장 사용을 꺼리고 있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주택시장 침체로 미분양 아파트 역시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인기지역과 비인기지역의 청약 양극화는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올해 아파트 분양시장을 정리해 본다.
◆아파트 분양시장 격랑 속으로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올해 만큼 일도 많고,말도 많고,탈도 많았던 적이 드물었던 것 같다.집을 지어 공급하는 주택건설업체나,이를 분양받는 소비자 가릴 것 없이 올해는 한마디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아파트 분양·청약시장에 몰아칠 변화의 소용돌이를 예고하는 ‘1·11 부동산대책’이 발표됐다.지난해 나온 ‘11·15 대책’이 주택공급 확대와 분양가 인하를 위해 신도시 등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삼았다면,1·11대책은 민간부문이 핵심 타깃이었다.
공공택지내 아파트에만 적용되던 분양가상한제를 민간택지까지 전면 확대하는 방안이 대책의 핵심 내용이었다.여기에 △분양원가 공개 △민영 아파트 청약가점제 △1인 1대출제 등 굵직한 대책들이 함께 포함됐다.신규분양 아파트의 가격결정 구조는 물론 청약 질서,거래 관행,자금마련 방식 등 핵심 기준을 한꺼번에 뒤바꾸는 조치였다.
이들 대책은 상반기 내내 수많은 논란과 갈등을 겪은 끝에 결국 지난 9월초부터 전면 시행의 길로 접어들었다.아파트 공급자와 소비자들이 분양·청약전략은 물론 주택시장 전반에 커다란 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수도권 청약시장도 양극화
무엇보다 올해 분양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 ‘청약 쏠림’현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수요자들이 몰리는 곳과 외면받는 곳이 극명하게 엇갈렸다.수도권에서도 청약시장 양극화가 본격화됐다.
심지어 ‘청약률 제로(0)’단지까지 속출했다.전방위 규제속에 몇년째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지방권의 대전 울산 광주 춘천 등은 물론 서울 강남에서조차 1~3순위 청약자가 단 한명도 없는 단지가 등장했다.
10월초 분양된 경기도 양주 고읍지구의 경우 동시분양을 통해 1912가구가 공급됐지만 1순위에서 138명만이 신청해 0.07대 1의 초라한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3순위까지 청약신청이 이어졌지만 절반을 채우지 못했다.인근의 남양주 진접지구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파주신도시조차 1~3순위에서 청약자를 채우지 못했다.
반면 입지여건이 좋은 용인 흥덕지구나 동천지구,인천 논현지구 등에서는 주택형별로 최고 200 대 1에 육박하는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서울 성북구 길음동이나 동대문구 용두동 등 그동안 소외됐던 강북지역의 재개발 아파트가 올들어 인기 청약대상으로 탈바꿈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로 꼽힐 만하다.상당수 단지들이 평균 10 대 1을 넘는 경쟁률 속에 1순위에서 마감될 정도였다.
◆청약시장 최대 변수는 ‘환금성’
이처럼 아파트 분양시장이 양극화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무엇보다 분양가 상한제 확대로 공공·민간택지 가릴 것 없이 대폭 강화된 분양권 전매제한을 첫번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수도권을 예로 들면 공공택지에 들어서는 아파트는 계약 후 7~10년,민간택지내 아파트는 5~7년이 지나야 아파트를 되팔 수 있다.입주(등기) 후부터만 따져도 최대 7년간 매도가 불가능하다.아파트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환금성’이 뚝 떨어졌다는 얘기다.양주 고읍,남양주 진접지구 등에서 예상 밖의 대량 미달사태가 발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최근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된 아산신도시에서 공급된 펜타포트가 평균 4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며 마감된 것도 계약 후 곧바로 분양권을 전매할 수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소장은 “아파트 전매제한 강화 조치에 대한 수요자들의 거부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라며 “지역에 따라 전매제한 조건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분양가 상한제가 민간택지까지 전면 확대된 것도 올해 분양시장 양극화에 한 몫 했다.특히 최근까지 민간택지에서 분양된 아파트는 대부분 상한제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주변시세보다 비싸거나 엇비슷한 가격에 공급되는 사례가 많았다.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 ‘몇 달만 기다리면 더 싼 값에 같은 조건의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하면서 일부 고가 분양 아파트들이 외면받았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청약가점제와 재당첨 금지제도다.청약가점제란 무주택기간,부양가족수,청약통장가입기간 등을 점수로 환산해 고득점 청약자에게 민영 아파트의 당첨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다.이에 따라 지난 9월 중순부터 청약예·부금 가입자가 신청하는 모든 민영아파트는 전용 85㎡(25.7평)이하 중소형 아파트는 공급물량의 75%를,85㎡초과 중대형 아파트는 50%를 각각 청약점수가 높은 수요자에게 우선 배정되고 있다.업계 관계자는 “내년 이후 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에서 값싼 아파트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수요자들이 청약통장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그동안 인기를 끌었던 중대형 아파트가 중소형 아파트보다 청약률이 전반적으로 떨어진 것도 가점제 시행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번 아파트에 당첨되면 지역이나 주택형에 따라 가족(세대원) 모두가 3~10년간 다른 아파트의 1~3순위에 청약할 수 없도록 한 ‘재당첨 금지제도’ 역시 분양시장에 영향을 미쳤다.올들어 이른바 ‘4순위 청약’이 늘어난 것이 단적인 사례다.미분양(4순위)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청약통장을 아끼면서도 재당첨 금지 대상에서도 제외돼 나중에 높은 청약점수를 확보한 뒤 인기 아파트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분양·미입주 아파트 급증
최근의 미분양 증가세는 속도는 물론 내용면에서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미분양 아파트는 현재 10만가구를 넘어섰다.우선 전용 85㎡ 초과 중·대형 미분양이 지난 9월말 현재 4만3145가구로 작년말보다 1만5726가구가 늘었다.비율로 따지면 올들어 무려 57.4%나 증가해 같은 기간 23.0% 늘어난 전용 60~85㎡이하 중·소형 아파트보다 증가 속도가 2배를 넘는다.중대형 아파트가 전체 미분양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43.9%에 달해 2004년말(21.6%)이후 3년 연속 비중이 커지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거의 모든 중대형 미분양이 수요 기반이 약한 지방권에 몰려있다는 사실이다.수도권의 경우 117가구(0.2%)에 불과하다.특히 미분양이 1만2000가구 이상 각각 쌓여있는 4개 시·도는 주택보급률이 대구(93.6%)만 100%를 밑돌 뿐 충남이 133.8%,경남 117.2%,부산 104.3%에 이를 정도로 기존주택이 충분한 상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러다가는 미분양 아파트가 20만가구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정부가 지방권 투기과열지구를 대거 해제하고 미분양 아파트를 공공이 매입해 임대아파트 등으로 활용키로 하는 등 미분양 해소대책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아파트가 다 지어진 이후에도 팔리지 않는 ‘준공 후 미분양’과 분양받은 사람이 입주를 못하는 ‘미입주 아파트’ 역시 갈수록 늘고 있는 실정이다.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 9월말 현재 1만5000가구를 넘어 전체 미분양의 16.4%를 차지하고 있다.아파트 열 채 중 한 두채가 분양한 지 3년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는 ‘악성 미분양’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분양을 받아놓고도 이사하지 못하는 미입주 아파트의 경우 기존주택 거래위축과 관련이 깊다.부산이나 대구 등에서는 지역별로 미입주 아파트가 1만가구를 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이들 미입주 아파트는 미분양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기존주택 거래 위축세도 마찬가지다.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9월까지 기존주택 시장에서 전국의 월평균 아파트 거래량은 6만6309건으로 지난해의 72% 수준에 불과하다.특히 서울 등 수도권의 경우 2만9958가구로 작년의 59.4%에 그칠 정도로 위축세가 심각하다.
이러다 보니 집을 넓혀가려는 유주택자들이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놓고도 살던 집이 안팔리는 바람에 입주하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실제 지방권은 물론 서울 강남권에서도 입주가 시작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비어 있는 집이 수두룩한 상태다.참여정부 내내 강화된 보유·양도세제와 대출규제 탓에 기존주택 시장과 신규분양 시장이 동시에 위축돼 있는 셈이다.
◆주택시장 선순환 구조 회복 시급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청약시장 양극화,미분양 누적,기존주택 시장 침체 등이 계속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특히 새로 강화된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권 전매제한 등이 모두 적용되는 민간택지 내 아파트가 내년부터 본격 공급되는 데다 미분양 증가세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향후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만큼 주택 구매력도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미분양 누적에 따른 주택건설업체들의 자금압박이 커지고 있는 것도 또다른 변수로 꼽힌다.분양가상한제로 가뜩이나 수익성 하락이 우려되는 마당에 미분양까지 쌓일 경우 민간업체들이 주택공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이 경우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한 주택공급 목표 달성이 어려워져 또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주택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조기에 회복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수요자들이 기존주택시장과 신규주택 시장에서 지금보다 좀 더 자유롭게 거래나 청약이 가능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이를 위해 세제·금융·거래관련 규제를 시장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물론 연말 대선이 어떻게 마무리되더라도 주택공급이나 거래,금융관련 각종 규제가 단기간에 완화되기 어렵지 않느냐는 전망도 나온다.하지만 올해 신규 및 기존주택시장처럼 경기적 측면보다 정책적 요인이 수요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방 미분양 해소방안처럼 타이밍을 놓칠 경우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밖에 없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김현아 연구위원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과도한 정책효과로 인해 위축된 수요를 정상화시킬 경우 단기적인 거래회복은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주택공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부동산시장은 정부 정책만으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없는 만큼 정상적인 시장기능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참고:2007년 11월 말에 월간지 '주택과 사람들'에 기고했던 내용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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